나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말들을 싫어한다. 나와는 도저히 맞지 않고 그 엄청난 기준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보통 도덕률이나 윤리라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통제하고 싶은 아랫것들'을 겨냥한 강자의 체제인 경우가 거개이기 때문이다. 혼인제도 또한 남자의 고안품으로서 여자를 관리하기에 용이한 소유물로서 두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혼인이라는 틀 속에 들어와 있는 나이지만 늘 호시탐탐 이 제도에서 잠시 놀러 나갈 틈새를 찾고 있고 때로는 조롱해 주고 싶은 강력한 욕망을 갖고 있다. 멋진 사랑을 하고 싶다. 혼인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호시탐탐, 끈질기게 멋진 연애를 할 꿈을 꾼다. 혼인제도란 너무도 불완전하고 약점이 많은 제도이지 않은가? 게다가 인간이 혼인제도를 만들었을 때에는 평균 수명이 서른살 남짓이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요즈음에는 일흔, 여든 살까지 사는 인간의 수명을 고려하면 혼인 적령기는 마흔 살이라는 말도 있다. 읽는 이들은 이쯤이면 나의 사행활이 꽤나 궁금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하는 기대도 가질 것이고...... 그런데 정말로 안타깝게도 나는 사생활 면에서 너무도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살고 있다. 나의 사회적 체면 때문은 절대로 아니다.
내가 도덕적으로 사는 까닭은 단 한 가지. 괜찮은 남자, 멋진 남자가 없어서, 상대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이렇게 사는 것이다. 독자들도 유감스럽겠지만 당사자인 나보다도 더 할까?
여자의 마음을 잡아 끄는 남자의 모습이란
정말로 문제는 남자다. 도무지 끌리는 남자가 없다. '저 남자다!' 싶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략할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눈이 높은 것은 절대로 아니다. 키도 작은 내가 어떻게 눈이 높겠는가? 내가 갖고 있는 것은 '남자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최고 급수의 남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기본 점수를 갖춘 남자'면 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이 대한민국에는 그 최소한 기준에조차 도달한 남자를 찾기가 하늘의 별 걸기인 듯 싶다. 내가 남자에게 바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최소한의 것들이다.
첫째, 나는 돈 있는 남자를 원한다. 돈 많은 남자가 아니라 '돈이 있는 남자'이다. (중략) 내가 돈 있는 남자를 좋아하는 까닭은 그런 남자만이 돈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이 아주 많거나, 돈이 없는 남자는 돈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적당한 경제적 능력을 지닌 남자는 돈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
둘째, '3연'에서 벗어난 남자를 원한다. (중략) 혈연, 학연, 지연은 오늘 우리 사회를 총체적인 부패로 몰아간 가장 확실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사하고 저급한 온갖 사회 사건들을 보면 다 '3연'에 얽히고 헝클어진 남자들끼리 벌이는 일들이다. 실력이 아니라 비빌 언덕을 찾아 헤매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남자들을 보자니 저절로 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생활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자들이여 독립하라
셋째, 나는 독립한 남자를 원한다. 인간의 맨 처음의 독립은 알다시피 자기가 먹을 것을 스스로 만들 수 있을 때 시작된다. 라면을 끓이고 밥물을 잘 맞춰 촉촉한 윤기 어린 쌀밥을 지을 줄 아는 남자가 좋다. 남자 특유의 거센 악력으로 양념이 고기에 쏙쏙 배어들게 불고기를 만들 줄 아는 남자를 원한다. (중략) 초고령화 시대에 스스로 자기 관리가 가능한 독립한 남자를 원한다.
네 번째는 종교가 없는 남자를 원한다. 한 인간으로서 누구에게, 그 대상이 신이라고 할지라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자유의지로 고통과 좌절을 헤쳐나가는 남자를 원한다. (중략) 진정한 남자란 고난과 좌절 속에서 누구에게 매달리지 않는다. 그이는 스스로 답을 찾고 스스로 헤쳐나갈 방법을 구한다.
다섯 번째는 기본 예절이 있는 남자를 원한다. 어느 여자나 마찬가지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남자들의 난폭함'을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 (중략) 기본 예절은 하루 아침에 익힐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남자의 횡포를 당하는 것은 결코 '재수 없어서'가 아니라 '일상적인' 것이라는 점이 문제이다.
여섯 번째는 유머가 있는 남자를 원한다. 사람을 웃게 만들고 함께 밝은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남자는 두뇌회전이 잘 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또한 여유가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뛰어난 순발력과 더불어 사물을 낙천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는 이야기이다. (중략) 그러나 주변의 한국남자들은 귀동냥한 음담패설이나 재방송하지, 깊이있는 독서와 사색과 인생에 대한 여유로 빚어진 밝고 산뜻한 유머를 선물한 노력은 조금치도 하지 않는다.
일곱 번째는 절대고독을 사랑하는 남자면 좋겠다. (중략) 세상의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절대고독을 감수하며 혼자라도 먼 길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이다.
여성적인 부드러움도 남자의 매력
여덟 번째는 반듯한 길을 걷는 남자를 원한다. 강자에게 거부하지 않고 그이와 맞설 수 있고 약자에게 너그러운 그러나 치사한 약자의 길을 거부하는 그런 남자를 원한다.
아홉 번째는 미각이 발달된 남자를 원한다. (중략) 미각이 발달된 남자는 세상에 대해 뛰어난 감성을 지닌 자이다. (중략) 세상에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이 있으며 꿈꿀 것이 많은가를 믿고 호기심이라는 인간 최고 능력을 부지런히 연마하고 있는 사람이 좋다. 무엇보다 자신 속에 당당히 존재하 있는 여성성을 숨기지 않고 섬세한 감정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부드러운 남자를 만나고 싶다.
열 번째는 편견이 없는 남자를 원한다. 자신과 달라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남자, 자신과 다른 생활과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존경할 줄 아는 남자였으면 좋겠다.
열 한번째는 여자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남자를 원한다. 그 남자의 급수는 바로 그 남자가 함께 하는 여자의 수준, 급수와 일치한다. 여성을 한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사랑하고 대화를 나눌 동지로 생각하는 남자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