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웨슬리
(로마서 1 : 8-17)
한 사과장수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수없이 전도를 했지만 아주머니는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그러던 아주머니가 어느 날부터 옷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교인들이 놀란 표정으로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됐는지 물었습니다. 그녀의 대답. “일주일에 세 번씩 우리 가게에 들르는 한 신사분이 있었어요. 그분은 항상 못생기고 덜 싱싱한 사과를 사갔어요. 너무 미안해서 사과를 몇 개 주었더니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어요. 지금 당장 먹을 것이기 때문에 좀 썩은 것도 괜찮다는 겁니다. 그 대신에 남들에게 싱싱한 사과를 팔라고 했지요. 저는 그때부터 그분에 대해 조금씩 존경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분이 제게 예수를 믿으라고 권하잖아요. 그 분이 믿는 하나님을 나도 믿기 위해 두말없이 따라 나섰지요. ”전도는 인내입니다. 전도는 희생입니다. 전도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마음을 감동시켜야 열매가 맺힙니다. 희생과 실천이 없으면 전도도 없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복음이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1.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본문 16절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사도 바울은 복음이 단순한 좋은 소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선언합니다. 복음은 인간의 노력이나 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는 힘입니다. 이 능력은 모든 믿는 자에게 적용되며,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이 자신들에게만 국한된 것이라 생각했지만, 바울은 모든 민족과 사람들에게 복음이 주어진다고 선포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복음의 보편성을 기억하며, 누구나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복음은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게 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이는 우리가 처음 믿을 때뿐만 아니라, 믿음의 여정을 지속적으로 걸어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삶은 한순간의 결단이 아니라, 날마다 복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믿음의 여정입니다.
복음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실제적인 능력입니다.
존 뉴턴은 한때 노예무역에 종사하던 사람이었지만, 극적인 회심을 경험한 후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혀 노예제 폐지를 위해 헌신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깊은 회개의 열매가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Amazing Grace)**입니다. 그는 복음을 통해 자신의 죄를 철저히 깨닫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며, 많은 이들에게 그 은혜를 전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존 뉴턴처럼 복음의 능력이 삶을 변화시키는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과거의 실패와 죄책감에 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사랑 안에서 새롭게 거듭난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을 지속적으로 이끄는 힘입니다.
바울은 믿음이 단순히 한 순간의 결단이 아니라, 계속해서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만날 때, 믿음으로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은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이끄십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결국 승리합니다.
사도바울이 강조하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 세상의 두려움을 이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은 단순한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복음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믿음으로 살 준비가 되었느냐?”
우리 모두가 복음의 능력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길 축복합니다.
2. 웨슬리는 새로운 신앙의 길을 걸었습니다.
1738년 5월 24일, 존 웨슬리는 인생을 변화시키는 성령 체험을 하게 됩니다. 당시 그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왔고, 영국 국교회의 사제로서 사역하고 있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확신과 평안이 부족했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신앙적으로 고민하던 중, 미국 조지아에서 선교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큰 결실을 맺지 못하고 낙심한 채 귀국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738년 5월 24일 저녁, 웨슬리는 런던 올더스게이트(Aldersgate) 거리에서 열린 한 작은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한 사람이 마르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낭독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을 듣는 순간, 그의 마음에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임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서 이 순간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저녁 약 8시 45분경, 루터가 로마서 서문을 설명하는 글을 읽는 것을 들을 때, 내 마음이 이상하게 따뜻해짐을 느꼈다. 나는 내가 구원을 받기 위해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해야 한다는 확신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 나의 죄, 바로 나의 죄까지도 용서하셨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웨슬리는 새로운 신앙의 길을 걸었습니다.
선행은총--내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 이미 주께서 나를 아시고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도권이 예수님께 있습니다. 내 노력으로 내 착함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나보다 먼저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고백하게 됩니다.
회개의 은혜--선행은총을 받아들이게 되면 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과거에는 죄가 아닌 줄 알았는데 그 생각과 언어와 행동이 죄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회개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죄로 여기게 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셨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의롭다 하심의 은혜--죄를 알게 되고 죄가 싫어지지만, 여전히 내 안에는 죄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이 죄가 활성화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합니다. 회개를 통해 죄를 지우고, 또 지우고, 또 죄를 짓고 또 지우고.. 그렇지만 여전히 내 안에 죄의 흔적이 남아 있고 죄에 머물때도 있습니다. 그 즈음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 인정해주시고 천국백성임을 확인해 주십니다. 아직 내가 의인이 된 것은 아니지만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그래서 여전히 감사가 이어집니다.
거듭남의 은혜--이제 의인으로 인정받게 된 우리는 과거와 똑 같이 살지 않게 됩니다. 믿기 전과 후가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미 구원받은 우리가 아직 내 안에 완성되지 않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기 위해 변화의 삶을 시작합니다. 힘들지만 무거운 삶을 시작합니다. 거듭남의 은혜입니다. 거듭남은 그래서 과정입니다.
성화의 은혜--용서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이 생겼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 의지하며 변화를 위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말씀에 길들여져가는 과정속에 기쁨을 누리기 시작합니다.
거룩해져 가는 기쁨, 달라진 내 모습을 보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성화는 우리의 본성이 변화되어 가는 내적인 것이라면, 완전은 정착을 향한 외적인 부단한 과정입니다.
이제는 죄가 싫어진 내가 거룩함을 몸으로 실천해 가는 과정에 이르게 됩니다.이 경험 이후, 존 웨슬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형식적 신앙에서 살아있는 신앙으로 바뀌었습니다.
웨슬리는 이 사건 이후 기존의 형식적 신앙에서 벗어나 살아있는 믿음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 광부들, 농민들에게까지 다가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의 신앙은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행동하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주 교회에 나오고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충분할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새로운 도전과 변화의 부르심이 있을까요? 우리는 신앙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3. 은혜와 믿음안에서 새로워집니다.
신앙은 나이가 들어도 새롭게 변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나는 평생 신앙생활을 했으니 이대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웨슬리도 회심을 경험한 후 완전히 새로운 신앙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언제나 새로운 변화와 성장을 원하십니다.
나이가 들어도 우리는 믿음 안에서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남은 생애 동안에도 새로운 깨달음과 사명을 주십니다.
구원의 확신은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집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종종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에 초점을 맞출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웨슬리가 깨달았듯이, 구원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내가 충분한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충분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웨슬리는 회심 이후 가난한 이들, 노동자들,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의 신앙은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신앙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신앙이 교회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세상 속에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사회 정의와도 연결되어야 합니다. 차별받는 이들, 소외된 이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웨슬리의 회심을 통해 새로운 신앙의 길을 여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신앙은 나이가 들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새로운 은혜로 초대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새로운 믿음의 길을 걸을 준비가 되었느냐?”
시편 103편 2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3장 23-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창세기 12장 2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고 수많이 죄 없는 자유인들이 독일의 수용소(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가던 그 현장 속에서 유대인들이 눈물을 뿌리면서 외친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이 왜 이런 사건을 허용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연합군이 이 수용소를 탈환하고 이 수용소의 벽을 감시하다가 한쪽 벽에 씌여진 찬송가의 가사를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이 그의 신앙의 고백으로 기록해 놓았던 구절이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하나님의 사랑? 이 저주와 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하나님의 사랑이라니 웬 말입니까? 그러나 또 다른 곳에서는 이런 글자가 선명하게 씌여져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God is here)."
하나님은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하시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