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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70s] 25
씬1 을지여인숙, 한 방
더미, 양자를 슬프게 바라본다.
양자: (목이 잠긴다) 그만..니 아버지한테 가.
더미: 방법이 있을 꺼야. 엄마랑 나, 아빠랑 언니. 서루서루 상처 싸매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꺼야.
양자: 듣기 싫어!
더미: 엄마..
양자: 질그릇만 깨지는 줄 알아! 사람 관계가 한 번 깨지믄 더 무선 거야.
죽구 못 살겠다, 입에 든 밥알까지 나눠 먹다가두, 한 번 돌아서믄,
너 죽구 나 죽자, 칼 빼물구 설치는 게 사람이다.
더미: 건, 남이지..어느 부모, 자식이..그래..
양자: 너 하구 난 남이야! 이 기집애야!!
더미: 엄마.
양자: 얼른 가!! 내 속 그만 뒤집구 가!!
양자, ‘가라니까! 가!’ 베개를 집어 던진다. 베개를 그대로 맞고 있는 더미.
양자: 이 년이! 내가 이 자리서 혀 깨물구 죽어야 갈 꺼야!
양자, 더미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 가방을 들려준다.
더미, 울면서 그런 엄마 를 바라본다.
더미: 내일 또 올게..
양자: 오지 말어!
더미: 또 올 거야! 엄마가 내 속을 이렇게 썩히는데, 어떻게 안 와!
양자: ..
양자,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머뭇머뭇 하는 더미를 가만 보고 있으니
주체할 수 없는 정이 밀려든다.
양자, 더미를 꽉- 안아준다.
양자: 미련두지 말자.
더미: 엄마..
양자: (떼어내고, 더미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올려주고 나서)
이 생에서..우리 인연은 이걸루 끝내. 어차피 엄만 죽어지믄,
지옥 구뎅이에 빠질 테니 너랑 다시 연 맺어 태어날 일 없겠지..
더미: ..(눈물만 솟구치는)
양자: 그래두.. 너한테 죄 갚음하라구 내생이..또 한번 온다믄..
그땐, 좋은 엄마.. 좋은 딸루 만나자꾸나. 미안하다..더미야.
양자, 눈물을 훔치고 돌아선다. 더미, 그 모습을 아프게..바라본다.
씬2 을지여인숙, 한 방 앞
강희, 넋을 놓고 앉아 있다. 문 열리고, 더미 나온다.
더미, 뜻밖의 강희를 보고 잠시 놀란다. 강희, 텅 빈 시선으로 올려다본다.
더미, 뭐라 말하려다 그냥 돌아선다.
씬3 앙상블, 손님 접대실
귀부인들이 오면, 접대하는 독립 공간(고급스럽게 꾸며져 있고, 그림, 꽃
등으로 장식. 소파 놓여 있다)
고창회,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양복 윗저고리를 벗고 소파에 앉아있다.
고창회, 들고 나온 더미와 양자의 액자를 본다.
사진속의 더미 얼굴을, 손가락으로 만져보는데 뜨거운 눈물이 고인다.
씬4 앙상블, 마당
연락을 받은 최비서, 황급히 들어온다.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봉실과 차연, 최비서를 맞는다.
최비서: (장봉실에게 목례하고) 여사님, 회장님은요!
장봉실: 접대실에서 쉬고 계십니다.
차연: 최비서님, 차연이 간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쥬스 갖다 드리루
들어갔더니, 아휴, 세상에.. 바닥에 그냥 널브러져 계시더라구요.
회장님, 혈압 있으세요?
최비서: ..
차연: 근데 참 이상하시데. 넘어지면서두, 한더미 사진은 그냥 누가
뺏을세라 꽉! 쥐구 안 놓으시던데.. 뭔 일이에요?
최비서: ..(곤혹스러운)
씬5 앙상블, 손님 접대실
(소리) 노크소리
문 열리고, 최비서 들어온다.
고창회, 손바닥으로 눈물을 씻고, 최비서를 본다.
최비서: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창회: (고개를 끄덕인다)
최비서: 양박사님한테 연락해뒀습니다. 가시지요, 회장님.
창회: 괜찮아. 내가, 우리 준흴 한 번 안아 보지두 못 하구 쓰러질 것
같은가? (들고 있던 액자를 티 테이블에 놓는다)
최비서: ! (소파에 앉아 액자를 본다)
창회: 정말 강희가..준흴 알아보고도 내게 말하지 않았던 걸까?
최비서: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한 방에서, 이 사진을 보면서도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창회:..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다)
최비서: 강희아가씨, 이양자. 두 모녀가 처음부터 준희 아가씨 자릴
차지하려고 저지른 짓입니다.
창회: 이봐! 최비서! 무슨 그런 말이 있어!
최비서: 생모는 친 따님을 이십년간 유기했고, 강희 아가씨는 다 알고서도
숨겼습니다. 달리 어떻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창회: 그럴 리가 없네. 강희가 그 긴 세월동안 날 속였다니...믿을 수가 없어
... (고통스럽다)
씬6 앙상블, 앞
더미, 걸어오다, 고창회의 차를 본다.
더미: ..(차를 바라보는데)
차문이 열리면서, 최비서 나온다. 최비서, 더미를 바라보는 마음이 전과는
다르다. 머리 숙여 공손히 인사를 한다.
더미: (당황하는) 최비서님.
최비서: 회장님이 벌써부터 기다리고 계십니다.
씬7 더미, 준희의 방
더미, 옷을 갈아입었다. 매무새를 고치면서 더미, 고개 갸웃하고..
한 쪽에 놓아 둔 실켓사 셔츠를 가지고 문 쪽으로 간다.
씬8 앙상블, 접대실
더미, 들어온다. 고창회, 앉아 있다 더미를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더미: (애써 미소를 띄우고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창회: ..(고개를 끄덕이는데, 벌써 눈시울이 붉어진다)
더미: 안 그래두, 찾아뵈려 했어요. (실켓사 셔츠를 보이며) 미팔군에서
나온 천인데요. 실켓사라구. 면에다 어떤 가공처릴 했는지
알고 싶어서요.
고창회, 그저 아무 말 없이 더미를 바라보는데 눈물이 흐른다.
더미: 회장님...
창회: 미안하다..
더미: ! (놀라서 창회를 보다, 티 테이블을 보면, 자신과 양자의 사진)
창회: 사리원에서 생각나니?
더미: ....
창회: 어려서 기억할지 모르겠구나...
더미: ...
창회: 우리 준희..그 빵 다 먹기 전에, 데리러 올께...
그래 놓고 이십년이 걸렸구나.
이제야.. 널, 데리러 온..아빠를 용서해라...
고창회, 더미를 와락 끌어안는다.
창회: 준희야..아빠를 모르겠니? 약속을 못 지킨 아빠가 미워 날..잊어버렸니..
더미: (더는 그 마음을 누를 길이 없다. 입술 사이에서, 비명처럼..흘러나오는)
아...빠.
창회: (더미를 본다) 준희야..
더미: 아빠...아빠...아빠...
더미, 억눌린 감정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더미, 아버지의 어깨에
매달리며 엉엉- 소리 내서 운다. 울며, 아빠를 부르는 더미, 그런 딸을
놓칠세라 꼭, 끌어안고 ‘준희야..’ 하며 딸의 이름을 부르는 고창회.
씬9 을지여인숙, 한 방
준희, 소주를 벌컥 병째 마신다. 양자, 준희의 손에서 병을 빼앗는다.
양자: 지금 에미 앞에서, 뭐하는 거야!
준희: 난..또 더미 엄만 줄 알았더니, 내 엄마기두 하나부네?
양자: 뭔 소리 하는 거야, 지금.
준희: 준희하구..엄마, 그렇게 애틋한 모년 줄 몰랐네..밖에서 듣구 있는데,
가슴이 미어지데..어찌나 애틋하구 깊은지, 말 한 마디..한 마디
사랑이 뚝뚝, 떨어지데.
양자: 잘못했어, 엄마가.
준희: (날카롭게 소리를 지른다) 엄마가 뭘 잘못했는지 알기나 해!
양자: (놀라서 본다)
준희: 내가 엄마랑 사는 동안, 들은 얘긴. 돈 벌어야지! 이년아,
물건 간수 잘 해! 목구멍에 밥알 넘기는 게 쉬운 줄 알아!
그것 밖에 없어! 날 살갑게 안아 주길 해봤어?
날 사랑한다 말해보길 했어!
양자: 그땐 세월이 그랬잖아..전쟁 통에, (하는데)
준희: 핑계 대지 마! 전쟁 통에도 사랑하구, 웃고 살가운 식구도 많아!
엄마한테 배운 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밖에 없었어.
훔치든, 속이든, 뺏든 살아남아야 한다. 난 지금까지 그렇게 산 거 같아!
양자: 강희야.
준희: (일어난다) 준희한테 했던 말..엄마한테, 내가 할께. 우리두..이걸로
인연 끊어. 다신..보지 말자, 엄마. (나간다)
씬10 을지여인숙, 마당
준희, 걸어간다. 양자, ‘강희야!! 강희야!!’ 맨발로 뛰어나와 잡는다.
양자: 강희야..용서해... 엄마가, 잘못했다. 강희야...
준희: 용서 못해. 절대루..안할 꺼야.
양자: 니 인생을 이렇게 비틀어버린 거 엄마 욕심이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준희: (양자의 손을 억지로 떼 내고) 두 번 다시..여기 안 올 꺼야.
준희하구..살던 말던두 상관 안 할 테니까, 날..다시 보겠단 생각은 마.
양자: ..
준희: (양자를 본다. 눈물이 난다) 이걸루..마지막이네. 다음 생에두 엄만,
준희하고 함께 살 테니까..우린, 이걸루..영영 끝이네. 잘 살아..
준희, 돌아서서 문 쪽으로 간다. 양자, 자리에 풀썩, 주저앉는다.
양자: 강..희야...강희야...(서럽고 처량하게 운다)
씬11 달리는 고창회의 차 안(저녁)
고창회, 직접 운전을 한다. 조수석에 탄 더미.
고창회, 딸을 데리고 아내에게 가는 길이다. 고창회, 아직도 딸을 찾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운전하면서도 더미를 자꾸만 바라본다.
더미, 그런 아빠를 보며 웃지만, 눈빛이 아프다.
씬12 임진강(저녁)
고창회와 더미, 강가에 서 있다. 고창회, 강 저편의 아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기쁨에 겨워, 목 놓아 아내를 부르는 고창회.
창회: 여보!! 준희 엄마!!! 우리 딸, 준희를 찾았소!! 준희를 데려왔어!!
더미: ..(눈물을 참는)
창회: 여보!! 내 말 들리지!! 당신 지금 보구 있지! 그럴 줄 알았다구
웃고 있지!! 여지껏 못 알아 본 내가 바보였다구, 당신 웃고 있지!!
더미, 강 너머를 애련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마음속에서 피어오른다.
더미, 눈물이 핑- 돈다.
창회: 여보!! 나, 너무 늦었지만 당신한테 약속 지켰소!! 우리 준희 좀 봐요!
당신 닮아, 얼마나 씩씩하고 예쁘게 컸는지!!
더미: ..
창회: (더미를 본다) 준희야, 엄마한테 인사해야지.
더미: 아빠..내가 엄마한테 무슨 말을 해...엄말..죽게 한 딸이..무슨 할 말이 있어.
그 날, 내가 숨지만 않았다면..엄만 돌아가시지 않았잖아..잘못했다는
말씀 밖에 드릴 말씀이 없어요. 미안해요..아빠..죄송해요..엄마..
제가 엄마를...엄마를..돌아가시게 했어요.
더미, 눈물을 흘린다. 고창회, 그런 딸을 보다 어렵게 말을 꺼낸다.
창회: 자기 남은 목숨 다를 버려서라도, 자식 목숨 하루를 더 이어주고픈
게 부모다.
더미: (본다)
창회: 이렇게..살아 있어줘서 고맙다구..아빠 귀에는, 엄마가 하는 소리..
다 들리는데.. 우리 딸, 귀에는..안 들리나 보구나.
더미: ..
더미, 강 건너를 본다. 어느 순간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더미: 엄마!! 엄마!!!! 엄마!!!
엄마를 부르는 애달픈 더미의 소리만이, 텅 빈 강가를 가득 채운다.
씬13 김홍석의 집, 대문 앞(저녁)
비가 내린다.
동영,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동영, 문득 대문 앞을 보면 비를 두드려 맞고 서 있는 준희.
동영: ! (놀라서 본다)
준희: 준흴, 찾아서 행복해?
동영: 강희야.
준희: 더미가 준희란 거 알고 어땠어? 행복했어?
동영: ....
준희: 말해 봐! 준흴 찾아서 행복하냐구! 예고두 없이, 날, 이렇게 벼랑
끝으루 던져 넣어 행복하냐구!! 춤이라구 추구 싶을 만큼 행복하냐구!
준희, 긴장과 흥분 상태에서 까무러친다. 동영, ‘강희야!!’ 부르며 쓰러지는
준희를 받아 안는다.
씬14 동영의 방(저녁)
동영, 준희의 이마에 찬 수건을 대어주려고 하는데. 준희, 눈을 뜬다.
준희, 일어나 앉는다. 동영, 수건을 대야에 다시 놓는다.
준희: 내가, 동영씨한테 그렇게 하찮은 존재였을까.
동영: (본다)
준희: 우리가 함께 보낸 그 긴 세월이..준희를 찾자마자, 수채 구멍
빠져나가는 거품처럼..단숨에 콸콸 빠져 나갔네.
아무 의미가 없네.
동영: 널 생각하면서 나..역시 많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준희: 동영씬..나한테 먼저 말해야 했어.
동영: 처음엔.. 널, 상처 줄까 두려워 망설였고. 다음엔..네가 먼저
말하기를 기다렸다.
준희: 태을방직 후계자, 고준희. 그 이름 버리기 싫어서, 아등바등 붙잡고
있는 내 꼴 보면서, 한심했겠네.
동영: (화가 폭발하는) 좀 더 사람을 믿어봐! 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넌 사랑 받고 있어. 그게 안 보이니!
준희: 보여. 찌꺼기 사랑에 감격해 매달리고 있는 내 모습이.
아빠, 당신, 하다 못해 우리 엄마까지도, 준희한테 다 쏟아 부어
내게 줄 사랑이 없지.
동영: (한숨을 쉰다) 강희야..
준희: 이제, 내가 어떻게 했음 좋겠어? 죽어 줄까? 깜쪽 같이 사라져 줄까?
나만 없으면, 준희. 그냥 준희루 돌아올 수 있으니까 아무 문제가 없잖아?
동영: 너, 정말!!
준희: 그러니 날더러 어쩌라구!!! 어쩌란..거야.
동영: 회장님한테 말씀 드려. 이미 다, 알고 계시지만..그래도, 강희, 네가
먼저 말하길 바라실 꺼다.
준희: ..아빠가 나를 믿어 줄까?
동영: 세상엔 사실하구 진실이 있다. 그게 꼭, 일치하는 것이..아닐 때.
세상 사람들은..그냥 드러난 현상을 보지만..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진실을 봐.
준희: ..
동영: 내가 너를 믿는 것처럼, 회장님은..강희, 네 진실을 바라봐 주실 꺼다.
씬15 태을방직, 비서실(밤)
준희, 들어온다. 최비서, 서류정리하고 있다가 깜짝 놀란다.
최비서: ..(일어서고) 아가씨...이 밤에 어떻게..
준희: 아빠는요..?
최비서: (잠시 망설이다) 지금 안계십니다..
준희: 그래요.. 기다릴께요.
준희, 회장실 문 열고 들어간다.
씬16 태을방직, 회장실(밤)
준희, 고창회의 책상 위에 놓인 액자를 본다.
자신과 고창회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준희, 액자를 내려놓고 보면
황급히 나가느라 미처 치우지 못한 사진이 있다.
준희, 고창회와 오영수, 어린 준희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본다.
준희: ..
씬17 임진강변 농가 마당(밤)
비가 내리는 마당.
고창회, 더미에게 자신의 양복 윗저고리를 입혀 비를 피하게 하고 함께
들어 온다. 비설거지를 하느라, 농기구를 안에 들여놓던 농가 할아버지,
두 부녀를 본다.
씬18 농가 한 방(밤)
더미, 어깨를 주무르고 있다.
고창회, 삶은 고구마와 물이 얹힌 쟁반을 들고 들어오면서.
창회: 배고프지? 이거 먹자. 어르신이 주셨다. (하다, 더미를 본다)
더미: 맛있겠다.
창회: (쟁반을 놓고, 딸 옆에 앉는) 총 맞은 자리가 아프구나.
더미: 어떻게 아셨어요..?
창회: 강희도.. 비만 오면 어깨를 많이 아파했지..
더미: 아빠..나, 부탁이 있어요.
창회: 그래. 말해 봐.
더미: 강희언닐..그냥 준희루 살게 해줘요. 준희루 불린 시간보다
더미루 불린 시간이 길어설까, 더미루 사는 게 편해.
창회: (더미의 심정을 헤아린다)...
더미: 그리구..엄말, (얼른 말 바꿔서) 언니..엄말, 용서해주세요.
창회: ..
더미: 같이 살게 해달란..말씀은 안 드릴께요. 그렇지만, 언니하구 나,
적어두 엄말, 보면서..살게 해줘요.
창회: 그건 안 된다.
더미: 아빠..
창회: 세상엔 수많은 죄가 있다만..그 중 가장 큰 죄는..부모 자식을
생이별하게 만드는 죄다. 그건 부모 심장에 평생 빠지지 않는
비수를 찔러 넣는 일이야. 자식을 훔쳐가는 일만은..용서할 수
가 없는 거야.
더미: ..
씬19 을지여인숙, 한 방(밤)
방이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있다. 양자, 가방에 짐을 다 꾸렸다.
양자, 더미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고 이름을 적는다.
(인서트) 더미에게, 엄마가..
양자, 편지를 주머니에 챙겨 넣고, 가방을 들고 일어선다.
씬20 앙상블, 기숙사 앞(밤)
비가 내리는 거리.
양자, 우산도 없이 대문에 딱 달라붙어 서서 혹여, 딸들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마당 안을 기웃기웃 한다.
양자, 불이 완전히 꺼진..기숙사 안을 보다가 포기하고,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 우편함에 집어넣고 돌아선다.
비 내리는 거리를, 축..처져서 걷는 양자의 모습이 처량하다.
씬21 농가 앞(새벽)
비 그치고, 맑게 개었다.
고창회의 차가 서 있다.
고창회와 더미, 차 앞에 있다. 더미, 멀리 강가를 보는 시선이다.
창회: 준희야, 이제 그만 가야지.
더미: 아빠한테 딸이 둘이듯이, 나한테도 엄마가 두 분이에요..
창회: ..(본다)
더미: 아빠가, 엄마를 용서 못하시면, 강희 언니두, 저두 다 불행해져요.
아빠의..두 딸이..불행해지는 걸, 원치 않으시잖아요.
창회: ..
더미: 엄말..용서해주세요. 부탁이에요..아빠..
창회: ..
씬22 임진강변, 일각(새벽)
(고창회와 더미가 영수를 불렀던 장소와는 다르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 강가.
양자, 가방을 들고 소주가 든 종이봉투를 들고 훠이훠이 걸어온다.
양자, 가방을 내려놓고, 봉투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 딴다.
양자: 사모님, 거기 위에 어디 묻혔다고 들었어요. 나, 이양자예요.
강희 에미. 내 술 한 잔 받으세요. 사모님이랑 술, 한 잔 같이 할라구
온 거니깐.
양자, 강에 소주를 조금 붓고는, 퍼질고 앉아 소주를 병나발로 분다.
양자: (강 너머를 본다) 강희년 하구보다, 사모님, 딸하구 산 세월이
훨씬 더 기니..더미 에미라구 해야겠네요. 사모님하구 저도 보통 인연은
아니네. 딸 하나 놓구 에미가 둘이니..
양자, 소주를 강물에 또 조금 붓고. 자신이 마신다.
양자: 흐응..살아 있다믄, 벌써, 사모님 내 머리채 끄들구, 이년. 저년.
내 딸 훔쳐간 년. 뒤잽일 칠 텐데..이러구 같이, 술두 마시구..좋네..
양자, 벌컥벌컥 소주 한 병을 다 둘러 마신다.
씬23 앙상블, 앞(아침)
더미, 고창회와 인사한다.
창회: 집에 들렀다 가..그래, 네 방부터 새로 꾸며야겠구나.
더미: (고개 젓는다) 언니하고 약속했어요. 패션쇼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자구. 패션쇼가 끝나고 나면, 우리..그 때 편안하게
얘기하기루.
창회: ...아빠가 보루 오는 건 되지..?
더미: (고개 끄덕인다)
창회: ..내가, 도와줄 게 없을까?
더미: (고개를 젓는다) 아빠 도움 안 받을래요. 내 힘으로 할래요..
고창회, 딸의 손을 한 번 잡아주고 차에 오른다. 더미, 아버지가 가는 모습
을 지켜보고 들어가려다가, 우편함이 삐쭉이 열려 있는 모습을 본다.
더미, 편지함에서 편지를 꺼낸다. 양자가 보낸 편지.
더미, 급한 마음에 서둘러 편지봉투를 뜯는다.
(인서트) 양자의 편지.
(양자의 소리) 더미야..엄마, 찾지 말어. 차마, 니 얼굴 볼 염치두 없고..
집에 내려갈 염치두 없구..잠시 딴 데루 간다. 내 걱정은 할 꺼 없어..
넌, 고사장한테 가서..이제라두 행복하게 살어라.
더미: 엄마..(눈물이 핑-돈다)
씬24 임진강변, 일각(새벽)
쓰러진 빈 술병이 두, 세개 된다.
양자: 우리, 강희년이.. 나더러..다신 보지 말자구 합디다. 이 생은 고사하구,
담 생 에서두 만날 일 없다네요. 근데요, 사모님. 더민...날 못 버린데요.
이런 날 에미라구..나 없음 못 산데요. 우리 더미, 얼굴 함 보실래요?
양자, 가방을 주섬주섬 열어 더미의 사진을 꺼낸다. 더미가 지니고 있는
둘이 찍은 그 사진이다.
양자: (사진을 보며) 이쁘게 컸죠? 사모님, 성엔 안차겠지만..그래두, 더민요.
이, 이양자가 내 딸루..키웠어요..건 믿어주셔야 해요.
양자,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양자, 사진을 옆에 놓고 가방에 넣어 온
소주를 한 병 더 꺼내려는데. 바람에 사진이 날아간다.
강물에 떨어지는 사진.
양자, 주우려고 손을 뻗어 보지만 손이 닿질 않는다.
양자, 신발을 벗고 강물 속에 들어간다.
흘러가는 사진을 잡기 위해, 점점 더 들어가는 양자.
어느 순간, 사진은 잡았는데...양자의 가슴까지 물이 차올랐다.
양자, 술에 취한 멍한 눈길로 멀리..강가를 본다.
양자: 더미...야... 강..희야...
양자의 허탈한 눈빛과 모습에서. (Dis)
씬25 태을방직, 회장실(아침)
준희, 소파에 앉아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문 열리고, 고창회 들어온다. 고창회, 준희를 보고 깜짝 놀란다.
준희: (일어난다) 아빠한테..드릴 말씀이 있어서..밤부터..기다렸어요.
창회: (자리에 앉는다) 그래..
준희: (앉고) 더미가, 준희라는 거 말씀 못 드려 죄송해요. 때를
놓쳐버렸어요..제 마음 힘든 것만..돌아보느라, 아빠한테
도리가 아니었어요.
고창회, 준희를 바라보는데 최비서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최비서의 소리) 강희아가씨, 이양자. 두 모녀가 처음부터 준희 아가씨 자릴
차지하려고 저지른 짓입니다.
창회: 강희야, 아빠가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사실대로 말해주겠니?
준희: 예.
창회: 네 어머니를..처음 만난 게 언제냐?
준희: (단호한 창회의 눈을 보다) 아빠가..절, 준희라고..사람들에게
처음 소개한 날요. 그 날, 엄마가 저를 데리러 오셨어요.
창회: ! 그 때부터 준희가 살아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냐?
준희: 아니에요! 그건! 전..정말..준희가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창회: ..(자리에서 일어난다)
준희: 믿어주세요...(따라 일어난다)
창회: 널..어떻게 생각해야할지 모르겠구나.
준희: 아빠..
창회: 나한테 시간을 좀 다오..지금은..아빠가 니 말을 믿을 수가 없구나..
준희: (서글프게 웃는) 아빠도..세상 사람들하고 똑같군요.. 진실보다는
드러난 사실만..보네요.
창회: 강희야..
준희: 괜찮아요.. 엄마가 떠나든, 아빠가 떠나든..동영씨가 떠나든..
그래두 나한텐 남은 게 있으니까..패션이..있거든요.
창회: ..
준희,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고창회,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딸을 본다.
씬26 준희와 더미의 몽타쥬
준희, 상희와 함께 앙상블 목욕탕에서 천을 염색하고 있다.
커다란 대야에 치자물이 담겨 있고, 절구에 수박자두(속이 핏빛인 자두)를
찧어 채에 받쳐 그 물에 모시를 넣고 손으로 주무른다.
준희와 상희, 푸른 쪽물을 바가지로 붓고 커다란 함지에 천을 넣고
빨래 방망이로 누른다.
더미, 동양 상회 박사장과 허름한 시장을 뒤져 공장을 찾아간다.
더미, 실켓사 셔츠를 들고 공장사장과 이야기를 한다. 더미, 가져온 면사를
들고 이야기 한다.
더미: 60수 이합(二合)으루 꼬면 될 것 같아요. (좌?우 검지?중지를 교차하면서)
이렇게 짜임이 들어가면, 비단 같은 광택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준희, 앙상블, 마당에 천연 염색한 천을 널고 있다.
노란색, 쪽빛, 붉은 색 천이 바람에 나부낀다.
준희, 염색한 천 상태를 만져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장봉실.
더미, 공장사장에게 시제품 실켓사 원단을 보며 고개를 젓는다.
더미: 이건 너무 거칠어요. 꼬임을 지금보다 낮춰서 꼬면 어떨까요?
그럼, 훨씬 매듭이 적어지구, 유연성이 좋아질 것 같은데..
앙상블, 실습실에 준희의 완성된 작품들 몇몇 개가 벌써 마네킹에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준희, 방육성과 함께 자신의 스케치를 보면서 천을 드레이핑 한다.
방육성, 주름을 잡으며 ‘이렇게?’ 하고 묻고, 준희, 고개 젓는다.
준희와 방육성, 머리를 맞대고 주름을 다시 잡는다.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보는 차연.
더미, 재단실에서 의상을 만들고 있다. 혼자, 본을 만들어 재단을 하는데
코피가 흘러, 천에 뚝뚝 떨어진다. 그 모습을 보는 연경과 피에 르.
씬27 앙상블, 마당
마당 한 가득, 준희의 염색한 천들이 널려 있다. 더미, 코피를 훔치고
손바닥으로 분수대의 물을 떠 이마를 적신다.
더미, 얼굴 내리고 돌아서는데 또, 코피가 흐른다.
따라 나온, 연경과 피에르. 연경의 손에 얼음주머니가 들려있다.
연경: 그렇게 해서 되니. 앉어 봐.
피에르: 그래요, 더미씨. 그래 갖구 피 안 멎어요.
연경과 피에르, 더미를 의자에 앉힌다. 연경, 더미의 이마에 얼음주머니를
올려 준다.
더미: 고마워, 언니.
연경: 니가 부엉이냐? 올빼미야? 날이면 날마다 날밤 센다구,
그게 다 할 수 있는 거야? 아우, 미친다. 진짜. 너, 왜케 뻗대니!
피에르: 사람이 왜 그렇게 자존심이 쎄요. 선배들한테 죽는 소리라두 해보면,
다들 더미씨 딱한 거 아는데. 설마 모른 체 하겠어요!
더미: 지금이라두 죽는 소리 하면, 도와줄 꺼야?
연경: 언니가 졌다, 그래. 재단이구, 재봉이구 얘랑 나랑 다 할 테니까,
제발 잠 줌 자라, 잠 줌!
씬28 앙상블, 실습실
더미, 연경과 피에르에게 스케치를 보며 설명한다.
남자 캐주얼 두 벌이다. (패션쇼에서 빈과 피에르가 입을 옷이다)
피에르: 남자 옷은 왜 해요?
더미: (세트로 올라 갈, 여자 캐주얼복 스케치를 함께 보여주며)
이것만 올라가면, 밍밍해서요~ 남녀 쌍으로 올라가면, 보완도 되고
좋을 것 같은데..
연경: 너, 밤 더 세야 되겠다. 아주, 정열이 넘쳐요. 열다섯 벌 갖구두
부족하디? 과외루 남자 옷까지 만드시구.
더미: 실켓사를 사람들한테 알리구 싶어.. (원단을 들어 보이며)
봐, 언니. 실크는 아니지만, 훌륭하잖아! 값두 실크 가격 칠분의
일이 안돼. 심하게 옷 사치하는 거, 좋은 거 아니잖아.
피에르: 건..그런데요..아우, 난 잘 모르겠어요. 근데, 이 옷은 누가 입어요?
더미: (배시시 웃으며) 선배가요.
피에르: 예! 나요!
더미: (고개 끄덕이고) 할 수 없어요~ 모델, 살 돈 없으니까.
(스케치 하나를 가리키며) 이건 선배가 입구.
연경: (다른 남자 옷 스케치를 보이며) 이건?
더미: 빈씨..
연경: 엥! 나의 우상 빈씨 옷을 니가 왜 만들어! 글구, 빈씨, 독립한다구
나간 지 이주가 넘도록 한 번두 안 오는데,
어디 또 여행 갔음 어쩔라구?
더미: ..
씬29 한남동, 빈의 집
원룸식으로 된 작고, 좁은 공간이다. 빈, 수족관만 가져왔다.
한 쪽에 침대 대신 매트리스만 깔려 있고. 여기저기 옷가지가 늘어져 있다.
트레이닝 복 차림의 빈, 벽에 기대 앉아 있다.
빈, 완전히 폐인 같다. 방 안 가득, 쓰러진 술병..쓰레기들..구겨진 담배갑과
꽁초가 수북이 쌓인 유리병. 먹다 버린 캔 깡통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빈: ..(무표정한 얼굴로, 더미가 만들어 준 오재미를 벽에다 던진다)
빈, 벽에 맞고 떨어진 오재미를 집으러 간다. 왼 팔로, 오재미를 집으려
하지만..손에 잡히지가 않는다. 빈, 터질 것 같은 표정이다.
(소리) 초인종 소리
(장봉실의 소리) 빈아? 안에 없니? 빈아!!
씬30 빈의 집, 앞/빈의 집, 안
지금으로 보자면 다세대 주택 같은 느낌. 빈의 원룸 앞에서, 먹을 것을
싸온 장봉실, 손으로 문을 두드린다. 문 한 쪽에, 이전에 장봉실이 가져다 둔
음식이 보자기에 싸인 채 그대로 놓여 있다.
장봉실: 빈아..제발..문 좀..열어줘.. 이러려구, 너..집 나온 거니.. 응?
엄마 앞에서..아프면 안 되는 거니..빈아..제발..
빈, 무표정하게 벽에 등을 대고, 주르륵- 미끄러지듯이 앉는다.
장봉실: (한숨을 쉰다) ..엄마, 오늘은..갈께.. 내일, 또 오마.
장봉실, 가지고 온 보따리를 문 앞에 잘 놓고, 어제 가져왔던 것을
들고 힘없이 돌아선다.
씬31 대통령 집무실
복귀한 동영의 첫 출근이다. 동영, 대통령에게 인사한다.
대통령 옆에, 흐뭇하게 아들을 바라보고 있는 김홍석 장군.
동영: 김동영, 각하의 부르심을 받고 복귀했습니다.
대통령: 그래, 고생했어. 잘 왔어!
대통령, 동영의 어깨를 두드려 준다.
대통령: 내가 자넬 김중린한테 보내 놓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알아?
총격전 있었다는 얘긴, 대사관에서 바로 보고가 들어왔는데.
이거야, 원 상태가 어떤지 알 수가 있나.
동영: 심려 끼쳐 죄송합니다.
대통령: 이제, 김동영이가 놓은 다리, 김동영이가 마무리 해야지?
김중린이, 일단 대화 창구로 자네를 지목했어.
대북 담당 비서관이라는 게 힘들 꺼야.
동영: 각오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그래. 우리 올해 안에 동대문 운동장서 남북, 축구 대결 함
해보자고.
동영: 노력하겠습니다, 각하.
씬32 국방장관 집무실
동영과 김홍석, 들어와 소파로 간다.
김홍석: 빈인..어떻게 하고 있니?
동영: 여전히 침잠하고 있어요..아파할 땐, 뿌리가 뽑힐 때까지 아파야
할 것 같아..가만 지켜보고만 있어요.
김홍석: 청와대든 국방부든 자리를 만들어야지. 빈인 충분히 그만한 자격 있어.
동영: 아뇨..아버지. 빈인, 이런 일이 맞질 않아요. 누구보다 자유롭고..
훨훨 날 수 있는 일을 해야 해요. 빈이..마음에 응어리가 뽑혀지면,
함께 찾아보려구요.
김홍석: (고개 끄덕인다) 그래..
씬33 빈의 집, 앞
더미, 손에 방육성이 그려준 약도를 들고 앞으로 온다.
더미, 문 앞에 놓인 장봉실의 음식 보따리와 빈 술병을 잠시 본다.
더미: ..(초인종을 누른다)
씬34 빈의 집, 안
빈, 어지러운 공간을 헤집고 누워 있다.
빈, 지그시 눈을 감는데 더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더미의 소리) 아무도 안계세요? 빈씨?
빈: ! (벌떡 일어난다)
빈, 커튼이 드리워진 창으로 간다. 빈, 커튼을 젖히고 본다. 더미다.
빈: 더..미야..
빈, 중얼거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문으로 손을 뻗는다.
빈, 그러다 흠칫, 손을 거둔다.
씬35 빈의 집, 앞
더미, 커튼이 젖혀졌다가 다시 내려지는 것을 본다.
더미: (손바닥으로 문을 때린다) 빈씨!! 문 열어요! 나, 더미에요!
안 열어준다구, 그냥 갈 줄 알아요! (주먹으로 쾅쾅! 치면서)
자꾸 이러면요! 문 따주는 사람 데리구 올 꺼예요!
열쇠공한테 열어 달라 그럴 꺼예요!!
더미, 문을 두드리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린다. 더미, 놀라서 보면
빈이 무표정한 얼굴로 보고 있다.
빈: 어떻게 알구 왔어?
더미: 방선생님이 알려주셨어요..
씬36 한남동, 어느 길
동영이 탄 택시가 멈춘다.
동영, 차에서 내린다.
동영, 빈에게 가는 길이다.
씬37 빈의 집, 안
더미, 장봉실이 가져다 놓은 음식보따리를 들고 들어와 방 안을 보고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다. 더미, 표정 수습하고..술병을 치우기 시작한다.
커다란 쓰레기통에 술병과 빈 통조림 깡통을 집어넣는.
빈, 그 모습을 본다.
빈: 그냥 가주라..
더미: 씻어요. 아님, 밖에 나가서 산책이라두 하구 와요.
빈: 그냥 두구 가라니까!!
더미: 싫어요. 못가요. 안가요.
더미, 보따리 보자기를 푼다, 그 안에 삼색 찬합이 들어 있다.
하나의 뚜껑을 열면, 그 안에 김밥과 음식들이 가지런히 담겨 있다.
더미: 술 먹은 속에 뻑뻑할 테니까, 콩나물이라두 사와요. 국 끓여 줄께요.
빈: 내 말이 우습게 들리니! 가라잖아! 언제부터 너, 나한테 잔소리 하면서
내 공간을 맘대루 들락거렸어!
더미: 잔소리 해달라면서요! 잔소리 해주구, 참견해 달라구 했었잖아!
빈: 한더미!
더미: 이거, 다 선생님이 밤새 하신 거야. 실습실에서 일하다보면,
밤마다 도마질 소리가 나. 한 번두 음식 같은 거, 해 보신 일 없는
선생님이 어떤 마음으루 만드셨는지 함 생각해 봐요!
빈, 화가 나서 찬합통을 집어 벽에 던진다.
더미: 빈씨!!
빈: (아픈 팔을 보여주며) 너두 안 거지? 내 팔이 이렇다는 거!
너한테 이런 덜렁거리는 팔 흔들구 다니는 모습 보여주기 싫어서
나온 거야!
더미: ..(빈이 그렇게까지 말할 줄은 몰랐다)
씬38 빈의 집, 앞
동영, 걸어온다. 동영, 계단을 걸어와 초인종을 누르려면 문이 열려 있다.
동영, '빈아’ 하면서 손잡이에 손을 가져가는데.
(더미의 소리) 빈씨, 이제 그만 해요!
동영: !
씬39 빈의 집, 안
더미, 빈과 마주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더미: 빈씨 팔이 얼마나 아픈지...그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난 몰라요.
내가..짐작하는 것 보다 훨씬 힘들 꺼라는 거 알아..
빈: (본다)
더미: 근데요. 나, 알아요. 빈씨가 왜 그렇게 끊임없이..세상에 대해
툴툴거리고, 불행해 하는지.
빈: ..내가..왜 그러는 거지..?
더미: 빈씨 스스루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빈: !
더미: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세상에 친절해요..타인한테 관대해.
우리, 어린 시절 탓하는 건 그만해요. 누구나 다, 부모님한테 충분히..
사랑받고 크는 애들은 드물어요..
빈: ..
더미: 이젠.. 그냥..우리가 우릴 사랑하구. 우리..엄마들을 사랑해주면
안 되는 거야?
빈: ..
더미: 난...빈씨가..자신한테..너그럽고, 따뜻했음 좋겠어..
빈: ...한더미...나..한 번만 안아줄래?
동영: !
씬40 빈의 집, 앞/빈의 집, 안
동영, 문을 열고 들어서 있다가, 차마..바라보지 못하고 돌아선다.
동영, 조용히 돌아서 나와..문을 닫는다.
더미, 문 쪽을 마주하고 있어, 그 모습을 본다.
동영: ..(눈시울이 붉어진다)
동영, 힘없는 걸음으로 돌아선다.
씬41 빈의 집, 안
빈: 한더미..나, 한 번만 안아주라..
더미: (빈을 가만 보다) 빈씨가..정말 안기고 싶은 사람은 내가 아닐 꺼야..
내가, 백 번 천 번 안아 준다 해두 빈씨, 마음에 응어린 풀리지
않는 걸 알아요.
빈: 더미야..
더미: 빈씨가 정말, 안기고 팠던 분께..안겨요.. 어머니한테..안겨서 울어요..
빈: ..
더미: (놓여있던 가방에서, 패션쇼 초대장을 꺼내 준다) 패션쇼 초대장이야.
빈: (받는다)
더미: 빈씨가 꼭, 입어줬음 하는 옷을 만들구 있어요. 와서..
꼭, 내 옷 입어줘요.
씬43 태을방직, 회장실
최비서, 고창회에게 초대장을 건넨다.
최비서: 강희 아가씨께서..패션쇼 초대장을 보내셨습니다.
(인서트) 앞면에 주소와 함께 고창회 회장님 이라고 적혀 있다.
뒷면에는 준희가 직접 쓴 앙상블 주소와 한강희 올림, 이라고 적혀 있다.
창회: ..(뒷면에 쓰인 한강희..라는 이름이 마음에 걸린다)
씬42 공원
동영, 걸어간다. 더미, ‘오빠!! 오빠!! ’부르면서 뛰어온다.
동영, 돌아본다. 더미다.
더미: 왜 그냥 가요?
동영: (미소) 음..글쎄. 중요한 얘기 나누는 것 같아서.
더미: .. 화났어요?
동영: 아니, 화가 왜 나.
더미: 요즘은 만나러 잘 오지도 않고, 전화도 뜸하구..걱정했거든요.
동영: 많이 했잖아.
더미: 이삼일에 한 번이 많아?
동영: 어떻게 더 자주해? 일은 않구 연애만 하나?
더미: 나, 벌써부터 일에 밀린 거네?
동영: 잘 지낼 걸 아니까. 패션쇼 준비로 힘들 텐데. 가만히 멀리서
지켜보는 게 돕는 거다 생각했지.
더미: 그게 다예요?
동영: ..전에 말했지? 기적은..어쩌면 인간의 의지가 불러일으키는 힘일
지도 모른다고. 빈이한테.. 네가,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힘이 됐으면 좋겠다.
더미: ..(서운한 시선으로 본다)
동영: (미소) 패션쇼 준비는 잘 되가?
더미, 가방에서 패션쇼 초대장을 꺼내 준다.
동영, 사각봉투에서 꺼내 초대장을 열어본다.
(인서트) 앙상블, 고준희, 한더미 패션쇼라고 적혀 있고..
앙상블, 고객들을 초대합니다. 라는 문구와 시각이 적혀 있다.
더미: 와 줄 꺼죠?
동영: 그럼. 네 데뷔 무댄데. 가서 지켜봐야지.
씬47 반도호텔 앞(밤)
손님들, 카메라를 든 기자들 몰려든다.
동영, 택시에서 내린다.
씬48 반도호텔, 패션쇼 장(밤)
고창회를 비롯한 귀빈들 자리에 착석해 있다. 신문기자들, 의상계 기자들, 사진 찍고. 귀부인들 앞좌석에 앉아 있다.
사회자석에 간접조명 밝혀진다. 장봉실이 드레스 차림으로 나온다.
장봉실: 이렇게, 앙상블 패션쇼에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이 패션쇼는 앙상블을 새로이 이끌어 갈 신예 디자이너를 여러분들이 직접 선정하시는 자리입니 다. 우선, 오늘 패션쇼를 이끌어 갈 두 디자이너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패션쇼 무대 끝에 불이 밝혀진다.
더미와 준희, 무대 앞으로 걸어온다.
화려한 준희의 의상과, 심플하고 감각적인 더미의 의상부터 대비된다.
장봉실: 고준희양입니다.
준희: (우아하게, 가슴에 한 손을 대고 인사한다)
창회: ..(준희를 바라본다)
장봉실: 한더미양입니다.
더미: (인사한다)
장봉실: 쇼를 시작하기 전에 알려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의 무대는 고준희,
한더미 두 디자이너의 작품을 평가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셨는지, 선택하셔서, 받으신 칩을 박스에 넣 어 주세요.
감사합니다.
간접조명이 어두운 객석을 지나, 한 쪽을 비춘다.
손님들, 조명을 따라 시선이 옮겨진다.
테이블 위에, 투명한 투표 박스가 두 개 나란히 놓여 있다.
박스에 각각 아크릴 명패로 ‘한더미’, ‘고준희’ 라고 이름이 붙어 있다.
씬49 패션쇼 장, 동영 있는 곳(밤)
문이 열리고, 오경사 들어와 두리번거린다.
동영, 문득 뒤를 돌아본다. 오경사다.
오경사: (먼저 알아보고) 아이고, 비서관님 아이십니꺼?
동영: 아! 오경사님. (목례한다)
오경사: 장빈이 문디 자슥은 잘 있찌요?
동영: (웃고) 예.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오경사: 고준희라고, 태을방직 고회장님 따님 좀 만나루 왔십니다.
동영: 준희를요?
오경사: 얼마 전에요. 임진강에서 실종신고가 하나 들왔는데요. 가방이랑 신발은 있 는데, 고마 사람은 빠져 죽어 뿌??는지 온 데 간 데가 없는 기라요. 그 가 방에서 앙상블 전화번호 하고 고준희씨 이름이 안 나왔는교.
동영: ! 그 분이 누굽니까!
오경사: 신분증엔..오갓난이라구 돼있던데...와예?
동영: !!
동영, 놀라서 무대 위의 더미와 준희를 보는 모습에서(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