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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04월30일(수요일) 제주도 여행일정
06:00~07:00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남2길 36 번지에 있는 빨간풍차펜션 객실에서 기상하여 세면 및 양치질 후 짐 정리
07:00~07:24 빨간풍차펜션 식당에서 딸기잼을 바른 토스트 4개와 커피로 아침식사
07:24~08:17 렌트한 승용차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남2길 36 번지에 있는 빨간풍차펜션을 출발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3825-1 번지에 있는 충혼묘지 주차장으로 이동 [53분, 38.1km]
[천왕사
아흔아홉 골의 수려한 풍광 속에 들어앉은 천왕사는 한라산 어승생 동쪽에 수많은 봉우리와 골짜기로 이루어진 아흔아홉 골(구구곡)중 하나인 금봉곡 아래 위치한 사찰이다. 1955년 천왕사 근처 토굴에서 참선수행하던 비룡스님에 의해 수영산 선원이란 명칭으로 처음 창건되었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로 등록되어 있으며 비록 건립된 지 오래되지 않았으나 1994년 전통 사찰로 지정되었다. 대웅전 바로 뒤로는 용바위라 불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고, 마당 왼쪽 자락에 기세 좋게 곧게 뻗은 바위가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사찰 옆의 냇물을 따라 올라가면 한라산의 유일한 폭포라는 선녀 폭포가 나오고, 사찰 입구에는 약수터가 있다. 특히 가을에 기암절벽 아래 물드는 단풍이 장관으로 알려져 있다.
이용안내
이용시간 : 상시개방(18:00이후 제한적 이용)
쉬는날 : 연중무휴
주차시설 : 있음(주차공간 여유있음), 무료
유모차대여여부 : 불가
애완동물가능여부 : 불가
문의및안내 : 064-748-8811
관련 홈페이지 : https://www.visitjeju.net ]
산 : 제주시 [천왕사 & 선녀폭포]
산행코스: [충혼묘지 주차장~(455m)~천왕사~(800m)~선녀폭포~(1,255m)~충혼묘지 주차장] [이동거리 약 2.5km]
일시 : 2025년04월30일(수요일)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1시간43분 소요)
08:17~08:27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3825-1 번지에 있는 충혼묘지 주차장에서 탐방 출발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1100로 2528-111 번지에 있는 천왕사로 이동
[한라산과 사찰
제주=박부영 논설위원 chisan@ibulgyo.com
도움=이병철 제주불교방송 부장
[불교신문3698호/2022년1월1일자]
‘불기 2566년 신년 특집’
한라산 나한 상주하는 부처님 산, 탐라는 정법 머무는 ‘法住道場’
佛來오름, 부처님 설법하신 영실, 오백나한봉 곳곳 불교이름
➲ 제주 불교 중심 관음사
한라산을 대표하는 사찰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본사 관음사다. 한라산 650m 기슭에 자리한 관음사는 제주의 30여 사찰을 관장하는 제주불교 중심이다. 관음사는 제주에 불교가 전래될 당시 창건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제주불교 역사와 같이 하는 셈이다. 이는 제주의 신화 전설 민담 등에 남아 있다. 제주에서는 관음사를 괴남절, 개남절, 동괴남절, 은중절 등으로 부른다. 관음사가 오랜 세월 제주와 함께 하면서 민간에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관음사는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에 의해 제주 지역 사찰이 전부 훼철될 때 같이 사라졌다가 1908년 안봉려관스님이 중창했다. 스님은 해월굴에서 3년간 관음기도를 드리며 법당과 요사를 완공하고 통영 용화사에서 불상과 탱화를 모셔와 사찰 모습을 갖췄다. 이어 제주 중심지 중앙로에 시내 포교당 대각사를 세워 도심 포교도 펼쳤다. 1939년 화재로 인해 대웅전 등이 모두 불탄데 이어 1948년 제주 4·3 당시 관음사가 토벌대와 입산 무장대가 대치하는 전선이 되면서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한라산 입산 금지가 풀리면서 1969년부터 불사를 시작해 대웅전을 시작으로 선방 영산전 해월각 사천왕문 일주문 종각 등을 갖춰 지금은 제주불교를 대표하는 가람답게 대찰로 변모했다. 종단의 많은 고승 대덕이 관음사 주지를 맡아 오랜 세월에 걸쳐 복원하고 시내 포교당을 통해 불법을 전한 덕분이다. 특히 현 주지 허운스님의 헌신이 크다. 24개 교구본사 중에서 유일하게 선원이 없다는 평을 들었던 관음사는 세불선원을 세워 불명예를 씻었다. 미륵대불과 만불상을 조성해 제주시내와 바다를 바라보며 제주도민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한다. 2009년 완공한 선센터는 템플스테이로 재가불자들의 수행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최근에는 한라산 중턱에 나한전 불사가 한창이다.
관음사는 입구에서부터 현무암으로 조성한 불상을 만나 제주 불교의 특성을 만끽한다. 잘 조성된 숲과 현무암 석불이 맞이하는 관음사 일주문에서 경내까지의 길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수행길이다.
무엇보다 제주불교의 역사를 경내에 조성한 것이 눈길을 끈다. 관음사를 다시 일으킨 안봉려관스님의 이력과 수행했던 해월굴, 4·3의 아픈 역사를 만난다.
➲ 제주불교에 부는 선(禪) 열풍
제주에는 고승들의 자취와 법이 소리 없이 곳곳에 남아있다. 이들 모두 선승(禪僧)이라는 점도 이채롭다. 제주는 자연환경이 열악한 섬 지형 상 기복이 강하다. 그 전통은 지금도 강하게 남아있다. 거친 바다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이 땅 사람들에게 죽음은 늘 함께였으니 종교가 그 두려움을 가져가야 했다.
하지만 현대 제주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제주는 이제 과거의 버림받은 자들의 유배지가 아니다. 화산이 만든 남국의 이국적 정취, 한라산, 푸른 바다, 따뜻한 기후를 지닌 ‘파라다이스’, 휴양지로 최고의 각광을 받는 섬으로 변모했다. 낙원을 찾아 육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유가에 탄압받았던 ‘제주의 종교’ 불교가 살아나고 기복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면서도 참선이 새로운 사조로 자리 잡았다. 종정을 지낸 고암스님, 제주출신의 선승 혜국스님, 혜인스님, 원명선원 대효스님, 천왕사 비룡스님, 월서스님 등 뛰어난 고승 선승들에 의해 많은 선원이 생겼다.
➲ 나한 산신기도도량 천왕사
관음사와 더불어 제주시 방향의 한라산에 자리한 대표 사찰이 천왕사(天王寺)다. 어승생오름(1,176m) 동쪽 수많은 봉우리와 골짜기로 이루어진 아흔아홉골 또는 구구곡(九九谷)이라 불리는 아흔아홉 골 중 하나인 금봉곡 아래쪽에 자리 잡았다.
1956년 조계종 원로의원을 역임한 월정사 비룡스님이 영주선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원했다. 이후 1992년 호계원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법주사 조실로 금오선사의 법을 후학들에게 전수하는 월서대종사가 이 절 주지로 부임하면서 쇠락하던 절은 일대 혁신을 했다.
초입에 들어서면 천왕사를 창건한 삼광당 비룡선사 부도탑을 만난다. 천왕사 주변은 빼어난 자연경관과 나한 기도 영험 도량으로 기도객 관광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찰이다. 천왕사 아흔아홉골에 주석한다는 발타라 존자의 신앙이 널려 퍼져 있다. 절 주변의 세존바위, 보살바위, 남근석 등 기묘한 바위와 홍송 숲이 더해져 천왕사 명성을 높였다.
주변 산세와 어울리는 웅장한 모습에다 전통건축양식을 충실히 계승한 수작으로 평가받는 대웅전이 유명하다. 사찰문화연구원 신대현 교수는 불교신문에 “비룡스님이 수행했던 토굴에서 비롯된 천왕사가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된 것은 월서스님과 현재 주지를 맡고 있는 지오스님에 의해서였다. 월서스님은 비룡스님에 이어서 천왕사의 기틀을 잡아 실질적 창건을 이루었고, 근래에는 지오스님이 대웅전을 새로 짓고 도량을 정비함으로써 화룡점정했다. 그러니 천왕사의 중흥은 이 두 사제(師弟)에 의한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고 평한 바 있다.
➲ 고암스님 만나는 선덕사와 영원사
서귀포시 상효동 속칭 ‘선돌 지역’은 오래 전부터 스님들이 수행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중기까지 존속했던 두타사, 쌍계사 등의 터가 그 역사를 말해준다. 지금은 선덕사가 제주 선불교 명성을 잇는다.
조계종 제 3, 4, 6대 종정을 역임한 윤고암스님을 존경했던 부부 불자의 신심과 스승의 가르침을 이은 손상좌 학균스님의 수행과 열정이 선덕사를 만들고 이끌어온 힘이다. 고암스님은 손상좌인 학균스님에게 이곳에 부처님의 바른 법을 이어갈 선불장(選佛場)을 일으켜 세울 것을 권했다. 당시 선덕사 자리에는 150평의 부지에 30여 평의 법당과 작은 요사를 갖춘 선도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 1870년 무렵 쌍월 선사와 응월스님이 이곳에서 수행했으며 근처에 두타사 터가 있는 등 오래 전부터 수행처로 유명했던 곳이다.
억불과 전쟁 등으로 사라졌던 터에 고암스님의 법력, 독실한 단월의 지원에 힘입은 학균스님의 원력에 의해 학전선원을 시작으로 새롭게 산문을 열었다. 학균스님은 선도암을 중심으로 주변 3만여 평 부지를 마련하여 불사에 들어갔다. 대적광전을 비롯한 삼성각 웅진전 범종각 불이문 보광당 사천왕문 범종루 옥칠불전 금강문 등 10여동의 건물을 목조 전통 가람형태로 축조해 한라산과 어우러지는 신심나는 아름다운 가람을 조성했다.
대적광전은 특히 제주도 내 사찰 법당 중에서 유일하게 중층 목조 구조여서 독특함과 미적 완성도로 제주도민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학술 가치도 높다. 이러한 이유로 2005년 3월 선덕사는 서귀포시향토유형유산 제3호로 지정되었고 같은 해 10월 ‘선덕사 대적광전’이 제주도지정문화재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다. 또 고암스님이 전수한 선덕사 소장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3종도 2003년 7월2일에 제주특별자치도 유형 문화재로 지정됐다.
이처럼 선덕사는 울창한 숲과 어울려 고즈넉한 정취로 많은 참배객들이 찾아와 삼림욕을 즐기며 지역 신행단체들의 성지순례 코스에서 빠지지 않는 명찰이다.
➲ 영실 오백나한절 영원사
한라산 영실 탐방로 입구 왼편에 오백나한절이 있다. 영원사라고도 한다. 이 절 역시 선덕사를 창건한 고암스님과 그 손상좌 학균스님, 고암스님을 존경했던 불자의 자취가 서린 곳이다. 오백나한절은 선덕사의 여름 하안거 선원으로 운영한다.
선덕사와 영원사 고암스님과는 오랜 인연이 전한다. 5·16을 주도한 박정희는 제주 4·3 이후 막았던 한라산을 1960년대 후반부터 개방한다. 영실휴게소 운영권이 한 독실한 불자에게 돌아갔다. 박정희 장군과 인연 있는 불자였다. 휴게소라고 해야 등산객을 상대로 김밥을 파는 정도였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유지하는 정도였다. 이 때문에 타종교에서 영실휴게소 매입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선덕사 창건 화주 최용주 거사와 부인 조근호(보현월) 보살에 관한 이야기다. 조 보살은 1970년 후반 영실휴게소가 경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당시 타종교에서 매입 제의를 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한라산 영실은 불교성지이므로 다른 종교로 절대 넘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1980년대 관광 여행 바람이 한라산에도 불어 닥치면서 영실에도 사람들이 몰렸다. 그렇게 모은 돈을 선덕사를 짓는데 희사했다. 이어 영원사 불사도 뒷받침했다. 학균스님은 그래서 늘 조보현월 보살에 대해 감사하게 여기며 한라산 영실이 불교 성지로 남아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보살님의 공덕 덕분이라고 강조한다.
영실휴게소는 그 자리에서 지금도 운영 중이며 조보현월보살도 곁을 지키고 있다.
➲ 제주불교 초전전래지 영실 존자암
영실 탐방로 주차장은 두 곳이다. 탐방로 입구 주차장과 아래 영실 주차장이다. 그런데 두 곳 거리가 꽤 멀다. 걸어서 40분 가량 걸린다. 아래 영실 주차장에서 1km 가량 걸어가면 존자암이 나온다. 맑은 계곡물이 나오는 양지 바른 곳에 자리했다.
제주에 불교가 처음 전래돼 세웠다는 존자암이다. 터만 남은 것을 제주시에서 복원했다. 절 맨 위에 오래된 부도가 멀리 서귀포 앞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다. 부처님진신사리를 모신 탑으로 알려져 있다.
불래오름 남쪽 기슭 해발 1200미터 고지에 자리한 존자암지는 1990년 발굴 조사에서 규모와 가람배치 등을 확인하였으며 2001년에는 존자암 인근에 40여명이 들어가는 수행굴을 확인했다. 1998년부터 2004년에 걸쳐 복원해 현재 대웅전 국성재각, 누각 등을 복원했다. 소유는 제주시 소속이지만 스님이 머물며 기도 포교 한다. 제주에 ‘고’ ‘양’ ‘부’ 세 성(姓)이 들어올 때 창건하고 세 읍의 수령이 재를 지내던 신성시 하던 곳이라고 문헌에 기록한다. 영실, 불래오름, 오백나한봉 등 제주불교의 초전지로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 선풍(禪風) 일으킨 남국선원
1992년 혜국스님이 개원한 남국선원은 제주 선불교를 대표한다. 성철스님이 제주 출신의 선승 혜국스님에게 제주도에 사찰이 많냐고 물었다. 혜국스님이 ‘당오백 절오백’의 제주불교와 깊은 신심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성철스님이 선원은 얼마나 있느냐고 했다. 혜국스님이 “없다”고 답하자, 성철스님은 “선원이 없으면 불교가 없다”고 했다.
남국선원은 이렇게 해서 설립됐다. 1948년 제주도에서 태어난 혜국스님은 부처님의 혜명을 잇기 위해 1994년 법당과 선원을 새로 지어 선원 2층에는 일반선원, 1층과 일반선원 좌우편에는 7명이 수행할 수 있는 무문관을 마련했다. 대웅전 맞은편에는 시민선방도 별도로 개설했다.
제주에서도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돈내코 부근, 서귀포 앞 바다가 환히 바라 보이는 곳에 자리한 남국선원은 이국적 정취로도 눈길을 끈다. 남국선원을 중심으로 좌우로 한라산 둘레기를 따라 걷는 정진의 길이 놓여 있다. 서귀포 앞바다와 한라산의 적막한 숲 선사들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걷는 최상의 수행 길이다.
➲ 안봉려관스님, 항일항쟁 법정사
조선 후기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시기에 제주불교는 다시 일어난다. 200여년 간 사라졌던 제주불교를 다시 일으킨 인물은 비구니 봉려관(蓬廬觀)스님이다. 봉려관스님은 제주불교 중흥조이면서 제주 지역 최초로 항일 운동을 펼쳤던 법정사 무장항쟁을 지원한 애국자다.
1865년 제주시 화북동에서 태어난 스님은 34세가 되던 1899년 우연히 한 노인으로부터 관음보살상을 받은 인연으로 출가해 해월굴에서 6년여 용맹정진 끝에 크게 깨달았다. 제주불교 중흥을 서원해 전남 대흥사에서 비구니계를 수계하고 1908년 관음사를 창건해 개산조가 되었다. 법화사, 불탑사, 법정사, 월성사, 백련사 등을 중창 또는 창건하고 국내 대덕스님을 초청, 정법홍포에 매진했다.
법정사 무오항일항쟁의 중심에 서서 활동자금을 지원하는 등 여성의 사회참여에 선구적 역할을 한 애국자였다. 스님은 1936년 법납 37년 세수 71세로 입적했다. 관음사는 스님의 행적을 이렇게 정리했다. “봉려관 스님은 조선조 억불정책으로 인한 200여 년간의 무불시대를 마감하고 이 땅에 불교를 일으켜 세운 제주불교 중흥조요, 선각자요 애국지사이시다.”
법정사무오항쟁은 1918년 10월7일 서귀포시 도순동 산 1번지 법정사에서 평소 일본제국 통치를 반대하던 불교계의 김연일 방동화 등 스님이 중심이 되어 법정사 신도와 지역주민 천도교 등 700여명이 집단으로 무장하여 2일 동안 조직적으로 일본에 항거한 항일운동이다. 이듬해 3·1운동을 비롯하여 항일 민족의식을 일깨운 선구자적 항일로 높이 평가받는다.
무장 항일운동에 참여했던 주요 가담자 66명은 체포되어 48명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고 5명이 옥사하는 등 많은 탄압을 받았다. 항일 중심지 법정사는 일본순사들에 의해 불태워졌다.
1992년 재판기록이 발굴되면서 무오법정사항일항쟁성역화 사업이 추진돼 보천교도의 난으로 명명되었던 사건의 실체가 제대로 밝혀졌으며, 사업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옛 법정사 주변의 성역화 사업이 추진되어 2004년 700인 합동 신위와 66인의 영정을 모신 의열사 등을 준공했다. 법정사는 현재 터가 남아있다.
◼ 한라산과 불교
‘당오백 절 오백’ 섬 전체 불교성지
제주 지명 탐라도 불교 경전서 나와
초전법륜지 영실이 제주불교 산실
제주도는 ‘당오백 절오백(堂五百 寺五百)’이라 할 정도로 섬 전체가 불교성지다. 제주(濟州)의 원래 이름 탐라(耽羅)는 불교 경전 구절에서 나왔고 한라산(漢拏山)은 나한(羅漢)이 상주하는 산이라는 뜻이다. <고려대장경> 제30권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佛說大阿羅漢難提密多羅所說法住記)(약칭 법주기)가 그 출처다. <법주기>는 석가모니께서 열반에 들기 전에 설한 <법주경(法住經)>을 불멸 후 800년경에 현재의 스리랑카에 해당하는 사자국(師子國) 승려 난제밀다라(難提密多羅)(경우존자(慶友尊者)라고도 불림)가 다시 설법한 내용을 기록한 경이다.
제주도와 한라산을 나한이 상주하는 불국토라고 우리 조상들은 신성시한 것이다. 통일신라 시대 이후 <화엄경>에 따라 이 땅 전체가 불보살이 거주하는 불국토로 바라보는 불신상주설이 널리 퍼졌다. 이에따라 유명한 산 봉우리 등에 불보살 이름을 붙였다. 금강산 오대산 세존봉 원효봉 의상봉 등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는 이름이 이렇게 해서 생겼다.
제주도와 한라산은 그 중에서 나한 상주처였다. 지금 제주 곳곳에 남아있는 지명이 이를 말해준다. 제주는 곧 한라산이다. 한라산에서도 불교가 가장 먼저 들어왔다는 영실(靈室)이 최고의 성지다. 관광객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영실은 하늘로 솟아 있는 기암괴석 모습이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법한 영산과 닮았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영실 탐방로 입구에서 바라 보이는 오백나한봉, 제주도에 불교가 가장 먼저 들어왔으며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존자암(尊者庵), 존자암 뒤편의 불래(佛來)오름 등 온통 불교 일색이다. 아예 나한을 산 이름으로 정한 한라산, 존자암 역시 나한에 대한 존칭이다.
<법주기>의 구절을 보면 탐라, 한라산, 존자암 등이 어디에서 기인하였는지 그대로 드러난다.
“탐몰라주 발타라 존자는 부처님 열반 후 중생들이 삼보를 호지하는데 정법 수행할 바를 설하며 미륵불이 출현할 때 까지 열반에 들지 않고 선정에 들어 중생들을 제도하고 계시며 석존께서 열반하실 때 무상법을 16대 아라한과 그 권속에게 부촉하시어 수미산을 중심으로 16개국 정법이 머무는 법주도량에 파견하시었다” ‘정법이 머무는’ 법주도량 중 한곳으로 제주로 여겼음이 경전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제주와 한라산은 불교를 빼고 아무런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조선 억불 정책에 의해 제주의 불교는 철저히 파괴됐다. 특히 숙종 때 제주 목사를 지낸 이형상은 폐사에 앞장서 가장 많은 절을 불태웠다. 제주도의 절은 대부분 이 시기에 사라졌다. 그 이후 제주불교는 맥이 끊겨 불교 암흑시대를 보내다 관음사를 다시 일으킨 안봉려관 스님에 의해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관음사와 제주 출신 고승, 선승들 그리고 제주불자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많은 가람이 현대에 다시 들어서면서 불교성지의 옛 명성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불교성지 제주의 본모습 찾기는 여전히 미완이다. 특히 이름을 되찾고 널리 알리는 불사가 시급하다. 한라산과 제주를 설명하는 어디에도 불교 관련성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한라산을 ‘손을 들어 은하수를 잡을 수 있을 만큼 높다’는 뜻이라는 아무런 근거도 출처도 없는 엉터리 설명이 마치 공식인양 유통된다. 인터넷 포털 설명까지 사실인양 적혀 있는 실정이다. 불교경전을 따르면 제주와 한라산 유래 역사 의미가 명확하게 설명되는데, 불교관련설을 인정하지 않으려다 보니 억지춘양식 궤변이 횡행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전도된 현실이 한라산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 백록담 가는 길
성판악, 관음사 두 코스
관리공단 홈피 예약 필수
오후 1시30분 하산해야
화산이 만든 계곡과 암벽
발아래 구름과 바다 조망
한라산은 높이 1947.3m로 남한에서 가장 높다. 육지에서 가장 높은 지리산이 1915m다. 섬 중심부에 높게 솟은 주봉은 부악이다. 1000m 이상 봉우리가 20여개다. 나머지는 방패를 엎어놓은 듯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바다로 빠져든다. 이 중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면적은 제주도 전체의 8.3% 정도다.
현재의 제주도가 형성된 것은 지금부터 120만년에서 2만5000년 사이, 한라산 화산체가 형성된 것은 30만년 전에서 10만년 전 사이다. 화산 폭발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멀리까지 흘러내려가지 않고 분화구 주변에 떨어져 쌓여 한라산체 위쪽은 경사가 급하다. 관음사 계곡에 올라가 삼각봉 대피소에서 바라보면 수직으로 곧추 선 벽을 마주한다.
한라산 꼭대기 백록담은 둘레 3km, 깊이 115m 분화구다. 백록담을 배경으로 사진을 담으려는 등산객들로 평일에도 길게 줄이 선다. 한라산은 해발고도에 따라 날씨가 다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혹은 산 높이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보여준다.
한라산 등반은 까다롭다. 오르는 길은 두 갈래다. 성판악 매표소에서 속밭 사라오름 진달래밭 정상 동릉으로 오르는 성판악 코스와 관음사 옆에서 탐라계곡, 개미등, 삼각봉 대피소, 동북릉으로 오르는 길 두 갈래다.
1990년대까지는 영실에서 윗새오름, 남벽을 따라 오르는 영실코스와, 어리목광장에서 사제비 동산, 윗새오름, 남벽으로 오르는 두 갈래가 더 있었지만 자연휴식년제로 남벽 능선이 폐쇄된 뒤 열리지 않고 있다. 몇 년 전 개방 논의가 나왔다가 환경단체의 반대로 무산됐다. 남벽으로 못가지만 영실 윗새오름을 지나 어리목에 이르거나 되돌아 오는 코스는 평탄하면서도 풍광이 좋아 지금도 등산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한라산 등반을 하려면 몇 가지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성판악코스와 관음사코스는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하루 탐방객 숫자를 제한하기 때문에 주말 등에는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예약하는 사람이 많아 막상 하루 전에는 여유가 나기도 한다. 예약 하고도 찾지 않는 이른바 ‘노쇼’(no show)는 1회 3개월, 2회 1년 동안 예약을 못 할 정도로 벌칙이 강하다.
성판악 관음사 두 곳 외 영실과 어리목은 따로 예약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탐방 제한 시간이 있다. 네 곳 다 오전 6시부터 문이 열리며 성판악은 진달래밭을, 관음사코스는 삼각봉대피소를 낮 12시에 통과해야 한다. 매표소에서 대피소까지 대략 7km 거리이므로 걸음이 빠르지 않으면 낭패를 당할 수 있다. 백록담에서는 오후 1시30분 이전에 하산해야 한다. 산이 높고 길기 때문에 안전을 위한 조치다.
관음사코스 주차장은 차량 여유가 있지만 성판악은 협소한데다 길가에 불법 주차를 하지 못하도록 촘촘하게 봉으로 막아 새벽부터 서두르지 않으면 본의 아니게 헛걸음 할 수 있다. 영실은 오백나한 절 입구에 주차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공간이 넉넉하지 않다. 이곳에 주차를 하지 못하면 존자암 입구까지 내려와야 하는데 도보로 40분이 걸린다.
이처럼 많은 제약이 있고 까다로운 것은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식생이 다양하고 자연환경이 탁월한 한라산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육지에서 볼 수 없는 현무암과 고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식생, 정상에서 바라 보이는 바다와 해안가 풍경의 기막힌 조화, 허리 아래 걸린 구름띠, 정상 부근의 주목과 기기묘묘한 풍경, 백록담 주변의 곧추선 벽.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에도 불구하고 사시사철 한라산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08:27~08:45 천왕사를 탐방
[한라산 아흔아홉골에 자리해 기도 성취도량으로 유명한 제주 천왕사가 인기 연예인 이효리씨가 출연한 2018년의 ‘효리네 민박’으로 인지도가 급상승한 뒤 국내외 젊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효리네 민박에 방송됐던 관광지를 찾아가는 ‘효리네 투어’에서 함께 출연한 이효리씨와 아이유씨가 천왕사에서 함께 구입했던 합장주도 인기 구매품이다.]
['마음 쉬어가는 고품격 힐링코스'...제주불교성지순례길 '인욕의 길'개장
원성심 기자 headlinejeju@headlinejeju.co.kr
헤드라인제주 기사 승인 2017.10.26. 12:35
29일 천왕사서 개장식...천왕사~석굴암~충혼각 5km 절로 가는 길
(주)제주불교신문(대표이사 허운 스님)과 제주도관광공사(사장 박홍배)는 오는 29일 오전 10시 한라산 천왕사(주지 지오 스님)에서 제주불교성지순례길 '인욕의 길'개장식을 갖는다.
이번 개장식에 이어 걷게 될 천왕사~석굴암~충혼각 5km의 순례코스는 불자 뿐 아니라 제주도민들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할 때' 힐링코스로도 제격이다.
천왕사는 이미 한라산 기슭에 자리잡아 기도 영험도량으로 제주불자들에게 최고의 기도처로 각광 받아온 사찰이다.
여기에 일반인과 관광객들이 마음을 사로잡는 천혜의 고즈넉한 풍경에 개장식에 선물로 찾아 올 단풍은 순례객들에게 최고의 힐링을 선사할 예정이다.
이어 300m 발걸음을 옮겨, 제주도민들의 최고 등산코스로 자리한 석굴암 순례길 3km(왕복)를 걷는다. 한라산 금봉곡에 자리한 석굴암 코스는 제주도민에게 부처님이 선사한 가피의 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석굴암에서 1.5km의 내리막길을 걸어 호국도량 충혼각에서 따뜻한 점심공양이 곁들여지면서 회향한다.
충혼각은 매년 '전물군경합동 위령대제'를 봉행하며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는 도량이다. 매년 (음)3월 18일 입재해 20일 회향하고 납골당 합동위령제는 (음)9월 9일 봉행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故 설봉 스님에 의해 1956년 사라사에서 시작해 한라산 충혼각으로 이전, 호국영령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있다.
한편 제주불교신문과 제주도관광공사는 지난 2012년 제주시 관음정사~관음사를 잇는 지계의 길을 시작으로 2013년 서귀포시 존자암~남국선원을 잇는 정진의 길, 2014년 제주시 대원정사~불탑사를 잇는 보시의 길을 개장했다.
이어 2016년에는 서귀포지역의 선덕사~천제사를 잇는 네 번째 제주불교성지순례길인 '선정의 길'을 개장했고, 2017년의 인욕의 길은 제주시지역의 관음사~천왕사~영실~존자암을 잇는 길이다.
순례길 마다의 지계, 정진, 보시, 선정, 지혜, 인욕이란 명칭은 불자들의 지켜야할 수행덕목인 육바라밀에서 따왔다.
문의=제주불교신문(064-755-2203)]
08:45~09:15 선녀폭포로 이동
[선녀폭포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
선녀들이 와서 목욕하고 가는 폭포라는 데서 선녀 폭포라고 하였는데, 이는 최근에 인위적으로 붙인 이름이다. 사람에 따라서 천녀폭포라고도 한다.
어승생이 바로 동남쪽에서 발원한 조그만 골짜기가 어승생이 오름 동쪽과 아흔아홉골 서쪽 및 천왕사 서쪽을 지나 북쪽으로 흘러간다. 이 골짜기는 북쪽으로 흘러 도근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1100 도로를 따라 남쪽의 한라산 근처에 있으며, 한라산의 북쪽 천왕사 아래에 있다.]
09:15~09:25 선녀폭포를 사진촬영 후 휴식
09:25~10:00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3825-1 번지에 있는 충혼묘지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여 산행 완료
10:00~10:10 렌트한 승용차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3825-1 번지에 있는 충혼묘지 주차장에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1100로 2894-78 번지에 있는 제주도립미술관으로 이동 [10분, 6.1km]
[제주도립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은 아름답고 청정한 제주의 자연 속에 세워진 숲속의 미술관이다. 미술관에 제주의 전통문화에 바탕을 둔 문화 예술의 역사를 오롯이 담아내었다. 제주 미술사는 물론 세계 미술사, 세계 미술의 흐름까지 함께 조망해 볼 수 있도록 전시를 꾸몄다. 특히, 한국의 대표적인 화가 장리석 화백의 기증 작품 110점을 감상할 수 있는 장리석 기념관을 비롯하여 상설 전시와 기획 전시, 장리석 전시실, 야외 전시실 등을 통하여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훌륭한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해 나가고 있다.
상세정보
문의 및 안내 064-710-4300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1100로 2894-78
이용시간 09:00~18:00 (7월~8월 09:00~20:00)
※ 매표는 관람시간 종료 30분 전까지
휴일 매주 월요일 / 1월 1일 / 설·추석 연휴
주차 있음(소형 100대 / 대형 10대)
이용요금
[성인(25~64세)] 개인 2,000원 / 단체 1,400원
[청소년(13~24세), 군인] 개인 1,000원 / 단체 700원
[어린이(7~12세)] 개인 500원 / 단체 300원
※ 노인, 국가유공자, 장애인 : 무료
※ 단체 : 10인 이상]
10:10~11:10 제주도립미술관을 관람
[제주도립미술관, 제주의 사계 스마트 온라인 전시 개최
cnbnews 장병대기자
CNB뉴스 기사 등록 : 2024.08.13. 09:42:05
(CNB뉴스=장병대 기자) 제주도 제주도립미술관이 오는 13일부터 내년 7월20일까지 스마트 온라인 전시관에서 제주의 사계(四季) 전(展)을 개최한다.
스마트 온라인 전시관은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스마트 공립박물관・미술관 구축 지원 사업에 선정돼 구축된 가상 전시공간으로, 웹 플랫폼을 활용해 시공간적 제한 없이 관람할 수 있다.
실제 미술관의 전시 공간(기획전시실 2)을 3D 스캐닝 및 모델링 기술로 구현해 관람객들이 실제 전시실을 거니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제주의 사계(四季)는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제주의 모습을 제주도립미술관의 소장품을 통해 선보이는 기획전이다. 제주의 자연과 문화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도록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로 나누어 소개한다.
‘제주의 봄’에서는 고민철, 구용호, 김수남 등 11명 작가들의 작품 11점을 전시한다. 꽃망울을 화사하게 터트리며 봄을 알리는 노란 유채꽃부터 청보리 물결 등 싱그러운 제주의 봄을 만날 수 있다.
‘제주의 여름’에서는 탁 트인 바다와 푸른 숲길을 거닐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생동하는 제주의 여름풍경을 부현일, 오병욱 등 7명 작가의 작품 7점으로 펼쳐보인다.
‘제주의 가을’에서는 이옥문, 김병화, 유창훈 등 9명 작가들이 그린 제주 곳곳에서 물결치는 은빛 억새 풍경, 한라산 자락을 따라 펼쳐지는 단풍의 절경 등 11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제주의 겨울’은 한라산을 뒤덮은 새하얀 눈, 겨울 초가의 모습, 겨울 바다 등 추운 겨울에도 천연의 빛을 뽐내는 제주의 풍경을 담은 부상철, 서재철, 권기갑 등 9명 작가들의 작품 10점을 전시한다.
전시 관람은 ‘온라인 제주도립미술관’을 검색하거나 제주도립미술관 누리집에서 ‘온라인 제주도립미술관’을 선택한 후, 현재 콘텐츠에서 제주의 사계(四季)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이종후 제주도립미술관장은 “스마트 온라인 전시를 통해 누구나 경계 없이 전시와 미술관 소장품을 즐길 수 있다”며 “앞으로도 관람객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전시, 교육 등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시대를 보다'…제주도립미술관, 강요배·서용선 역사화 전시
뉴시스 기사 등록 2025.03.06. 15:00:59
10일 개막식, 11일부터 관람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제주도 도립미술관은 11일부터 6월8일까지 도립미술관 기획전시실에서 '역사화의 새 지평: 시대를 보다' 전시회를 개최한다고 6일 밝혔다.
이번 기획전은 역사화라는 궤적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삶과 정신, 그 오래된 시간의 흔적을 찾아가는 것으로 구성했다.
참여 작가 강요배, 서용선은 자연을 통해 인간의 삶과 시간을 그리고, 역사 속 사건에서 인간의 감정과 인간성을 탐구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광활한 대자연에 스며든 억만 겁 시간의 층위, 강렬한 형상으로 응축된 인간의 비극적 서사 등으로 전개되는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의 역사화는 특정 사건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그려졌던 전통적 역사화와는 달리, 정치와 사회의 단면은 물론 개인과 집단의 기억과 감정 등 인간 존재와 관련된 모든 것을 포용하며 역사화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준다.
전시 개막식은 10일 오전 11시 도립미술관 로비 및 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일반인 전시 관람은 11일부터 가능하다.
한편 도립미술관 2기획전시실에서는 민초들의 저항이 예술을 통해 어떻게 조형적으로 살아나는지 살펴보는 '4·3미술 네트워크: 빛과 숨의 연대' 전시회가 11일 개막한다.]
[제주도립미술관 '4·3 미술 네트워크: 빛과 숨의 연대' 특별전 개최
조이뉴스24 기사 입력 2025.03.06. 13:31
[조이뉴스24 배정화 기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도립미술관(관장 이종후)은 4·3 미술제 조직위원회(대표 박진희)와 공동으로 '4·3 미술 네트워크: 빛과 숨의 연대'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은 이달 11일부터 6월 8일까지 ‘빛과 숨의 연대’라는 주제로 도립미술관 기획전시실 2(2층)에서 개최한다.
전시 개막식은 10일 오전 11시 도립미술관 로비 및 전시실에서 개최되며, 문화예술관계자, 출품작가 등이 참가한다. 일반인들의 전시 관람은 11일부터 가능하다.
전시는 △하늘이 곧 사람이다: 동학농민혁명 △해방의 실현, 현실의 압박: 대구10월항쟁 △섬에서 외친 평화: 제주4·3사건 △광주의 빛, 자유의 외침: 광주 5.18민주화운동 △분단의 고통, 전쟁의 상흔: 남북분단과 한국전쟁 등 5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전시에서는 동학농민운동, 대구 10월항쟁, 제주4·3사건, 광주 5.18민주화운동, 남북분단과 한국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민중운동을 예술로 재조명할 예정이다. 또한 민중의 역사를 회화, 조각, 사진, 영상, 설치미술 등 다양한 예술 작품으로 승화해 보여준다.]
11:10~11:28 렌트한 승용차로 제주도립미술관을 출발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일동 산 387-2 번지에 있는 관음사 주차장으로 이동 [18분, 12.2km]
[잠들지 않는 한라산! 제주 불교의 중심 관음사 [정용식의 내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헤럴드경제 기사 입력 2024-04-05 10:21:08
정경수 기자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이번 방문지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관음사입니다.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녁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이 그 향기 더욱 진하리 ....................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제주4.3사건 추모곡 '잠들지 않은 남도'〉
유채꽃 흐드러지게 피고 동백꽃 떨어지는 제주의 4월,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인 제주 4.3사건 76주기를 맞아 그 중심에 있었던 제주 관음사를 가는 길 〈지계의 길〉을 걷는다.
비운의 섬 제주와 관음사
비운의 섬 제주가 걸어온 슬픈 역사를 오롯이 품고 있는 관음사, 매년 그곳에서는 4.3 영령들을 추모하는 해원 상생굿이 열린다. 공식적으론 1만4442명, 비공식적으론 3만여명의 민간인이 억울하게 학살되거나 희생되어 76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도민들의 가슴속에 슬픔으로 남아있다. 그나마 10여년 전부터 4.3 희생자 추모일이 공식 국가기념일이 되어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위로하고 있다.
해방과 더불어 분단되면서 남북은 이념의 격전장으로 변했고 그 와중에 제주도에선 남로당 무장 폭동이 일어났다. 정부는 군경을 투입해 진압하는 과정(1947~1954)에서 무고한 제주도민 10% 가까이가 희생되고, 많은 도민들이 남로당을 도왔다는 혐의를 받아 투옥된 사건이 발생했다.
제주 4.3사건으로 유죄를 받아 투옥되고 주홍글씨가 되어 일상 활동에 제약을 받고 살았던 1501명이 최근 검찰이 재심을 청구해 90%에 해당하는 1350명이 무죄로 뒤집힌 것만 봐도 그때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당시 남로당 유격대 소탕을 위해 군경은 제주 한라산 중산간 지역 95% 이상을 소각했고 그 과정에서 제주도내 사찰 37곳이 피해를 보았고 18곳은 전소되었으며 16명의 스님이 입적하였다. 피해 스님 대부분은 사찰 내에서 총살되거나 수장되고 고문 후유증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해발 650m 지역에 있는 관음사 일원은 전략적 요충지였기에 초기에 남로당 유격대의 도당 사령부 거점으로 활용되어 토벌대와 무장대의 최대 격전지가 되었고 이후 군이 점령하여 주둔지로 이용되면서 모든 전각이 전소되었고 주지 오이화 스님도 고문에 시달려 후유증으로 병사하였다. 관음사내에는 4.3 피해 사찰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크고 작은 경계 참호와 숙영 시설 흔적 등 4.3 유적을 보존하여 제주의 참극이자 민족의 비극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찰 곳곳에는 탱화와 불상 등 국보와 보물이 산재해 있지만 제주에는 불교의 역사조차 불에 타서 찾기가 쉽지 않아 불교 문화재가 거의 없을 정도다.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려면 성판악 코스와 관음사 코스를 이용한다. 인근 관음사 지구 야영장에서 올라가는 한라산 북쪽 코스는 경사가 심하고 난도가 높아 오르는 이는 적지만 성판악을 통해 내려오는 산행객은 많다. 내려오는 길, 관음사를 둘러보는 것을 권해본다.
관음사 입구에는 몇 개의 순례길 표지판이 보인다. ‘아라동 역사 문화 탐방로’, ‘아라동 4.3길’, ‘제주불교 성지 지계의 길’ 등이 그것이다. 관음사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길 코스 개발이 한창인 듯하다.
해월당(海月堂) 안봉려관 스님과 관음사
관음사를 알려면 〈고마워요 봉려관〉과 〈해월당 봉려관 스님〉을 읽어보라며 2권을 선물 받았다. 봉려관은 제주도 사람으로 1901년 비양도(飛揚島)로 가는 길에 우연히 풍랑을 만나 어려움에 처했으나 관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나게 되자, 1907년 해남 대흥사로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1908년 1월 제주도로 귀향해 승려 생활을 하였으나 주민들의 핍박으로 백록담 부근으로 입산했다가 1908년 한라산에 관음사를 창건했다. 그러나 지역민의 반대에 부딪혀 시련을 겪자 스님은 3년 간 토굴(해월굴 / 관음사 경내에 있음)에 은거 기도 정진하며 사찰 재건에 힘을 쏟았다.
창건 당시 불상과 탱화는 1910년 용화사(龍華寺)에서 옮겨 왔고 이후에도 항일운동의 모태가 되었던 법정사와, 백련사, 불탑사, 월성사 등을 창건하여 제주불교를 중흥시켰다.
제주불교 소녀단을 조직하는 등 신여성 양성 및 제주유치원, 중학 강습원을 개교하여 인재 양성과 빈민 구제 등 사회 구호 활동에도 앞장서고 항일운동에 자금을 지원한 독립운동가였다.
안봉려관 스님의 사찰 창건 및 사회활동에는 관음사 초대 주지였던 안도월(道月 포교사)스님과 월정사를 창건한 독립운동가 김석윤(관음사 서무, 해월학교 교사 등 활동)스님 등이 함께 했다.
관음사 해월굴은 해월당 행적비와 존상(尊像)이 옆에 자리하고 지금도 많은 불자들의 기도처가 되어 촛불들이 불을 밝히고, 4.3 유적지와 함께 대웅전 가는 길목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관음사는 주로 제주도 지역의 말사 30여개를 관장하는 조계종 제23교구의 본사로서 제주불교의 중심이다. 제주의 민담, 설화 등에 나오는 괴남절(관음사의 제주 방언), 개남절, 동괴남절 등의 이름을 통해 탐라국 시대에 해로를 통해 남방불교가 들어와 관음사가 존재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창건자 및 창건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동국여지승람〉 등을 통해서도 관음사는 제주도의 고찰로서 명맥을 이어온 것 같다. 그러나 조선 숙종 때 제주 목사였던 이형상(李衡祥)이 제주에는 잡신이 많다 하여 많은 사당과 함께 관음사 등 모든 사찰을 폐사시켜 폐허가 되었고 현재의 관음사는 비구니 안봉려관(安逢麗觀, 1865~1938)이 재건한 것이다. 재건된 관음사는 1939년 화재와 제주 4·3사건으로 1949년 전소되었다가 1968년 복원되었다.
경내에는 황색 지붕의 대웅전을 비롯하여 조선 후기 불상으로 알려진 목조관음보살좌상을 모신 극락전(지장전), 산신, 칠성, 독성 등 삼신을 모신 삼성각 등이 들어서 있다. 관음사에는 일주문 옆에 거대한 석불 ‘평화대불’과 대웅전 옆쪽에 2006년에 조성한 금박 입힌 ‘미륵대불’ 등 대형 불상뿐만 아니라 작은 불상들이 여기저기를 가득 메우고 있다.
미륵대불을 둘러싸고는 천여개 남짓의 부처들이 있고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가는 길 양옆과 천왕문에서 대웅전 가는 길목 양옆에는 갓을 쓰고 있는 불상들이 도열해 있다. 모두 제주도 돌을 깎아 만들었다고 하며 입구에 도열해 있는 갓을 쓴 불상의 좌대 역할을 하는 받침돌은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제주 전통 풍화열로 되어 있어 그 느낌이 더욱 제주스럽다. 도열해 있는 부처상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수많은 4.3 원혼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듯 보여 슬픔이 더해진다. 대웅전, 나한전 등의 지붕이 황색기와로 되어있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전통 사찰에선 보기 드문 유별난 부분이다.
관음사에는 왕벚나무들이 많다. 자생지로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었고 종무소 근방 수백 년 된 왕벚나무는 모양과 크기, 상태가 좋아 보호수인듯한데 이제야 꽃망울을 머금고 있다. 극락전 뒤편 산길에 관음굴이 있다하여 찾아갔으나 한창 보수 중이라 내부를 들여다 볼 순 없었다.
미륵대불 위 숲속 외진 곳에 나한전과 아미당, 백록원 등 선원이 있어 그곳에 오르니 앞이 훤히 트여 시내와 제주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650m 이상이란 사실이 실감나고 한라산 기운도 전달된다. 유명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하는 황지사 절이 관음사라고 한다.
제주 불교의 성지 ‘지계(持戒)의 길’
선인들이 함께 걸었던 제주불교 성지순례길 〈지계의 길〉은 ‘관음정사’에서 ‘관음사’까지 14.2km 구간이다. 너무 길어 중간 지점 월정사부터 관음사까지 9.4km를 걷기로 했다. 3시간 이상은 소요될 듯하다. 공항에서 택시로 15분 거리, 제주 최초의 불교 선원이며, 4·3사건 당시 아픔을 겪어 사찰이 전소되고 스님이 희생당하는 비운을 겪은 월정사가 있었다.
일주문에 들어서니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아담하고 깨끗하게 정돈된 정원 같았다. 대웅전과 극락보전, 두 개의 전각이 나란히 전면에 위치하고 마당 한편에 대불(大佛)과 석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앞마당의 수양매화꽃과 동백꽃이 탐방객들을 반기고 오른편엔 공적비와 공덕비, 그 뒤편에 종무소와 요사채 등이 체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정원수를 단장하고 있는 분께 ‘지계의 길’을 물었는데, 안내 표지판이 버젓이 있음에도 길이 없어 이정표대론 갈 수 없을 거라 충고(?)한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벚꽃과 유채꽃이 활짝 핀 대로를 따라 방선문까지 30여분 걸어오니 초행자가 찾기 쉽지 않은 산길이 나온다. 옛 선비들이 방선문(신선이 사는 곳으로 들어가는 둥근 문 모양의 바위)계곡을 찾아 풍류를 읊었다는데 낙석사고 위험으로 출입 통제되어 이마저 아쉽다. 결국 계속 직진을 포기하고 구암굴사(龜岩屈寺)로 향했다. 배불뚝이 포대화상이 입구에서 반기고 거북바위 밑에 석굴을 만들어 주 법당으로 삼고 있었다. 산신각 아래 또 다른 석굴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초가 불을 밝히고 있는데 수능 기도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듯하다. 다시 택시로 관음사로 이동했다.
불교에선 육바라밀(여섯 가지 수행 덕목) 중 지계(持戒) 바라밀이 있다. 지계(持戒)는 계를 지킨다는 뜻으로 계를 지키는 수행으로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과 열반을 성취하는 것이다. 지계(持戒)의 길’을 걸으며 해탈과 열반에 이르지는 못해도 참다운 나를 찾아가는 자성(自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는 걷기 좋은 길로 찾기 쉽게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관음사 창건을 계기로 중흥기를 맞은 제주 불교는 1934년 김석윤 스님이 범어사 제주 포교소 월정암을 창건하면서 확장되었다. 김석윤 스님은 1877년 제주도에서 전통적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교사 및 서당 훈장을 하다 관음사 창건을 도와 관음사 서무와 해월학교 교사를 지내기도 했다.
전답을 팔아 대장간을 차려 무기를 제조하고 비밀리 군사훈련을 추진하는 등 제주 의병 항쟁의 중심에 있어 일제의 지속된 감시로 제주를 떠났다. 1916년 부산 범어사에서 대교과(大敎科/승려 교육 과정)를 수료하고 용화사(통영 소재)를 근거지로 승려 활동을 하였다. 1934년경 제주로 돌아와서 제주 최초의 근대 선원으로 범어사 제주포교소인 월정암(월정사) 주지가 되었다.
이 월정사는 제주 4.3사건으로 완전 소실되었고 김석윤 스님의 아들 김덕수 스님도 토벌대에 끌려가 학살당하는 비운을 겪는다. 그 후 1960년대에는 몇몇 승려들의 노력으로 난민 보건주택을 짓고 법당으로 사용하면서 사찰의 명맥을 유지하다 1970년대 지문 스님에 의해 대웅전과 요사채를 신축하면서 본격적으로 재건되기 시작했다. 현재 월정사에는 개인이 소장하던 목조보살입상과 이조(석조)여래좌상을 넘겨받아 보존하여 문화재로 등록하고 2001년 전통 사찰로 등록되었다. 지문스님의 공적비가 유달리 크게 들어온다.
‘불어라 4.3의 봄바람, 날아라 평화의 씨’ 아픈 역사를 교훈 삼아 갈등과 대립을 화해와 상생의 가치로 승화하자는 4.3사건 76주기 추모식 슬로건이다. 관음사 평화대불이 빛을 발했으면 한다.
글·사진 = ㈜헤럴드 정용식 상무
정리 = 정경수 기자]
11:28~12:20 관음사를 탐방
[관음사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일동
대한 불교 조계종 제 23교구 본사 관음사는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던 사찰이라는 기록이 남아있었으나 1702년 유교를 국가 통치이념으로 삼은 이유로 인해 제주 지역 사찰이 전부 훼철되어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1908년 다시 중창되어 완공하였고 제주시 중앙로 시내에 포교당인 대각사를 세워 도민들과 함께 포교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1948년 제주 4.3 사건으로 인해 전략적 요충지였던 관음사에서 토벌대와 입산 무장대가 대치를 하였고 그 과정에서 모든 전각이 전소되었다고 한다. 이후 1969년 대웅전부터 천천히 불사가 이루어지면서 지금의 모습을 이루고 있게 되었다.
관음사에서는 템플스테이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교원 직무연수교육, 달빛 동동(걷기 치유 명상), 토요 명상여행, 휴식형, 행복 명상&힐링, 만다라 체험 등이 진행된다.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촬영지로 화제가 되었다. 우영우에 나왔던 입구 통로를 비롯하여 고즈넉한 분위기의 사찰에서 사진을 찍기 좋다. 제주 시내권에 위치하여 제주에 도착한 첫날이나 마지막날 공항에 가기 전 방문하기 좋은 것도 특징으로,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다면 한 번쯤 방문을 권하는 곳이다.]
[촘말로 몰랐던 제주불교] 제주 신화와 만난 불교
글· 이병철
불광미디어 기사 승인 2023.02.28. 19:33
민초들의 ‘해원(解冤)’ 푸는 제주 신앙
‘절오백 당(堂)오백’이라는 표현은 제주도 신앙의 특징을 대표하는 말이다. ‘절에 가듯 당에 가고, 당에 가듯 절에 가는’ 비승비속(非僧非俗)적인 무불융합의 형태로, 민간신앙과의 공존과 융화라는 제주 불교의 특징을 잘 설명해준다.
현재까지도 전승되는 제주도 영등굿 속에는 생불, 전륜대왕, 지장 등 불교의 불보살들이 신으로서 기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는 제주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배우고 얻은 세계관이다. 제주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 막힌 혈관 속의 문제를 풀어줌으로써 피를 흐르게 하는 ‘풀림’이 없다면 믿음이 될 수 없었다. 불교가 제주에 전래돼 무속과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신기도
제주는 섬과 한라산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산신기도가 제주인들의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독특한 신앙문화로 자리 잡았다. 한라산은 민족의 영산이다. 제주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이래 제주 사람들에게 한라산은 곧 제주도다. 역사, 자연, 전설까지도 한라산과 함께 공유한다. 그래서인지 한라산 주변으로 수많은 사찰이 있고, 대부분 사찰의 이름 앞에는 한라산이 붙는다. 산신신앙은 불교 세계 속으로 들어와 재물과 수명, 그리고 복덕을 관장하면서 도량을 수호하는 신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찰에 따라 산신각 혹은 삼성각에 봉안되거나 대웅전 등에 탱화로 모셔졌으며, 대부분 사찰에서 산신기도를 봉행한다.
한라산 곳곳에는 화산활동으로 생긴 원뿔형의 작은 화산인 ‘오름’이 한라산을 외호신장하고 있으며, 품 안에 안기듯 솟아 있다. 오름 중에는 불교와 관련된 이름이 많다. 영실 부근에 자리해 존자암을 관장하는 불래오름, 그리고 성불오름, 법정악오름, 극락오름, 바리메오름 등 불교와 민간신앙의 터로 민초들의 삶에 자리해 왔다.
안택기도
제주에는 새해 정초만 되면 가정에서 스님을 모시고 불공하며, 1년 동안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안택기도가 아직도 행해지고 있다. 예로부터 무당이 하던 안택기도를 제주에서는 스님을 모시고 행하는 일이 많았다. 1702년 목사 이형상의 훼철 이후 200여 년의 무불(無佛)시대가 막을 내리고 1909년 안봉려관 스님이 관음사를 창건한 후, 제주도에 사찰과 승려가 늘어나고 불교를 신앙하는 것이 활성화되면서 기존의 신앙 양상이 불교식으로 바뀌어 갔다.
고려시대에는 왕실과, 조선시대에는 민간신앙과 불교가 만나 그 명맥을 유지했는데, 제주는 안택기도가 그 역할을 했다. 제주에서 진행되는 안택기도를 보면, 민간신앙이 다시 불교 양식으로 바뀌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민간신앙의 영역인 집안의 문전신, 조왕신, 토지신 등에 대한 제사를 스님이 봉행하는데, 불교 경전을 독송하는 점이 민간신앙과 차별된다.
용왕기도
제주도 사찰은 출가재일(음력 2월 8일)부터 열반재일(음력 2월 15일) 기간에 용왕기도를 겸해 방생법회를 봉행한다.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특징이다. 사찰 대부분은 음력 2월 초부터 보름까지 용왕기도를 봉행한 후, 인근 포구에서 방생법회를 하는 식이다. 해산물 증식과 어업인의 안녕, 수산업의 번창을 기원하는 영등굿과 유사하다. 영등굿은 음력 2월 초하루에서 보름 사이에 진행되는데, 사찰의 용왕기도 역시 비슷한 시기에 봉행한다. 제주의 다양한 당문화가 불교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용왕기도는 물과 바람을 관장하는 용왕에게 의식을 올리는데, 한 해의 무사평안을 기원하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한때는 용왕기도 봉행 후 용왕에게 떡과 과일을 바다에 던지는 공양의식이 행해졌으나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이를 대신해 생명존중의 마음을 담아 물고기를 살려주는 방생법회로 변화하고 있다.
화천사 오석불
제주시 회천동 화천사 대웅전 뒤편에 독특한 ‘오석불’이 자리한다. 다섯 개의 석불이 각각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데, 투박하면서도 인심 좋은 제주 사람 얼굴로 표현됐다. 절에 모셔진 오석불께는 아기를 점지해 달라고 비는 기자(祈子) 불공이 행해진다. 석불이 있는 동회천 마을에서도 매년 정월 초정일(初丁日), 석불단 앞에서 석불제를 지내고 있다. 기원의 내용은 같으나 형식은 유교식이다. 제물로 육류를 사용하지 않는 불교식 마을제를 지낸다. 화천사 오석불을 ‘민간신앙 속의 미륵이 사찰 안으로 들어와 석불로 변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불교와 민간신앙의 습합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돌미륵
토속신앙인 당문화에 불교적인 색채가 덧붙여져 제주만의 독특한 유물이 탄생한다. 돌미륵(돌미럭)이 그것이다. 돌은 제주인의 삶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깊숙하게 자리 잡혀 있다. 돌 문화는 하나의 신앙으로도 발전해 나가면서 생명과 영력을 부여받았다. 제주 민중들은 이를 ‘돌미럭’이라 불렀다. 본디 ‘미륵 신앙은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 현세에 나타나 고통과 죄악이 없는 광명된 세상을 이룬다’는 불교 신앙의 한 형태다. 즉, ‘먼 장래에 미륵불이 나타나 부처님이 미처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모두 구제한다’는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적 이상향을 제시한다.
그렇지만 제주의 신화를 살펴보면 미륵불은 민중들에게 무병장수와 복을 가져다준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미륵돌을 찾아와 빌면 득남을 시켜줬고, 가난한 어부와 해녀들에게는 해산물을 많이 잡게 해줌으로써 ‘풍요다산’의 영험을 주는 마을 수호신이 됐다.
마을 수호신이 된 미륵은 가난한 현실 속에서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민중들의 마음,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민중들의 소박한 꿈을 이뤄주기 위해 도래한 것이다. 제주의 돌미륵은 풍요와 다산의 해신으로, 가난한 민중의 꿈을 이뤄주는 ‘미륵’으로 마을에 모셔지게 됐다.
제주의 돌법당
사찰과 비슷한 수의 신당이 있지만, 사찰이 신당을 포함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육지에도 비슷한 양상이 있지만, 제주의 경우 훨씬 더 빈번하며 더 넓게는 무속신앙과 포개진다.
제주시 도남동 보현사에는 육지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제주만의 돌법당이 있다. 대웅전 벽체를 제주에서 나는 돌로 조성했는데, 민간 건축의 구조를 사찰 건축 안으로 수용한 것이다. 제주도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해 만든 건물로, 앞으로도 보존해야 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창건 당시 지붕은 기와였지만 후에 바뀌었다. 향후 보수를 할 경우, 벽체와 나무 부재를 보존하면서 지붕을 전통 기와로 조성하면, 제주도 건축의 특성이 가미된 전통 사찰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한다.
제주도는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섬이다. 돌과 바람이 있는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주 민초들은 땅속 박혀 있는 돌을 캐내며 농경지를 넓혀갔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민초들은 위로받을 믿음이 필요했다. 그들은 돌에 영험을 부여했고, 그 돌은 미륵불이 됐다. 다산(多産)의 희망과 생활의 풍요를 기원하는 기자신앙(祈子信仰)이 저변에 깊이 뿌리내렸다. 다른 지방의 불교와 비교해 무속신앙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제주만의 이유였다.
이병철
2002년 제주불교신문에 입사했고, 2018년부터 BBS제주불교방송에 입사해 현재 BBS제주불교방송 방송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제주만의 독특한 불교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12:20~12:33 렌트한 승용차로 관음사 주차장을 출발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중앙로 501 1층에 있는 홍익돈까스 제주아라점으로 이동 [13분, 6.7km]
12:33~13:20 홍익돈까스 제주아라점에서 점심식사
[홍익돈까스 제주아라점 메뉴
홍익돈까스 13,000원 (매운맛 변경시 +1000원)
돈까스 정식 12,500원 (매운맛 변경시 +1000원)
치즈롤까스 12,500원
해물토마토파스타 14,000원]
13:20~13:36 렌트한 승용차로 홍익돈까스 제주아라점을 출발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주동로 17 번지에 있는 국립제주박물관으로 이동 [16분, 6.1km]
[국립제주박물관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주동로 17 번지
국립제주박물관은 제주항이 내려다보이는 사라봉공원 남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제주국제공항과의 거리는 차로 20분 남짓이다. 국립제주박물관은 2001년 개관하였으며, 제주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전시·보존·연구하는 고고·역사박물관이다. 한반도와 중국, 일본을 잇는 동북아시아지역 문화교류의 주요 거점인 제주도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압축해서 만나볼 수 있다. 상설전시와 특별전시 야외전시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시실내에서는 상설 체험코너인 <전통문화 체험실>에서 ‘쓱삭쓱삭 무늬가 살아나요-대동여지도, 인왕상, 덧무늬토기, 제주읍성도’와 ‘꼼지락 꼼지락 점토놀이-연꽃무늬, 허벅, 돌하르방, 동자석’ 을 점토로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체험에 필요한 재료는 뮤지엄숍에서 판매하고 있다.
시설안내
박물관 건물은 섬의 전체적인 모양, 오름, 돌담 등에서 느낄 수 있는 제주도의 지형적인 특징인 곡선을 건물의 둥근 지붕과 정원의 굽은 길로 표현하고, 바람이 많은 기후적 특징을 담장과 창으로 형상화했다. 건물은 제주의 자연과 역사를 외부 공간에 조화롭게 형상화시켜 상징적인 공간 체계를 보여주고 있다. 제주의 초가 지붕을 형상화하고 화강석과 송이벽돌로 외부를 마감하였으며, 지형의 높고 낮음을 이용한 넓은 정원에 야외 전시물을 적절하게 배치하였다.
전시실은 총 6개이고, 특별전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2024년 최신 정보는 공식안내 참조.
1. 선사실
제주의 탄생부터 첫 제주인의 정착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 구석기시대부터 탐라국이 탄생하기 전까지의 문화발전상을 볼 수 있다. 특히 초기 철기시대 삼양동 유적의 복원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2. 탐라실
제주의 문화가 완성되고 꽃을 피웠던 탐라시대를 보여준다. 탐라국의 탄생과 주변국가들의 교류를 통한 과정에서의 발굴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사실 이때의 탐라시대는 '탐라시대형성기 - 탐라 전기 - 탐라 후기'로 이어지는 제주 고고학 학계 간 논의를 반영하여 삼양동 유적과 용담동 고분 유적부터 전시한다. 물론 이당시 취락유적을 감안하였을 때 그 당시의 국가 아래의 집단이 존재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우리가 진짜 문헌에서 나온다고 하는 '탐라'의 기록을 반증하는 시대는 이후 곽지리 유적, 고내리 유적에 가야 한다.
3. 고려실
고려와 제주가 통일이 되는 과정과 고려시대 제주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대몽항쟁기 제주도에서 생활했던 삼별초의 유물 또한 이곳에 있다. 주요 전시물로는 서귀포시의 수정사에서 출토된 석탑 부재와 법화사 터에서 발견된 청자그릇 등이 전시되어 있다.
4. 탐라순력도실
조선 시대 숙종 28년(1702) 탐라순력도를 통해 300년 전 제주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화첩은 43면에 걸쳐 제주목사 이형상이 제주도 곳곳을 순찰하는 모습과 여러 행사 장면 등을 담았다.
5. 조선실
조선시대의 제주는 조정과 더욱 긴밀한 관계 속에서 성장했다. 2~3년마다 파견된 제주목사와 정치의 중심이었던 제주목 관아, 유배와 표류를 통한 새로운 문화의 수용, 옛 문서와 생활 도구에 나타난 일반인들의 삶 등을 알 수 있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 밖에도 기증 유물을 중심으로 한 기증실이 있다.
소장 유물
안중근 의사 유묵 - 천여불수반수기앙이
이익태 목사 유품 - 초상, 지영록 등
탐라순력도
관람안내
평일(월요일 제외): 09시~18시
토요일, 공휴일: 09시~19시
야간개장시간: 3월~10월 매주 토요일 21시까지 개관
휴관일: 매주 월요일(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휴관), 신정
관람료: 무료. 단, 기획전시는 제외.]
13:36~14:50 [중앙홀~선사 시대 제주~섬마을의 발전과 변화~섬나라 탐라국~고려시대 제주~조선시대 제주~제주 섬사람들~기증문화유산]의 동선으로 국립제주박물관을 관람
[중앙홀
국립제주박물관 상설전시실에 들어서기 전, 중앙홀 천장에는 제주 탄생 설화를 재해석한 스테인드글라스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한라산이 분화한 그날, 깊은 곳에서 붉은 용암이 솟구칩니다. 천장 중앙에는 바다 밑에서 올려다본 제주 섬 탄생의 순간이 펼쳐집니다. 이 아름다운 섬에 사람이 깃들었습니다. 섬 주위에는 탐라 개국을 풀어낸 ‘삼성 신화’와 ‘백록담’, ‘삼다도(三多島: 돌, 바람, 여자가 많은 섬)’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휴대폰을 바닥에 놓고 스테인드글라스를 배경으로 여러분의 얼굴을 사진에 담아보세요.
섬, 제주
우뚝 솟은 한라산과 수백 개의 오름이 있고 곶자왈의 푸름으로 덮여 있는 신비롭고 아름단운 풍광을 가진 섬. 약하게 부는 바람(지름새)에서 예기치 못하게 강하게 부는 바람(궁근새)처럼, 고요한 삶의 터전이자 격한 시련의 공간으로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긴 섬. 그 섬 이야기, 국립제주박물관에서 들려드립니다.
선사시대 제주
제주는 젊은 섬입니다. 180만 년 전부터 제주 바닷속에서 용암이 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류의 조상이 세계 곳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시기였습니다. 이윽고 용암이 바다 위로 분출하여 땅이 솟아올랐고, 화산이 식어 한라산과 오름이 되었습니다. 약 4만 년 전 빙하기에는 바닷물의 높이가 낮아서 제주는 한반도, 중국, 일본 규슈와 땅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이 땅으로 사람과 동물이 오갔습니다. 서귀포시 서귀동 생수궤 유적은 제주에 처음 찾아온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주로 동굴이나 바위그늘에서 생활했습니다. 사냥하고 채집한 먹거리를 돌감을 다듬어 만든 좀돌날 같은 뗀석기로 조리해 먹었습니다.
1만여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날씨가 따뜻해졌습니다. 숲을 이루던 상록침엽수는 낙엽활엽수로 바뀌고, 몸집이 거대한 동물은 점차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사람들은 재빠른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화살촉 같은 섬세한 석기를 만들어 썼습니다. 이러한 동북아시아 신석기문화를 제주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제주시 고산리에는 한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신석기시대 마을 유적이 있습니다. 고산리식 토기는 이제까지 발견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흙그릇입니다. 바닷물의 높이가 높아지면서 제주는 ‘섬’이 되었지만, 한반도 남해안 사람들은 배를 타고 꾸준히 제주로 찾아왔습니다.
섬마을의 발전과 변화
사람들은 끊임없이 배를 띄워 바다를 건너다녔습니다. 한반도 중부와 남부 사람들이 제주를 오가면서 제주에는 새로운 청동기문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육지와 뱃길이 가까운 제주시 삼양동과 용담동에는 큰 마을이 들어섰습니다. 바닷가와 평평한 언덕 위에 여러 채의 집이 모여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네모나게, 나중에는 둥글게 구덩이를 파서 움집을 세웠습니다. 제주의 섬마을은 점점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전보다 단단한 민무늬토기를 구웠고, 돌을 잘 갈아낸 간석기로 물건을 만들어 썼습니다. 조개껍데기로는 예쁜 장신구를 엮었습니다. 마을의 우두머리는 육지에서 들어온 청동기와 옥 장신구로 자신의 권위를 자랑했습니다.
섬나라 탐라국
제주에 나라가 세워졌습니다. 마을마다 있었던 작은 지배세력이 합쳐져 하나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섬을 뜻하는 ‘탐’, 나라를 뜻하는 ‘라’를 합쳐 섬나라 ‘탐라국’이라 이름했습니다. 한반도에서 고구려・백제・신라・가야가 고대 국가로 성장하던 2세기 전후의 일입니다. 이때부터 제주의 모든 지역에서 같은 양식의 토기를 사용해서 섬 전체가 하나의 문화를 공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배계층을 위한 무덤도 만들어졌습니다. 탐라국은 더욱 발전하여 바다 건너 백제・신라・왜・당 등과 교류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신라에서는 탐라의 지배자에게 ‘성주星主’, 즉 ‘별의 주인’이라는 칭호를 내려주었습니다.
고려시대 제주
918년에 세워진 고려는 처음에 탐라국을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180여 년 뒤인 1105년, 고려가 탐라국을 지방 행정구역인 ‘탐라군耽羅郡’으로 흡수하면서 탐라는 독립된 ‘나라國’의 지위를 잃었습니다. 고려의 한 지방이 된 제주에는 불교가 들어와 많은 사찰이 세워졌습니다. 육지에서 들어온 청자도 유행했습니다. 고려와 몽골의 전쟁 뒤에는 삼별초三別抄가 들어와 끝까지 몽골에 저항했지만, 1273년 삼별초가 고려와 몽골 연합군에게 패배했고, 탐라는 몽골이 직접 통치하는 탐라총관부로 바뀌었습니다. 몽골은 탐라의 드넓은 중산간에 목장을 만들고 말을 풀어 길렀습니다. 1295년에는 ‘바다 건너 고을’이라는 뜻의 ‘제주濟州’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까지 이어졌습니다.
조선시대 제주
조선에 들어와 제주는 전라도 소속의 제주목이 되었고, 중앙에서 목사가 내려왔습니다. 제주 목사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백성의 삶을 돌보고자 했습니다. 제주 사람들은 고유한 풍속과 신앙을 지키면서도 유교의 생각과 생활 방식을 받아들였습니다. 조선 중앙정부는 감귤과 말, 전복 등 토산품의 과중한 공납貢納으로 제주 사람을 괴롭혔습니다. 게다가 200년 동안 제주 사람이 섬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금지하여 제주의 경제와 문화 발전을 더디게 만들었습니다. 한편 제주에 부임한 관리, 유배를 온 학자, 예기치 못한 표류漂流로 바깥세상을 경험하고 온 사람들은 섬에 갇힌 제주 사람의 눈을 넓혀주었습니다.
제주섬 사람들
제주도는 용암으로 만들어진 화산섬으로, 사람들이 살기에는 척박하고 힘겨운 생존의 공간이었습니다.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는 열린 섬으로 여러 문화가 들어오기도 하였고, 고립된 섬으로 고유의 전통을 유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제주인은 소박하지만 강건한 그들만의 문화를 싹틔워 나갔습니다.
기증문화유산
문화를 사랑하는 분들이 국립제주박물관에 꾸준히 문화유산을 기증하고 계십니다. 국립제주박물관은 고고, 역사, 미술, 생활유산 등 다양한 문화유산을 기증받아 연구, 전시합니다. 기증은 개인이 아껴 온 유산을 국민과 함께 나누는 고귀한 일입니다. 기증문화유산은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국립제주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으로 거듭납니다. 뜻 있는 여러분의 기증을 기다립니다.]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목사 이형상의 순력 기록화, 제주 문화가 담기다
1702년(숙종 28)
1 개요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는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문화재로 1702년(숙종 28) 가을에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이 약 한 달 동안 제주를 순력(巡歷), 즉 각 고을의 방어 실태와 백성의 풍속 등을 시찰하며 기록한 화첩이다. 더불어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녔던 일상도 수록되었다. 화첩의 크기는 가로 36.4cm, 세로 56.9cm로, 그림 41면, 서문 2면 등 총 43면으로 구성되었다. 그림은 화공 김남길(金南吉)이 그렸는데, 18세기 초 제주의 풍속, 생활상, 명승, 군사 요새 등을 담고 있다.
2 척박한 섬, 제주
지금의 제주는 살기 좋은 관광도시로 인식되지만, 조선시대에는 매우 척박한 섬이었다. 일단 먹고살 만한 것이 부족했다. 중산간 지역은 말의 생산지로 부각되었고, 농사는 해안가에서만 지을 수 있었다. 논농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서 잡곡 위주의 생산이 행해졌고, 태풍 같은 자연재해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게다가 감귤·전복·약재 등의 진상 때문에 과중한 공물을 부담해야 했으며, 목자(牧子, 우마 사육의 역에 종사하던 사람)·포작인(浦作人, 전복과 물고기 등을 잡아 진상하는 역을 맡은 사람)·잠녀[(潛女), 해녀)]와 같은 고된 역을 졌다.
경제적 여건이 좋지 못해 제주 백성들의 삶은 힘겨울 수밖에 없었다. 이에 터전을 떠나서 유망(流亡)하는 사례가 늘어났고, 제주목(濟州牧), 대정현(大鼎縣), 정의현(旌義縣)의 군액(軍額)이 감소하였다. 1629년(인조 7) 중앙 정부에서는 제주 섬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출륙(出陸) 금지령을 내렸다. 출륙 금지령은 약 200년간 지속되었고, 제주 사람들은 더욱 고립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섬 고유의 언어·풍속·문화 등은 그 독자적 특색이 더욱 강해졌다.
3 제주목사 이형상
조선시대 제주목에는 정3품의 목사(牧使), 대정현과 정의현에는 종6품의 현감(縣監)이 각각 파견되었다. 제주도(濟州島)는 행정구역상 전라도(全羅道)에 예속되어 있었지만, 지리적으로 중앙의 통제가 제대로 미치지 못했던 섬이었다. 그리하여 제주목사는 관찰사의 권한까지 일부 위임받아 대정·정의 두 현을 관할하도록 하였다. 조선시대에 제주도에는 약 3백 명에 가까운 제주목사가 파견되었다. 그들은 제주에 부임하여 지리지, 읍지 등을 편찬하기도 했다.
1651년(효종 2)에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원진(李元鎭)은 지리지 『탐라지(耽羅誌)』를, 1694년(숙종 20)에 부임한 제주목사 이익태(李益泰)는 『탐라십경도(耽羅十景圖)』(현재 전하지 않음, 19세기의 사본이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와 지리지 『지영록(知瀛錄)』을 편찬했다. 이형상 역시 제주 관련 기록을 다방면으로 남겼다.
이형상(1653∼1733)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효령대군의 10세손이다. 자는 중옥(仲玉)이고, 호는 병와(甁窩), 순옹(順翁), 호옹(浩翁)이다. 1680년(숙종 6) 별시 문과에 급제한 이후 호조좌랑, 성주목사, 동래부사, 영광군수, 경주부윤 등을 거쳤다. 제주목사로 부임한 때는 50세 때인 1702년(숙종 28)이었는데,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노론 이건명(李健命)의 청에 의해 1703년(숙종 29) 파직되었다. 소론 계열인 그는 여생의 약 30년을 경상도 영천 강가에 호연정(浩然亭)을 짓고 저술과 강학에 전념하다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796년(정조 20)에는 이형상을 비롯하여 이미 고인이 된 관리들이 대거 청백리(淸白吏)로 추천되기도 했지만, 끝내 의정부의 승인을 받지는 못했다.
개인문집으로 『병와집(甁窩集)』이 있다. 그의 저술은 성리학, 역사, 지리, 예학, 보학(譜學) 등 다방면에 걸쳐 200여 권이 있다. 그 가운데 ‘이형상 수고본(李衡祥手稿本)’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저술 10종 15책이 유명한데, 수고본 안에 『탐라순력도』와 제주 지리지인 『남환박물(南宦博物)』이 있다. 『남환박물』은 지역 명칭 유래와 자연환경, 사적, 인물, 풍속, 산물, 방어 등에 관해 서술되어 있다.
4 탐라순력도의 구성과 내용
『탐라순력도』에는 1702년 10월 29일부터 11월 19일까지 21일 간의 가을 순력이 총 28면에 묘사되어 있다. 순력은 군사 점검의 목적이 컸다. 이형상은 해안가를 따라 설치된 9개의 진성(鎭城)을 순력했다. 제주목 관아를 출발해서 동쪽으로 가서 정의현(지금의 성산읍)을 거치고 남쪽을 지나 서쪽 대정현(지금의 대정읍)을 들른 후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또한 지도 ‘한라장촉(漢拏壯囑)’ 1면, 일상적 행사 장면을 그린 그림 11면, 이형상이 쓴 서문 2면을 포함하여 총 43면으로 구성되었다.
서문과 마지막 면의 ‘호연금서’를 제외하면, 화첩의 각 장은 제목, 그림, 설명으로 구성되었다. 맨 위에는 그림의 제목을 쓰고, 그 아래에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맨 아랫부분에는 그림과 관련된 설명이 있다. 행사에 참여한 인원이나 해당 지역의 거리 등이 기록되었는데, 그 내용 대부분은 『남환박물』에도 실렸다. 한편, 2000년에 『탐라순력도』를 보존처리하기 위해 표지와 속지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제주 속오군의 소속과 신원을 적은 명부인 제주속오군적부(濟州束伍軍籍簿)가 발견되기도 했다.
순력도의 1면은 제주 지도 ‘한라장촉’이다. 촌(村)·리(里)의 명칭, 목장, 봉수처, 연대(煙臺), 오름, 포구 등을 표기하였고, 주변 지역과의 방향과 거리 등을 표기하고 있다. 2면의 ‘승보시사(陞補試士)’는 윤6월 17일의 승보시 장면, 3면의 ‘공마봉진(貢馬封進)’은 윤6월 7일에 진상에 필요한 말을 징발하여 목사가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장면, 4면의 ‘감귤봉진(柑橘封進)’은 진상할 감귤을 확인하고 포장하는 장면, 5면의 ‘귤림풍악(橘林風樂)’은 제주목 관아 내 망경루 후원에 있는 귤밭에서 열린 풍악 장면 등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41~42면에는 서문이 있다. 제작 배경이 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인민 9,552호, 남녀 43,514명, 밭 3,640결, 목장 64곳에 국마(國馬)가 9,732필, 국우(國牛)가 703두, 귤나무 2,978그루 등 당시 제주의 실정을 알려주는 수치가 주목된다. 맨 마지막 43면에는 ‘호연금서(浩然琴書)’라는 이름으로 보길도에서 멀리 보이는 제주의 경관을 그린 그림이 있다.
순력도를 내용별로 살펴보면, 군사 점검 관련 그림이 가장 많다. 각 지역의 군졸, 무기, 군량미 등의 현황을 파악하고 군사훈련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화북성조(禾北城操)’에서는 순력을 시작한 첫날 화북진성에서 벌어진 군사훈련의 모습이 담겼다. 이형상은 객사 앞뜰에서 실시한 군사훈련을 지켜보고 있고, 군졸은 두 편으로 나뉘어 줄지어 서 있다. 화북진성은 타원형의 옹성으로 여장이 둘러져 있는데, 성곽 위에도 군사들이 정렬해 있다. 성곽 주변에는 민가가 형성되어 있다. 그림은 진성의 구조, 병사들의 정연한 모습, 주변 화북포구의 바닷물결과 파도까지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시사(試射, 활쏘기를 시험하던 일)와 전최(殿最, 관원의 근무 상태를 심사하여 성적을 매기던 일) 등도 행해졌다. 11월 6일에 목사 일행은 천지연 폭포에서 활쏘기 시합을 했다. ‘천연사후(天淵射帿)’ 그림을 보면, 천지연 폭포의 오른쪽 절벽 위에는 활을 쏘는 사람들이, 왼쪽 절벽 위에는 과녁이 있다. 폭포 중앙에는 가는 줄에 추인(蒭人, 짚으로 만든 인형)이 매달려 있다. 추인은 화살을 꽂아 운반하는 용도였다고 한다. 활쏘기 시합을 보는 군졸들과 군기(軍旗)의 위용이 폭포의 경관과 제법 어우러지는 장면이다.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에서는 각각 양로연(養老宴)이 행해졌다. ‘제주양로(濟州養老)’의 경우 순력에서 돌아온 날인 11월 19일에 제주목 관아에서 열린 양로연을 묘사하였다. 초청된 노인들은 제주목에 거주하는 100세 이상 3인, 90세 이상 23인, 80세 이상 183인이었다. 그림에는 제주목관아 앞뜰에 흰 장막을 치고 양로연을 즐기는 목사와 노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악공과 기녀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두 무동이 춤을 추면서 그들의 흥취를 돋우고 있다.
명승을 탐방하는 행사도 있었다. 순력 기간에는 김녕굴, 천지연폭포, 천제연폭포, 정방폭포, 산방산 등의 경관을 유람하였다. 이곳들이 당시에도 제주의 명승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던 곳이다. 한편 왕자구지(王子舊址)라는 장소도 있는데, 그곳은 옛 탐라국 시절 왕자의 집터가 있었다가 조선 세종대에는 중추원부사 등을 역임했던 고득종(高得宗)의 별장이 있던 터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형상이 그곳을 탐방하여 연회를 베푼 장면이 ‘고원방고(羔園訪古)’에 그려져 있다. 그는 순력 기간이 아닐 때 성산일출 등의 제주 경관을 보러 가기도 했다. ‘성산관일(城山觀日)’에서는 1702년 7월 13일 성산포 앞바다에서 떠오르는 붉은 일출과 그것을 보는 목사 일행이 묘사되어 있다.
순력이 아닌 일상적 행사 장면을 그린 11면은 진상과 목장 관련 행사 그림이 다수이다. 한편, ‘병담범주(屛潭泛舟)’는 그림 아래에 설명이 없는데, 그림에는 취병담(현재의 용연) 바다에 배를 띄어놓고 기녀들과 유희를 즐기는 목사 일행의 모습이 담겼다. 그 옆 용두암 근처에서 물질하는 잠녀(해녀)들의 모습이 대비되어 이채롭다. ‘건포배은(巾浦拜恩)’은 12월 20일에 관리 3백여 명이 조정을 향해 배례하고 그 이튿날에 읍성 밖 신당(神堂)들을 불태우는 장면이 함께 묘사되어 있어 흥미롭다. 신당이라는 무속 공간은 유교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목사 이형상의 입장에서는 혁파 대상이었다. 하지만 거친 바다와 잦은 재변(災變)이 일상이었던 섬사람들에게는 생명과 안전을 기원하는 곳이었다. ‘건포배은’의 검은 잿빛으로 불타는 신당, 그 모습을 뒤로하고 조정에 배례를 올리는 목사 일행과 제주 섬사람들의 모습에서 중앙 정부와 지방 사회의 거리가 느껴진다.
5 탐라순력도의 가치
조선 후기의 지방관들은 공무를 수행하면서 부임지의 지리, 풍속, 역사 등을 다룬 여러 기록물과 회화를 다수 제작하였다. 『탐라순력도』 역시 그러한 경향 하에 제작되었는데, 현재 지방관이 만든 화첩으로서 ‘순력도’라는 이름을 가진 기록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다. 저자, 화공, 제작 동기 등이 확실하게 나타나 있고, 18세기 초 제주의 지리, 문화, 군사, 풍속, 의례 등을 알 수 있는 중요 자료이다.]
14:50~14:57 렌트한 승용차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주동로 17 번지에 있는 국립제주박물관을 출발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성로 40 번지에 있는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으로 이동 [7분, 2.3km]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은 1984년 개관한 공립박물관으로, 자연을 존중하고 사람의 숨결을 간직한 제주의 대표 박물관입니다. 제주의 역사, 민속, 자연사에 대한 자료수집과 보존, 조사연구, 전시, 교육, 학술교류, 홍보 등 박물관의 핵심기능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도민과 관광객들에게 친숙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박물관으로 진화하고자 합니다.
기본 정보
주소 제주특별자지도 제주시 삼성로 40(일도이동)
관람시간 : 09:00~18:00(매표마감: 관람종료 30분 전)
관람요금 : 어른 2,000원(65세 이상 : 무료)
휴관일 매주 월요일(공휴일인 경우 개관), 1월 1일, 설날, 추석, 훈증 소독기간(상하반기 각 1회)
상설전시
로비
2019년 12월 비양도 인근에서 발견된 참고래 골격 표본(몸길이 12.6m)이 관람객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1년 6개월에 걸친 표본의 제작과정은 우측에 위치한 와이드형 LED 패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제주섬의 화산활동’과 ‘제주의 자연과 민속문화’ 영상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로비 안쪽 공간은 문화와 휴식이 있는 ‘뮤지엄 라운지’로 운영 중입니다. 대형 진열장을 통해 궤(반닫이)와 살레(찬장), 뒤주, 소반, 남박 등 제주 전통 목공예품를 비롯해 옹기, 구덕 등 생활도구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자연사 전시실
크게 지질관, 육상생태관으로 구분하여 제주도의 지질자료와 동식물 표본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지질관은 화산섬 제주의 형성 과정을 소개하는 곳으로, 제주의 지질 구조와 다양한 화산 분출물, 용암동굴 생성물 등을 전시합니다.
육상생태관은 제주의 다양한 지형 속 분포하고 있는 식생자원을 소개하는 곳입니다. 곶자왈, 해안습지대, 상록수림대, 낙엽수림대, 침엽수림대, 관목림대(백록담 일대) 속 주요 동식물의 생태적 습성과 서식환경을 현장감 있게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외에 버섯, 곤충(수서곤충), 야생동물과 공존을 주제로 각종 표본자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 1민속전시실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온 제주사람들의 생활 문화가 집약된 공간으로 제주인의 일생(기자祈子, 성장, 혼례, 환갑, 상례, 제례)과 의식주 문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1, 2층 중층 구조를 활용하여 대표 어로문화유산 ‘테우’와 ‘어선’을 전시장 중앙에 배치하고 있으며, 전통 재료와 기법으로 복원한 초가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제 2민속전시실
‘제주의 사계(四季)’를 주제로 계절의 흐름에 따라 의식주, 생산, 의례, 신앙, 음식 문화를 종합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계절별 색상 연출과 ‘계절 제주’ 영상을 통해 제주의 봄, 여름, 가울, 겨울을 심미적으로 느낄 수 있으며, 전시자료를 통해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는 제주의 세시풍속(歲時風俗) 문화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근현대 생활사 전시실
근현대 도시화와 산업화 이후 나타난 제주의 생활문화를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심지인 '제주성안(제주시 일도1동, 이도1동, 삼도2동 일대)’의 생활상을 조명했습니다.
제주성(城)이 존재했던 시기의 원풍경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해방, 도시화 등을 거쳐 변화되어 온 모습과 생활상을 소개합니다. 특히 1960~80년대 칠성로를 중심으로 존재했던 옛 공간들(잡화점, 양복점, 양장점, 다과점, 금은방, 여관, 백화점, 다방, 극장)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재현했습니다.
제주바다전시관
제주의 옛 포구사진과 조간대 생물자원을 비롯하여 갑각류, 패류, 상호류, 어류 등의 표본을 생태적이고 생동감 있게 전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2004년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서 발견된 브라이드고래(몸길이 13m)를 비롯하여 남방큰돌고래, 상괭이 등의 고래 골격표본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탐방지 : 제주시 [민속자연사박물관 & 제주 삼성혈]
산행코스 : [민속자연사박물관 주차장~민속자연사박물관 관람~제주 삼성혈~민속자연사박물관 민속자연사박물관]
일시 : 2025년04월30일(수요일)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1시간53분 소요)
14:57~15:00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 주차장에서 산행출발하여 민속자연사박물관으로 이동
15:00~15:50 민속자연사박물관 관람
14:57~16:00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을 관람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집안과 마을의 수호신, 뱀’ 테마전 개최
박태진 기자
아이뉴스24 기사 입력 2025.02.19. 08:51
2025년 을사년 뱀띠 해, 제주만의 뱀 신앙 돌아보기
[아이뉴스24 박태진 기자]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은 오는 5월 4일까지 ‘집안과 마을의 수호신, 뱀’ 테마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예부터 가신(家神)과 당신(堂神) 등 집안과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자, 훼손된 생태계의 치유 기능을 하는 ‘제주의 뱀’과 관련한 이야기를 다채롭게 풀어내 제주도만의 독특한 문화상을 재조명하고자 기획됐다.
전시는 1부 ‘제주의 가신과 당신으로 숭배되는 뱀’, 2부 ‘제주의 지명과 전설 속에 깃든 뱀’, 3부 ‘제주 속담 속에 담긴 뱀’, 4부 ‘제주 생태계의 수호자, 뱀’ 등 4개 주제로 구성된다.
1부는 경외와 숭배의 대상으로서, 제주의 각 가정과 마을에서 뱀을 신(神)으로 모신 ‘사신(蛇神) 신앙’ 양상을 여러 민속 유물(칠성눌, 칠성돌, 상여, 동자석)과 무속신앙(신당, 본풀이, 무구)을 통해 들여다본다.
2부는 제주의 마을, 섬, 동굴 이름 등에 깃든 뱀과 관련한 지명과 함께 현재까지도 전승돼 오는 설화, 전설 속에 담긴 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3부는 제주에 전해 내려오는 뱀과 관련된 속담을 살펴봄으로써 제주인들에게 뱀은 두려우면서도 신성한 존재인 동시에 꿈에 나타난 뱀은 임신이나 재물 등이 들어올 징조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4부는 고온다습한 기후 환경, 틈이 많은 화산섬 지질구조, 풍부한 먹이 등의 조건으로 뱀이 서식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지닌 제주에 서식하는 뱀(비바리뱀, 실뱀, 누룩뱀)의 박제 표본 등을 전시한다.
박찬식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제주의 독특한 문화상을 환기하고, 점차 그 원형을 잃어가는 제주도의 뱀 신앙에 대한 자취와 함께 그 중요성을 되돌아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6:00~16:10 걸어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성로 22 번지에 있는 제주 삼성혈로 이동 [10분, 628m]
[제주 삼성혈(三姓穴)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 1313번지 외 7필지
삼성혈은 제주도의 고씨·양씨·부씨의 시조가 솟아났다는 3개의 구멍을 말한다.
3시조들은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사냥해 먹고 살다가, 다섯 곡식의 씨와 송아지·망아지를 가지고 온 벽랑국의 세 공주와 각각 결혼하여 농경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구멍은 품(品)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하나만 바다와 통하고 나머지는 흔적만 남아있다.
조선 중종 21년(1526)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단과 비석을 세우고, 주위에 울타리를 쌓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16:10~16:40 제주 삼성혈을 [건시문~매표소~모성각~삼성혈 전시관~삼성문~삼성전~전사청~숭보당~삼성혈~건시문]의 동선으로 탐방
[제주 삼성혈(三姓穴)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1동 1313번지 외 7필지에 있는 사적지로, 탐라국 시조에 대한 제의가 이루어지는 장소. 1964년 6월 2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형태
처음 조성될 당시만 해도 개소리, 닭소리가 들리지 않는 인가(人家)와 멀리 떨어진 신성한 곳으로서 탐라국 시조를 모셔 제사를 지내기에 적소였다. 그러나 이제는 주변에 광양성당, 광양초등학교, 보성시장과 주택가가 자리하는 곳으로 변하였다. 사적으로 지정된 지역은 모두 3만 3,833㎡에 이르며 돌담이 둘러쳐진 가운데 전체적으로 원형을 이루고 있다.
원형의 돌담은 각석을 겹담으로 쌓아 둘렀다. 삼성혈은 조선시대 1526년(중종 21) 목사 이수동(李壽童)이 돌 울타리를 쌓고 혈(穴) 북쪽에 홍문(紅門)과 혈비(穴碑)를 세워 후손들에게 혈제(穴祭)를 지내게 함으로써 성역화되었고 1772년(영조 48)에 양세현(梁世絢) 목사가 바깥 담장을 쌓아 소나무를 심게 하고 제전(祭田)을 마련하여 향청(鄕廳)으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삼성혈을 자세히 살펴보면 입구, 제의 준비처, 제의처, 전시관 등으로 4개 지역으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입구에는 홍살문(높이 300㎝, 기둥 직경 30㎝)이 세워져 있고, 돌하르방(높이 220㎝)이 함께 놓여 있다. 그 옆에 ‘탐라국발상지’라고 새겨진 자연석과 사적지 표지(길이 77㎝, 폭 28㎝, 두께 13㎝)가 세워져 있어 도심의 다른 지역과 구분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오랜 세월 동안 자란 수목들이 수림을 이루고 있다. 이 홍살문은 조선 중종 21년 목사 이수동에 의한 것으로, 당시 중종이 홍문과 표단을 내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사적지임을 알리는 한글과 영문 표기의 안내문을 지나면 출입구인 건시문을 만난다. 삼성혈로 들어 오는 첫 대문인 건시문은 삼문 형태로 기와를 얹었다. 양쪽 앞에는 돌하르방이 놓여 있다. 혈 안에는 울창한 수림과 몇 개의 건물을 연결하는 관람로가 갖추어져 있다. 관람로는 현무암을 판석(板石)으로 다듬어 깔아 비가 내려도 불편함이 없도록 하였다.
제의 준비처에는 많은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건시문을 지나 왼쪽에 붉은 흙인 송이를 바닥에 깔고 자리하고 있는 숭보당을 중심으로 동남쪽에 전사청, 숭보당과 전사청 뒷부분에 수직사, 수직사 뒤쪽에 종무청, 전사청 뒤쪽에 제기고가 각각 자리를 잡고 있다.
전사청(奠祀廳)은 제향(祭享)에 관한 일을 맡아 보는 집으로서 1827년(순조 27)에 세워진 뒤 몇 차례 이건(移建) 중수(重修)하였으며, 2000년 9월에 중건(重建)하였다. 숭보당(崇報堂)은 1849년(헌종 15)에 뛰어난 선비를 두어 면학하던 재사(齋舍)로서 몇 차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재생들이 학업을 연마하던 숭보당은 1974년 12월에 현 위치로 옮겼다. 건물은 전면 7칸과 측면 4칸인 5량집으로 앞너비 15.95m, 옆너비 6.62m이다.
지붕은 팔작형이다. 높이 0.82m의 부초석 위에 높이 0.75m, 지름 0.28m의 원형기둥을 세웠다. 또 주두(柱頭) 위에 창방과 도리를 사래 맞춤하였으며, 끝막새에는 연화문을 새겼다. 수직사(守直舍)는 삼성혈을 지키는 사람이 사는 집이었으며, 종무청은 삼성혈의 제반 업무를 맡아 보는 재단사무실로 이용되는 곳이다. 제기고는 제의에 사용되는 제기와 용품을 보관하는 곳이다.
제의처에는 입구에 삼성문이 세워져 있고 안쪽에 삼성전이 있다. 후면 북동쪽에 북문, 남쪽에 전향문이 있다. 전향문 서쪽에 혈단문이 있고, 그 안쪽에 삼성혈, 혈단, 혈비가 자리하고 있다. 삼성전은 삼성사(三姓祠)를 참배하는 사람들이 분향(焚香)하는 곳이다. 삼성전의 입구인 삼성문에는 향로와 향이 준비되어 있다. 그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삼성전이다. 지금부터 약 4,300여 년 전 탐라(耽羅)를 창시한 삼을나(三乙那)의 위패가 봉안된 묘사(廟祠)이다. 신라에 입조(入朝)한 성주(星主), 왕자(王子), 도내(徒內) 삼고씨(三高氏)가 오늘쪽에 배향되고 있다.
1698년(숙종 24)에 유한명(柳漢明) 목사가 혈(穴)의 동쪽에 삼을나묘(三乙那廟, 지금의 三姓殿)를 건립하였다고 하며, 그 후 1703년(숙종 29)에 이형상 목사가 가락천 동쪽으로 삼성전을 옮겼다. 1785년에는 정조가 「삼성사(三姓祠)」라는 편액을 친히 하사하여 왕(王)에 대한 예우로서 국제(國祭)로 봉향하도록 하교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종 8년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사우(祠宇)가 한때 헐렸다가 고종 27년에 다시 세웠고, 1910년에 중건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1971년에 낡은 건물을 완전히 해체하고 웅건한 모습으로 또다시 중건한 것이다. 건물은 전면 6칸, 측면 4칸의 7량 집이다. 면적은 앞 너비 12.05m, 옆 너비 5.5m이고 지붕은 팔작형이다. 또 높이 0.15m인 원형 주춧돌 위에 높이 1.55m의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창방을 사래 맞춤하였다. 양식은 주심포이며, 막새에는 연화문이 새겨져 있다. 그 후 수차례 중수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서원(書院)인 삼성사는 1740년(영조 16)에 안경운(安慶運)목사가 재생(齋生)을 두면서부터이다. 그리고 사액(賜額)이 내려진 것은 1785년(정조 9) 이월이었다. 제주 유학(幼學) 양경천(梁擎天)의 상언(上言)에 따라 예관(禮官) 고택겸(高宅謙)이 와서 ‘삼성사’란 왕의 어필 액자와 절목을 내렸다. 삼성사에는 장의(掌議) 한 명과 유사(有司) 두 명, 정원 내의 30명, 정원 외 70명의 학생을 두었다.
전시관은 2001년 12월에 개관하였다. 전시실과 영상실을 두고 있는 한식 기와집이다. 전시실에서는 삼성혈과 관련된 현판, 고문헌, 제기 등 실증적인 자료들을 전시함으로써 고대탐라(제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영상실에서는 삼성혈의 신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여 상영하는 등 신비스러운 제주(탐라)의 역사와 이 고장 선조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탐라 개국신화를 영상화하여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탐라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 주고 있는 곳이다.
이밖에도 오랜 유적지가 지니는 오래된 다양한 수목과 고풍스런 정자 및 돌담길·유적을 조성하는 데 기여한 사람들의 공로비 등은 제주를 찾는 관광객은 물론 오고가는 철새의 도심 속 정류지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는 곳이다. 특히 이 세 개의 지혈은 주위가 수백 년 된 고목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모든 나뭇가지가 혈을 향하여 경배하듯이 신비한 자태를 취하고 있다. 또한 아무리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내려도 일년 내내 고이거나 쌓이는 일이 없으며, 주위의 나무들이 혈을 중심으로 모두 수그러져 있어 신비로움을 자아내고 있다.
내용
삼성혈에 얽혀 전해 내려오는 삼성신화는 다음과 같다.
탐라에는 태초에 사람이 없었다. 옛 기록(동문선, 고려사, 영주지)에 이르기를 기이하게 빼어난 산이 있는데 한라산이라 한다. 구름과 바다가 아득한 위에 완연히 있는데 그 주산(主山)인 한라산이 그의 신령한 화기를 내리어 북쪽 기슭에 있는 '모흥(毛興)'이라는 곳에 삼신인(三神人)을 동시에 탄강시켰으니 지금으로부터 약 4300여 년 전의 일이다. 삼신인(三神人)이 용출(湧出)하였다 하여 이곳을 삼성혈(三姓穴)이라 하며, 3개의 지혈(地穴)이 있다. 이 신인(神人)들을 이름하여 을나(乙那)라 하며 세 성씨의 시조이며 탐라국을 개국하였다.
그들의 모양은 매우 크고 도량이 넓어서 인간사회에는 없는 신선의 모습이었다. 이 삼신인은 가죽옷을 입고 사냥을 하는 원시의 수렵생활을 하며 사이좋게 살았다. 하루는 한라산에 올라가 멀리 동쪽 바다를 보니 자주색 흙으로 봉한 목함(木函)이 파도를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그 목함을 따라 지금의 성산읍 온평리 바닷가에 이르러 목함을 열어 보았다. 그 안에 알 모양으로된 둥근 옥함(玉函)이 있었으며, 자줏빛 옷에 관대를 한 사자(使者)가 있었다.
사자가 옥함을 연즉 청의(靑衣)를 입고 자색(姿色)이 출중하고 품질(稟質, 품성)이 단아(端雅)한 공주(公主) 세 사람이 좌석을 정제(整齊, 정돈하여 가지런함)하여 함께 앉았고, 또 우마와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와서 연혼포의 해안 언덕에 내어놓으니 삼신인이 자축하여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하늘에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것이다"하여 기뻐하였다.
사자가 두 번 절하고 엎드려 말하기를 "나는 동해 벽량국(碧浪國, 동해에 있다고 하는 상상의 나라)의 사자올시다. 우리 임금님이 세 공주를 낳으시고 나이가 성숙함에도 배필을 정하지 못하여 한탄하던 차에 하루는 자소각(紫宵閣, 하늘에 있다고 하는 자줏빛 누각)에 올라 서쪽 바다를 바라보니 자줏빛 기운이 하늘에 이어지고 상서로운 빛이 영롱한 가운데 명산이 있는데 그 명산에 삼신인(三神人)이 강림하여 장차 나라를 세우고자 하나 배필이 없으므로 이에 신(臣)에게 명하여 세분 공주를 모시고 오게 하였으니 항려(伉儷, 짝, 남편과 아내)의 예식을 갖추어 큰 국업(國業, 나라를 일으킴)을 성취 하시옵소서"하고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동쪽 하늘로 사라졌다.
이에 삼신인은 제물(祭物)을 정결하게 갖추고 목욕재계하여 하늘에 고하고 각기 세 공주와 혼인하여 연못 옆 동굴에서 신방을 차리고 생활하니 인간으로의 생활이 시작이며 이로써 농경사회로 발전하고 정주의 기초가 됐다 하였다.
그래서 자줏빛 함이 올라온 성산읍 온평리 바닷가를 연혼포(延婚浦)라 하며, 지금도 세 공주가 도착할 때 함께 온 말의 발자국들이 해안가에 남아 있다. 또한 삼신인이 목욕한 연못을 혼인지(婚姻池)라 부르며, 신방을 꾸몄던 굴을 신방굴(神房窟)이라 하고 그 안에 각기 세 개의 굴이 있어 현재까지 그 자취가 보존되고 있다.
삼신인은 각기 정주할 생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도읍을 정하기로 하고 한라산 중턱에 올라가서 거주지를 선택하는 활을 쏘아 제주를 삼분하여 제1도와 제2도와 제3도로 정하니 이로부터 비로소 산업을 이룩하여 오곡을 심고 우마를 길러 촌락이 이루어졌으며, 자손이 번성하여 탐라국의 기초를 이룩하였다. 그 활 쏜 지역을 사시장올악(射矢長兀岳)이라 하며, 활이 명중한 돌을 한데 모아 보존하니 제주시 화북경의 삼사석(三射石)이라 한다.
그 후 역사시대에 이르러서는 탐라국 왕손들이 신라에 입조하여 작호(爵號)를 받았다. 또 신라, 백제, 고구려뿐만 아니라 중국·일본·유구왕국과도 독립국가로서 교류하며 해상교역 활동도 하면서 수천 년간 탐라국으로의 왕국을 유지하다가 고려시대에 합병됐다고 한다.
삼성혈에서 이루어지는 제향으로는 매년 4월 10일에 춘기대제를, 10월 10일에는 추기대제를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각각 봉향하고 있다. 12월 10일에는 건시대제라 하여 혈단에서 제를 지내고 이다. 모든 제관은 왕에 대한 예우로 금관제복을 착용하여 사흘 전에 입재하여 목욕재계하고 제향에 임한다. 지금은 조선시대 때 국제로 모신 것과 달리 제주도민제로 봉행되고 있다. 초헌관은 제주도지사, 아헌관과 종헌관은 덕망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가 각각 맡아 하고 있다.]
[탐라왕국의 발상지 제주 삼성혈
입구에는 신성한 장소를 상징하는 홍살문과 돌하르방이 양쪽에 세워져 있다.
돌하르방은 옹중석, 우석목, 벅수머리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의 성문 입구에 세워졌던 석상이다. 제주읍성 동서남 세 개의 문밖에 각 8기씩 24기와 정의현성, 대정현성 세 개의 문밖에 각 4기씩 12기가 설치되어 모두 48기가 세워졌다고 한다.
다공질 현무암으로 만든 돌하르방의 평균 키는 제주 187cm, 성읍 141cm, 대정 134cm 정도로 문헌기록상 조선 영조 30년(1754)에 제주목사 김몽규가 세웠다고 전해지며, 다른 지역의 성문이나 사찰 앞에 설치한 장승과 같이 수호신의 역할과 경계 금표석 기능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혈 관람은 건시문-모성각-전시관-삼성전-전사청(숭보당)-삼성혈-건시문 순으로 시계 반대방향으로 하게 된다.
삼성혈은 제주도 사람의 전설적인 발상지이다. 삼신인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조선 중종 21년(1526) 목사 이수동이 처음 표단과 홍문을 세우고 담장을 쌓아 춘추봉제하기 시작한 이래 역대 목사에 의하여 성역화 사업이 이루어졌고 현재에도 내년 춘기대제, 추기대제, 건시대제를 봉향하고 있다.
삼성혈로 가려면 건시문을 통과해야 한다.
건시문 앞에 돌하르방 두 기가 있는데, 원래 제주읍성 서문밖에 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건시문을 통과하면 바로 왼쪽에 매표소가 있고, 관람료는 4,000원이다.
건시문에서 직진해도 좋지만, 나무들을 보려면 오른쪽으로 돌아 관람해야 한다.
삼성혈 성역 내에 자라는 수고 3m이상 되는 수목은 모두 701본이며 수종은 43종이다. 주요 4수종은 수령 500년 이상 추정되는 곰솔을 비롯하여 구실잣밤나무, 녹나무, 팽나무 등 현존 본수가 455본으로서 전체의 65%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혈 비석군
삼성사(三姓祠) 건립과 보존 및 운영에 공이 많은 제주목사 7명의 기념비를 비롯하여 삼성 후손의 기념비 7기와 삼성전 중건 관련 비 2기가 세워져 있다.
모성각(慕聖閣)과 팽나무를 지나면 삼사석비(三射石碑)를 만나게 된다.
1735년(영조11)에 제주목사 김정이 탐라국의 시조인 고,양,부 삼신인이 벽량국의 세 공주를 배필로 맞아 각자 살 땅을 정하려고 화살을 쏘았다는 전설을 적은 비석이다. 이 비석은 제주시 화북동 삼사석 옆에 있었으나, 1930년 고한용 등이 비석을 그 자리에 묵도, 옆에 새로 만들어 세웠다. 묻혀있던 원래의 삼사석비는 1997년에 보수하여 보관해 오다가 2009년에 삼성혈 경내로 옮겨 세웠다.
삼성혈 전시관에는 삼성혈의 신화에 대한 모형도와 도지정문화재인 홍화각, 홍화각기, 급제선생안과 고문서, 제기 등이 전시되고 있으며 영상실에서는 제주 개벽신화인 탐라를 창시한 삼신인의 용출로부터 탐라국으로 발전하여 고려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화적, 역사적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여 영상물로 방영하고 있다.
홍화각 현판과 홍화각기
홍화각은 제주목 관아에 있던 건물로서 이 현판은 홍화각에 실제 걸려있었던 현판으로 1435년에 고득종의 친필을 비자목을 사용하여 각자한 현판으로 알려져 있다.
홍화각기는 제주목 관아의 홍화각 등 관아 건물의 건립 전말을 판각한 기문이다. 글 전체의 내용은 제주도의 지형과 역사를 우선 간략히 서술한 뒤에 최해산의 인품과 선치를 찬양하였고, 다음으로 홍화각의 건립내역과 홍화각이라 명명한 이유를 적고 있다.
전시관 앞에 연리목이 있다.
사랑나무인 연리목 아래에는 두 개의 의자가 놓여있다.
삼성문(三聖門)은 삼성전(三聖殿)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삼성문 앞 정원에는 하귤이 탐스럽게 달려 있다.
삼성전(三聖殿)은 분향하는 곳으로 조선 숙종 24년(1698) 건립 후 1970년 중건했다.
삼성전(三聖殿)
지금부터 4,300여 년 전 탐라를 창시한 삼을나의 위패가 봉안된 사당으로 조선 숙종 24년(1698) 목사 류한명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제향은 매년 춘기대제(4월 10일)와 추기대제(10월 10일)를 후손들이 봉향한다. 편액은 의친왕 이강의 친필이다.
전사청
제향에 관한 업무를 맡는 곳으로 조선 영조 47년(1771) 목사 양세현에 의해 건립되었다.
(리플릿에는 순조 27년(1827)에 건립되었다고 되어 있다.)
전사청 뒤에는 제향에 사용되는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가 위치해 있다.
숭보당
선비들이 학업을 연마하던 곳으로 조선 현종 15년(1849) 목사 장인식에 의해 건립되었다.
숭보당에 앞 마당에서는 전통 민속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제기차기, 투호놀이, 굴렁쇠 굴리기 등등...
주위에는 왕벚나무가 심어져 있어 벚꽃 필 때 방문하면 아름다울듯하다.
삼성전 뒤쪽에는 삼성혈이 자리잡고 있다.
삼성혈 주위에는 특히 아름드리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어 신비함을 더한다.
수령이 꽤 보이는 녹나무가 삼성혈을 지키고 있다.
태초에 삼을나(고을나, 양을나, 부을나)가 용출하신 곳으로 매년 건시대제(12월 10일)를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초헌관이 되어 제주도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주도민제로 봉향한다.
삼성혈을 더 가까이 가서 볼 수 있도록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두 그루의 녹나무가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어 더욱 신비롭다.
삼성혈 관련 유적지
동해의 벽랑국에서 오곡의 종자와 가축을 가지고 온 삼공주를 맞이했던 해변인 연혼포(延婚浦)
삼신인이 벽랑국 삼공주와 혼례를 위하여 목욕 재계한 연못이며, 혼례 후 첫날밤을 치는 신방굴이 있는 혼인지
삼신인이 도읍(주거지)을 정하려고 활을 쏜 봉우리인 사시장올악(射矢長兀岳)
삼신인이 도읍을 정항 때 쏜 화살이 박혔던 돌인 삼사석(三射石) 이 있다.]
[찻잎 향 나는 녹나무 도마를 매만지며
‘이웃집 토토로’ 살던 신성한 나무… 제주 서귀포엔 국내 유일 울창한 자생지
한겨레21 기사 등록 2025-02-07 20:49, 수정 2025-02-13 22:40
캄포 도마를 선물로 받았다. 석 달간 목공 수업을 들으며 정성껏 만들었다 한다. 향기가 나니 주방에 걸어두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좋게 해줄 거라고 지인은 도마를 자식 대하듯이 쓰다듬으며 말했다.
캄포는 녹나무다. 정확하게는 녹나무에서 얻는 정유 물질인 장뇌(樟腦)를 말하는데, 그게 고유명사처럼 널리 쓰이다보니 아예 녹나무 자체를 캄포라고 부른다. 내게 도마를 만들어준 이의 말처럼 녹나무는 목재의 향이 무척 좋다. 편백이나 측백에 발효된 찻잎이 더해진 향 같달까. 낯설지만 당기는, 적당히 무게감 있는 우아한 향이다.
호랑이 연고도 녹나무로 만든다
녹나무 체내의 화합물이 방향(芳香), 그러니까 꽃다운 향기를 발산한다. 장뇌와 리날로올을 중심으로 사프롤, 시네올 등이 후각을 자극하는 동시에 항균 작용까지 하는 것이다. 그 특유의 향은 나무를 자르지 않아도 잎과 가지 구분 없이 몸 전체에서 발산된다. 그래서 녹나무의 에센스는 향수와 비누와 살충제 따위를 만들 때 쓴다. 우리에게 익숙한 물파스나 호랑이 연고의 원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제주를 비롯해 일본, 중국, 대만, 인도, 베트남 등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난대, 아열대 지방이 녹나무의 원산지다. 그 일부 국가에서는 자연적으로 사는 녹나무 외에 추가로 사람이 심어 기르는 녹나무가 번성했는데 그 둘의 경계를 가늠하는 게 언젠가부터 어려워졌다고 한다. 장뇌를 얻을 목적에서 자생지 밖에 심은 나무들이 야생에 너무 퍼졌기 때문이다. 원산지가 아닌 다른 국가에 건너가서도 녹나무는 번성했다. 1822년 오스트레일리아에 정착한 녹나무는 금세 무성한 숲을 이뤘다고 한다. 녹나무의 장뇌 성분은 주변에 다른 식물이 못 살게 하는 특별한 전술을 펼친다. 이를 타감작용(他感作用)이라 한다. 한 개체가 자신의 휘발성 물질로 가까이에 있는 다른 식물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유칼립투스와 같은 토착종을 밀어내서 유칼립투스를 먹고 사는 코알라가 곤경을 겪을 수도 있다고 퀸즐랜드 전역과 뉴사우스웨일스 일부 지역에서는 녹나무를 유해 수종으로 낙인찍었다. 해로움이 있을 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자란 녹나무는 ‘청정 지역 호주 캄포’라는 광고성 문구와 함께 전세계 목재시장에서 비싼 값에 거래된다.
죽어서도 향긋하게 또 한 번 사는 나무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는 목수였다. 나는 할아버지가 직접 지은 집에서 아버지를 통해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컸다. 집을 떠난 지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한 번씩 그 집에 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깜짝 놀란다. 기둥과 대들보며 한옥의 자태가 어릴 적 내 기억 속 모습처럼, 아니 전보다 더 젊고 생기로워 보여서다. 나무는 나무로서 일생을 살고 나면 죽어서 목재로서 또 한 번 생을 산단다. 대목수 할아버지가 나무를 매만지며 아버지에게 자주 했다는 그 말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할아버지도 녹나무를 접했을까.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어떤 나라에서는 말썽일 정도로 많이 사는 녹나무가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만 아주 드물게 살기 때문이다. 귀한 만큼 녹나무 목재는 과거에 왕실의 가장 필요한 곳이나 신성한 곳으로 먼저 보내졌을 것이다. 왕실 무덤의 목관을 만들 때, 사찰에서 불상이나 목어를 만들 때, 거북선과 같이 역사적 사명을 지닌 배를 만들 때 녹나무 목재를 썼다. 방향과 항균 능력이 탁월해 벌레가 잘 생기지 않아 보존성이 높고 목재의 색과 결이 곱다고 하는 그 녹나무. 지금은 그 목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제주도의 나무로 지정한 것이 녹나무다. 녹나무를 찾아 떠나는 나만의 제주 여행지가 있다. 공항에 내려서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곳이 제주 시내 한가운데 있는 삼성혈(三姓穴) 사적지다. 탐라국 시조에 대한 제의가 이뤄지는 장소로 1964년에 사적으로 지정된 곳. 원형의 돌담을 쌓고 둘러 혈제(穴祭)를 지내도록 성역화한 건 일찍이 1526년의 일이라 한다. 오랜 역사를 가늠할 수 있을 법한 녹나무 고목 여러 그루가 삼성혈 사적지에서 우람하게 자라고 있다. 콩짜개덩굴이나 일엽초와 같은 양치식물이 녹나무에 뒤엉켜 산다.
서귀포 ‘면형의 집’에는 녹나무 고목이 사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면형의 집은 에밀 타케 신부가 1902년 세운 홍로성당이 있던 곳으로 제주도 가톨릭의 초창기 역사와 관련이 있다. 타케 신부는 1898년 스물다섯에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한국에 파견되어 한국에서만 사셨다. 당시 참 힘들던 한국을 도우려 식물을 채집해서 유럽에 보내는 방식으로 선교자금을 모았다. 1952년 선종할 때까지 식물분류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 타케 신부다. 면형의 집 녹나무가 어려운 시기를 견디고 지금의 고목이 된 건, 그 수도원 정원이 여러 초목으로 그토록 아름다워진 건 아마도 타케 신부의 살뜰한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면형과 피정이라는 단어가 녹나무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면형(麵形)은 성경에 나오는 밀떡이 성체로 바뀐 후에도 그 모양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겉모양을 이르는 말.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비유적 표현일 테다. 피정(避靜)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서 묵상이나 기도를 통해 자신을 살피는 일을 뜻하는 가톨릭 용어다. 녹나무 앞에 서면 신령스러움에 나도 모르게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공손한 자세를 취하게 된다. 그 커다란 녹음 아래서는 시끄러운 세상을 떠나서 가만히 쉬거나 기도하게 된다. 적어도 나에게는 녹나무가 그런 나무다.
녹나무 보고플 땐 제주나 부산으로
삼성혈과 면형의 집에 사람의 관리를 받는 녹나무가 있다면, 서귀포 도순리에는 야생의 녹나무 자생지 군락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지 60년이 넘은 숲이다. 강정교를 중심으로 강정동과 도순동 일대 개천가의 급경사면에서 녹나무는 숲을 이룬다. 숲에는 천연기념물 원앙도 산다. 녹나무 숲은 냇가와 들판의 경계 역할을 한다. 그 경계 너머 북쪽으로 한라산이, 남쪽으로 서귀포 앞바다가 펼쳐진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녹나무 숲 주변의 문화재 보호구역 일부를 해제하고 어느 정도의 녹나무를 벌채할 것이라고 들었다. 강정교 재가설을 위해서라던가. 안타깝다.
부산에 가면 벌채 직전에 살아남은 녹나무 한 그루를 만날 수 있다. 부산시민공원의 남문 입구를 지키는 녹나무다. 원래 시청 옆 사설 재활용센터 마당에서 살던 나무인데 도시계획으로 청사가 헐리게 되면서 잘릴 예정이었으나 극적으로 구조돼 2019년 여름부터 시민공원에서 살게 됐다. 그런데 부산은 녹나무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어떤 이유에서 누군가가 어느 시기에 옮겨 심은 나무가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다. 대체로 일제강점기에 심은 녹나무가 남부지방에 드물게 있기는 하다. 그중 한 곳이 순천공업고등학교다. 1910년 양묘장 자리였다가 1946년 순천사범학교를 거쳐 지금의 학교 자리에 녹나무 거목 12그루가 줄지어 있다. 양묘장 시절의 묘목이 지금의 거목이 되었다고 추정한다.
부산에서 녹나무를 지킨 사례와 비슷한 일은 더 일찍 일본에서도 있었다. 오사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시 네야가와시의 가야시마역(萱島駅)에서 1972년의 일이다. 동네 사람들이 정령으로 여긴 가야시마 신사의 신목(神木) 녹나무는 철도 복선화 공사 때 댕강 잘릴 예정이었다. 역사 확장 공사는 주민들의 요구대로 녹나무를 그대로 남겨두고 진행됐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녹나무가 플랫폼 위로 넓게 펼쳐져서 마치 브로콜리 같기도 하다. “삭막한 느낌의 플랫폼에 초록을 더해 행복감을 준다”며 역은 1983년 오사카 도시 경관 건축상을 받았다.
오래 산 고목을 신성시하는 건 국경 없는 문화 같기도 하다. 1988년 일본에서 제작된 만화 영화 ‘이웃집 토토로’가 여러 나라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인기를 얻은 걸 보면. 한국에서는 2001년 개봉했다. 당시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영화를 보고 느꼈던 짙은 감동과 행복한 감정은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고 너무 거대해서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이웃집 토토로’에서 숲의 요정 토토로가 사는 집이 바로 커다란 녹나무다. 주인공의 동생 메이가 폴짝폴짝 뛰면서 “녹나무, 녹나무!”라고 말한다. 영화 속 배경은 1950년대 도쿄 인근 시골 마을이다. 녹나무가 사는 마을로 이사한 자매와 토토로의 이야기는 사십 대가 코앞인 내게 여전한 명작이다. 이 영화는 어릴 적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앞으로 사랑하는 조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미래 같은 것.
입춘에 태우면 나쁜 신 도망간다 믿어
입춘에 선조들은 녹나무를 태워 그 연기를 집집마다 풍겼다고 들었다. 그 냄새를 맡고 나쁜 신은 도망가고 좋은 신들이 찾아온다는 속설도 있었다 한다. 녹나무의 살균 효과가 악귀와 병마를 쫓는 풍습으로 이어진 것이리라.
이른 봄에 나오는 녹나무의 새순을 나는 더없이 좋아한다. 그 색감을 동경한다. 녹나무 새잎은 엷은 분홍색과 더 엷은 연두색 물감을 물에 푼 색으로 입춘이 지나면 입술을 내민다. 그러면 가지에 먼저 붙어 있던 묵은잎이 떨어진다. 새로 돋아난 잎은 점차 초록색이 된다. 표면 왁스층이 도톰해지며 시간이 지날수록 잎은 반질댄다. 녹나무가 상록수인 건 연중 같은 녹색의 잎을 달고 있어서가 아니라 묵은잎을 떨구는 동시에 새잎을 키우며 상록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잎사귀를 반짝거리며 몇백 년을 누구보다 크게 산다. 죽어서도 변함없이 향긋하게 산다. 녹나무는 그렇다.
허태임 식물분류학자·‘나의 초록목록’ 저자]
16:40~16:50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여 탐방 완료
16:50~17:07 렌트한 승용차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성로 40 번지에 있는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을 출발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어영길 20 번지에 있는 제주 유레카로 이동 [17분, 6.2km]
17:07~17:30 제주 유레카에서 렌트한 차량을 반납한 후 제주공항으로 가는 셔틀 버스에 승차하여 출발 대기
17:30~17:41 제주 유레카 셔틀버스를 타고 제주공항으로 이동 [11분 소요]
17:41~17:50 제주공항 여객터미널 4층에 있는 제주 향토음식점으로 이동
17:50~18:30 제주공항 여객터미널 4층에 있는 제주 향토음식점에서 순두부찌개 백반(11,000원)에 공기밥 1개를 추가하여 저녁식사
[저녁식사 비용 : 12,000원] [2025년04월30일(수요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몰시각 : 19시15분]
18:30~19:00 제주공항 여객터미널 건물 옥상에 있는 제주공항 전망대로 이동하여 휴식
[제주공항을 이용하는 누구나 제주의 푸른 바다와 한라산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제주공항 전망대
제주공항터미널 건물 옥상 구역에 우드 데크와 현무암 판석, 조경을 설치해 북쪽으로는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모습과 함께 푸른 바다를 볼 수 있도록 했다.
또 남쪽으로는 한라산 봉우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을 마련해 여행의 즐거움과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조성했다.
특히, 전망대 입구에는 제주도 주요 오름과 관광지가 새겨진 우드 타입 사인물을 설치하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바다 너머 보이는 제주의 부속섬(추자도, 관탈도, 여서도)의 위치와 설명을 볼 수 있는 윈도우그래픽을 부착했다.]
19:00~19:30 제주공항 여객터미널 탑승구 1A로 이동하여 김포공항행 제주항공 여객기 탑승 대기
19:30~20:00 김포공항행 제주항공 여객기에 탑승하여 출발 대기
[30일 (제주~김포) 제주항공 편 여객기 예약번호 , 좌석번호 ]
[임직원 직계존속이라서 24,000원(운임 20,000원+공항이용료 4,000원)만 결제]
20:00~21:20 제주 항공 여객기(좌석 )를 타고 제주공항을 출발하여 김포공항으로 이동 [1시간20분 소요]
제주도 관광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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