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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憧憬)
한 설 야
보면 볼수록 만족한 작품(그림)이었다.
S는 작품에 대하여 이만치 맘이 흠썩해¹보기는 실로 처음이었다. 곁에 있는 K까지도 아주 잊은 듯이 그림만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가 오랫동안 애쓰던 바가 이번 작품에서 비로소 샛별 같은 빛으로 말끔…… 나타난 듯한 새로운 기쁨과 희망을 그는 깨달았었다. 이때까지 찾아내고 나타내려고 꾸준히 연구하고 안달을 하던 바의 실마리를 지금에야 잡아낸 듯하며 앞날에 믿고 바라는 바가 더욱더 커지고 새로워졌다.
그는 그림을 향하여 부처님같이 똑바로 앉아서 눈도 가딱하지 않고 들여다볼 뿐이었다. 그 그림은 K의 초상이었다. 조금 왼편으로 몸을 틀고 있으나 눈은 바로 정면을 향하여 무심히 보는 곳 없이 허공에 시선을 던지고 있다. 그 시선이 무한히 넓게 쏘아놔서 모두를 싸고 빛나게 하는 듯이 아롱진 광채가 그 가운데 서리어 보였다. 살과 표정에까지 삶의 빛이 보였고 영의 번득임이 보이는 것 같았다. S는 기쁨과 만족함에 거의 취해가는 것 같았다. 그러며 언제까지든 언제까지든 바라보고만 있었다.
K도 말없이 그림을 보고 있었다. 그는 그림에 대한 전문적 소양이 없으므로 참다운 비판적 관조를 가지지 못했고 깊은 이해를 해내지는 못했다. 그저 저이는 제 얼굴과 영락없는 것이며 무한히 큰 무엇 앞에 단정히 꿇어앉아서 무심하게 그것(무한히 큰 무엇)만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림 속의 자기를 보는 것이 언제까지든지 싫지 않았다. 나서 처음으로 제 몸과 제 정신을 익히 엿보고 분명히 깨달은 듯하였다. 그리고 제가 오래 품었던 바가 S에게 똑바로 잡혀 이제 눈앞에 그것이 그림으로 나타난 것 같아서 심히 기뻤고 동시에 파 흠썩 고맙기도 하였다. 제 맘이 저 이상으로 S에게 알아지고 속 깊이 인상된 것 같아서 마음은 거칠 것 없이 시원하며 비 뒤의 꽃봉오리같이 새 눈이 반겨 피어 있는 듯했다. S는 담배 한 대를 붙여 물었다. 연기는 한가히 나선을 그리며 몽깃몽깃 휘저어 올라갔다. S의 맘은 소리 없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뛰고 노래하였다. 그 그림에서 K라는 실재는 분명히 나타났다. 하나 그가 기뻐함은 K와 그림이 꼭 같다는 데 그치지 않았다. 즉 형우리²를 보이는 그대로 그려낸 데 그치지 않았었다. K로부터 느끼는 감각과 그의 속의 영성(靈性)과 그에게 서린 대기(大氣)와 그를 향한 때의 자기의 주관―다시 말하면 심리를 나타낸 동시에 K를 통하여 우주의 큰 현현의 오묘한 것을 찾은 데에 기쁨과 만족과 또는 새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형우리의 사람’의 속 깊이 숨은 심령을 잘 나타내었다. 참으로 ‘삶’이 충실한 참된 표현이었다.
그는 늘 정적이 아니요 동적인 그림을 그리려 하였다. 기계화하는 과학 문명에 따라 말라가고 굳어가는 사람의 맘 가운데 분방(奔放)한 새 정신을 살리려 하였다. 그는 가슴이 터질 듯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에게는 K는 그림이 모두 저 이외의 것이면서도 저와 같을 수 없는 하나인 것 같았다. 떼랴 뗄 수 없고 가르랴 가를 수 없는 완성된 하나인 것 같았다. 셋――K와 그림과 자기의 형체의 속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무엇을 임의 대류적(對流的)으로 빙빙 돌다가 마침내는 하나로 버무리고 조화된 것 같았다. 그림 가운데서만도 자기를 찾을 수 없고 그 셋인 하나 가운데서만 오직 자기를 찾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조그만 자기를 떠나 큰 자기를 찾은 것 같았다. 지금 그 더 큰 자기가 살아나 바야흐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 그림을 통하여 그만치 만족해내
었다.
그는 한 달 전 어느 날 화재(畵材)를 생각하느라고 담요 밑에서 이리 뒤치락 저리 뒤치락 하다가 너무도 안타까운 듯이 활 뿌리치고 주인을 튀어나온 때는 이미 넘어간 햇발이 마지막 힘을 다하여 서편 하늘 구름을 우는 듯 핏빛으로 물들여놓았다. 그것이 몹시도 히로이크한³ 감상을 주었다. 그는 멍하니 바라보고 한참 서 있었다. 그 구름은 점점 엷은 빛으로 사라져갔다. S는 소르르 걷기 시작하였다. 그의 머리는 몹시 무거웠다. 화재가 머리에 드리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모두를 활 제치고 오직 화재만을 생각하는 정신이 드리운 머릿속에 온전히 보금자리를 찾아내었다. 넓디넓은 대양에 홀로 선 것같이 그 사색은 펴지고 널려졌다.
그는 사람 적은 뒷골목을 이리저리 선돌아다니다가⁴ 무엇이 별안간 번듯 생각키는 듯하여 멈칫하고 섰다가는 또 서어한⁵ 듯이 시름없는 걸음을 저 모르게 옮기곤 하였다. 어떤 때에는 개천에 빠질 뻔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남의 집으로 쏙 들어갈 뻔하기도 하였다. 화재를 찾을 때의 그는 거의 정신 빠진 사람 같았다. 제가 어디로 가는지 제 행동이 어떤지 도시 알지 못했다.
그는 웬 일본집 앞을 지나다가 발발이 강아지를 얼른 보았다.
짤막한 다리를 밧툭밧툭⁶ 뜯으며 앙깃앙깃⁷ 기어다니는 것을 눈앞에 보자마자 대번에 허리를 엉거주춤하고 강아지 며리를 똑똑 두드려보기도 하고 살살 쓰다듬어주기도 하였다. 그는 개를 몹시 좋아하였다. 더욱 코에서 빠진 대추씨같이 깜찍하게도 조그마⁸ 반지르한 처음 보는 그 강아지가 얕밉게 재미스러웠다. 그는 강아지 주둥이를 잡아 들고 익히 들여다보다가는 실성한 듯 빙긋이 웃으며 ‘요놈을 그려 참말 그려볼까’ 하며 중얼거리는 사이에 얼른 한번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바로 그러던 그때였다. “선생님!” 망설이는 분명치 못한 소리가 참말 부르려는 소리 같지 않게 약하게 들려왔다. 그러나 어름더듬 떨리고 급한 소리의 리듬이 그이에게 선듯한 기분을 주었다. 그는 소리 나는 편으로 머리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는 웬 본 일도 없는 듯한 여학생이 서 있다. 하나 S는 무엇이라고 말하기 난처해서 다시 그의 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언제 오셨어요. 아마 저를 저를 기억하지 못하시겠지요” 하며 멀리 바라보던 시선을 점점 아래로 옮기는 양이 아무려나 심상치 않았다. 오래 그리던 사람에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별안간 무슨 생각에 젖어가는 것 같기도 하였다. 어쨌든 오래 사모했던 것 같은 표정이 가릴 수 없게 S의 머리에 직감되었다. 그러며 제가 누군지 알아주지 못하는 것이 퍽 안타까웠고 또 그에게 서어한 생각을 느끼게 하는 듯해서 미안해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 그러는 가운데 더 재미나는 로맨스와 에피소드가 숨어 있고 또 장차 생겨까지 날 듯한 공상이 그의 마음을 애오라지⁹ 부끄럽게 하였다.
“글쎄올시다. 많이 뵌 듯한데요. 워낙 기억이 좋지 못해서.”
S는 점잖게 몸자세를 고쳐가며 여자와 같이 애티 있는 웃음을 띠고 정이 쏠리게 말하였다. 자기의 말하는 표정과 태도가 제가 못 알아줌으로 해서 생기는 그의 서어한 생각을 꿰매고도 얼마큼 남을 것 같았다. 하며 그는 다소간 안심을 얻을 수 있었다.
“○○○ 올시다. 이전 자혜의원에서 뵈었습니다만.”
하는 그 여학생의 말은 조금 떨리었다.
S는 가슴이 뜨끔해짐을 깨달았다.
“○○○? 오― 그다 그다. 그의 이름이 ○○?”
하며 속으로 4년 전 일을 생각하였다.
그가 동경미술학교로 다닐 때 하계휴가에 귀국하였다가 병으로 이곳 자혜의원에 입원한 일이 있었다. 그때에 나이 어리고 키 작은 K란 간호부가 늘 병실에 찾아와서 유달리도 친절히 보살펴주곤 하였다. 늘 무슨 근심이 있는 듯이 나른해 보이는 K의 그 태도만 해도 자기의 병을 도정하고 근심해주는 것 같았다. 어린 나[齡]와는 어상반치¹⁰ 않게 가라앉고 침착한 K가 그에게 퍽 정다워보였고 따라 많은 위로가 되었다. 느른한 강물 가에 고기 낚는 어옹의 한가한 맘같이 잔잔한 심회를 느낄 수 있었다.
K는 사이 있는 대로 잡지나 다른 서적을 들고 와서 S에게 묻기도 하고 또 말거리를 삼기도 하였다. 그는 문예에 관한 이야기를 퍽 즐겨 하였고 또 아는 데까지 이야기도 하였다. 더욱 소설을 즐겨 하였다. 그러며 예술가의 생활을 세상의 그것과는 아주 딴것으로 무한히 동경하며 듣고 기뻐하고 알고 싶어 하였다. S의 기다랗게 기른 머리에까지 자기네가 모르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늘 눈여겨 들여다보곤 하였다. S가 내일같이 퇴원하려던 어느 날 그는 S의 머리를 들여다보다가,
“선생님 벌써 흰머리가 다 나셨네.”
하고 빙긋 웃으며 그것을 뽑아내고 싶어 하는 양이었다.
“어디요? 웬 흰머린.”
하며 S는 제가 찾아낼 듯이 머리를 슬슬 어루만졌다.
“제가 뽑아드려요!”
하고 S의 살에 제 손이 닿는 것을 피하는 듯이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머리를 추더니 기다란 흰머리를 뻬어 들고 보동보동한¹¹ 손을 쪽 훑어보며 아양스럽 게 웃었다. 하나 S에게는 그 얼굴보다 그 손이 더 예쁘게 보였다. 손가락이 착 꺾일 때마다 손가락 마디 보들보들한 살 속에 조그만 구멍 넷이 또렷이 파지는 양이 몹시 예뻐 보였다. S는 그의 손가락을 꺾어 구멍 파지는 것을 한번 시혐해보고픈 지경이었다. 하므로 지금까지도 그것만은 어렴풋 기억에 남아 있었다.
S가 퇴원할 때에도 K는 퍽 섭섭해하였다.
“퇴원하시면 어디로 가세요?”
하며 매우 침울하고 가라앉은 태도로 S에게 물었다.
“네, 동경 가겠습니다. 덕으로 병이 나아서 참 감사합니다.”
하고 S는 무슨 애씌우는¹² 듯이 마지막으로 병실을 스르르 돌아보았다.
“제가 무얼 했어요. 늘 바빠서.”
하며 K는 모로 몸을 돌이키고 두 손으로 뺨을 꼭 누르며 멀리 밖을 내다보았다. 그 양자가 몹시 처량해 보였다. S는 또 무언지 모르게 마음이 스르르 도는 것 같았다. 그의 아름다운 인정이 느껴지며 도리어 서러운 생각이 아니 날 수 없었다. 어머니를 일찍 잃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자라난 제 몸을 생각하고 지금 제 앞에 처량히 섰는 그를 보매 사람의 ‘삶’ 이란 모두 눈물에 젖은 듯하였다.
S가 곧 퇴원해가지고 동경으로 건너간 후에도 K는 영영 그를 잊지 못했다. 오늘까지 자기의 맘에 드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예술을 사랑하는 맘이 더욱 S를 잊지 못하게 하였다. 차라리 여성에 가까운 듯한 잔잔한 그 성격이며 시름이 많은 부드러운 표정이며 지나치게 공손한 얌전한 태도가 모두 예술가의 특징인 것 같아서 날이 갈수록 S가 가슴에 맺히었었다. 하며 제 주위에 있는 사람 제가 보아온 사람은 다 극히 평범하고 예사로운 상사람 같아 보였다. 어느 때――S가 동경 어느 미술전람회에서 2등에 입선된 때에 신문에 그의 작품과 같이 사진이 실린 것을 가위로 도려가지고는 늘 혼자서 내어 보곤 하였다. 더욱 그때의 화제가 「수심(愁心)」인 것이 퍽 맘에 들었었다. 그림에 대한 소양이 없으므로 똑바로 이해는 못하나 그 화제와 그림 가운데 근심스러운 여자의 얼굴과 그 몸 가진 것이 퍽 맘에 걸렸었다. 자기를 모델로 한 것이나 아닌가 하고 혼자 생각도 해보았다. 하며 더한층 S를 만나고 싶어 하였고 또 알 수 없는 기대와 바람이 늘 가슴에 오르내렸다.
하므로 지금 우연히 S를 길에서 만나매 오래 맺힌 섧도록 그윽한 회포가 문득 무의식하게 그를 부르지 아니치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부르는 사이에 아뽈싸 하는 생각이 나서 그 소리가 여물지 못했다.
S는 놀라는 맘과 미안한 생각이 나며 순서 없이 우선,
“많은 덕을 입고도 한 번 감사한 편지도 못 올리고 많이 용서해 주십시오.”
하였다.
“아니에요. 제가 도리어 여러 가지로 불민했습니다.”
하고 그는 수줍은 듯이 머리를 숙이고 뾰족한 구두코로 살근살근 모래알을 굴리고 있었다.
“그사이 몸은 건강하셨습니까? 퍽 많이 변하셨습니다.”
“몸은 별고 없었습니다.”
하며 얼마큼 수줍은 태도가 없어지며 반가운 웃음을 띠고
“언제 오셨어요? 얼마나 여기 계세요?”
“네, 온 지는 한 달 됩니다. 얼마 동안 있어볼까 합니다. 혹 놀러 오십시오. × × 여관입니다. ……지금 무얼 하십니까?”
S는 여학생인 듯한 그의 차림을 이제야 알아차리고 물어본 것이었다.
“거 게는 그 이듬해 봄에 나와버렸어요.”
하고 장히¹³ 어려운 듯이 머리를 들어 S를 보았다. 그러고는 곧 머리를 좀 모로 돌리고 얼마큼 머뭇거리다가
“나와서 곧 Y여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하고 딴 데를 멀리 바라보았다.
S를 만나기는 했으나 오래 그리고 생각하던 바보다는 퍽 싱거운 듯하였다. 만나기만 했으면 하는 이름할 수 없는 기대와 바람이 막상 만나고 보니 만나지 않은 때만도 못한 것 같았다. 하며 얼마큼 S가 믿어지지 않는 서어한 생각을 느꼈다.
그러는 사이 S는 그를 자세히 보았다. 그는 실로 전보다 퍽 많이 변하였다. 알아볼 수 없게 예뻐졌다. 전에는 복뒤 벗지 못한¹⁴ 복숭아같이 수수하고 북실북실해만 보이더니 지금은 아주 딴사람 같이 예뻐지고 말쑥해졌다. 때 가고 사람이 변하는 것이란 참 알 수가 없었다. 실지로도 많이 보았지만 나이 먹어서 예쁘게 변하는 사람이 간간이 있고 또 그런 사람들일수록 늙도라미¹⁵가 낡지 않았다. K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날은 별 이야기 없이 작별하였다. 하나 그 후로부터 S의 머리에는 늘 따 떠올랐다. 영원한 무엇을 동경하고 찾으려 하는 듯한 K의 양자가 잊을 수 없게 머리에 비쳐왔다.
K는 그 후 한 번 잠깐 다녀갔다. 그 후부터 더욱 그의 얼굴과 몸의 선과 빛이 화가인 S의 머리에 떠돌곤 하였다. 그러는 사이 그를 그려보려는 생각도 어느덧 굳어졌다. 머릿속으로 몇 번 그려보며 어떤 빛 어떤 광선을 집어넣어서 그의 모양을 똑바로 그려내고 그의 영성과 아름다운 힘 있는 동경을 잘 나타낼까 하며 밤잠도 잘 이루지 못한 때가 한두 번으로 헬 수 없다. K의 마음속에 서린 이상한 그림자가 눈에 서물거리는¹⁶ 듯하다. 그것을 완연히 그림에 표현시키기가 심히 어려운 듯했다. 하루저녁은 심혈을 다 부어서라도 그것을 여실히 그려만 내었으면 하는 절실한 충동에 못 이겨 담요 속에서 한참 골똘히 생각하다가는 이리로 픽 돌아눕고 또한 생각하다가는 저리로 슬쩍 돌아눕곤 하며 혼자 무척 안달을 쳤다. 무심히 이마를 찡기기도 하고 혹은 안타깝게 머리도 긁기도 하였다. 하다가 ‘에라’ 하며 벌떡 일어나서는 4B연필을 들고 아래 벽에다 되는대로 죽죽 K를 그려보았다. 한참 정신없이 그리는 판에 밖에서 누가 찾는 기척 이 나기에 화가 나는 듯이
“누구요?”
하고 목소리를 날카롭게 하였다. 하나 두 마디 만에는 곧 K가 온 것을 알아채고 부리나케 고무로 그림을 쓱쓱 지우고 일어나 문을 열어 안내해 들였다.
K와 S는 마주 앉았다. S는 곧 담배를 붙여 물었다. 하며 얼마 동안 벙글벙글 웃기만 하며 굼틀거리는 담배 연기를 향하여 커다란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아직까지 그림에 열중한 맘은 다 가라앉지를 않았다. 그사이 K는 흐릿하게 남은 벽의 그림을 보고는 아무 말 안 하고 얌전하게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것이 자기를 그려본 것임을 그도 얼른 알아채었다. 하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곳에 그가 S에게 대한 고마운 생각이 끓었다. 그때에 더욱 영 잊을 수 없게 가슴에 맺히는 것이 있었다. S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동경을 엿보아낼 수가 있었다. 담뱃재를 한 번 털고 기침을 한번 톺고 나서 연설자조로,
“그렇습니다. 실물과 꼭 같이 그리는 것만이 오늘날 그림의 이상이 아닙니다. 그것만이면 사진――천연색 사진이 제일 낫겠지요. 학을 그리니 날아갔느니 말을 그리니 살아나서 곡식을 먹느니 하는 것은 그림이 실물과 꼭 같다는 비유의 말이나 그것은 옛날 군소리요. 물론 형체를 여실히 그리기에도 힘 안 씀이 아니지만 그림의 목적과 이상은 단순히 거게만 끊이지 않습니다. 객체에서 받은 인상이며 그것을 향한 때의 자기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그리고 그 객체를 통하여 우주의 큰 표현의 한 곳을 분명히 암시하는 데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줄 알아요. 즉 옛날과 같이 객관적으로 물체만 똑똑히 그리라는 데서 훨씬 나아가 인상적이요 주관적이요 또는 상징적이라야 할 줄로 알아요. 더욱 지금 와서는 미래파 화가들은 이때까지 일찍 보지 못하던 ‘때’라는 것까지 그림에 나타내려고 합니다.”
알지 못할 손짓을 해가며 제 말에 스나로¹⁷ 취해가는 상이었다. 하나 K는 그저 웃을 뿐이요 말하는듯잔¹⁸을 재미있게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자기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였다. 해서 S는 곧 머리를 돌렸다.
“입 때 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셔요?”
“보기는 봅니다만.”
하며 K는 방긋 웃고 나서 좋은 기회나 만난 듯이 좀 급하게
“보긴 보아도 로서아 작가들 것은 의미를 알 수가 없어요. 퍽 좋다구들 하는데요…… 차라리 우리 문사들 작품이 자미나요. 알기 쉽고 또 일본 것보다도 퍽 열정이 많은 것 같애요.”
취여¹⁹가 끓는 K의 얼굴은 더 한층 예뻐지고 빛나졌다.
S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를 그려볼 생각이 앞서서 똑똑히 그를 보곤 하였다. 거무스름하고 큼직한 쌍꺼풀 눈이 더욱 여러 번 S의 시선을 끌었다. 눈 위 딱지의 새까만 터리²⁰가 앞으로 꼿꼿이 일어선 것이 어째 퍽 재미났었다. 아름다운 정을 소곤거리는 듯하였다. 그리고 그 부드러운 시선을 따라 그의 속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발사되는 것 같았다. 그는 그 눈에서 제일 많은 인상을
받았고 거기에 제가 나타내려는 것이 모인 것 같았다. 거기를 제일 힘써 그려야 하리라 하였다. 그것을 잘 그리고 못 그리는 데 그림의 살고 죽는 것이 달린 것 같았다.
“K씨를 꼭 그리고 싶은데…… 용서 하실지요?”
K는 우뚝한 태도로 별안간 이렇게 말하였다.
“저를요?…… 저까짓 건 무얼 하게요.”
그래도 K는 퍽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다니까요.”
S는 굳게 머리를 흔들었다. 어디까지든지 예술의 존엄을 옹호하는 거룩한 태도였다. 이리해서 S는 K를 그린 것이다. K도 한 달 이상이나 거의 매일과 같이 다니었다. 오늘로서 그림은 아주 완성된 것이다.
S와 K는 이때까지 멍하니 그림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S는 거기만 정신 빠진 사람 같았다. K는 점점 생각하는 것을 잊고 거기에만 시선을 박고 있었다. K와 S의 정신은 지금 그림을 통하여 빙빙 돌아가는 외에 다른 곳에는 조금도 새어나지 않았다. 도시 갈릴 수 없게 한데 합실리고²¹ 만 것이다. 최고의 절정에서 완전한 나라로 조화되어버린 것이다.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하나 모두 사라지고 아무것도 없는 듯한데 두 사람이 있었다. 오직 하나로 살아 있었다. Where there is nothiηg, there is god(아무것도 없는 곳에 신이 있다)란 것과 같이――두 사람은 아주 무아무상(無我無想)의 경계에 빠졌다. 두 사람의 손과 손이 서로 맞잡힌 것을 깨닫지 못했다. 언제까지든 언제까지든 그림만 바라볼 뿐이었다.
-끝-
2016년 7월7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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