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 해치는 도둑놈아, 날 알아보겠냐" 알고싶다, 오늘의 장비 [술술 읽는 삼국지③]
중앙일보
2023.01.23 06:00
허우범
유비 삼형제가 황건적에 대패하고 쫓기던 동탁을 구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동탁은 유비를 업신여겼습니다. 그러자 장비가 펄펄 날뛰었습니다. 삼국연의는 그동안 많은 작가가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장비의 말투를 제대로 표현한 작가는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인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저 새끼를 죽이지 아니하고 도리어 저자의 부하가 되어서 명령을 받을 작정이오? 그럼 두 분 형님은 편안히 이곳에 머물러 계시오. 나는 다른 데로 가겠소.”
참으로 장비다운 말투입니다. 이에 유비가 도원결의를 상기시키며 장비를 달랩니다. 그리고 세 형제는 주준을 찾아갑니다. 연의에서 삼형제의 성격은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유비가 어짐(仁)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면, 관우는 충성(忠)을 상징하고, 장비는 의로움(義)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대 유교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을 세 사람이 하나씩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유비가 군자상(君子像)을 대변한다면 관우는 장수상(將帥像)을, 장비는 평민상(平民像)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유비는 주준과 함께 장보가 이끄는 황건적을 소탕하는 데 앞장섭니다. 장각도 삼형제입니다. 장보가 둘째, 장량이 막내입니다. 이들 삼형제는 각기 천공장군(天公將軍), 지공장군(地公將軍), 인공장군(人公將軍)이라 칭하며 황건적을 지휘합니다. 장각은 『태평요술(太平要術)』을 터득하고 마음대로 요술을 부렸습니다. 천둥과 바람을 일으키고, 모래와 자갈도 날리며, 하늘에서 군마(軍馬)가 쏟아지게도 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비법을 동생들에게도 가르쳐주었습니다. 하지만 주준은 짐승들의 피로 요술을 물리치고 장보군을 무찌릅니다.
주준이 황건적의 잔당을 소탕하기 위하여 완성(宛城)을 공격할 때 손견이 등장합니다. 손견이 날렵하게 성으로 올라가 20여 명을 베자 황건적의 진영이 무너집니다. 조홍이 창을 들고 달려들자 손견은 성 위에서 번개처럼 몸을 날려 그의 창을 빼앗아 찔러 죽이고는 말을 빼앗아 타고 적진을 종횡무진 휘저으며 한껏 무용(武勇)을 자랑합니다. 이처럼 손견이 활약하는 장면을 읽다 보면 중국의 무협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대단한 공력(功力)을 가지고 공간을 가볍게 날아다니며 상대방을 무찌르는 장쾌한 모습의 이연걸. 손견의 모습에서 이러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성 위에서 독수리처럼 몸을 날려 조홍을 무찌르는 손견 [출처=예슝(葉雄) 화백]
유비는 황건적을 소탕한 공적으로 안희현(安喜縣)의 위(尉)에 임명되었습니다. 하지만 부임한 지 4개월이 못되어 십상시 일파가 보낸 독우(督郵)가 조사를 나옵니다. 그는 유비에게 금품을 요구하며 으름장을 놓습니다. 유비가 이에 응하지 않자 현리(縣吏)들을 잡아다가 유비의 죄행을 불라고 심문을 합니다. 그들도 유비의 선행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화가 난 독우는 이들을 더욱 매질합니다. 술 한 잔으로 화를 달래고 오던 장비가 이 광경을 목격합니다. 여기에서도 장비의 성격이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특유의 고리눈을 부릅뜨고 어금니를 으드득 갈고는 역관으로 달려가 독우를 한 손에 낚아채어 나무에 꽁꽁 묶고는 버드나무 가지 10여 개가 부러지도록 모질게 때립니다.
“백성을 해치는 도둑놈아, 나를 알아보겠느냐?”
독우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장비에게 머리채를 잡혀 혼쭐이 납니다. 유비가 달려와서 겨우 장비를 말렸습니다. 그런데 위 대화체만 보면 의리의 사나이 장비의 맛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월탄의 번역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놈, 죄 없는 사람을 때렸지, 너도 좀 맞아 보아라!”
장비는 때리고 또 때렸다. 부러진 버들가지는 10여 개나 즐비하게 땅에 떨어졌다.
“잘 때린다!” 소리가 사면팔방에서 일어났다.
“더 때려라!” 소리도 일어났다. 백성들은 탐관오리인 독우가 범 같은 장수 장비한테 매를 맞는 것을 보자, 얼음냉수를 한 대접씩 마시는 듯 오장육부가 상쾌하고 시원했다.
평민들의 씩씩한 대변자인 장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어떻습니까? 장비의 행동에 호응하는 백성들의 모습까지도 선하게 들어오지 않나요? 그야말로 속이 후련해지는 장면입니다. 지금은 관우를 더 좋아하지만 나관중이 연의를 만들 때는 장비가 더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것은 장비가 거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언제나 힘없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정의로움을 펼치는 모습에 백성들은 감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연의 속 장비의 행동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얻었던 것입니다.
유비는 독우를 호되게 꾸짖고 현위의 인수(印綬)를 목에 걸어주고는 고향으로 갑니다. 독우가 이 일을 알리자 유비 형제는 수배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대주(代州)의 유회에게 몸을 숨깁니다.
바야흐로 환관집단인 십상시(十常侍)의 횡포가 점점 극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황제의 눈을 멀게 하고 닥치는 대로 재물을 긁어모았습니다. 또한, 자신들을 거역하는 자가 있으면 가차 없이 처단했습니다. 그들에게 뇌물을 바치면 출세하였으며, 뇌물을 바치지 못하면 그 즉시 벼슬에서 쫓겨났습니다. 개인의 능력은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오직 재력이 곧 권력이었습니다. 이는 비단 십상시만의 짓거리는 아니었습니다. 황제인 영제(靈帝)도 벼슬을 팔았습니다. 조조의 부친인 조숭이1억 전을 내고 삼공(三公)의 하나인 태위(太尉)자리를 산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황제가 이 모양이니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환관들이야 오죽했겠습니까. 눈치가 백단인 그들이 더하면 더했지 못할 턱이 없습니다.
후한 시대의 관인 [출처=바이두 백과]
서기 189년. 환관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던 영제가 34살로 붕어하자, 하황후의 14살 된 아들 ‘유변’이 소제(少帝)로 등극합니다. 권력은 하황후의 오빠인 대장군 하진이 잡습니다. 사예교위인 원소가 나라를 망친 십상시를 주살하겠다고 나섭니다. 하진은 기뻐하며 그에게 수도와 궁궐을 지키는 어림군 5천명을 내주었습니다. 원소의 작전은 성공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십상시들도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금은보화를 들고 하황후를 찾아가서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태후는 은밀하게 오라비 하진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나나 오라버니나 비천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장양 등이 아니었다면 어찌 이런 부귀를 누리겠습니까? 이제 건석이 불인(不仁)하여 죽었으니 남의 말만 믿고 다른 환관들까지 죽여서야 되겠습니까?”
하진이 적당히 마무리 지으려 하자 원소가 일침을 놓습니다.
“풀을 베기만 하고 뿌리를 뽑지 않으면 뒷날 반드시 목숨을 잃는 화근이 될 것입니다.”
얼마 후, 하진은 원소의 건의를 받아들여 지방 군벌을 불러 십상시를 척결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을 들은 주부(注簿) 진림과 조조가 반대합니다. 그러나 백정 출신의 하진은 ‘겁쟁이의 생각’이라며 이들의 의견을 묵살합니다. 무식하고 고집쟁이인 자가 수장(首長)이 되면 지혜로운 참모인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참고 따르거나 때려치우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술술 읽는 삼국지](4) 멍청한 하진은 죽고 음흉한 동탁이 낙양을 차지하다
중앙일보
2023.01.25 14:13
서량자사(西涼刺史) 동탁이 하진의 밀조를 받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동탁은 황건적에게 연신 패했지만, 십상시에게 뇌물을 먹인 까닭에 자신의 본거지에서 벼슬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책사였던 동탁의 사위는 동탁이 야심을 이루는데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냅니다.
“천하가 어지럽고 반란과 반역이 끊이질 않는 것은 상시(常侍) 장양 등이 지켜야 할 사람의 도리를 업신여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이 듣자하니 ‘끓는 물을 식히려면 불부터 빼야 하고, 고름을 짜내는 것이 아프기는 하지만 종기가 속에서 곪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감히 징과 북을 울리며 낙양으로 들어가는 것은 장양 등을 쓸어내려고 하는 것이옵니다. 이는 사직은 물론 천하를 위해서도 다행한 일이옵니다.”
무능한 대장군 하진 [출처=예슝(葉雄) 화백]
동탁의 말을 듣고 기뻐한 자는 하진 뿐이었습니다. 시어사(侍御史) 정태와 중랑장(中郞將) 노식은 모두 동탁의 입경(入京)을 반대했습니다. 동탁은 승냥이와 이리 같은 자이므로 들어오게 하면 반드시 변란이 생긴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하진은 듣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같은 말만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의심이 많아서야 어디 큰일을 하겠느냐?” 정태와 노식 등 대신들은 벼슬을 버리고 한탄하며 낙향합니다.
결국, 하진은 눈칫밥과 감언으로 천하를 장악한 장양과 단규 등 십상시들의 선제공격에 어처구니없이 죽고 맙니다. 모종강도 무능한 하진의 죽음을 풍자하는 시 한 편을 넣었습니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수도의 치안을 담당했던 원소가 십상시와 그 가속을 처단합니다. 궁궐은 피로 물들고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이 와중에 소제와 진류왕이 최의의 집으로 피난하였습니다. 영제에게는 유변과 유협의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첫째인 변이 소제이고, 둘째인 협은 진류왕입니다. 장자상속에 따라 변이 황제가 되었지만, 진류왕 협이 훨씬 영리하고 사리 분별이 뛰어났습니다. 진류왕의 영특함은 기병을 이끌고 기세등등하게 도성으로 들어온 동탁을 조목조목 논리로 응대하여 무릎을 꿇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진류왕의 사리가 분별한 말에 무릎을 꿇은 동탁 [출처=예슝(葉雄) 화백]
동탁은 군마를 둔치고 형세를 관망하다가 난리가 나자 곧장 철갑기병을 이끌고 성안으로 들어와 권력을 장악합니다. 청소는 원소 등이 하고 자리는 동탁이 차지하였으니 걱정했던 일은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동탁은 권력을 잡자 안하무인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자기가 맘먹은 대로 처리하였습니다. 동탁은 진류왕 협이 영특함을 알고 그를 황제로 옹립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는 진류왕의 영특함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동탁은 자신과 같은 성씨인 동태후(董太后)를 좋아하였는데, 동태후가 진류왕을 키웠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동탁이 진류왕을 황제로 옹립하려고 하자 병주자사(幷州刺史) 정원이 호통을 치며 반대했습니다. 동탁이 즉시 그를 죽이려 했으나 그의 부장인 여포의 위세가 대단하여 참고 넘어갑니다. 병주자사 정원도 하진이 보낸 밀조를 받고 왔습니다. 그럼, 하진은 동탁과 정원에게만 밀조를 보냈을까요? 아닙니다.
리동혁 작가가 번역한 『본(本) 삼국지』는 모종강의 연의뿐만 아니라 나관중의 연의도 함께 번역해 놓았습니다. 나관중 연의에는 하진이 4명의 장수에게 밀조를 보내는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동군태수 교모, 하내태수 왕광, 병주자사 정원과 서량자사 동탁입니다. 그런데 낙양에 들어온 것은 동탁과 정원이고, 교모와 왕광은 하진이 주살된 것을 알고는 오다가 다시 돌아가 버렸습니다.
여포는 잘 아시다시피 천하제일의 비장(飛將)입니다. 연의 전반부를 장식하는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그의 무예가 얼마나 뛰어났는가는 ‘사람 중엔 여포’라는 말로 잘 알 수 있습니다. 동탁은 이러한 여포를 자신의 부하로 삼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여포와 고향이 같은 호분중랑장(虎賁中郞將) 이숙이 동탁에게서 적토마(赤免馬)와 보물을 가지고 여포를 회유합니다. 여포에게 정원은 상관이자 양부(養父)입니다. 여포는 주인을 제대로 만날 수 없어서 잠시 양부로 모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안 이숙이 적토마와 보물을 내놓으며 꼬드깁니다.
“좋은 새는 나뭇가지도 가려서 앉고, 훌륭한 신하는 주인을 가려서 섬긴다네.”
적토마가 어떤 말인가요.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명마입니다. ‘말 중엔 적토마’이지 않습니까? 요즘으로 치면 자동차인데, ‘롤스로이스’를 준 것입니다. 여포는 단번에 마음이 솔깃해집니다. 이제 동탁에게로 가는 길만 남았습니다. 엄청난 선물을 받았으니 답례품을 가지고 가야겠지요. 여포가 밤중에 책을 읽고 있는 양부에게 다가가 긴말 안 하고 그의 목을 벱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정원이 어질지 못하여 내가 죽였다. 기꺼이 나를 따르고 싶은 자는 여기에 남고 따르기 싫은 자는 각자 가고 싶은 데로 가라!”
동탁을 모시기 위해 상관이자 양아버지인 정원의 목을 베는 여포 [출처=예슁(葉雄) 화백]
군사의 반이 각기 살길을 찾아 떠났습니다. 동탁은 여포를 얻자 너무 기뻤습니다. 즉시 자신의 양자로 삼았습니다. 여포를 얻은 동탁은 더욱 기고만장해졌습니다. 이제 자신의 말에 토를 다는 놈들은 다 목을 베겠다고 서슬 푸른 으름장을 놓습니다. 그리고 진류왕을 황제로 옹립하는 수순을 밟습니다. 모두가 숨죽이고 있는 이때, 원소가 ‘그 짓이 곧 반역’이라고 반대합니다. 동탁이 칼을 뽑고 죽일 듯한 기세로 노려보자 원소도 칼을 뽑아 들고 일갈합니다.
“네 검이 날카롭다면 내 검은 무딘 줄 아느냐?”
이쯤을 읽노라면 연의가 점점 재미있어집니다. 이숙이 여포를 꼬드기는 말이나 여포가 정원을 죽이고 하는 말들이 참으로 가당치도 않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언행과는 정반대의 경지에 이른 자들이 마치 옳은 말과 행동인양 행세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정체를 알려주는 꼴입니다. 게다가 동탁은 ‘죽어 없어진’ 양부를 대신하여 여포의 양부를 자처했습니다. 동탁도 정원처럼 ‘죽어 없어질’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세 사람 모두 눈이 멀어도 한참 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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