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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찍은 사진이 필요해 뒤적이다보니 사진은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고 글만 남아있는 것들이 있네여...
그중 태국여행글이 있어 다시 읽어보니 새삼 그때가 기억납니다 ㅎㅎㅎ
전날 게스트하우스의 조바 녀석이 버스터미널까지 도보로 30분 정도 걸린다기에 날이 새는 즉시 배낭을 메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운동 삼아 걷기로 했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길거리에 개 몇 마리만 어슬렁거릴 뿐 오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20분 정도 걸어 얼굴에 땀이 날 무렵 썽태우 한대가 ‘빠스 스테이션’에 간다기에 탓습니다 2~300미터 정도 가니 다 왔다고 합니다. 딱 한사람 같이 타고 온 사람이 썽태우 기사한테 10밧을 주고는 3밧을 받기에 요금을 물어보니 7밧이다고 손가락 7개를 펴 보입니다.
그래서 나도 10밧을 줬는데 기사가 3밧을 주지 않습니다 3밧을 달라고 하니 싱글싱글 웃기만 합니다 다시 “깁미 쌈밧”했더니 같이 타고 왔던 사람에게 기사가 태국말로 뭐라 뭐라 하니깐 같이 타고 왔던 사람이 나에게 열손가락을 펴 보이면서 10밧 이라고 합니다.
3밧이면 한국 돈 100원 정도인데.... 오냐! 그래 너 가져라~~~
칸차나부리에서 쌍클라부리까지 로컬버스는 5-6시간 걸리고 미니버스는 3시간 정도 걸린다기에 요금을 조금 더 주더라도 미니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아직도 이른 시간이라 문도 열지 않은 미니버스 매표소 앞에 나보다 먼저 온 열명 정도의 사람들이 서성입니다. 땅바닥에 배낭을 내려놓고 담배한대를 피우는데 그중 한명이 나보고 뭐라고 합니다 나보다 서너 살 많이 보이는 땟물이 졸졸 흐르고 행색이 초라한(이때까지 나는 태국 온 지 며칠 안 돼서 몰랐는데 알고 보니 나도 똑 같았음) 영감이 뭐라고 하는데 태국 말인지 어느 나라 말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니 자신을 가르키면서 “자판 자판”합니다 그래서 “니홍진 데스까?”하니 “하이”하면서 무척이나 반가워 합니다 “아! 소 데스까 와따시와 간고꾸진 데스”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일본말을 몰라 대꾸를 안했는데 이 일본영감은 계속해서 일본말로 지꺼립니다.
“아이 돈 노 제페니스 아 유 스픽 일글리쉬?”하고 물으니 “뭐라 뭐라 호테루 어쩌고 저쩌고 베투나무. 마레시아. 싱가포루. 칸보디아. 라오스 우야고 저야고”하면서 서로 동문서답을 하는데 아마 혼자서 동남아 여행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일본영감 영어를 전혀 모르는지 일본말 외에는 모두가 손짓발짓 바디랭귀지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두 영감이 서로 통하지도 않는 말로 떠들어대니 주위의 태국 사람들이 재미있는 듯 처다 봅니다. 일본영감이 태국처자 얼굴을 가르키면서 예쁘다는 표현으로 엄지손가락을 보이는 등 손짓발짓과 여러가지 표정으로 한동안 무언극을 보여 주는데 매표소 직원이 출근해서 문을 열고 들어 갑니다 무언극을 하던 일본영감이 재빠르게 뒤 따라 가서 표를 사고는 뒷줄에 서 있는 나에게 자기 표를 보여 주면서 “자판 난바 왕”하면서 싱글벙글합니다.
나도 승차권을 사서 나오니 이 일본영감이 밖에서 이번에는 원맨쇼를 하고 있습니다 승차권에 요금이 쓰여진 부분을 사람들에게 보여 준 후 입을 앞으로 쑥 내밀고는 차삯이 비싸다는 듯 승차권을 든 손으로 하늘을 찌르는 흉내를 내더니 나에게 와서 승차권의 좌석번호 No.1를 보여 주면서 또 “자판 난바 왕”합니다. 그래서 내가 “코리아 넘버 원” 했더니 땅바닥에 쭈구려 앉아 손바닥으로 땅을 누르는 모양으로 “아메리카 아메리카”하는게 얼핏 코리아를 빗대 아메리카를 말하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입니다 두고보자 이 일본영감아.......
계속해서 일본영감의 원맨쇼가 이어 집니다 희한한 제스처와 표정으로 웃기도 하고 팔딱 팔딱 뛰기도 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웃게 하는데 어떻게 보니 어린애 같기도 하고 돌았는 사람 같기도 합니다.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운전기사가 승차권의 좌석번호를 확인하고 한명씩 지정좌석에 앉도록 안내를 하는데 맨 앞쪽 운전석 반대편 창가에 앉은 일본영감이 나에게 또 “자판 난바 왕”하면서 좋아 죽겠다는 표정입니다 그놈의 ‘자판 난바 왕’...... 내 좌석번호는 12번으로 맨 뒤쪽 창가이고 옆에는 속눈썹이 유별나게 긴 태국처자와 총각이... 그 옆 창가에는 빈 좌석입니다. 갑짜기 태국처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나와 자리를 바꾸자고 합니다 동시에 짙은 오렌지색 천을 몸에 칭칭 동여맨 나이든 중 한명이 양손에 무엇을 잔득 쥔채 차에 오르면서 큰소리로 “첸지 첸지”합니다 엉겁결에 태국처자와 자리를 바꾸자 차는 서서히 칸차나부리를 떠나 상클라부리로 출발합니다.
창가에 앉아 차창 밖 구경을 좀 할려 했는데 느닷없는 중의 출연으로 창가자리를 뺏겨 중에게 항의겸 이유를 물었습니다 “헤이 중 보소, 디스 이즈 마이 싯 엔 히얼 이즈 디스 걸스 싯, 소 와이 첸지?” 콩글리쉬라도 뜻이 통했는지 중이 유창한 영어로 말합니다 “OOOO 몽크 XXXX 던 싯 OOOO 니어 걸 엔 우먼 XXXX 어쩌고 저쩌고...” 중은 여자 근처에 앉으면 안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그런지 조금 피곤하기도 하고 좌석을 바꾼 바람에 창 밖 구경도 어려워 눈 감고 잠을 청했습니다 오늘 일어나서 물 한모금과 담배 몇 대 피운 것 외 여지것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슬슬 고파 오는데 좁은 미니버스 안에 인디카 특유의 밥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배가 고프니 냄새가 구수합니다 스치로폼 도시락에 든 고기덮밥을 태국 중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고기 맛을 음미하는지 천천히 먹고 있습니다 중이 고기 먹는건 처음 봅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밥을 다 먹고 무릎 위에 잔뜩 쌓여있는 요쿠르트. 쥬스. 과자. 양갱 같은 것을 피골이 상접한 비쩍 마른 중이 계속 먹습니다. (중이란 말이 어감이 안 좋아 몽크로 바꾸겠습니다)
칸차나부리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던 차가 갑자기 속도를 늦추자 몽크 무릎 위에 있던 음식들이 바닥에 우르르 쏟아집니다 도로 중앙분리대에서 경찰들이 스피드건을 쏘고 있습니다 이 차도 스피드건에 맞았는지 경찰 한명이 신호봉을 막 흔들어 차를 세운 후 운전기사를 보더니 씩 웃고는 가라고 합니다 아마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습니다 몽크는 계속해서 무엇을 먹고 있습니다.
두세 곳의 검문소에서 경찰들이 차안을 한번 휙 보고는 통과 시킵니다.
주유소에 잠시 들러 화장실에 볼일보고 담배 피우는데 일본영감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앞좌석 전망이 최고라고 손짓발짓으로 자랑하고는 또 “자판 난바 와앙”합니다 이 일본영감이 알고 있는 유일한 영어인 것 같습니다.
오도방정을 떨고 있는 일본영감에게 슬쩍 “케나이 에스크 유어 네임?”하니 반응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훳츄어 네임?”했더니 눈이 멀뚱멀뚱 합니다 다시 천천히 또박또박 “왓.이.즈.유.어.네.임?”하니 손으로 입을 가르키면서 영어를 모른다고 손을 흔듭니다 그래서 “나카무라? 기무라? 싸토? 후쿠다? 나카소네? 타나카? 싸이코?(웬 싸이코가 ㅎㅎㅎ)하고 생각나는 일본이름을 나열했더니 그때서야 ”네이무?“합니다 그래 네임 말이다 이 영감탱구야
일본영감 : “토요토미”
한국영감 : “토요토미 히데요시?”
일본영감이 검연쩍게 웃고는 내 이름은 뭔냐고 턱을 내 쪽으로 밉니다
한국영감 : “박”
일본영감 : ????
손바닥에 한문으로 朴을 쓰니
일본영감 : “아! 바구”
한국영감 : “바구라니... 박도 발음 못해? 다시 해봐 박, 박”
일본영감 : “바구”
한국영감 : “어이구 네이무. 바구가 뭐꼬”
이번에는 내가 신이 나서 일본영감 기 죽일려고 또 물어 봅니다
한국영감 : “웨어 리즈 유어 홈타운? 웨.얼.이.즈.유.어.홈.타.운?”
일본영감 : ???? (알 리가 없지ㅋㅋㅋ)
한국영감 : “토쿄? 오사카? 나고야? 히로시마? 후쿠오카? 등등” (이번에는 내가 아는 일본도시가 다 나옵니다)
일본영감 : “오사카”
한국영감 : “오사카? 그래 알았어~”
영어 한두마디 때문에 일본영감 기가 팍 죽었습니다
그사이 태국 몽크는 또 먹을 것을 사들고 차로 갑니다.
한참을 가던 버스는 큰 도로를 벗어나 이리저리 작은 길로 들어 갑니다 출발한지 한시간 반 정도니 세시간 거리의 쌍클라부리는 아직 더 가야할 것 같습니다.
‘쌍클라부리 이미그레이션’이란 간판이 보이는 어느 동네 사무실 앞에 차가 멈추고 운전사가 서류 몇 장을 가져가서 신고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더운 날씨에 멋진 가죽장하를 신은 경찰이 와서 차안을 한번 씩 훌터 봅니다.
우르르 내린 사람들은 모두 화장실로 향합니다 화장실을 다녀 온 뒤 일본영감을 찾으니 보이지 않습니다 부근을 두리번 두리번 살펴도 안보이던 일본영감이 비닐봉지에 든 음식을 먹으면서 맛이 좋다고 엄지손가락을 보인 후 내 팔을 끌고 길모퉁이 노점으로 데려 갑니다 도너츠와 바나나 튀김을 파는 아줌마가 두 손가락을 펴 보입니다
하나에 2밧이란 말인지 두 가지가 있다는 말인지....... “타오라이?” 하니 살짝 웃으면서 또 손가락 두개를 보이면서 도너츠와 바나나 튀김 양쪽을 가르킵니다 조그마한 도너츠와 손가락만한 바나나 튀김이 한 개에 각 2밧이면 비싼 편이고 한 봉지에 2밧은 너무 싸고... 헷갈립니다 서로 전달이 잘 안되자 옆에 있던 일본영감이 답답했던지 바닥에 20이라고 씁니다 두가지를 섞어 한봉지 20밧 같아 손으로 섞는 모양을 하면서 아줌마한테 “믹스 원 비닐빽 이십밧?”하니 맞다고 “이씹밧 이씹밧”합니다. 그렇다면 이 일본영감아 진작 이씹 또는 투엔티 아님 니주 했음 될 걸 그것도 모르나...
“동남아 일주하는 사람이 생존 영어 몇 마디도 모르고 어떻게 돌아 다녔노? 용감하다 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도 있더라만....” 핀잔을 들어도 한국말을 모르니 그냥 싱글벙글 웃기만 하는 일본영감 토요토미상 재미있는 사람인 것 만은 확실 합니다 그러고 보니 같은 영감끼리 엉터리 콩글리쉬 몇마디 안다고 내가 유세를 부린것 같습니다.
그사이 태국 몽크는 두 영감을 찾아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를 발견한 태국 몽크가 씩씩거리면서 큰소리로 “허리업 허리업”하면서 빨리 오라는 손짓을 연속으로 합니다. 반 이상의 사람들이 내려 차안이 헐빈 합니다 옆에 앉았던 처자와 총각도 내려 뒷좌석에는 나와 몽크 둘 뿐입니다 눈을 감고 껌을 씹고 있는 태국 몽크를 자세히 보니 웃음이 나옵니다 검게 거슬린 비쩍 마른 얼굴에 돼지 털 같은 꼬불꼬불한 수염이 코밑과 턱에는 서너개씩, 아랫입술 밑에는 다섯 개 정도가 볼품없이 있습니다 눈을 감고 있는 표정도 다른 몽크들처럼 인자하거나 근엄한 표정과는 거리가 먼 심술 맞은 개구쟁이 표정입니다 나이는 50대로 보입니다.
쌍클라부리에서 쩨디 쌈 옹에 가는 방법과 버스요금. 거리. 시간 등 몇 가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역시 유창한 영어로 설명을 해주는데 대충 나의 귀에 ‘쩨디 삼 옹까지 썽태우로 사십분 정도 거리로 요금은 40밧이고... 걱정하지마라’고 들어 옵니다 조금 뒤 “돈 워리, 유 해브 칸차나부리 버스티켓 엔 버스드라이버, 돈 워리”라고 말하고 태국 몽크는 어느 마을에서 내렸습니다 내 한테 칸차나부리 버스표가 있고 버스기사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니....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는데 오후에 쩨디 쌈 옹을 다녀 오면서 그 말의 뜻을 알았습니다.
‘쌍클라부리 52’라는 이정표가 보이는 왼쪽 밖으로 경치가 참 좋습니다 강인지 호수인지 모르겠지만 잔잔한 물위의 수상가옥들이 퍽이나 평화롭게 보입니다 여기서부터 쌍클라부리에 도착할 때 까지 이 평화로운 풍경은 계속 이어 집니다.
칸차나부리를 출발한지 3시간 만에 조용한 쌍클라부리에 도착 했습니다 차에서 내린 일본영감 토요토미상이 부리나케 어디론지 사라 집니다.
첫댓글 긋
행복한 설명절 보내세요!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재미있게 쓰시네요~ 잘 봤어요 즐건명절 되세요~
재밌습니다.
뒷 이야기가 궁금하군요. 무슨 흥미로운 일이 벌어질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