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23)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32)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33)
사도행전 2장 22절부터 32절까지는 계속되는 사도 베드로의 설교 가운데, 사도 베드로가 시편 16장 8~11절에 나오는 다윗의 예언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란 복음의 핵심을 선포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23)
'무법자들'(법없는 자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손을 빌려'라고 번역된 희랍어 '다이 케이로스'(dia cheiros)는 히브리어 '뻬야드' (beyad)에서 온 단어이다. '뻬야드'는 유다인들이 사용하는 관용구로서 '~의 방법을 사용하여' 혹은 '대리자를 사용하여'라는 뜻이다.
유다인들은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의 권력 즉 총독 빌라도의 권위에 의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사주했었다(로마2,14; 1코린9,21).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로마인들에게 보다는 유다인들에게 있다.
한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일이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에 의한 것이라는 측면과 무법자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내용은,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이라는 구속사업이 하느님 계획의 실현과 인간의 사악함이 그 도구로 사용된 사실을 동시에 드러내 준다.
이것은 인간의 자유 의지와 하느님의 필연적 계획이 결코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역설적 진리를 잘 보여 주고 있다.
하느님의 계획이 있었다고 하여 인간의 사악함이 죄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사악하다고 하여 하느님의 계획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32)
베드로가 본 설교에서 강조하려고 했던 것은 다윗의 예언이 아니라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다.
다윗이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했다는 사실이나 부활 그 자체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부활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시다.
예수님께서 바로 부활의 주님이시고, 예수님께서 복음 그 자체이시다.
과거에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의 의미에 대해서 못알아듣고 예수님을 부인까지 했던 베드로가 이런 놀라운 깨달음과 확신을 갖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 진리를 전파하게 된 것은 실로 성령의 강력한 역사이다.
이제 베드로는 자신만이 아니라 그들 모두가 주님의 성실한 증인(martyres; 순교라는 말이 여기서 나옴)임을 천명하고 있다.
여기서 '에스멘'(esmen)이라는 현재형 동사가 쓰인 것은 이 증인됨이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계속될 일임을 보여 준다.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33)
사도행전 2장 33절부터 35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을 부어 주셨음을 다윗의 예언을 인용하여 설명하는 부분이며, 사도행전 2장 33절은 부활 이후의 승천에 관한 표현이다.
시편 110장 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다. 이것은 본문이 승천의 방향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여겨지게 한다.
그러나 본문의 문맥에서는 '테 덱시아'(te dexia)가 도구, 수단의 여격이므로, 문법적으로 볼 때는 '오른손으로'번역하여 승천의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히브리 개념에서 오른손은 능력을 말한다.
즉 사도행전 2장 33절은 하느님께서 생명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당신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으로부터 부활시키시고 또한 하늘로 올리신 것을 상징적인 표현 방법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탈출5,6; 89,14).
한편 '들어 올려지신'이라는 표현은 지상에서 천국으로의 장소적 이동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만, 이것보다는 육신을 입으셨던 그리스도께서 부활과 승천을 통해 다시 영광스러워지셨다는 신분적 이동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좋다(필리2,9~11).
그리고 사도행전 2장 33절은 '약속된 성령'을 보내 주신 분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대해 명확하게 증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고(요한14,16.26; 사도1,5), 약속대로 하느님의 영이신(사도2,17-18) 성령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아서 보내셨다(사도2,1~4).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으신 것은 당신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고 성령을 받을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였다.
또한 성령을 받는다는 것이 추상적인 그 무엇이 아니고 바로 그들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구체적인 현상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음을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이라는 표현을 통하여 보여 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