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학교
김종삼
公告
오늘 강사진
음악 부문
모리스 라벨
미술 부문
폴 세잔느
시 부문
에즈라 파운드
모두
결강.
김관식, 쌍놈의 새끼들이라고 소리지름. 지참한 막걸리를 먹음.
교실내에 쌓인 두터운 먼지가 다정스러움.
김소월
김수영 휴학계
전봉래
김종삼 한 귀퉁이에 서서 조심스럽게 소주를 나눔.
브란덴브르그 협주곡 제5번을 기다리고 있음.
교사.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음.
김종삼(1921-1984) 시인은 그의 [시인학교]를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세워놓고, 그 강사진들을 명실공히 세계적인 인물들로 꾸며 놓았다. 음악 부문은 현대 프랑스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모리스 라벨(1875-1937)이고, 미술 부문은 프랑스의후기 인상파이자 입체파의 선구자인 폴 세잔느(1839-1906)이고, 시부문은 영미문학의 대표적인 이미지스트이자 반유태주의자인 에즈라 파운드(1885-1972)가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오늘의 강사진은 모두 결강했고, 김소월(1902-1934) 시인과 김수영(1921-1968) 시인은 이미 휴학계 으며, [시인학교] 교실에는 두터운 먼지가 너무나도 다정스럽게 쌓여 있다. 두주불사의 김관식(1934-1970) 시인은 이미 술에 취해 “쌍놈의 새끼들이라고 소리”를 질렀고, 소위 ‘3.8 따라지’, 즉, ‘월남 시인’인 전봉래(1923-1951)와 김종삼 시인은 [시인학교] 한 귀퉁이에서 조심스럽게 소주를 나눠 마시며, “브란덴브르그 협주곡 제5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일찍이 김종삼의 시세계를 [폐허 속의 시학]으로 설명한 바도 있고, 그의 ‘폐허 속의 시학’은 오히려, 거꾸로 ‘탐미주의의 극치’라고 역설한 바도 있다. 김종삼 시인의 [시인학교]도 ‘폐허 속의 시학’에 지나지 않으며, 너무나도 아름답고 탁월하게 완성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러나 그의 ‘시인학교’는 왜, 지난 194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중동의 화약고인 레바논 골짜기에 있는 것이며, 그것은 도대체 무슨 역사 철학적인 의미를 띠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레바논은 일찍이 ‘오스만튀르크’의 식민지배를 받았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아오다가 1943년, 드디어, 마침내 독립국가를 이룩한 약소국가라고 할 수가 있다. 인구는 600여만 명 정도이고, 인구의 70%는 이슬람교이고, 나머지 30%는 기독교이지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까닭에, 아직도, 여전히 내외우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국가라고 할 수가 있다.
레바논의 삼나무는 장중하고 아름다우며 레바논의 상징이지만, 그러나 이 삼나무가 뜻하는 기상은 지정학적인 특성상 너무나도 산산이 부서지고 깨어져 버렸던 것이다. 영원한 독립국가와 영원한 평화도 다 부서지고 깨어졌고, 이슬람교와 기독교와 유태교, 즉, 아랍인과 유태인 등의 상호신뢰와 선린 이웃관계도 다 부서지고 깨어졌다. 따라서 김종삼 시인의 [시인학교]는 가상으로만 존재하며, 그의 유태인을 미워하고 레바논의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이, 이처럼 그 어디에도 없는 최상의 [시인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다고 할 수가 있다.
레바논과 대한민국은 지정학적 조건이 아주 유사하고, 레바논의 비극은 대한민국의 비극과도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따라서 김종삼의 [시인학교]는 대한민국 금강산 골짜기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고, 이 [시인학교]에 세계적인 문화예술의 거장들이 출강한다면 더욱더 좋을 것이다.
“오늘 강사진// 음악 부문/ 모리스 라벨/ 미술 부문/ 폴 세잔느// 시 부문/ 에즈라 파운드/ 모두/ 결강”. “김소월/ 김수영”은 이미 “휴학게” 제출----.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이 꿈과 현실의 간극 속에서 두주불사의 술꾼이 되거나 ‘브란덴브르그 협주곡 제5번을 기다리’며 참고, 또,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산다는 것은 오직 참고, 또, 참고 견디는 것밖에 없으며, 이것이 시와 예술의 기원이 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는 인간의 영혼이며 두뇌이고, 시에 의하여 우리 인간들의 역사와 문화와 예술의 꽃이 피어난다.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브라만. 비쉬누, 시바, 소크라테스, 플라톤, 칸트, 헤겔, 니체, 마르크스, 호머, 셰익스피어, 괴테 등은 전인류의 스승이자 영원한 대서사시인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시인학교는 인간의 영혼과 두뇌를 맑게 하고, 영원한 인류의 양식인 ‘사상의 열매’를 맺게 한다. 시인학교는 레바논 골짜기에도 있고, 금강산 골짜기에도 있고, 당신의 마음 속의 골짜기에도 있다.
자유와 평화와 사랑을 꿈꾸게 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힘센 것은 언어이고, 이 언어의 창조주는 시인이다. 모든 학교는 [시인학교]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스승은 시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