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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영영이별 영이별 (端宗 妃 定順王后 65年의 ...)
청호 한기수 추천 0 조회 59 14.11.02 06:54 댓글 3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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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11.02 15:50

    첫댓글 그런 슬픈 과거와 애뜻한 사랑이 있었군요. 요즘 여자들 조금 만 제 맘 안들면 이혼을 밥먹듯이 하는 자들이 본받아야겠군요.

  • 작성자 14.11.02 23:37


    은서 조부님 다녀 가셧군요,
    권력이 란 !그렇게도 좋았던지 ...

  • 작성자 14.11.03 20:55


    단종[端宗]은 1441~1457년 [세종23~세조3]
    조선 제 6대 왕 1452~55년,재위 3년2개월 이름은 弘暐 문종의 아들이다.

    妃 는
    판동령부사 송현수의 딸인 定順王后이며

    어머니는 현덕왕후 권씨이다
    세종 30년에 왕세손에 책봉이 되었고

    1450년에 문종이 즉위하자
    세자에 책봉이 되었다.

    1452년 문종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 하였는데

    그 전에 문종은 자신이 병약하고
    세자가 나이 어린것을 항상 염려하며 황보인,김종서등 에게

    세자가 즉위하여
    왕이 되었을때 보필을 부탁하였다.

    ...

  • 작성자 14.11.04 21:05

    ...

    한편 집현전의 학자인
    성상문,박팽년,신숙주 등 에게도 좌우협찬을 부탁하는 유언을 내렸다.

    그런데 1453년에
    그를 보필하던 황보인 김종서등이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피살당하자

    수양대군은
    군국의 모든 권력을 장악 하였으며.

    단종은 단지
    이름뿐이 왕이 되고말았다.

    1455년 단종을 보필하던
    중신을 제거하는데 앞잡이 섯던 이들에게 강요되어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上王이 되었다.

    조선왕조 27왕 519년중
    상왕은 태조 ,정종,단종, 고종이지요.

    1456년에
    성상문,박팽년,이개,유응부.유성원등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 되어 모두 처형이 되고

    ...

  • 작성자 14.11.03 23:57

    @청호 한기수

    ...

    1457년 단종은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다.

    그런데
    수양대군의 동생이며 노산군의 숙부인 금성대군이

    다시 경상도의 순흥에서
    복위를 도모 하다가 발견되어 사사당하자

    노산군은
    다시 강등이 되어 庶人이 되었으며

    끈찔기게 자살을 강요당하다
    1457년 [세조3년] 12월24일에 영월에서 사사되고...

    단종 복위운동을 하다 죽음을 당한
    성상문 등의 6인은 사육신으로...

    지금의 노량진 수산시장옆 무덤에서
    경복궁의 권력 혈투와 흐르는 한강물을...

    또한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분개하여

    한평생을 죄인으로 自處한
    김시습 등 6인을 생육신이라...
    ...

  • 작성자 14.11.03 21:06

    @청호 한기수

    ...

    단종의 억울한 죽음과 降封은
    200여년후인 1681년 숙종7년에 伸寃 되었는데

    이 해에 그는 대군에 추봉이 되었으며 .
    1698년 [숙종 24년]에는 임금으로 복위되어

    廟號를 단종이라 하였다.
    능은 단종이 목숨을 끊은 유배지 영월의 莊陵으로

    사적 제 196호 이며 능의 양식은 왕명에 의하여
    간단하게 조성 하었는데 봉분 앞에 상석과 4각옥형 장명등이 있고

    능 주위에 곡원을 두루고
    양쪽에 망주석2기,문석2기,석수다수가 있으며

    아래에
    단종비,비각, 충신단,재실,등이있다.

    신기 하게도
    주위의 落落長松 들이

    사시사철
    단종에게 揖 을 하고 있어요.


    ...

  • 작성자 14.11.02 20:16

    @청호 한기수

    참고로
    단종은 조부인 세종의
    칭찬이 자자할 정도로

    어려서
    부터 명석 하였어요

    세손 시절에는
    성삼문 박팽년등 집현전 학자들의 지도도 받았고

    왕세자로 책봉이 된후에는
    이개와 유성원이 그의 교육을 맡았어요,

    그러나
    수양대군은 왕위 찬탈을 하니...

  • 작성자 14.11.02 23:46

    @청호 한기수

    강원도 영월에서는 해마다
    단종문화제 를 4월4일~6일까지 3일동안 이를 추모하기 위하여 열리며

    장릉과 동강 백사장에서
    그 제전이 27개 종목에 이르며

    낙화제,문학의 밤,
    헌무 등 을 이어오고 있담니다.

  • 작성자 14.11.03 21:50

    @청호 한기수

    ...

    단종 애사 와 관련
    영월역사는 한옥 기와지붕 이람니다.

    국내에서는
    전주 ,남원 ,경주 등 역사가 그러하지요.

    그 곳에는
    역앞에서 대각선 한시 방향에 낙화암 이 있어요

    그리 높지[30m정도]는 아니하지만
    절벽아래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그 세월의 애환을 머금고 있더군요.

    비롯
    짧은 유배지의 생활 이었으나

    마지막
    사사가 되고나니

    단종의 시녀들이 서로가
    흰 속치마를 둘러쓰고 낙화암에서 뛰어내려 삶을 함께마감 하였으니

    부여의
    낙화암과는 그 의미가...

    ...


    ...

  • 작성자 14.11.04 21:09

    @청호 한기수
    ...

    세조의 엄명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하리라...

    이러함에도 불구
    嚴興道 志士 시호 忠毅 영월의 戶長으로 있을 때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시신을 거두려하지 않는데도

    관까지 준비하여
    장례를 치르고는 자신의 몸을 숨겼다.

    현종때 송시열의 건의로
    그의 후손들이 등용의 문이 열리게 되고

    영조 때 忠義를 기리는
    旌門이 세워졌으며 공조 참판에 추증이 되었습니다.


  • 작성자 14.11.04 21:14


    定順王后는
    1440~1521 [세종 22~중종 16년 ]

    조선 단종의 비로서
    여산 송씨이고

    1454년 [단종2]에 왕비에
    책봉이 되었으나
    ,
    1455년 [세조1]세조의 纂逆으로
    단종이 왕위를 내놓고 상왕 얼마후 노상군으로 유배지는 영월이라

    그 역시
    夫人으로 강봉 되었으며 소생은 없다 .

    이후 그는
    성 안에 살지않고

    영월 의 님
    애뜻한 신혼 1년6개월의 정한을 그리며 단종능 을 바라보기가 소원 이어서

    몇칸 짜리 초옥을 지어 거처하며
    흰옷과 소찬으로 65년을 님을 그리위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내다 생을 마감하였다.

  • 작성자 14.11.02 23:48


    죽은후 177년 만인
    1698년[숙종24] 에 노산군이 단종으로 追復이 되자.

    송 부인도
    정순왕후로 추복이 되어

    그 신위는
    창경궁으로 옮겨졌다.

    ...

  • 작성자 14.11.03 23:59

    @청호 한기수
    ...

    능은 양주에 있는
    思陵으로 사적 제209호 이며

    왕후는 후사로서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 [정씨가문의] 묘역에 묻혀

    정씨가 에서
    위패도 모시게 되였다 .

    1521년 [중종16]82세를 일기로
    돌아가자 대군부인의 예로 장례케 하였고

    1698년 [숙종24]단종 복위와 더블어
    정순왕후로 追上하여 종묘에 祔享되었고

    묘를 높여 思陵이라 하였다
    석물 제도는 莊陵과 마찬가지로

    난간과 무석을 생략한
    厚陵石樣을 따른 것으로 숙종시대의 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 작성자 14.11.04 21:16


    왕위를
    찬탈한 왕숙 수양대군

    세종과 형인 문종이
    그렇게도 어명 하였건만

    단종제위1452~1455년 윤6월이라 [3년2개월]
    수양대군은 1453년 10월

    계유정난,으로
    고명대신들을 거의 참살시키고 영의정에 올라서

    바로 아래동생
    안평대군과 그의 아들 을 강화도로 유배 사사시키고

    정치적 실권이
    완전히 수양대군에 의해 장악된 가운데

    1454년 정월에
    단종은 송현수의 딸을 왕비로 맞이 하게되고

    이듬해 윤 6월에
    동생 금성대군 이하 여러종친,궁인및 신하들을

    모두 죄인으로
    몰아 유배를 시키자.

    위협을 감지한 단종은
    왕위를 내려놓고 상왕으로 물러나 수강궁으로 옮켜지고 등...

    ...

  • 작성자 14.11.03 21:58


    ...

    계유정난은
    수양과 그 주변 무리들이

    왕권을 탐한 나머지
    저지른 비윤리적인 역모라고 보는것이 올바른 평가 이지요.

    앞서 언급 하였듯
    조선왕조 27왕 519년[1392~1910]중

    태조 이성계는
    위하도 회군으로 장악 역성혁명을 통한 조선을 개국 하였으나.

    1392~1398 년 9월 제위 6년 이지요.
    그러나 제1차 왕자의 난 1398년 8월25일 [방원의 난]으로

    태조는
    아끼고 사랑하던 강씨소생 방석과 방번이 사사되자

    이에 격분
    그 다음달 9월 둘째아들 방과에게 왕위를 옥새 없이 넘켜주고

    상왕으로 물러나
    화가 풀리지 아니하여 함흥으로 돌아가니

    ...

  • 작성자 14.11.04 21:18


    ...

    이것이
    바로 함흥 차사라!

    그럭저럭
    무학대사가 설득 동행하여 태상왕 이성계를

    지금의
    지하철 1호선 회룡역 이라

    그곳 회룡사 쪽으로 가면
    전좌마을 노인정자 심터 가있다 .

    화가난 태조는
    도성으로 오기를 거부하니

    여기서
    태종은 태상왕을 맞이 하게된다.

    이때 운이좋게도 태종에게는
    명철한 신하가 있으니 하륜이라.

    태상왕을 배알시
    3가지 를 조언 한다 .

    첫째:아름두리 나무의 지주로 차일을 치고
    둘째:화해의 술은 직접 왕이 술잔에 체우데 신하를 통하여 태상왕에게 전하오며
    셋째:항상 시선을 주목하야 사태를 대비 하시옵서 라고.

    ...

  • 작성자 14.11.04 19:41


    ...

    그러한
    세가지 건의를 실행 하였지요.

    풍악을 울리며
    조정 대신들이 읍하여 태상왕을 맞이할 즈음

    말을타고 당도한 태조는
    분을 못 사기고 말에서 내리기도 전에

    화살을
    태종에게로 향하여 당기니

    아니나 다를까
    재빠를게 태종은 차일 아름두리 나무 기둥에 몸을 숨기는 순간

    화살이
    기둥에 맞아 버리니 태조는 허망한지라

    이제 말에서 내려
    태종으로 부터 화해의 술잔을 기다리던 태종은

    아니나 다를까
    태종은 揖하고 신하가 술잔을 태상왕에게 전하오니

    왼쪽 도포자락에 있던
    철퇴로 그만 태종을 향하여 후리치니

    일정 거리를 유지한지라
    또 실행이 되지를 아니하니 허탈하여

    ..

  • 작성자 14.11.04 21:22

    @청호 한기수 ...

    그러한 과정에서
    태조는 영리한 태종 이구나 하고

    안도의 마음으로 다가서
    그간의 미움을 내려 버리고서

    오른쪽 도포자락에 있던
    옥새를 왼손으로 꺼내어 태종에게 던지는 순간이 왕위의 계승 이었지요.

    거기서 태조는
    도성으로 오지아니 할려고하니

    지금의 덕정부근에 풍양궁을 짓고
    기거 하다가 1408년 태상왕으로 10년을 살다 74세에 승하 하였담니다.

    그래서
    태종은 백관을 대동하여 태상왕으로부터

    정사의 지침을 받으려 가서
    논하게 되니 議政附 란 지명의 유래이지요.
    ...

  • 작성자 14.11.04 21:24

    @청호 한기수
    ...

    정종은 1398년 9월~1400년 11월[재위 2년2개월]
    제2차 왕자의 난으로 방원이 세제로 책봉이 되고나니 두려움에

    정종은 1400년 11월
    방원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

    1419년 까지
    무려 19년을 상왕으로 살다가 63세에 승하를 하였으며.

    수양대군이
    단종을 왕위찬탈 과정에서 상왕으로 실행하였고

    고종이
    1863 12월~1907년7월 재위 43년7개월 하다가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되어
    아들 순종에게 1907년 7월 왕위를 넘겨주고

    1919년까지
    12년을 더 살다가 68세에 승하를 하였지요,

    ...

  • 작성자 14.11.06 14:26

    @청호 한기수
    ...

    이로서
    조선왕 27명 가운데

    회갑을 넘긴이는

    태조 74세
    정종 63세

    광해군 67세
    영조 83세

    고종 68세라

    신기하게도
    상왕이 3명 이니 마음의 온도를 1도 낫출줄 알았던거죠

    여기서
    광해군은 페위후
    강화도[1년7개월 만에 아내와사별,아들과 며느리는 자살]~태안~제주도 등에서

    18년 귀양생활 만에
    그 생을 마감 하였어요.

    특히 제주도에서는
    자신을 데리고 다니는 별장이

    상방을 차지하고
    본인은 아랫방에 거처하는 모욕을 당하는가 하면

    나인이
    영감 이라고 칭 하여 멸시하여도
    전혀 분개 를 하지아니는 성품이 었담니다.

    초연한
    삶이 장수의 비결인것 같습니다.

    ...

  • 작성자 14.11.04 19:44

    @청호 한기수
    ...

    참고로
    앞서 지하철 1호선 회룡역

    종전 대한펄프옆
    殿座마을 이라는 지명은

    태종이
    태상왕을 맞이한 곳 이며

    지금의 회룡사는
    비구니스님들의 기도 도량처 이지요.

    이곳은 이성계가
    위하도 회군후 무학대사와

    회룡사 토굴에서
    100일간 치성을 드린 명소입니다.

    이성계가 100일째
    되는날 꿈에 나뭇군이 혁가래 3개 를 지고

    산에서 내려오는
    꿈을 현몽한 지라...

    무학대사에게 얘기를 하엿더니
    무학은 다 이루어 졋나이다 그것이 바로 임금왕 字 이지요 한 일화가...

    그래서
    하산을 하였고

    근세에는 김구선생도
    그 토굴에서 조국광복을 위한 기도 를 드린 도량처 이람니다.


    ...

  • 작성자 14.11.08 09:45


    조선 정치사 를 볼 때
    이른바 성군내지 명군으로 일컬어지는

    왕들 역시
    자신의 정치세력 제거에는

    피나 눈물도 없이
    조금도 틈을 보이지 않았어요.

    대표적인 사람이
    태종과 세조 입니다.

    세조는
    왕위 를 찬탈하고

    단종을 죽였으며
    형수 현덕왕후의 무덤을 파 헤쳐 관을 없에 버리기도 하였으니

    게다가
    자신을 반대하는 모든 신하를

    죽이거나
    유배를 보냈으니

    그렇게도
    세종께서 좋은인제를 발굴 양성하였으나

    일순간 피살 ,유배 등 등 등 이라
    이러한 환경들로 아쉽게도 국운은 기울게 되는 단추가 되었지요.

    왕권에 도전이 두려워
    철저한 심복정치 를 실시 하였담니다.
    .

  • 작성자 14.11.04 21:38


    ...

    그리고
    세조의 경우 오랜 병마로 고생을 하며.

    기것 재위 13년 에
    등창/욕창,피부병[습진], 불면증 등 가혹한 질병병마로 시달린 고통스런 왕 이였다 .

    큰 아들
    의경세자는 20세에 요절하고

    둘째 아들
    예종은 19세에 즉위

    1년2개월 만에
    20세 나이로 이 또한 단명이라...

    증 손자가
    인륜과 민심을 배반한 광적인 폭정 연산군이니...

    동생 중종이 군으로 폐위시켜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 를 시키고

    교동은
    금년 9월 연육교가 개통이 된 섬이지요.

    얼마나 오지냐 하면
    고려시대부터 귀양을 보내던 장소 람니다.

    그 곳에서
    두 달만에 토담집 장작불 [찜질방]31세로 생을 마감하게 되고

    .

  • 작성자 14.11.04 21:43

    @청호 한기수 ...

    그 처참한
    광적인 성격의 소유자라

    자신의 마음을 초연히 다스리지 못 한
    연산군의 희미한 흔적의 潛身地 는

    으늘을 사는 우리에게
    그 무엇인가 를 남켜주고 있지요.

    그런데
    그 오지에서 죽은사체 를

    지금의
    방학동 습지의 초라한 무덤으로 ...

    연산군지묘 라!
    청호는 지날때마다 무상의 계를

    그리고
    증조부 세조를 ...

    ...

  • 작성자 14.11.06 15:19

    @청호 한기수 ...

    세조는

    一 婦 含 怨 五 月 飛 霜 라
    여자가 한을 품으면 5월 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그래서
    糟 糠 之 妻 라

    과연
    알앗을가 몰랏을까?

    자신의
    죄갑을 모르고 위선적으로

    승려들을
    궁내로 불러들여 효염을 볼려고 불공을 드리고 등 ...

    그러나
    치우친 마음은 아니올시다 이었지요.

    또한 궁궐을 이탈
    상원사 와 월정사 등 에서 치성을 드리다가

    초라한
    생을 마감한 비운을 지닌 병마의 왕 이다.

    ...

  • 작성자 14.11.06 15:21

    @청호 한기수
    ...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서

    행복한 인생을
    사는 비결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氣功家인 청호는
    평범한 일상이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는것을 터특하고 보니

    그리도
    마음이 편안 하더라

    아마 이순간이
    가장 아름다울 뿐이지요.

    인생은
    저마다 참으로 알수가 없어요.
    ...

  • 작성자 14.11.06 15:59

    @청호 한기수 ...

    왕위를 찬탈한 수양은
    아마 불면,병마등 편안한 나날들이 아니엇슴 을 ...

    그러나
    태조는 6년의 제위간 정무로 건강의 이상신호가 왔으나

    상왕으로 물러나
    마음에 안식으로 10년을 더 살다 74세로 승하하고.

    정종 또한
    2년 제위후 18년을더 살다 63세 까지라

    고종도 혼란긴에
    외놈들이 퇴위 하였으나 13년을 더 살고68세에 승하고

    영조는 이런저런 사연들로
    세자시절 독살의 모험에서 간신히 빠저 나오는 등

    초년의
    고행을 디딤돌로 삼아

    30세에 즉위
    탕평정국과 조선 사회의 변화를 시키는 등 등 ...

    기름진 음식은 피하고 비빕밥 등
    소식 으로 51,7년간 제위 83세에 승하 하엿다.

    .

  • 작성자 14.11.07 20:36

    @청호 한기수
    ...

    태종의 장남 양녕대군은
    세자에서 폐위된후 44년을 사냥과 풍류를 즐기며 천명을 누리다.67세에 영면하고

    그의 아우 효령대군은
    형 양녕이 세자에서 폐위된후

    한때 자신이
    세자 자리를 넘켜 받을 것이라고 생각 하였으나

    동생 충녕이
    세자에 책봉이 되자.

    머리를 깍고
    승려가 되어 불도에 전념 하였으며

    그는 도리어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다.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 ,성종 여섯왕을 거치며
    왕의 연고존친 으로 극진한 존경과 대우를 받으며(1396~1486) 91세 까지살았고

    묘는 지하철 2호선 방배역
    남부보훈지청 건너편 양지바른 청권사이며

    신도비는
    관악산 연주암 등 에있다.


    .

  • 작성자 14.11.07 20:38

    @청호 한기수
    ...

    예나 지금이나
    남을 해꾸지 하지하니 할려는 그 자애심이

    역천이 아닌 순천~순리가
    천행임 을 이를 정리하며 마음에 담아 보는 청호의 순간이 되었다.

  • 작성자 14.11.03 23:19


    정순왕후는
    그간 65년 간의 순리적이지 못한

    이승의
    한서린 사연들의 응어리를 죽음을 앞둔 82세에

    낭독콘서트로
    단종에게 때로는 나근나근히 친근감으로

    굴곡선 에서는
    폭풍처럼 흉금을 토해내는 강렬함 등

    문학.미술.공연이
    하나가 되는 장 이었습니다.

    順天과 逆天을 ...
    실록을 근거로 略記하여 보았습니다.

    부족한 부문은 충고 하시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완토록 하겠습니다

    청호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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