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인 삶의 본보기, 박 에스더>
1. 선정 대상과 선정이유
어릴 적의 나는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는데, 책을 읽어야 할 때면 예쁜 그림체로 표지가 그려져 있어 어린 나의 눈길을 쉽게 사로잡은 ‘제중원’이라는 책을 손에 들었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 중 제일 멋있어 보이던 한 인물이 있는데, 조선 최초 여성 의사인 ‘박 에스더’가 바로 나의 롤모델이다.
처음엔 그저 최초라는 단어가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커 가면서 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인물이 수업 시간에 한 번, 두 번 나올 때마다 박 에스더의 업적이 점점 더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박 에스더는 여성이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돕기 위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능력을 발휘하며,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삶을 살았는데, 나도 내가 잘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나의 능력이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사회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기 때문에 박 에스더가 나의 롤모델이 되었다.
2. 성공사례(어떻게 성공했는지)
박 에스더(본명: 김점동)는 1877년 조선 후기의 엄격한 유교 사상 시대에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기독교 선교사들과 접촉하며 자랐는데, 기독교 신앙이 그녀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94년, 미국인 선교사인 로제타 홀 박사를 만나 간호와 의학을 배웠고, 이후 여성 환자들에게 서양 의학의 필요성을 알리며 본격적인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박 에스더는 결혼 후 1900년에 남편 박여선과 함께 로제타 홀 박사와 다른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유학하러 가서 볼티모어 여자 의과대학에 입학했는데, 이는 남성 중심의 사회인 제약을 극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학 중 남편이 폐결핵으로 사망했지만, 1906년, 학업을 마치고 의사 면허증을 취득하여 조선으로 다시 돌아왔다. 조선 여성들은 병에 걸려도 남자 의사에게 함부로 몸을 보일 수 없었기 때문에 박 에스더는 여성들과 아이들을 위한 의료 활동에 헌신하며 살았다. 하지만 자신보다 이웃을 위해 사느라 정작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해 결핵에 걸렸고, 1910년 3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박 에스더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이었는데, 이에 따라 결핵을 퇴치하고자 우리나라 최초로 크리스마스실이 발행되었고, 판매 기금으로 결핵 전문 병원이 세워지며 박 에스더는 의료 발전에도 기여하였다고 한다.
3. 자신의 의견(느낌, 각오 등)
박 에스더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자신을 바치며 짧은 생애 동안 큰 업적을 남겼지만,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한 탓에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이 안타까웠다. 그녀의 삶을 보며 깨달은 점은,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를 지키며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돕는 것이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박 에스더처럼 모든 것을 바치는 헌신은 아닐지라도, 나의 능력이 닿는 한 오래도록 타인을 돕고,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느꼈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정리하자면, 먼저 내가 잘하는 분야를 아는 것이 길의 시작이므로 나에 대해 많이 탐색하고 도전하는 자세를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다음, 많은 잘하는 분야 중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잘 구분해 내고, 나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게 나아가는 길에 확신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이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할 것이다. 예를 들면, 화학공학과나 생물공학과를 졸업한 후 화장품 회사에 취직해 제약회사와 협업하며, 피부 알레르기나 화상 흉터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의 단점을 줄이고, 한계를 극복하는 화장품을 개발하여, 피부에 해가 되지 않으면서 상처를 자연스럽게 덮어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이렇게 나의 능력을 키워 타인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사회 발전에도 기여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