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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年 성경적 신앙 뿌리를 깊이 내리는 해(前) † 구약(舊約) ☆ (大先知書)
겔2:1-3:11절) 에스겔의 소명(召命)
Ⅲ.에스겔의 준비(하)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사명(使命)을 주시기 전(前)에 먼저 그의 마음을 준비(準備)시켜주셨습니다. 에스겔이 자신(自身)에게 주어진 사명(使命)을 끝까지 감당(堪當)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언어적(言語的)인 능력(能力)이나, 재정적(財政的)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담대한 마음과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헌신(獻身)하는 것이었습니다.
3:4-6절)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나라들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先知者)에게 언어(言語)가 다른 이방인(異邦人)들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민족(民族) 이스라엘 족속(族屬)에게 보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통(通)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보냄을 받을 때, 그 대상(對象)은 우리가 결정(決定)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결정(決定)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같은 민족(民族)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는 것이 이방인(異邦人)들에게 가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생각(生角)하기에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傳)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즉 그들의 언어(言語)를 배워야 하고, 그들의 문화(文化)를 배워야 하니까 훨씬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같은 민족(民族)이거나, 다른 민족(民族)이거나, 결국 그들을 믿게 하고, 은혜(恩惠) 를 받게 하는 것은 우리가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특히 이방인(異邦人)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宣布)되고, 기적(奇蹟)이 일어나면, 쉽게 믿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오랫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뺀질뺀질하게 길이들어서 길가와 같이 단단한 마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눅4:24절)...선지자(先知者)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은혜(恩惠)에 너무 길들여져 있어서 아주 교만(驕慢)하고, 냉소적(冷笑的)인 마음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신자(信者)들 중에 퍼져 있는 가장 무서운 병(病)이 바로 냉소주의(冷笑主義)입니다. 이런 냉소주의적(冷笑主義的)인 경향이 있는 분들이 처음부터 냉소적(冷笑的) 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즉 처음에는 교회에서도 열심히 봉사(奉事)하고, 또 모든 것을 믿음으로 다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자기(自己)를 알아주지 않거나, 혹 목사(牧師)님이나, 다른 먼저 믿는 성도들에게 실망(失望)을 하게 되거나, 또는 기도(祈禱)하고 어떤 일을 했는데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을 때, 그만 믿음이 식어져버려서 그 뒤에는 차갑고 비판적(批判的)인 신앙(信仰)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특히 이 세상(世上)에 많은 기적(奇蹟)들이 있지만, 기적(奇蹟)중에서 가장 어려운 기적(奇蹟)이 이런 냉소적(冷笑的)인 신앙(信仰)이 다시 은혜(恩惠)를 받아서 눈물을 흘리면서 감격(感激)하게 되고, 다시 뜨거운 신앙(信仰)을 되찾는 이것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평소(平素)보다 칠 배나 더 강(强)한 말씀과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通)해서 하려고 하시는 것은 바로 이 포로(捕虜)되어온 자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얼음을 녹여서 바벨론에서 부흥(復興)의 불길이 타오르게 하는 이것입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사백년 동안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부흥(復興)의 불길을 붙이는데, 먼저 모세 자신(自身)이 40년 동안 방황(彷徨)하다가 떨기나무에서 은혜(恩惠)를 체험(體驗)했습니다. 특히 뱀이 지팡이가 되는 기적(奇蹟)과 손에 나병(癩病)이 걸려 치료(治療)되는 체험(體驗)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놀라운 능력(能力)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는 좀처럼 부흥(復興)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열 가지의 기적(奇蹟)이 애굽에 퍼부어 지고,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奇蹟)이 일어나고, 시내 산(山)에서 불 가운데 율법(律法)의 말씀을 받았을 때, 비로소 부흥(復興)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산(山)에서 조금 오래 있으니까 다시 금(金)송아지를 섬기는 우상숭배(偶像崇拜)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무려 40년 동안 광야를 뺑뺑이를 돈 후에 다시 믿음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征服)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유다 백성들이 포로 된지 오년 만에 다시 부흥(復興)의 불길을 일으키시려고 하십니다.
그럼 에스겔에게 필요한 자세가 무엇일까?
3:7-11절)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보라 내가 그들의 얼굴을 마주보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마주보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네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라. 하시니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에스겔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담대(膽大)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면 그 사람들을 두려워하면, 그 사람들은 영원히 어두운 죄가운데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의사(醫師)가 환자(患者)나 피를 두려워하면 안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은 죄인(罪人)이나, 나쁜 사람들을 무서워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 이마로 금강석(金剛石)같이 만들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때리고, 돌(石)로 쳐도 깨어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영혼(靈魂)을 사랑하면, 그 영혼(靈魂)들이 무섭지 않습니다. 무서운 것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무서운 것입니다. 즉 아무리 청소년(靑少年)들이 키가 크고, 우락부락해도 잘 아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내 동생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우리가 사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를 두려워합니다. 왜냐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지독(至毒)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은 우리를 이해(利害)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利害)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알지만, 그들은 우리를 모릅니다.
에스겔이 깨달아야 할 것은 자기(自己) 열정(熱情)과 자기(自己) 재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얼마가지 않아서 탈진(脫盡)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能力)을 믿고, 순종(順從)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알아서 모든 것을 해결(解決)해주시고, 인도(引導)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만 붙잡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오히려 섬겨주'십니다. 단지 처음에 모든 것이 늦은 것 같아서 걱정이 되는데, 나중에 보면, 그렇게 늦지도 않게 모든 것을 다 해주시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단지 매일(每日)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만 먹고 있습니다. 두루마리의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의 창자를 채우는 일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패역(悖逆)의 목소리들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全體)를 패역(悖逆)의 악(惡)한 영(靈)들이 다 채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성전(聖殿)에서 시작된 성령의 바람이 모든 악(惡)한 영(靈)들을 몰아내고, 다시 한 번 큰 부흥(復興)의 불길을 일으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찬송가 500장 *물 위에 생명줄 던지어라*
새벽(夏)4-5시 ✫ 주님께 도움의 기도하는 습관. ✫ 저녁엔 주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살전517)
겸손한 자의 진실과 정직한 아멘, 축복⟺교만한 자의 숨김과 불통은 (假裝)된 좀비.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