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대만이 1949년 분단 이후 66년 만에 전격적으로 정상회담을 개최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이 오는 7일 싱가포르에서 회동한다"고 4일 전했다.
중국 정부의 대만정책을 담당하는 대만사무판공실도 이날 성명에서 회담 개최 사실을 확인하고 "두 정상이 양안관계의 평화 발전에 관한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에서 '양안 지도자 신분으로 이뤄지는 회면(回面·회동 또는 만남을 의미)'이라고 규정한 것은 이번 회담의 성격을 사실상 정상회담이라고 인정했다는 의미다.
양안 간에는 지난 5월 주리룬 국민당 주석과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회담을 비롯해 세 차례 회담이 열렸지만, 모두 대만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지도자 간 국공회담 형식이었다. 대만 총통과 중국 국가주석이 만나는 정상회담은 분단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은 그동안 양안관계 제1 원칙으로 '하나의 중국'을 내세워 대만 총통을 정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시진핑 정부가 이런 관례를 깨고 마잉주 총통을 정상으로 인정하고 회동하기로 한 것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대만 총통선거 결과에 따라 양안관계가 급변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내년 1월 16일로 예정된 대만 총통선거를 앞두고 현지에선 야당인 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의 승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국민당은 지난달 민진당 후보에 일방적으로 밀리던 훙슈주 후보에 대한 대선후보 지명을 철회하고 주리룬 주석을 새로운 대선후보로 추대했다.
하지만 여전히 차이잉원 대세론을 뒤집기엔 역부족인 상태다. 전통적으로 민진당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해 주체적인 국가 운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2000년대 중반에는 민진당 정권인 천수이볜 정부에서 공식 독립선언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추진해 중국과 큰 마찰을 빚은 바 있다.
당선이 유력한 차이잉원은 천수이볜만큼 강경파는 아니지만 '92컨센서스(92공식·九二共識)'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92컨센서스란 1992년 양안이 반관반민 성격의 중국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와 대만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를 통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그 의미는 중국과 대만이 각자 해석하도록 한 합의를 말한다. 국민당은 이에 동의하지만 독립 성향의 민진당은 모호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를 완전히 부정하면 중국과 친중파의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역대 중국 지도부는 민진당보다 국민당에 훨씬 우호적이었다. 국민당 소속 마잉주 총통이 집권한 지난 8년간 중국인 관광객의 대만 개별여행을 허용하고 대만 기업들의 중국 투자를 적극 유치하는 등 밀월관계가 형성됐다. 하지만 마잉주 정부의 경제정책이 대기업 덩치만 키우는 양극화를 초래해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양안 수뇌가 함께 고민에 빠졌다. 대만 국민당은 8년 만에 정권을 내주고, 중국은 천수이볜 집권기 때 경험했던 껄끄러운 양안 관계를 되풀이할 위기에 처한 것. 이 같은 위기의식이 사상 첫 양안 정상회담 개최 결정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중국과 대만 언론들은 중국·대만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하고 대만 국민당 정부 인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선물'을 한 보따리 안겨줄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대만 참여를 허용하는 한편 대만 청년들의 중국 내 취업·창업 지원대책도 내놓을 수 있다는 분위기다.
7일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개최되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싱가포르는 1993년 4월 양안 정부를 대신한 왕다오한 해협회 회장과 구전푸 해기회 이사장이 회동했던 곳이다. 중국 정부와 대만 국민당 정권이 92컨센서스를 다시 강조하기 위해 싱가포르를 택했다는 해석이다. 한편 중국 정부는 이번 회담을 사실상 정상회담으로 인정하면서도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일반적인 국가 간 정상회담 형식을 따르지는 않을 계획이다. 회담 후 공동성명도 발표하지 않고, 두 지도자 간 호칭도 '선생'으로 하기로 했다.
[베이징 = 박만원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