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존 스타인백(John Steinbeck, 1902~ 1968)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 준
<분노의 포도 Grapes of Wrath, 1939>는 한마디로 말해 핍박 받고 소외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미국이 대공황 직후 오클라호마 주에 심각한 가뭄이 닥쳐와 지주와 은행의 빚 독촉에 견디다 못한 농민들은 풍요의 땅 캘리포니아로 이주한다. 감옥에서 맏아들 탐이 가석방되어 나오자 조드 일가도 고향을 떠나기로 하고 유랑목사 짐 케이시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고난의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여전히 배고픔과 질병, 그악스러울 정도의 혹독한 노동 착취뿐이었다. 조드가(Jude Family)는 실업자 캠프에 수용되는데 이곳에서 난민과 보안관들과의 싸움이 벌어지고 케이시는 그 책임을 지고 체포된다. 탐이 케이시를 다시 만났을 때 케이시는 바로 그의 눈앞에서 자경단원의 몽둥이에 맞아 죽는다. 탐은 케이시를 죽인 자경단원을 살해하고 쫓기는 몸이 된다. 탐의 어린 동생들은 이웃 아이들과 싸우다가 자랑삼아 동굴 속에 숨어 있는 오빠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머니는 탐을 찾아와 다시 도망갈 것을 권유한다.
도주의 길에 오르기 전, 탐은 어머니의 앞에서 케이시의 뜻을 이어받아 굶주리고 핍박 받는 사람들 편에서 투쟁할 것을 약속한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배운 그는 이제는 더욱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더욱더 큰 세상을 향해 떠나가면서 말한다.
"엄마, 케이시 목사님이 말하곤 했어요.
우리 각자의 영혼은 그저 하나의 작은 조각에 불과해서, 다른 사람들의 영혼과 합쳐져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구요. ...불쌍한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집에서 자기가 지은 농사로 먹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을 위해 떠나겠어요."
그러나 뒤에 남은 조드가와 다른 난민들은 이제 돈도 일자리도 먹을 것도 없는 최악의 상황에 처한다. 절망에 빠진 가장 '파조드'는 말한다.
"이젠 끝장이야. 죽음을 기다릴 수 밖에는."
그러나 가족의 단결과 생존을 지켜 나가기 위해 부드럽고 강한 무한한 힘을 발휘하는 어머니 '마 조드'는 남편에게 희망을 준다.
"아니요, 우리는 죽지 않아요. 배가 고파도, 몸이 아파도, 죽어가는 사람이 있어도, 그래도 살아남는 사람들은 더 강해져요.
오늘 하루만, 하루만 더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요."
겨울이 다가오고,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던 비는 곧 홍수로 변해서 난민들이 살던 텐트나 낡은 자동차들을 덮친다. 굶주린 난민들은 썩은 채소로 끼니를 때우고 아직 물에 잠기지 않은 헛간을 찾아 헤맨다. 만삭인 조드가의 딸 로즈어브셰론의 진통이 시작되고 아버지와 이웃들은 그녀의 안전한 출산을 위해 힘겹게 둑을 쌓지만, 나무가 쓰러지면서 둑은 무너지고 모든 것이 진흙탕 속에 잠긴다.
로즈어브셰런은 결국 사산을 하고, 며칠 후 조드 일가는 어럽사리 건초가 있는 헛간을 찾는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굶어 죽어 가는 남자가 있었다. 어린 아들은 빵을 훔쳐서 아버지에게 주었지만 국물이나 우유 외에는 남길 수가 없다고 했다.
잠깐 어머니와 딸의 눈이 마주한다.
어머니의 눈빛을 알아차린 로즈어브셰린은 낯선 남자에게 다가가 불은 젖을 물린다.
그래서 결국 소설은 절망 속에서도 죽지 않고 따뜻한 인간애와 생명력으로 살아남는 인간의 기본적 힘을 전하며 끝난다.
"저것들 죽은 걸 보니 차라리 제가 죽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고 깡그리 잃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젯밤 9시 뉴스에서 폐사한 돼지들을 바라보며 억장이 무너지는 한 농부가 말했다.
싹쓸이해가듯 모조리 휩쓸어간 무서운 홍수 끝에 이제는 더 이상 견뎌낼 여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수재민 수용소 마룻바닥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베고 곤히 잠든 할아버지 옆에서 어떤 아낙은 말했다.
"1년 지은 농사 다 잃고 아직도 집이 물에 잠겨 있어요. 장말이지 쌀 한 톨 남은 게 없어요. 어떻게 살지요?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야 할 텐데."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야 할 텐데." 마 조드가 말하듯이 '살아남은 사람은 더욱 강해지는' 그 의지가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난다.
합치지 않는 한 우리 각자의 영혼은 작은 조각에 불과하고 두 사람이 누우면 온기를 나눌 수 있다던 탐, 더 좋고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떠난 탐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무래도 우리가 대신 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