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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욥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여겼다.
욥은 자신이 스스로 의롭다고 여겼다. 이 말씀을 보고 우린 쉽게 욥을 교만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린 이런 상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 친구들이 고난당하는 욥을 보며 분명 범죄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는 거라고 정죄했을 때 욥은 그렇지 않다고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다고 즉 의롭다고 말했다. 이러한 큰 재앙을 받기에 합당한 그런 죄를 짓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변호한 것이다. 이것이 큰 문제가 되는가? 크게 잘못된 말인가? 이렇게 말하는 욥에게 친구 엘리후가 크게 화를 낸 것이다. 이유는 욥이 스스로 하나님보다 자기가 더 의롭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러한가? 자신이 받는 고통이 자기가 불의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보다 자신이 의롭다고 말하는 것일까? 물론 죄가 없이 의를 위해 당하는 핍박도 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욥이 마치 죄인들이 겪는 환란과 재앙을 받는 것같아서 일어난 일이다. 그럼 왜 욥의 말이 '자신은 하나님보다 더 의롭다'라고 하는 신성모독과 같은 죄인지 살펴보자.
친구들이 욥을 정죄하며 재앙의 이유를 말했을 때 욥은 일일이 자신은 결코 그런 죄를 짓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이 범죄하지 않았음에도 고통을 주시는 거라고 한탄했다. 그러나 친구들은 더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 엘리후가 화를 낸 것이다. 이 말은 곧 의로운 자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다는 말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하나님보다 자신이 의롭다는 간접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는데 나는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켰는데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온갖 환란과 슬픔과 고난뿐이다'라는 말은 자신을 의롭게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엘리후가 지적하며 화를 낸 것이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하나님보다 의로운 사람은 없다(욥32:1-3).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이 말을 그치니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또 세 친구에게 화를 냄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함이라 (욥32:1-3)
2 교만을 막으시는 하나님
엘리후는 욥이 하는 말을 분명하게 듣고 책망한다. 욥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범죄하지 않았고 순전하며 악하지도 않은데 여호와께서 나를 원수로 여기시고 불의함을 찾아내시고 내 발의 자유를 빼앗고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이에 대해 엘리후는 이 말이 의롭지 않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보다 위대하시다. 그리고 교만한 자를 다루시는 방법은 당신의 뜻을 숨기심으로 그의 길을 찾지 못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즉 욥이 자신은 의로운데 하나님께서 원수가 되셔서 억울하게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불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감추셔서 욥이 그 길을 잃어버린 거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은 욥이 교만하기 때문이고 지금 교만하게 말했음을 보여준다(욥33:8-12,17).
그대는 실로 내가 듣는 데서 말하였고 나는 그대의 말소리를 들었느니라 이르기를 나는 깨끗하여 악인이 아니며 순전하고 불의도 없거늘 참으로 하나님이 나에게서 잘못을 찾으시며 나를 자기의 원수로 여기사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하였느니라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그대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욥 33:8-12,17)
3 하나님을 비방하기를 물 마시듯 한다
욥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의롭지만 여호와께서 나를 정당하게 판단하지 않으셨다. 내가 의로우면서도 의롭지 않다고 말해야 하는가? 나의 상처는 불의함이 없음에도 치유되지 않는다" 이 말을 들은 엘리후는 욥과 같이 하나님을 조롱하고 멸시하기를 물마시듯 하는 자가 있으랴! 욥은 악인들과 함께하고 불의한 자와 한패라고 책망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공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정결하게 살아도 이렇게 고난과 환란을 당하니 아무 유익이 없다 말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엘리후는 욥이 끝까지 시험을 당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욥의 말은 악인의 말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약 율법을 지켜도 잘살지 못하고 오히려 안지키는 사람이 더 잘산다고 부러워한다면 우린 악한 자와 동류이고 엘리후의 말처럼 끝까지 시험을 당해야 마땅하다고 하는 것이다(욥34:5-9,36).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노라 하니 어떤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비방하기를 물마시듯 하며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어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욥34:5-9,36)
4 범죄한들 의로운들 인간일 뿐이다
범죄하지 않고 의롭게 살고 정결하게 살아도 원수같이 여기시고 이렇게 고쳐지지 않는 질병과 환란으로 고생한다면 도대체 범죄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며 의롭게 사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냐고 묻는 욥에게 엘리후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죄를 지은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으며 악행이 가득한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당신이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당신의 손에서 주께서 무엇을 받으시겠는가? 욥이 악할 지라도 사람을 상하게 할 뿐이며 욥이 의로워도 사람을 유익하게 할 뿐이다." 이 말은 우리는 하나님을 유익하게 하거나 해롭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존재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계명을 지킨들 사람을 유익하게 할 뿐이고 계명을 범한들 사람을 해하게 될 뿐 하나님께는 어떤 의미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좀 의롭게 행동했다고 해서 하나님께 결코 높은 마음을 품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의롭다해서 그분의 의로움에 견줄 수 있겠는가? 그분이 받으실 만한 의로움을 우리가 드릴 수 있겠는가? 의로움이든 불의든 우린 그저 인간일 뿐이고 그분은 지극히 높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니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높은 마음을 품어서는 안된다. 이 세상 어디에도 복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은 없다. 그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의지할 뿐이다(욥35:3,6-8).
그대는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범죄하지 않는 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묻지마는 그대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그대의 악행이 가득한들 하나님께 무슨 상관이 있겠으며 그대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그대의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그대의 악은 그대와 같은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요 그대의 공의는 어떤 인생에게도 있느니라 (욥35:3,6-8)
5 순종하지 않으면 지식이 없이 죽는다.
엘리후는 여호와께서 지식안에서 온전한 분이라고 말한다. 온전한 지식인 하나님께서 우리과 함께 계시므로 만약 그의 말씀에 복종하여 섬기면 인생 가운데 번영의 축복을 받고 기쁨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분의 말씀(지식)에 불순종하면 지식이 없이 망할 것이다. 하나님의 지식에 순종하는 것은 그 말씀을 준행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되고 온전한 지식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식에 불순종하면 지식을 살아내지 않는 것이므로 동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우린 단순하게 순종하면 축복, 불순종하면 저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순종은 임마누엘이며 불순종은 죄로써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순종하면서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생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오해로 나온 교리이다. 또한 순종하는 척하며 불순종하는 가식적인 자들과 경건치 않은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쌓여 그들이 속박당하고 고난당해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젊어서 죽어 부정한 자들과 영원히 함께 있게 될거라 말하고 있다. 즉 순종하면 형통하고 불순종하면 영원히 망한다는 지식은 온전한 진리이다. 그리고 불순종하여 진노가 쌓인 자들에게 임하는 가장 두려운 일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멸망하게 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환란이나 고난이 올 수 있다. 환한과 고난이 오기 때문에 재앙이 아니라 그럼에도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것이 재잉인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구하고 고난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면 그것은 진노가 아니라 사랑으로 교훈하시는 징계인 것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이 땅에서도 고통을 받았지만 결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만 하다가 죽어 부정한 자들과 영원히 망하는 것이다. 우리가 악하여 고난을 당할 수 있으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되고 그분을 구한다면 언젠가는 다시 형통으로 갚으실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그러므로 지금 고난을 당한다면 하나님의 공의를 믿고 불평하는 입을 닫고 하나님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욥36:4,11-14).
진실로 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가 그대와 함께 있느니라...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섬기면 형통한 날을 보내며 즐거운 해를 지낼 것이요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그들의 몸은 젊어서 죽으며 그들의 생명은 남창과 함께 있도다 (욥36:4,11-14)
6 구원을 위해 환란을 선택하라
여호와께서는 환란과 고통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분이다. 우리는 구원을 무조건 천국에 가는 개념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구원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억압이나 고통으로 부터 건지시는 구원을 포함한다. 여호와께서는 곤고한 욥을 환란에서 이끌어내시고 기름진 것으로 먹이실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욥은 악인이 받는 심판으로 벌을 받는다고 해서 여호와께 분노하고 그분의 징계를 대적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인생이 사라지는 밤인 죽음을 사모하는 것은 악으로 치우치는 것이다. 우리가 여호와께 징계를 당할 때 받아들임으로 환란을 선택하고 인내하는 것이 대속함을 얻는 길이다. 즉 우리의 숨은 죄까지도 용서받는 방법이다. 쉽게 환란에서 벗어나려 해서는 안된다. 온전히 죄에 대해 갚음이 되도록 우린 인내하고 죄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죄의 결과를 감내하지 않고 뇌물을 쓰는 것과 같이 쉽게 벗어나려 하는 것은 크게 그릇된 것으로 큰 죄이다. 분명한 것은 죄의 갚음이 되면 여호와께서는 반드시 환란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환란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환란을 통과함으로 불의에서 구원함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7년 대 환란을 피하고 싶어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휴거를 사모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환란을 통과해야 함을 말씀하신다. 그것이 거룩한 백성이 되는 방법인 것이다. 이해가 되는가? 그것도 목베임을 당할 때까지 불법과 싸울 때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 영광이 된다. 그래서 "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되다"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구원은 환란을 피하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구원은 환란을 통과하고 징계를 받고 의롭게 되는 것이다. 누가 하나님처럼 우리를 가르치시고 경건을 훈련하실 수 있겠는까? 하나님의 지혜는 끝이 없으시다(욥36:15-21).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그대에게 가득하였고 심판과 정의가 그대를 잡았나니 너는 분격함을 인하여 징책을 대적하지 말라 대속함을 얻을 일이 큰 즉 스스로 그릇되게 말찌니라... 너는 밤 곧 인생이 자기 곳에서 제함을 받는 때를 사모하지 말것이니라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그대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느니라 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높이 계시나니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욥36:15,18,20-22)
7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심으로 구원하신다
'트집 잡다' '다투다'의 어원의 뜻은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기 위해 오히려 여호와를 가르치려 하는 것, 책망하고 불평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태도를 여호와께서 책망하자 욥은 오히려 자신이 멸시를 당하기 합당한(비천한) 자니 손으로 입을 가리겠다(욥40:4)고 말한다. 우리도 이처럼 여호와를 경외하고 두려워하면서도 마음 중심에는 여호와의 공의를 의심하고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멸시할 수 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숨어있는 교만까지도 발견해내시고 드러내시는 분이시다. 여호와께서 욥을 책망하신다. '네가 의롭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여호와를 의롭악하다고 하겠는가'(욥40:8). 여호와께서는 넘치는 분노로 교만한 자를 모두 발견하시며 낮아지게 하시고 악인들을 짓밟는 분이시다. 왜 그렇게 하시는 것일까? 그건 교만한 자들, 악한 자들을 낮추시고 짓밟아서 라도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욥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구원할 수 있는 구원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욥은 할 수 없다. 오직 전능하시고 지혜가 풍부하신 여호와께서 하실 수 있다. 즉 교만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땅끝까지 낮추시는 여호와의 경륜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고난과 환란을 통해 우리가 낮아짐을 경험하는 것은 우리를 교만과 불의에서 건지시고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긍휼하심이다(욥40:2-5,8,11-14).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 너의 넘치는 노를 비우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모두 낮추되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아지게 하며 악인을 그들의 처소에서 짓밟을지니라 (욥40:2-5,8, 11-14)
8 이제는 눈으로 여호와를 뵈옵나이다
욥은 여호와께 자신이 당한 일들이 너무나 놀라운 일이고 이해하기 힘들어서 무지함으로 이치를 가렸음을 고백했다. 욥은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해 들음으로 알았다면 이제 그는 여호와를 눈으로 뵙고 그분을 알게 되었다. 물론 눈으로 얼굴을 보진 못했을 것이다. 죄인이 거룩한 그분을 감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얼굴이 아니라 모세처럼 등이나 발이나 옷자락이나 실루엣을 보았을 수도 있다. 아무튼 그는 이 엄청난 환란과 고통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았다. 그가 온전한 지식을 만나는 기적을 경험했다. 이것은 실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환란을 그저 피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런 값싼 속죄는 결국 자신을 크게 그릇되게 한다. 결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죽는 누를 범할 수 있다. 그러므로 환란을 피하지 말자. 그것을 끝까지 인내하고 하나님을 구하면 반드신 우리는 온전한 지식을 알게 되고 환란에서 건져지며 그분의 영광을 보게될 것이다. 욥은 자신의 죄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회개했다. 이제 더이상 그는 의인이 아니었다. 그저 죽을 죄인이었다. 그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드디어 교만에서 겸손으로 낮아지는 축복을 받았고 이는 구원의 축복이다.
여호와께서는 회개하는 욥을 꾸짓지 않으시고 오히려 욥을 불의하다고 책망했던 친구들을 꾸짓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이 욥에게 합당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중 가장 젊었던 엘리후는 하나님을 알았고 겸손히 주를 섬기는 자로서 의로웠으므로 회개를 명하지 않으셨다(욥42:3-7).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욥42:3-7)
# 제가 말하는 율법을 준행하는 것은 유대교에서 말하는 전통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쓰여있는 말씀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로 샤밧과 절기, 코셔를 지키는 것을 의미하고 유대교식 전통대로 지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슈아께서는 계명을 폐하는 전통과 싸우셨고 누구도 멜 수 없고 지킬 수 없게 만드는 너무 많은 규례와 전통을 거절하시고 책망하셨습니다. 선한 전통을 거절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말씀을 지킬 수 있게 만든 유익한 전통도 있습니다. 선한 전통은 지키지만 성경에서 명시한 것을 기준으로 준행하며 자유해 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 우리가 순종과 불순종으로 축복의 여부가 결정된다는 언약을 붙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욥의 친구들이 그 언약에 비추어 욥에게 불의했던 것이 아니냐고 정죄한 것이다. 그러나 욥의 변론처럼 친구들이 말한 그런 죄를 짓지 않았다. 그런데도 당하는 일은 악한 자에게 닥치는 것과 동일했다. 우리는 과연 이럴 때 계속 율법을 지키겠는가? 우리도 욥처럼 율법을 지킬 필요가 있는가? 라고 질문이 떠오를 수 있다. 욥의 이야기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즉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순종하는데도 당하는 일은 환란과 죽음과 재난과 빈곤이라면 과연 우린 계속 율법을 지킬 필요가 있을까? 예슈아께 한 부자 청년이 찾아왔다. "저는 모든 계명을 지킵니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해 그 청년을 칭찬하며 온전하기 위해서는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의지하는 재물을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제자가 되라고 초청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부자들이 천국에 들어가도록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마19:26). 즉 계명을 모두 지키고 있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이다. 정말 영생이라는 구원을 바란다면 '여호와께서 그가 가진 모든 재물을 가져가신다 해도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가져가신다 해도 가장 의지하는 것을 가져가신다 해도 여전히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따르겠느냐'는 것이다. 우린 쉽게 대답할 수 없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욥의 숨을 죄를 발견하시고 회개하게 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은 구원해내실 수 있다. 우린 그런 하나님을 신뢰한다. 즉 율법을 지키는 목적은 환란에서의 구원, 고통에서의 구원이 아니다. 번성함의 축복을 받기위한 목적은 더더욱 아니다. 욥을 통해 말하는 율법을 지키는 진정한 목적은 환란을 통해서라도 불의를 제거하는 것에 있다. 즉 죄를 제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죄로부터의 구원인 것이다. 계명을 지키는 자들,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높은 마음을 품을 수 없는 것은 율법을 지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내어드린다해도 율법을 지키는 겸손이 반드시 요구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숨은 교만과 불의를 제거하시기 위해 환란에도 두시고 고통에도 두시고 빈곤에도 두시고 질병에도 두실 수 있다. 그 이유가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가 아니다. 지키고 있지만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교만을 다루고 계실 수 있고 우리가 의지하는 우상숭배를 제거하기 위함일 수 있다. 즉 온전함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환란을 당한다고 해서 부유해지지 않는다고 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중단한다면 그는 영원히 망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율법을 준행하는 목적은 죄에서의 구원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겸손해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교만을 땅끝까지 낮추실 수 있다.
샤밧 예배: 토요일 11시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깃발 재작 문의
https://cafe.naver.com/freeflaging
#레올람토라 #욥기 #율법
첫댓글
아멘!
욥기를 참으로 잘 해석해 주셨네요.
대부분 갑절의 보상만 바랄 뿐, 욥이 겪는 고난과 좌절은 피해가려고 하는데... 사실, 고난 없이 하나님을 뵙는다는 것은 힘들다고 봅니다.
고난에 때에는 몰랐지만 지나간 후에는 다 이유가 있었음에 그것 또한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게 되더군요.
어쩜 욥의 고난이 현실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했었는데, 지금 이스라엘이 그 시작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네요...
올해 부터 기도제목이 ..고난의 시간이 길지 않도록(환란의 때가 진짜 다가왔기에)입니다.
임마누엘~하나님을 경외합니다!
평안하십시요^^
감사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오늘도 기쁘고 평안하네요
항상 격려의 댓글 감사드립니다
샬롬 샬롬 할렐루야 ♡
@자유하라
덕분에 한 주가 즐겁습니다.
요즘 카페에 다른 글은 안보게 되고 말씀 올리는 것을 기다리게 되었네요.
샬롬~^^
@jwha 감사합니다 ~
말씀으로 행복하신거 같아 저도 기쁩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