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 롬12:1-8
- 제목 : 은사는 다양하고 동등하다
◇ 기도
몸은 여기저기 아우성입니다. 지난 코로나 이후 늘 반복되니, 육신의 상태는 좋다고도, 아주 나쁘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을 말씀으로 여는 삶이 제게는 가장 좋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인도하고 가르쳐 주소서.
◇ 본문살핌
로마서 12장부터는 성도들을 향한 삶의 강령으로 내용이 전환된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 삶을 드리는 것이 우리의 마땅한 예배다(12:1). 우리는 세태에 휩쓸려 살아가지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를 가능케 하려면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 새로워진 마음으로 생각이 전환되어야(shift) 하나님의 시각에서 삶을 살아나갈 가능성이 생긴다(12:2).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에게 맡겨지거나 선물로 주어진 소임들을 성실히 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전체를 이루는 작은 지체(part)들의 연합이며 저마다 기능과 소임이 상이하다(12:3-5).
이 기능과 소임들은, 오늘 본문에 따라 은사라는 단어로 말할 수 있다. 사도바울은 교회 안에 있는 은사(하나님의 선물)를 말할 때 방언, 예언, 통역 등과 같이 다소 신비롭다 생각되는 것들만을 다루지 않는다. 오늘 본문만 해도 그는 예언(대언)과 위로, 구제, 관리, 교육 등 다양한 형태의 소임을 동등하게 나열한다(12:6-8).
◇ 묵상
한때 교회에서 방언을 구원의 확증처럼 가르치던 때가 있었고, 나도 은사주의 교회에서 다년간 있으면서 그런 교육을 듣고 받은 목격자 중 하나다. 나는 특히나 오랜동안 방언을 하지 못했던 더라 주변의 안타까움(?) 마저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당시 이미 회심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내·외적 표징이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공동체 형제자매들을 내 혈족처럼 여기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여 늘 마음이 뜨거웠고 수시로 말씀과 기도를 통해 인도함을 얻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들은 방언에 집착했다. 내가 드디어(?) 방언을 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런 떨떠름한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주로 인용하는 성경구절들을 보면(주로 바울서신들이다) 은사주의자들의 시각처럼 해석되지가 않는다. 내 관점에서는 그건 확대해석이다. 어떤 개혁주의자들이 시편 찬송 외엔 예배에 부를 게 없다며 다른 찬송들을 매도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아직도 그들이 왜 그토록 은사, 특히 방언과 방언통역에 천착하는지 이해가 잘 안된다. 성도가 교회를 위하여 받는 은사는 다양하고 풍성하며, 그들은 상하관계도 아니고 핵심요소와 비핵심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방언은 성령의 강력한 임재이고, 구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만, 기도가 길어지고 깊어지면 불식간에 방언이 나올 뿐이다.
소위 성령의 불을 받아 방언이 터진 자라야 구제도 전도도 봉사도 뜨겁게 뜨겁게 할 줄 아는데, 그럴 수는 있으나 그게 「일반화」 될 수는 없다. 칼빈, 웨슬리, 녹스, 차녹, 스펄전, 조나단 에드워즈, 로이드 존즈 같은 이들에게서 아주사 거리의 표징같은 모습은 일반화되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이들이 그리스도교 역사 전체에 끼친 절대적인 영향력들을 부정할 수 없고, 그들의 수고를 너나 없이 누리고 있다.
폐일언하고, 방언과 예언보다 긍휼과 구제와 용서야말로 그가 참된 제자임을 드러내는 내적, 외적 표징이며 가장 강력한 전도의 도구이고 모든 세상의 입을 다물게 하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빛과 소금으로 드러내는 무기가 된다. 이는 방언을 받으며 등짝에 불덩이가 떨어져야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회심한 그리스도인들, 즉 아들의 복음을 믿어 구원에 이르게 된 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뜻에 따라 나눠주시는 선한 선물들로 인하여 생겨나는 다양한 향기들일 뿐이다. 이 삶이 있어야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라던 사도의 말이 우리 것이 된다.
◇ 기도
아버지... 제겐 일만마디 방언보다 사랑이 더 중요합니다. 방언 많이 한다고 사랑이 오지 않았습니다. 방언 오래해서, 혹은 기도를 오래해서 신앙이 성장할 것 같으면 주님의 죽으심은 헛됩니다. 그렇다면 왜 힘들게 말씀 앞에 나가서 들어야하며, 구주의 무덤에 왜 쓸데없이 연합하겠습니까. 공력 쌓듯이 장시간 꾸준히 기도 하면 영적 내공이 올라갈텐데요... 다만 사랑에 힘쓰고자 합니다. 제 삶이 아버지께서 정하신 분수에 맞기를 원하나이다. 아버지를 향한 돌이킴의 마음으로 100日 결사를 작정했고, 오늘도 아침에 말씀통해 성령님 인도와 임재를 구하나이다. 제 삶의 다른 순간들과 제 가치관과 생각들, 제 표정까지도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은 멀었지만은, 이제는 급하고 강한 불대신 서서히 그러나 반드시 견인하시는 아버지의 경륜과 섭리를 더욱 의지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은사는 무엇이든 감사로 받겠습니다. 때에 따라 차도 몰고, 집도 수리하고, 장도 보듯이... 상황따라 다르게 필요한 은사들을 주실 때에 받는 자된 제가 고르지 않겠습니다. 분별하지 않겠습니다. 높이거나 낮추지 않고, 그저 사랑 안에서 선하게 쓰겠습니다. 이미 주신 것들도, 감사함으로서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첫댓글 아멘!
사랑으로 나타나는 믿음만 참되나이다. 갈5:6.
나도 코로나 이후 몸이 아우성인데ㅠㅠ
아멘... 목사님, 사모님 두분 위해서도 기도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