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시월, 서울 행정법원 202호 법정.
나는 세 명의 판사와 두 명의 변호사 앞에서 다른 두 증인들과 함께 나란히 선 채 선서를 하고 있었다. 한 치의 거짓 없는 진술을 하겠다고...
행정재판이라 공증받은 문서로 제출한 나의 증언내용을 법원서기가 확인하는 정도로만 알고 갔었는데, 돌아가는 분위기는 나의 예상을 저만치 밀어내고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살면서 다행히 재판정에 서볼 일이 없었던 나는 예상치 못한 재판의 증인으로 갑자기 법정에 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 당혹스러웠다.
두 명의 보조판사를 대동한 담당판사의 선언과 함께 내 딸아이 담임을 비롯한 다섯 분의 교사직위해제에 대한 정식 행정재판이 시작되었다. 전 전교조 위원장을 지냈던 이** 씨와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선생 한 분이 첫 번째 증인으로 증인석에 앉았다.
전교조 측 민변소속 변호사는 증인이 제출한 증언서류가 증인이 직접 작성한 것인가를 확인하는 정도를 증언청취를 끝냈지만, 교육청의 위임을 받은 변호사는 마치 검사인양 증인심문을 시작했다.
"증인."
금속성의 차가운 음성으로 변호사가 증인을 불렀고,
"네."
증인으로 나온 선생의 얼굴에서는 나처럼 예비하지 못한 일들이 긴박하게 흘러서인지 긴장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방청석에 앉아있는 나도 곧 나에게 돌아올 일인지라 괜한 긴장감으로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이** 씨가 교직해제 되기 전에 담당했던 일을 다른 선생님이 맡아서 하고 있습니까?"
"네."
"새로 맡은 선생님이 그 일을 하면서 혹 문제가 된 일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변호사는 원하는 대답을 듣고는 증인으로 나선 선생이 머뭇거리며 하고 싶어 했던 다음 말은 잘라먹은 채 그다음 질문으로 이어 나갔다.
처음 본 실제 재판은 그렇게 진행되어 갔다.
두 번째 증인으로 나선 선생은 전 전교조 집행부 임원이었던 초등학교 선생의 동료교사였는데, 앞선 증인과 마찬가지로 하고 싶은 말은 해보지도 못하고 교육청 측 변호사 앞에서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다음이 내 차례였다. 양복 단추를 여미며 난생처음으로 법정의 증인석에 앉았다.
"증인은 여** 선생이 담임을 맡았던 반, 김지현 학생의 아버지가 맞습니까?"
"네."
민변 변호사는 내가 제출한 증언내용의 진위를 확인하고는 자리에 앉았고, 눈매 매서운 변호사가 내 앞에 섰다.
"증인."
"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감정이 섞이지 않은 금속성이었고, 대답하는 내 목소리도 마른 목을 거치느라 쇳소리가 섞였다.
"증인은 여** 씨가 **년에 집시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형을 언도받은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모릅니다."
"몰라요?"
증인석에 앉았으면서 그 정도도 모르냐는 투로 물었고,
"네."
미리 예상 질문과 답을 준비한 것도 아니었고, 사실 모르는 일이니 모른다고 할 수밖에...
"집행유예 선고 후 다시 두 달 뒤에 또 집시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400만 원의 벌금형이 언도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까?"
"모릅니다."
"몰라요??"
다시 한번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되물었고,
"네..."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건가 싶어서 겉은 태연한 척 꾸몄지만 속은 당황되기 시작했다
여** 선생님이 전교조 교사로 일선 집행부의 일을 하면서 전교조 설립 초기였던 지난 80년대 후반, 해직될 때까지 지난한 투쟁을 해온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재판의 내용과 결과를 내가 소상히 알지는 못했다.
그 변호사는 내가 증인석에 앉아 있으려면 그 정도 사실은 당연히 알고 있어야 된다는 듯 물었고,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고 답해야 한다는 사실에 당황했으며, 결국 나는 앞서 증인석에 앉았던 두 선생처럼 그 변호사의 말기술에 말려든 것 같았다.
"증인은 그런 기본 법질서도 하나 제대로 못 지키는 선생님이 도덕선생으로 학교에 근무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십니까?"
"........... 그 재판의 내용을 모르면서.... 제가 무어라 판단할 내용이...... 아닌 것..."
증인석에 앉아서 하는 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여** 선생님에게 도움이 될 수도,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나에겐 큰 부담이었고, 그 부담으로 말을 우물거리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방해받지 않고 내 마음을 글로 쓴다면 얼마나 편할까...
"분명한 재판 사실이 있으니 증인의 상식으로 대답해 봐요. 재판을 받고 두 달 만에 동일한 일로 또 재판을 받을 정도로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교사로서 자격이 있습니까?"
상식적으로 보면 그 변호사의 말처럼 여** 선생님은 나쁜 사람이었다. 그것도 도덕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이 그 순간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본 여** 선생님은 분명히 요즈음 세상에 보기 드문 훌륭한 선생님이셨는데, 변호사의 말을 듣고 보니 그것이 더 상식에 가깝지 않은가...
판사석을 보니 판사와 보조 판사들도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내가 도움이 되려고 나온 선생님을 오히려 기본 질서도 안 지키는 나쁜 선생님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진퇴양난에 빠져버렸다.
"선생님뿐만 아니라 일반인이라도 동일한 죄를 반복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요..."
나는 결국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법정에서 법으로 재판받은 사실도 모르면서 그 재판이 잘못된 재판이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었고, 내 상식 범주에서 동일한 죄를 반복해서 저지르는 것은 당연히 나쁜 일이었기에...
나는 여운모 선생에게 해를 입히는 대답을 하고는 깊은 자괴감에 빠져들다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가야 후회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의 제지는 아랑곳없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저는 변호사님이 물은 사실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릅니다. 제가 아는 것은 여** 선생님이 올해 우리 딸아이의 담임을 맡고 난 후의 일들이며, 직위해제 전까지 보여주신 담임선생님으로서의 여러 모습들이 학부형 입장으로 볼 때 너무나 훌륭했으므로, 지난 스승의 날에는 제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편지도 보냈습니다. 그 편지는 참고 증언서류로 제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훌륭한 선생님을 학기 중에 학생지도와 상관없는 일로 직위해제 시키는 처사는 잘못된 일이라 생각하여 교육청에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탄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했지만, 그 후로도 몇 가지 질문과 대답이 더 이어졌지만, 나는 내가 빠져든 자괴감에서 쉽사리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교육청 변호사의 질문이 끝나자 다른 증인 때와는 달리 나이 삼십쯤 되어 보이는 여류 민변 변호사가 판사와 나를 보며 말했다.
"여** 선생님이 과거 연루되었던 재판은 형사상의 일이나 학교 보직을 잘못 수행한 데에 대한 재판이 아니었고, 전교조 집행부의 일원으로서 단체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한 투쟁 중에 일어난 일로 받은 재판이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에 대한 배려였든지, 재판부에 대한 해명이었든지 간에 그 말 덕분에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긴 했지만, 증인석을 물러나는 마음은 나 자신에 대한 가볍지 않은 부끄러움과 미진함으로 가득 차있었다.
여** 선생님이 눈빛으로 고맙다고 뜻을 보내왔지만, 나는 그 선생님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선생님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해가 되는 발언을 하고 말다니... 영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내가 증인석에서 물러나자 판사는 민변 변호사를 호출하여 내가 제출하였던 증언서류를 확인하였다. 내가 스승의 날에 선생님께 보냈던 편지와 교육청에 탄원서를 제출하러 갔던 날의 감회를 적었던 글.
202호 법정을 나왔을 때 젊은 민변 변호사가 해 준 말이 다시 내 마음을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행정재판에는 증인 심문이 별로 의미가 없어요. 통상 서류 재판이고 그 서류를 증인이 직접 작성한 것인가를 확인하는 요식행위 정도예요. 당연히 상대방 변호사는 수임료 값을 하기 위해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고요. 아버님이 써주신 글이 참고자료로 제출되었으니 판사들이 아버님 마음을 잘 살펴서 참고할 겁니다."
사람들과 함께 서초동 법정을 걸어 나오는 길.
여** 선생님이 증인으로 나와주어 고맙다고 하셨고,
"제가 말주변이 없다는 걸 오늘 새삼 느꼈네요. 참 황당한 경험이었습니다. 별로 도움 안 되는 증언을 해서 미안했습니다."
"아니~ 오늘 정말 잘하셨어요."
여** 선생님이 내 무거운 마음을 덜어내 주려고 애를 쓰시던 그 서초동의 서녘 하늘은 붉게 적셔지며 어둠을 내려보내고 있었다.
202호 행정법정.
다른 사람을 위해서 혹 다시 그 자리에 설 지도 모르겠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절대 서고 싶지 않은 자리였었다.
법정은 그 이전에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또 하나의 정글이자 터널 같은 곳이었다.
그 터널을 증인의 자리에 있어서 쉽게 벗어나긴 했지만, 원고든 피고인이든 다른 입장으로 그 터널에 들어선다면, 그곳은 서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유리한 논리를 끌어내기 위해 치열하게 물고 뜯으며 싸우는 시퍼런 말들의 각축장으로 보였다.
아이나 어른이나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는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힘든 수많은 터널들이 있다.
그런 터널에 빠지게 되면 두렵고 힘이 들지만, 그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가족의 굳건한 사랑이 기본이 되어야 그런 터널들을 벗어날 수 있는 빛을 만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믿음과 사랑이 사회에도 널리 퍼지면 그런 터널들이 엄청 많이 줄어들겠구나..라는 생각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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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개인적으로 전교조의 초기 이념은
좋아하는데, 그 조직이 현재와 같이
학교와 학생들을 볼모로 이념 교육을
하고 정치 투쟁하는 일에는 공감 대신
반감이 앞섭니다.
딸에게 큰 힘이 되어준 담임선생님이
초기 전교조 운영진이셨는데, 스승의
날에 감사 편지를 보냈더니 변호사들이
그 편지를 보고 재판에 도움 되겠다고
참고자료로 첨부해서 재판에 증인으로
까지 서게 되었지요.
그곳은 두 번 다시 가고 싶지는 않은 곳이었습니다.ㅎ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런 일이 없었고요.
이제 한 편 더 쓰면 끝입니다.
긴 글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왜 갑자기 마음자리님이 증인으로 채택되어
행정법정에 서야 하는 지를 몰랐지요.
마음자리님 글을 또박또박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글 하나를 빠트렸나?
여 담임 선생님에게 보낸 스승의 날 감사 편지가,
재판 과정에 도움이 되었나 싶네요.
마음자리 님의 평소 마음 쓰심이, 말하자면 인간성이
여 선생님에게 도움을 주신 것 같습니다.
에어컨 바람이 감기를 ...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든다는데...^^
스승의 날에 쓴 그 감사편지에는
제 딸이 겪은 고통과 그 선생님의 헌신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 이번 연작 글에 포함시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글의 점프가 생겼습니다. ㅎ
그 편지에 선생님의 헌신과 제자사랑이 잘 드러나 있어 변호사 입장에서 판사의 판단에 유리한 자료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습니다.
무더위 막바지라 더위와 싸우시던 기력이 많이 빠지셨나 봅니다.
얼른 쾌차하세요.
코로나가 다시 유행 하고 있다니
조심하시구요.
증인으로 법정에 나가셨군요.
뜻하지 않게 증인으로 출석하여 수고 많으셨습니다.
법 소송은 멀리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평소 법정에는 가지 않고 살려고 하엿는데....
요즘 TV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법의 여신이 들고있는 저울처럼
세상의 균형을 법으로 잘 잡아내기가
어려운 시절을 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경험한 자리는 사실 법의 첨예한
다툼 자리도 아니었는데, 저는 상당히
극심한 혼란과 움츠려듬을 느낄 정도로
긴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 그 자리에 서고 싶지는 않았었지요. ㅎ
지현이 담임 선생님께서 전교조 가입 일로 법정까지 가셨나봐요.
살다보면 이런일 저런일도 겪지만 법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편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리(?)를 지켜주신
맘 자리님 멋있어요^^
아마 그 선생님은 전교조 초기 집행위원으로 거리 투쟁에도 적극 나섰던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극렬 투쟁에 공감하지는 못하지만, 그분이 제 딸에게 보여주신 교육자로서의 자세는 모든 선생님의 귀감이 될 정도로 훌륭하셨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재판정에 섰다가... ㅎ 그곳에선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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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터널을 벗어나는데 큰 도움을 주신 1학기 담임 선생님이셨는데 전교조 거리투쟁 관련해서 직위해제 재판이 있었습니다.
재판정의 그 분위기에 위축되었던 기억과 상대 변호사의 답변 강요가 반감을 가지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단풍님 안부주셔서 감사합니다.
법정 드라마 한 단락 본 것 같아요.
저는 고객끼리 임대차관계 문제로 법정까지 간 사건 대신 참관만 해 본적있어요.
법정의 그 엄숙하고 긴장감 있던 분위기..
잘 하셨어요.
소신있는 발언하셨네요.
도움 많이 되셨을거에요.
멋지셨다고 박수 보내드려요.
그리고 그 옛일을 제대로 기억하셔서 멋진 작품 하나 탄생 시키신 것도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