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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아니면 한여름에 여행을 다닌 한 이십년 돼가는 모임이 있죠. 순천에서 효천고 매산고 금당고를 중심으로 더러 승주지역의 여러 중학교들에서 해직 되었던 전교조 벗들이죠. 꼬맹이들을 달고 다니던 날들이 엊그젠데 지금은 아이들이 따라다니지 않죠. 더러 시집 가서 아이를 낳았거나 장가를 갔거나 낼 모레면 줄줄이 웨딩마치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죠.
'참교육'을 슬로건으로 한 시대를 잘 살았지요. '참'이란 말 참 어려워요. 취하기도 지키기도 어려워 청춘을 다 바쳤지만 시대의 정치와 세상의 학교는 이들에게 돌려준 것이 없답니다. 이 사람들 스스로 '싸구려 박수'를 받았으며, 이 사람들 스스로 '떳떳함'을 자랑삼았으며, 이 사람들끼리 놀러다니고, 이 사람들끼리 상처받고, 이 사람들끼리 늙어갔죠. 이번엔 명퇴시기를 살피는 김선생이 퇴직금이야 연금이야를 염려하노라니 정선생은 빈틈없는 연금적용의 요율과 연금법 개정사항과 정년 연장이라는 변수랄지 줄어든 연금액들을 소상히 가르쳐 줍니다.
지난 해직기간의 오년은 우리에게 늘 허전하고 쓸쓸하고 우울한 '옹이'가 되었습니다. 헛웃음 속에 깃든 수 억의 경제적 손실, 하늘을 향해 불끈 쥐었던 수 만번의 주먹, 성공과 실패가 교차하는 수 천번의 교단, 아직도 놓아버리지 못하는 수 백번의 혁명...
더러는 참고, 더러는 잊고, 더러는 떠나고, 더러는 싸우고, 더러는 전업하고, 더러는 공부하고, 더러는 죽고, 더러는 이혼하고, 더러는 병들고 더러는 빠지고 더러는 망하고, 더러는 새로 출발하고 더러는 도를 터서 한겨울 순천만 뚝방처럼 오늘 우포늪의 철새처럼 멀고 아득하고 외롭고 무감하죠.
덕유산 어디, 거창 어디, 창녕 어디, 청도 어디를 다니며 대구는 가지 말자는 말에 웃기도 하고, 화왕산 어디, 부곡 어디를 다니며 사진도 찍지 말자며 웃기도 했어요. 정치는 곧 교육이고, 교육은 곧 우리들 청춘이어서 웃기는 것들을 사서 웃으며 헛헛하게 돌아왔습니다.
제가 철새들을 꽤 사랑합니다. 어찌 저리 추운데 얼음물 위에서 사노! 어찌 그 먼 길을 날아 추운 데로만 돌아다니는고! 지구의 하늘을 날아 세상 만방을 두리번거리는 저 미소는 오데서 진화한 착한 눈썹일까! 공기보다 가벼운 저 깃털들의 마음과 바람보다 더 가벼운 저 뼈들의 생각은 누가 밤새 지어논 시일까...
같은 호수를 향하고 한 바다를 외치는 부리... 같은 깃털끼리 모이고 한 목소리로 흩어지는 발가락... 한번의 날개짓으로 구만리 장천을 꿈꾸는 불사조의 날개...
이들이 한 때 가창오리였다가 지금은 저리 흑고니 재두루미들입니다. 종종은 제 시의 날개요, 가끔은 제 서재의 햇살이기도 하지만 이따금 불 같은 노을이기도 하고 성에처럼 피는 아픈 꽃이기도 합니다.
미조(迷鳥) 3 -고니
어느새 나는 네가 보고파진다 떠나는 너는 그리 할말이 많으냐 가고 아니 온다 한들 그것 말로 하는 언약이더냐 그리움은 외다리로 서서 꿈꾸는 사랑, 겨드랑에 부리를 치는 달빛 청청한 기다림
고니든 청둥오리든 황오리든 고방오리든 비오리든 검둥오리든 반갑고 그립습니다. 우포늪 둑방길을 걸으며 봄을 그립니다. 노랑어리연, 가시연, 통발, 귀이개, 생이가래, 끈끈이주걱들...
우포늪에서만 볼 수 있는 수많은 식생들이 그립습니다. 교단을 떠나면 아내와 손 잡고 꽃을 보러 다니겠습니다. 오지 벽지 늪지 산지를 찾아 될수록 번다하지 않게 될수록 비밀스런 세상 오진 야생과 세상 비낀 참 것을 찾아 카메라를 들겠습니다.
200미리 줌이 무거워 놓고 간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먼 데 철새들 얼굴 몇 박아와서 우리 얼굴과 한번 비교해볼걸 말이죠.^^ 우리 얼굴들 속에 도사리고 있는 황새 같은 눈과 쥐오리 같은 가슴과 우리들 웃음 속에 깃든 넓적부리도요나 저어새의 주둥이들도 보고싶습니다.
해직교사... 복직교사는 오데로 가고 죽는 날까지 해직교사인가!! 복직교사에게 첫처음의 낮은음자리표를 되돌려주면 아니될까? 말로는 박수를 치면서 마음으로는 시샘하는 우리들 자화상! 그대 학교, 그대 정치, 그대 무심, 그대 입술, 그대 수염...
풀꽃도 하나 없이 한겨울 우포늪을 건너 그대에게 갑니다. 미움도 없이 철새들이 내 이마 위를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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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포늪속에 기나긴 역사가 잠겨 있듯이..
스승님의 역사도 무수한 사연을 담고 있네요.
저는 보이는 수풀과 철새에 먼저 눈도장을 찍었답니다.
고마워 차오름... 수풀과 철새를 앞세워 내 우울한 속만 드러내었구나. 오월 어느 날 쯤 한 이틀 잡아 꼼꼼히 들여다보고 싶은데 수생식물에 접근하는 길이 좀 어렵겠더군. 둑방은 너무 높고 아래로는 울타리가 쳐져서...
가보고 싶은곳 수첩에 적었는데 철새들이 부럽네요
자유로운 철새? 그린님도 꽤 자유로운 분 아니신가요? 아무 꽃 피는 봄날에 고니떼와 나란히 둑길을 우아하게 걸어보세요.
풍경은 차갑고 글은 아름답고 추억은 아릿하고...
괜히 뭉클해서 말문을 열지 못 했어요.
저나 선생님이나 어차피 같은 시대를 살아왔는데,
저는 참 안일한 삶을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때 전대후문에서 데모 취재하다
그 짭새한테 팔뚝이 잡혀 닭장차에 끌려도 가보고,
세월에 묻어있는 최루탄 냄새를 씻어내려고 억지로 문지를 필요가없었는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도 풍경도 너무 아름다운데 가슴 깊은 곳에서 싸한 찬바람이 일어요.
개학을 앞두고 또 훌쩍 꺼져버린 한 해를 바라보며 청춘이 아리고 시절이 아쉬워요. 양순씨야말로 참 씩씩하고 바른 삶을 잘 살아온 사람 같아요. 만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지만, 언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발이 참 어여뻐요. 실떡벌떡하고 옥닥옥닥한 내 악머구리 소음도 잘 들어주고.^^ 속은 어떨지언정 좌중의 허튼 소리들을 받아내는 표정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정말 해맑아요. 을씨년스런 글과 풍경을 아랫목처럼 따뜻하게 다독여주어 감사해요. (...참~ 제 들꽃원고는 이번주에 넣어야 하나요?)
예. 금요일까지 부탁드립니다.
낼 모레 개학이시겠군요.
건강히, 차분히 잘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아!!!!~~ 우포늪 생명이 제 살길을 내며 꿈틀, 꿈틀거리는 곳 그곳을 언제나 갈 수 있을까?~~~그리운 우포늪,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께 가는
밀양행 기차속에서 이글을 읽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교직이나 언론에서 보는 시각은
아직은 갈길이 멀어보입니다
너무 안일한 생각의 차이일까요?
짧은 소견 각설하고 우포늪의
전경이 마치 멏폭의 그림을
전시해놓은 갤러리에 서있는
느낌입니다 덧붙인 글들은 시원한
생수로 해갈을 한듯 싸한 감동입니다
가슴으로 읽으며 창밖의 겨울풍경이
우포늪인양 쉼호흡을 들이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