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일부 미개인들이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의 군사 독재자였다고 주장할 때 외국의 국제 정치학자들은 박장 대소한다. 왜냐하면 두 대통령 모두 선거에 의해 정권을 헌정 승계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치가 군정이 아니라 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누구를 군사독재자라고 하는가? 독재자의 특징은 김대중처럼 시민군을 조직하여 군사반란을 일으킨다는 것과 김대중처럼 남에게 누명을 씌우고 자기 잘못에 대한 책임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사 독재자의 전형적인 예로 세 명을 든다면 노무현이 존경하는 모택동과 김대중이 존경하는 한국 좌파 운동권이 존경하는 카스트로가 있다. 그리고 이들 모두 시민군 조직으로 군사 독재자가 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사실 모택동의 공산반군은 시민군이었다. 그들은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하면 지주 농토를 몰수하여 농민에게 준다고 꼬셔 농민들을 공산반군에 입대시켰다. 그리고 쟝개석 총통의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시민군이 전사하면 국군이 국민을 죽였다고 사기치고 선동하여 민심을 얻었다.
김대중이 1970년대에 존경하던 호지명도 시민군 조직으로 1975년에 월남을 공산화하였다. 호지명은 1973년에 평화협정과 평화선언 댓가로 미국으로부터 30억 달러를 받고 주월미군도 철수시켰다. 그리고 1975년 3월에 월남 중부 지방에 시민군을 조직하여 수도 사이공을 향하여 진격하게 하였다. 만약에 티우 대통령의 정부군이 단 한명의 공산반군이라도 전사시키면 민주화 운동을 하는 시민군을 국군이 학살하였다는 소문을 전국에 퍼뜨렸다. 바로 이것이 월남이 공산반군에 의해 공산화되는 것을 보면서도 미국이 꼼짝달싹할 수 없었던 이유였으며, 바로 이것이 5년 후에 김일성이 광주사태 아이디어를 얻었던 계기였다.
쿠바의 카스트로도 시민군을 조직하여 공산주의 군사독재자가 되었다. 만약 민주주의 정부군이 전투에서 공산반군을 한 명이라도 전사시키면 국군이 시민을 학살하였다는 소문을 전국으로 퍼뜨렸으며, 쿠바 국민성이 한국 국민성과 비슷하였기에 그 유언비어의 효과는 엄청났다. 미국의 지원에도도 불구하고 1959년에 쿠바 민주주의 정부는 삽시간에 전복되고 공산주의 혁명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카스트로에게 속아 시민군을 지원하였던 쿠바 국민들은 지금 자유를 찾아 쿠바를 탈출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김대중이 바로 이런 방법으로 시민군을 조직하여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여러번 시도하였었다. 그 한 예가 1972년에 김지하 시인이 주도하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하였던 것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조국 근대화와 산업혁명과 수출 정책에 반대하던 군부 내 운동권과 야합하여 김대중이 군사 쿠데틀 일으키려 하였는데, 그 한 주동자가 바로 이종찬이었으니, 그는 훗날 1980년 김대중 내란 사건 수사 총책임자였으며, 김대중 내란 증거물들을 없애준 공로로 1998년 김대중 정권의 국정원장이 되었던 바로 그 인물이었다 (자료 출처: http://monthly.joins.com/asp/print.asp?aid=211223 )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3609.html
에 보면 광주폭동 주동자 윤상원이 김대중의 최측근이었음을 밝혀주는 증언이 있다.
<5. 18 광주민중항쟁이 시작될 무렵 윤상원은 팡주지역 청년운동의 핵심으로 활발히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당시 5일. 재야단체 민족회복국민회의(의장: 김대중, 윤보선. 함석 헌) 전남지부의 실무를 맡아 뛰었으며 민주청년운동협의회 전남지부(윤한봉 김상윤 등 광주지역 민청세대가 주축)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
당시 김대중 내란의 주동 세력이었던 민족회복국민회의 세 명의 의장 중에서 윤보선과 함석헌은 이름 뿐이었고, 실제 보스는 김대중이었다. 그리고 윤상원은 전남지부 총책이었는데, 전남이 김대중의 정치 기반이었으므로 사실상 김대중의 최측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5월 9일 혹은 그 이전에 김대중으로부터 윤상원에게 전국 예비군 무기 탈취조를 조직하라는, 즉 시민군을 편성하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증언자료 출처: http://www.digitalmal.com/news/read.php?idxno=10052&rsec=MAIN
)
군사 독재자의 또 다른 전형으로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있는데, 김대중처럼 남에게 누명 씌우기 명수이면서 자기 책임은 인정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의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책임의 소재가 명확하다. 그런데 김대중의 동교동식 독재 논리에서는 책임의 소재가 김대중 마음대로이다. 예를 들어, 1980년 5월 김대중의 내란 당시 보안사령관이 폭동진압작전에 관여하는 것은 군대행정상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동교동의 독재 논리가 어떤 픽션 소설로 국민을 속여왔던가를 보라. 그리고, 천문학적 공적 자금을 날렸으며, 김정일에 핵무기 개발자금을 8억 내지 15억불 비밀송금한데 대해서 자기는 책임없다고 발뺌하는 김대중의 독재논리를 보라.
이렇듯, 김대중은 정권 탈취 방식과 제왕적 권력 행사 방식에 있어서 군사독재자의 특징을 고루 지니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은 모두 헌법이 정하는 방식에 의한 선거로 정권을 헌정 승계하였다. 그런데, 김대중은 시민군의 군사쿠데타로 민주주의 정권을 전복시키고 선거 없이 정권을 장악하려 했었다. 만약, 1972년의 군사 쿠데타나 1980년의 내란이 성공하였을 경우 김대중이 4년간의 임기만 채우고 하야하였을까? 더구나, 김대중은 민주주의가 불가능하게 하는 동교동식 독재 논리가 몸에 배어있는 인물이었다.
외교관 출신 최규하 대통령이 바라본 광주사태
http://cafe.daum.net/park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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