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은 채집한 채로의 생근을 약생인 것은 산삼, 재배품인 것은 수삼이라고 하지만, 보존성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용될 따름이고 보통은 가공하여 백삼(표피 음지), 피촌백삼, 홍삼, 곡삼, 당삼, 미산삼의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들고, 또 고려인삼을 원료로 하여 차제, 주제, 정제, 액제, 엑기스제, 외용제 등의 각종 2차적 제품이 개발되고 있다.
백삼은 채집한 고려인삼근을 깨끗이 수세한 후 표피를 제거 또는 그대로 둔채 일광에 건조시켜 만든 것이고, 건조 시킬 때 근의 동체하부를 굴곡시켜서 고정시킨 제품을 곡삼이라고 한다. 홍삼은 백삼에 비하여 가격이 월등하게 고가이며, 중국에서는 고려인삼이라고 하면 주로 홍삼을 지칭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홍삼과 백삼은 가공정도의 차이로 인하여 선당 성분조성, 약효성 및 보존성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지만, 보존성 이외에는 아직도 성분이나 약효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기대되고 있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인삼 종주국으로 알려져 있는 이유의 하나로 이와 같은 인삼의 수제법(가공법)이 옛날부터 크게 발달되어 온 것을 들 수 있다.
본초강목의 인삼집해를 보면, “신라 소공자 유수족장 여인형 장척여이핵목거정”이라는 기재가 있으며, 이미 신라 때부터 우리의 고려인삼제품이 상품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가공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홍삼이라는 문자가 정종실록(A.D. 21)기제에 처음 나왔다 하여, 그 무렵을 홍삼수제법 개발의 때라고 고증함은 단견이며, 송인 서극이 정사수행원으로 1123년(고려 인종원년)에 고려에 다녀간 후 견문을 기록한 선화봉사 고려서경에 고려인삼을 기록한 대목으로 보면, 고려 때에 벌써 홍삼이 개발되어 있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본초강목에도 “고려삼근비”라는 표현이 있는 것과도 부합된다.
또다른 문헌에도 고려인삼을 삶아 먹는 전통, 기담 등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인삼을 삶아 먹는 관습이 있었던 모양이고, 그것은 손아삼이니 동삼이니 하여 고려인삼의 형태를 사람의 형상으로 보고 인체를 삶는다는 사고 방식에서 출발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인삼근의 형태가 사람의 동체 및 4지를 닮았다 하여 고려인삼의 인자가 생겼으며, 형태가 인체가 사람 모양에 가까울수록 높이 평가되는 습관이었고, 형상에도 음양이 있어, 여성 모양이니 남아 모양이니를 구별라고, 고려인삼근이 지중에 있을 때 야반에 미음성을 낸다느니, 그 근처에 야음중에도 미광이 있다는 등의 미신이 있는 것이 마치 서양의 Mandragora의 미신과 유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도 고려인삼 채집자가 산삼을 탐색할 때에 기도, 주문 등을 외고 꿈같은 것을 신앙하는 풍속이 있는 것은 과학시대에 우스운 미신이요, 낡아 빠진 의식 또는 타부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고려인삼의 약효를 그 만큼 신성시하였다는 증거도 될 것이다.
고려인삼은 주로 근을 약용으로 사용하나, 두부에 해당되는 뇌두는 특수한 목적 이외에는 제거하고 사용하지 않는다. 잎, 꽃등도 차제, 속제 등으로 이용된다.
고려인삼의 구체적인 약효로서 전승 요법에 다음과 같은 것을 들고 있다.
1) 원기회복, 2) 해열, 3) 항결핵작용, 4) 혈압조정, 5) 소화항, 6) 신경강장제, 7) 건위 및 지사, 8) 간기능강화, 9) 이뇨작용, 10) 지혈작용, 11) 강심작용, 12) 종양치료작용 등이며. 현대약리학적 지견과도 일치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