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소설을 쓰려면 얼마나 많이 알아야 하고, 고민해야 하며, 또 능력이 있어야 하는 걸까?
감탄과 질투의 감정으로 읽어내려간 소설.
이 소설을 읽고 잘 몰랐던 스리랑카의 민족과 역사, 그리고 비극적인 사건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곳, 머나먼 곳에서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고,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인간에 대한 부끄러움과 슬픔, 그리고 경멸을 느낍니다.
이 책을 읽으려면 사전에 스리랑카 역사를 조금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혀 모르고 읽었기에 활자의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알아내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네요.
하여, 혹시 이 책을 읽고자 하시는 분을 위해 역자가 써 놓은 글 중에서 참고가 될 만한 글을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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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으로 번진 갈등
- 불교 신자인 싱할라족과 힌두계인 타밀족의 갈등은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다. 주로 중앙 고원에 거주했던 싱할라족은 다수민족으로서 스리랑카를 지배했고, 타밀족은 소수민족이지만 고대부터 스리랑카 북부와 동부에 거주해 왔다. 16세기 포르투갈이 실론 섬에 진출하면서 스리랑카도 유럽 제국주의 열강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네덜란드의 지배를 거쳐 18세기 영국의 식민지 시대가 시작되면서 영국과 보다 긴밀했던 타밀족 일부가 고등교육과 관리직에 진출하는 등의 기회를 열었고, 이에 다수민족인 싱할라족의 불만이 쌓인다. 영국이 물러간 후, 싱할라족에 의한 통치가 강화되면 싱할라어만 국어로 인정하는 '싱할라 온리' 법이 통과되자, 이에 반발하는 타밀족과 좌파 급진주의자들이 부당하다고 반발하기 시작했다.
-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타밀족의 항의와 싱할라족 정부의 진압이 교차되며 갈등이 깊어졌다. 1972년에는 타밀족의 대학 입학을 제한하는 법이 제정되었으며, 1977년과 1981년에는 싱할라족에 의한 타밀족 학살 사건이 일어난다. 두 민족 간의 불신과 적대감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스리랑카 정부는 비밀 조직을 동원해 반체제 인물들에 대한 살인, 납치, 고문 등 인권 침해 행위를 자행했다. 1983년 타밀 분리주의자들이 조직한 반군이 스리랑카 북동부에 타밀족 독립국가를 세우자고 주장하면서 스리랑카 정부와 극단적인 대립을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2009년 반군 지도자 프라바카란이 사망할 때까지 25년 동안 이어진 스리랑카 내전이다.
-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의 작가 세한 카루나틸라카는 스리랑카 제1차 내전 시기인 1983년부터 1990년까지 실제 발생한 주요 사건들 속에 카메라를 든 주인공 '말리 알메이다'를 던져 넣는다. 산발적으로 터지는 테러가 어떻게 발전할지, 전투가 어디서 얼마나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는지, 앞으로 25년간 이 나라가 얼마나 잔혹하고 비극적인 전쟁에 휘말리게 될지 내다볼 수 없던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로.
- 소설의 또 하나의 배경은 콜롬보의 '중간계'이다. 제국주의 시대부터 머무는 유령, 자살자, 관광객, 폭동과 테러에 억울하게 목숨을 읽은 이름 없는 유령이 배회하는 곳. 분홍색 사리를 입은 타밀족 변호사 유령은 자신이 살해당하는 순간 사진을 찍은 말리를 만나자 복수하려 든다. 그는 담배를 사러 가는 길에 버스정류장을 지나가다가 횃불을 든 싱할라족 폭도를 만나 불에 타 죽었다.
그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바로 내전의 신호탄으로 기록된 1983년 폭동이다.
- 1983년 7월 23일 밤, 타밀족 무장단체인 '타밀 엘람 호랑이 해방군(LTTE)'이 스리랑카 북부의 자프나 근처에서 정부군을 급습, 13명의 군인이 사망하였다. 소요를 염려한 정부는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프레마다사 총리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장례식 장소를 자프나 현지가 아닌 콜롬보의 보렐라 카낱떠 공동묘지로 정한다. 이 결정으로 인해 장례식에 참여한 많은 인파가 폭도로 돌변하며, 카밀족 건물과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살해하기 시작했다. 포그롬(Pogrom)이라고 불리는 소수민족에 대한 박해는 콜롬보에서 캔디로, 다른 주요 도시로 번졌다. 타밀인권센터 집계에 따르면 '검은 7월'이라고 불리는 이 폭동에서 무려 5,638명이 사망하고 15만 명이 집을 잃었다.
- 생전에 말리는 '하필 안 좋은 곳에 있는 재주'가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우연히 1983년 폭동 현장을 지나던 그날 이후, 정부군과 반군, 외신에 이르기까지 취재가 필요한 모든 편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그의 직업이 되었다. 타밀 반군은 정부군의 무법성을 알려야 했기 때문에, 정부군은 반군의 잔학 행위를 선전해야 했기 때문에 그를 고용했다. 정부군은 코낄라이 학살을 자행했고, 인민해방전선을 분해한다는 명목으로 살해한 학생들을 수리야칸다에 암매장했다. 반군은 코낄라이, 켄트 팜과 달러 팜, 아누라다푸라에서 무고한 싱할라인을 학살했다. 말리는 그렇게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민간인들의 사진을 찍는다.
- 두 농장(켄트 팜과 달러 팜) 사이에 위치한 '마날 아루'는 스리랑카에서 중요한 요충지였다. 이 지역은 몰라티부와 트린코말리, 아누라다푸라 등 세 행정구역의 경계에 있었고, 특히 타밀족이 주로 거주하는 북부와 동부로 가는 유일한 관문이었다. 스리랑카 정부는 이 지역에 싱할라족을 이주시키겠다면 켄트 팜과 달러 팜에 싱할라 교도소 수감자와 가족을 수용했다. 그 과정에서 그 지역에서 살던 타밀족들이 떠나라는 협박을 받았고, 교도소 직원과 수감자들에 의해 강간과 같은 중범죄도 발생했다. 1984년 11월 30일 밤, 타밀 반군은 두 농장에 군인을 보내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민간인 사망자는 65명, 켄트 팜과 달러 팜 학살은 스리랑카 내전 초기 타밀 반군이 싱할라 민간인에 대해 저지른 최초의 학살 사례로 알려지고 있다.
- 수십 년간 계속된 소수민족 박해와 저항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테러, 선악의 딱지를 어느 한쪽에 붙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책의 주인공 말리 알메이다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지만 생전의 기억은 파편처럼 조각나 있다. 자신이 왜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찍은 사진들이 죽음과 함께 묻혀버리지 않도록 어떻게든 공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을 느끼지만, 정작 그 사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조차 희미하다. 한편 지상에서는 1983년 폭동의 진상을 담은 말리의 사진을 정부와 타밀족 모두가 쫓는다.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타밀족 인권운동가와 정부의 개입 사실을 은폐하려는 유력 정치인의 틈바구니에서, 말리의 영혼 또한 사진을 담은 상자를 쫓아 흘러간다. 빛으로 들어가 다음 생으로 넘어가기까지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달이 일곱 번 질 때까지 그는 생전에 남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