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K고 체육관
검은 도복의 사범, 흰색은 동수.
검은 쪽이 손목을 치며 흐르듯 지나간다.
아잇-싸,
유효!
손목이 아픈 몸짓과 함께 사범을 본다.
“다시!
동수의 죽도가 중단을 겨눈다. 죽도를 머리 위로 치켜든 사범.
깊은 들숨을 쉬며 머리를 노리는 동수.
도약 직전의 기세가 뒤꿈치에서 죽도 끝으로 이어진다.
지금...! 바닥을 찬다.
내딛은 발바닥이 마루를 타앙 구르는 순간, 죽도 끝도 따악 꽂힌다.
카아앗,
천장에 메아리치는 기합.
돌격의 여세로 순식간에 대여섯 걸음 연달아 내닫는다.
사범은 제 자리에 그냥 서 있다. 유효.
다시!
맞댄 죽도를 탁 친다.
깐에는 재껴볼 요량, 하지만 꿈쩍도 않는다. 철봉 같다.
대번에 쏟아지는 역공.
머리, 허리, 머리, 손목, 또 손목! 유효 유효 유효...
이런..., 막아지지가 않는다.
물러서도 자석에 쇠못처럼 찰싹 붙는다.
“공격해, 공격, 공격.
밀면 튕겨난다. 다급하다. 마구 휘두른다.
하지만 튕겨나며 두들겨 맞기만 한다.
“움직여! 뛰란 말이야.”
눈앞이 어지럽다.
여기까지.
스윽 올라가다 중단에 탁 서는 사범의 죽도. 대련 끝.
마루가 돈다. 반짝이도 보인다.
머리 수건으로 닦아도 끝없이 솟는 땀.
이윽고 빙빙 돌던 농구대가 멈춘다.
몰래 엄지를 쳐든 문세가 보인다.
손뼉을 쳐 부원들을 모으는 반장.
오늘 연습 끝.
정렬해 사범께 절한다.
호구를 벗자마자 냅다 달리는 소년들.
텅 빈 수돗가.
쏟아지는 물살에 머리를 디민다. 도복을 벗고 뒤집어쓴다.
부르르 떤다.
땀에 젖은 도복과 팬티를 빨아 넌 그들은 계단에 철퍼덕 앉는다.
나, 문세, 석로.
벌거숭이 소년들의 풋풋한 육향.
넉넉한 고목나무 그늘.
구름 봉우리들이 분홍으로 서서히 물들더니 이내 타오르며
선홍빛 파노라마를 펼쳐보인다.
30년 후, 캄차카의 동수)
빅 죠,
이곳 툰드라의 즐거움은 사우나야.
추위 곡에서 일한 피로를 사우나에서 녹인 후 찬바람을 맞아보게.
상쾌하지.
하지만 그건 격한 운동에 비할 바는 못돼.
마지막 땀 한 방울까지 짜내고 볕에 말린 빨래처럼 보송보송 해지는 그 느낌.
진정한 즐거움이지.
학교 앞 만두집.
팥빙수를 게걸스레 먹는 소년들.
“휴우 살겠다. 갈증이 이제야 좀 가신다.
“물은 아무리 마셔도 그렇더라. 역시 빙수야.
“와, 급하게 먹었더니 얼었다.
얼얼한 목을 만지던 소년들 시선이 만두로 쏠린다.
주머니를 뒤지는 동수,
하지만 달랑 버스표 두 장... 쩝
“아줌마, 만두 삼인 분."
석로다. 아부하듯 웃는 동수.
여드름 난 우락부락도 웃으면 애교스럽다.
“방학 때 뭐 하냐?
“모친 가라사대 산삼이랑 고3은 내돌리는 게 아니래.
“혹시나 했지. 니넨 진보파니까. 그 연세에 대학은 대단하신 거잖아?
갈 데는 정했냐?
“응, 해양대학.
“해야앙 대하아악?”
접시로 뻗으려던 손이 멈칫 한다.
“어딨는데?
“부산 앞 바다, 섬이래.
둘은 신기한 동물 보듯 동수를 뚫어져라 본다.
“짜식들 미남 첨 보냐? 야, 일인분만 더 먹자 응.
“좋아 좋아, 그게 뭐 하는 덴지나 읊어봐.
“선원 양성소야. 군대는 면제, 국비로 재워주고 먹여준대.
“그럼 사관학교 같은 거네?
“그렇지. 상선사관학교인 셈이야.
“집엔 얘기한 거냐?
“아직, 그치만 승낙하실 거야. 아무 대학이나 붙기만 한다면.
서교농장 1968년
김 교수, 중구, 종문, 회사원 차림의 청자. 나.
신문 제목 “이스라엘 압도적 승리, 6일 전쟁"
“이거 참 극적이다.
“엑소더스 보니까 걔들 생존의지 정말 처절하더라.
그런 사람들하고 붙었으니,,,.
“하지만 결국은 국력 대결일텐데, 십억 무슬림을 과연 당할 수 있을까?
“왜 하필 그런데다 세웠대?
어차피 새 나란데 좀 나은 곳으로 고르지.
“구약의 땅 아니면 의미가 없으니까.
“어차피 분쟁은 이어지겠지. 근데 무슬림들은 아직 스스로의 힘을 잘 모르고 있어.
그걸 깨닫는 날이면 세상이 뒤집어 질텐데.
“그게 뭔데요?
“원유
“원유?
“가격인상이지. 록펠러가 대표하는 7 Sisters의 중동의존도는 절대적이야.
미국이 계속 이스라엘만 감싸기는 어렵지.
“무슬림들이 단결할까요? 무협지처럼 은원이 얼키고 설킨 사이잖아요?
“신앙의 적 앞에서는 다를 거야.
게다가 야마니 등 유학파들이 집권하면 더 이상 족장 수준은 아니지.
“매일 뽑는 원유가 백만 바렐이 넘으니 일단 올리면...
중동은 달러에 파묻힐 거야.
“그걸로 뭘 할까?
“근대화? 국토 개발?
“모르긴 몰라도 그 비슷한 일들을 하지 않을까?
“결국 토목건설 분야 일거리들이 크게 터질 거다?
(일동, 놀란 표정)
"교수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신문기사만으로 지구 반대쪽 상황을 예측해내십니까?
(능글 맞은 미소.)
"자네들, 인문지리학을 우습게 보지말라구.
“진짜로 산부인과에서 전화...
(종문의 입을 막는 중구)
" 짜식이 어따 대고... .
영문을 몰라 뻥한 김 교수, 웃음을 참는 김 청자.
“저녁 다 됐어요. 어, 김 교수님 오셨습니까?"
꾸뻑 하는 동수.
"난 보이지두 않지.
(쥐어박는 시늉을 하는 청자)
"쪼끄만 게 벌써부터 여자 친구나 챙기구,
김 교수 따라온 연희를 끌고 아까 사라졌던 동수다.
“연희는 진즉 부엌에서 일해, 누나도 바쁜 엄마나 좀 도와주지.
‘바쁜 엄마‘를 내세운 반격에 머쓱해진다.
친구들은 아내만 보면 늘 미안해서 쩔쩔 맨다.
그래서 아내 보좌역인 동수에게도 한몫 접어준다.
식당.
연희 옆에 앉는 동수.
“아줌마, 여기 수저.
(인상 쓴다.)
"자꾸 아줌마라 그럴래?
누나라 하라고 내가 그랬니? 안 그랬니?
“하지만 아버지 친구 분이신데...
“말이 많아, 쪼끄만 게
(주먹을 쳐든다.)
(움츠리며)
"알았어요. 누나"
킬킬대는 친구들
나는 아까 화제를 이어갔다.
“6일 전쟁이 토목 공사로 이어진다...! 대단하십니다,
이 시점에서 그런 예측을 한 사람이 과연 또 있을까?.
"이건 기회야. 그 기회를 잡아야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눈을 반짝이는 친구들.
“건설 회사 만들자는 얘기야.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구!
내가 바로 그 경험자야.
그 보상이 얼마나 크다는 것까지 경험해 본 ...
감탄하는 친구들
“역시...! 우리랑은 스케일이 달라.
하지만... 무슨 재주로 건설 회사를?
“우리 잘하는 거 있잖아, 조사해서 짜깁기.
“그래. 회사 그거 별 거 아냐.
진짜 중요한 건 사업 Item인데 교수님이 지금 짚어주셨잖아?
사업의 핵심이 정립된 거야.
“그치만... 우린 건설의 건 자도 모르는데---
“그러니 조사해보자는 거 아냐.
도서실, 자료를 뒤지는 중구, 종문, 청자.
건설 협회. 여 직원에게 회사설립 양식과 자료를 받는 나.
“자료들 다 봤지?
“거, 사업계획서부터 막히던데. 아, 뭘 알아야 면장을 하지.
“설립신청서에 공사실적을 적으라던데... 난 도무지 이해가 안 돼.
신규회사 만들려는 사람보고 실적이라니?
“다른 회사들 걸 좀 베끼면 안 될까?
“그걸 어디서?
“건설협회, 내가 해 볼게.
일주일 후)
“하 선배 수완은 알아줘야해. 협회 파일을 아예 통째 가져올 줄이야.
“난 꿈도 못 꿀 일이야.
“가져오면 뭐해.
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던데.
“여하튼 준비할 것들은 이제 대충 알겠는데...
꿰어 맞춘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맞아. 공사실적에 인력. 시방서도 우리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어.
“이거 어케야 되지?
“나도 건설회사 다니지만 전문분야는 근처에도 못가.
건축사, 토목기사들끼리 쑥덕대는데 들어봐도 모르겠고,
“당연한 거 아냐? 그렇게 뚝딱 된다면 그게 무슨 전문 집단이겠어?
그 수준에 도달할 방법을 고민해봐야지.
“교육을 받아보면?
“건축사, 토목기사 문제집 보면 그런 말 못할 거야.
게다가 우리 몫은 경영이지 자격증은 아니잖아..
“와아... 대단해 청자씨, 회사생활 1년에 괄목상대 해야겠네.
“그거, 칭찬? 네 입에서 나오면 어쩐지 아닌 거 같아.
“아냐. 진심이야
묵묵히 듣던 내가 뚜벅 말했다.
“자료 수집은 여기까지,
그만 접고 다들 취직 준비나 하자.
“그거야 어차피 해야겠지만, 왜 이 대목에서 갑자기...?
“제대로 공부하자는 거야.
이런 거 제대로 배울만한 직장에 취직해 돈 벌며 배우면 좋잖아.
실전을 통해 실력을 다진 후 창업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봐.
“그거 요원한 얘기네.
졸업하고 3~4년이면... 빨라야 1970년대 초반?
제대해 3학년에 복학한 중구다.
“무협지 안 봤어?
군자의 복수는 10년을 운운... 하는 대사 있잖아.
여하튼 이 상황에서는 돌아가는 게 오히려 빠른 길이야.
5년, 그거 금방이다.
그리고 주위를 한번 둘러봐.
월급쟁이 임원되면 성공이라는 천편일율적인 사고방식,.
근데 우린 더 나은 비전이 있잖아?
우리만큼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사회로 나서는 사람, 아마 드물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