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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한 설 야
1
그가 S형무소에 있을 때 일이다.
아내에게서 오래간만에 편지가 왔다. 이 안에서는 편지 받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의 하나다.
아내는 두 달 전에 한 번 면회 왔다 갔다. 절대 면회 올 필요가 없다고 미리 편지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반가운 마음보다도 거북히 불쾌한 생각이 났다. 위로 칠십을 바라보는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아래로 세 어린 자식을 거느린 가난한 아내가 백 리 길을 바쁜 걸음으로 허우적거리며 찾아온 것을 그는 반가움으로써 대할 수 없었다.
더욱이 두 살 난 어린것을 업고 온 것과 와보니 그대로 업고 들어올 수가 없어서 형무소 앞 사식 집에 앙탈을 하는 어린애를 맡겨두고 혼자 들어온 것을 안 때에 남편의 불쾌는 거의 노염으로 변하여졌다.
집안 형편을 묻고 자기는 아무 염려가 없다는 말을 간단히 말한 후 그는 별말이 없었다. 아내가 “밖에서 고생하던 체중은 어떤가, 거처는 어떤가, 식사는 어떤가!” 하고 세속 아내의 예사루운 물음을 보낼 때 그는 모두 아무 걱정이 없다는 뜻을 약간 흘긴 눈과 강정(剛情)을 실은 턱으로 표시했을 뿐이다.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온 돈이 한 2원 50전 남았으니 그만치 사식을 차입 시키겠다는 것을 다짜고짜 막아버렸다.
아내가 등허리에 어린애를 업고 가슴에 섭섭한 생각 하나를 더 처달아가지고 비뚜덕비뚜덕 걸어갈 것을 생각하니 공연히 찾아와서 피차 불쾌한 생각만 가지게 한 아내가 미워나기도 하였다.
그 후 아내는 한동안 편지가 없었다.
성가시게 속스러운 인정이 많은 아내가 자기의 편지를 받고서도 회답을 주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톡톡히 노염이 났던 모양이다.
하나 그렇게 값싼 인정이 많은 아내가 노여움이 생기고 그리하여 편지까지 주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감정을 일으켜주는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일종의 호젓한 감상을 일으켜주는 것이었다.
사람은 분노와 불만과 불평을 가질 줄 알아야 하며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자기를 누르고 업신여기는 그것에 대하여 반항할 줄을 알아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이윽고 움직여났던 것이다.
그는 이때까지 발견하지 못한 좋은 한 모퉁이를 그 아내에게서 찾아낸 것 같았다.
남편의 맹목적인 사랑을 바라던 아내가 아니냐. ‘남편은 아내가 지은 밥이라야 배불리 먹는다’라고 생각하던 아내가 아니냐. ‘남이야 어찌되었든 자기의 남편만이 지금의 곤경을 모면했으면 그만이다’ 하고 자기에게 거듭 그 뜻을 편지하던 아내가 아니냐?
하나 편지가 끊어진 지 달포가 넘고 두 달이 잡히는 사이에 남편의 걱정은 오는 체 없이 쌓였다.
‘늙은 어머니나 혹은 잔병꾸러기 자식들이 이번은 필시 한물 곯아떨어지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니 미상불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죽는 것은 죽는다 하더라도 이 안에 있을 동안에는 그런 일만은 없었으면 하고 그는 바랐다.
극도의 빈곤 속에서 가시덤불을 헤쳐온 그는 가난과 수난을 같이해온 가족에 대하여 저도 모르는 사이에 속 깊은 애착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는 중에 편지를 받고 보니 불안한 마음과 반가운 생각이 한데 얽혀서 솔깃한 긴장으로 더위잡혔다.
그는 편지를 보아 내려가는 사이에 집안에 큰 탈이 없는 것은 알게 되었다. 허나 그 편지에 쓰인 기분은 이상하게 첨부터 따분한 느낌을 주었다. 무슨 사과나 하는 듯한 문구가 거푸 나왔다. 그는 무언지 모르게 어리둥절해졌다.
편지를 다 보고 난 때에야 그는 그 까닭을 알 수가 있었다.
아내는 임신한 것이었다.
그는 다른 동무보다 거의 1년이나 늦게 들어왔다. 그사이 집에 있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나 극도의 빈궁 때문에 이따금 들러보지 않을 수 없는 딱한 사정이 생겨서 갗은 밤중에 몇 번 집에 들었던 일이 있다.
세 아이의 어머니인 자식 잘 낳는 아내는 벌써 달포 전부터 임신인 줄을 알게 되었으나 그렇다고 곧 알리기도 짐짓해서 이때껏 주저해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이건만 가난 때문에 애낳이를 무슨 죄와 같이나 생각하는 것이다. 잔칫집 같은 데 가면 자식을 꼬집어가며 더 먹이지 못해 하는 아내는 먹여야 할 길이 아득한 그 속에서 또 자식을 낳는다는 것을 자식에게나 남편에게 대하여 한가지로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2
그가 다시 세상에 나온 때에는 아내는 만삭이 가까워서였다.
“저런!……”
그는 아내의 부른 배를 보고 우선 놀랐다. 엎친 데 덮치기로 하나도 아니요 쌍둥이나 털썩 낳아놓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났다. 그만치 아내의 배는 몹시 불렀던 것이다.
“왜 띠 같은 것을 허리에 감아두지 않소? 속담에 아이는 적게 낳아서 크게 기르란 말이 있지 않소…….”
그는 일찍이 들은 말이 있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걸 누가 알았어야지요.”
“온, 여자 되고 그런 것도 모른담. 내가 다 아는 걸…….”
하나 때는 이미 늦었다.
아내는 여전히 선 일 앉은 일에 무거운 몸을 골몰히 치다르고 있다. 그럴 때마다 몸을 뒤로 젖혀서 배는 더 불러 보인다. 남편은 그 염려되는 아내의 무거운 몸을 볼 때마다 위정 아이를 수월히 낳는 촌 아낙네들을 생각한다. 촌에 가면 밥을 짓다가 낳았다는 부엌돌이, 뒷간에서 낳았다는 쨍냥쇠, 쌀 푸러 갔다가 낳았다는 노고리…… 이런 생각을 한다.
해산기가 가까워 왔다.
아내는 하루 낮에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남편)는 얼마간 잡풍이 덜한 윗방을 대수 치워내고 아내를 그 방에 눕게 하였다. 자기의 모자며 양복 등속은 모조리 정주로 내어갔다.
하나 아내는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일어나 정주로 나왔다. 배 아픈 증세가 그만 지나가버렸다는 것이다. 1분 동안에 한 번씩 아픔이 몰아쳐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니 아직 해산하기에는 시기가 이른 모양이다. 그 후 한 닷새 동안 이렇게 가끔 느린 아픔이 왔다. 어떤 친구의 말이 영양이 나쁘고 따라서 건강이 좋지 못해서 진통의 정도가 그같이 약한 것이니 곁에서 누구든지 진통을 도와주는 것이 좋다고 하나 아내는 그것을 꺼리고 또 그도 그리 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하룻날 석양부터 아내는 몸져 자리에 누워버렸다. 그러더니 밤이 되어서는 아픔이 꼬리를 물고 맴을 돌았다. 아내의 얼굴은 상기하고 이따금 이마에서 선땀이 흐른다. 아내는 사람을 꺼리는 대신 자기 혼자서 이를 악물고 배에 힘을 준다. 몹시 괴로운 중에서도 사람의 살려는 본능 때문인지 또는 한 생명을 세상에 보내는 노력 때문인지 아내의 얼굴은 여느 때보다 한결 예뻐지는 때가 있다. 아내는 견디다가 못해서 이따금 머리를 쳐들고 비스듬히 일어난다.
“매우 괴로워?”
그는 아내의 머리를 짚으려 하였다.
늙은 어머니는 몹시 당황해난 듯이 드설레며 힘줄이 불끈불끈 솟은 마른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아니에요.”
아내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견딜 수 없는 듯이 문턱을 붙들고 온 몸을 엄습하는 아픔을 얼른 몰아내려고 아래로 아래로 지그시 힘을 주고 있다.
밤은 깊어간다.
아내의 아픔은 급한 파도와 같이 주름을 잡으며 연달아 몰아친다. 무거운 신음 소리가 묵철같이 흐른다.
어머니도 남편도 몹시 당황해났다. 늙은 어머니는 어쩔 바를 모르며 뭐라고 입속말을 중얼거리며 얼빠진 사람같이 서둔다. 그는 이 출생의 괴로움을 차라리 처참히 생각하였다. 너무도 긴 고통과 싸우고 있는 아내가 일찍이 생각지 못하던 다할 줄 모르는 정력을 가진 사람같이도 보였다. 동시에 그 정력이 끝까지 계속되기를 바랐다. 아내를 도와줄 가장 좋은 방법이 자기에게 있었으면 하기도 하였다. 그러니만치 그의 밤은 몹시 조급해났다.
아내는 별안간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음력 2월의 밤은 아직 쌀쌀하다. 하나 아내는 조금도 그런 줄을 몰랐다. 땀발이 완전히는 걷어지지 않았다. 아내는 헛갑 소나뭇단에 한참 드러누워 있었다. 아내는 얼마 후에 다시 방에 들어와 누웠다. 괴로움이 짐짓 물러간 듯하였다. 밤은 몹시 고요해졌다.
3
“아― 앙, 아― 앙.”
하는 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순간의 침묵을 깨치고 야무지게 들려온다. 그는 그때 정주에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소스라쳐 일어섰다. 어리둥절한 가운에서 한 가지 생각이 번득 솟아 든 것이다.
지금 출생한 아이가 사내인지 계집 애인지드 물을 사이 없이 그는 문밖으로 뛰어나왔다.
음력 열아흐렛날 달이 엷은 봄 구름에 가리어서 희미한 빛을 대지에 던지고 있다. 좁은 골목길을 요리조리 빠져서 넓은 행길에 나섰을 때에 몽롱한 제 그림자가 가끔 발 앞에 비추어진다.
거리에는 인기척이 없다. 그와 그의 그림자가 바쁘게 반달음질을 칠 뿐이다. 출옥 후 아직 건강이 채 회복되지 못하고 또 입때 달음질을 쳐 다녀본 일이 없는 그였지만 숨찬 것도 깨닫지 못하였다.
그는 유리창이 달린 가겟집 앞에 이를 때마다 멈칫하고 그 안벽을 들여다보았다. 행길가 은행 길가였지만 시계가 달린 가게라고는 아직 하나도 없다.
저녁 후 바로 아까 오줌을 누었으니 인제 자정이 되었을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어찌하면 벌써 새날이 왔을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아이가 난 시간을 똑똑히 알아두고 싶었으나 시계를 가지지 않았으므로 거리로 나왔던 것이다.
맨 번화한 거리에 가까이 왔을 때에야 그는 한 가겟집에서 시계를 발견하였다.
“11시 50분!…….”
하고 그는 이윽히 생각하였다. 그 시계가 틀리지 않는다면 아이의 출산은 바로 오늘일 것이다. 하나 시계란 틀리지 않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는 다시 달음질을 쳤다. 맨 번화한 D거리를……
우편국 안에 성큼 들어섰을 때에 그는
“11시 55분!”
하고 차근히 시계의 바늘을 읽었다. 그러며 한편으로는 집에서 예까지 오는 사이의 시간을 추산해보았다. 대략 20분이나 걸렸을 것이다……
“2월 19일 오후 11시 35분!”
아이는 어김없이 이날에 났던 것이다. 그는 다시 반달음질을 쳐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디 갔다 오니?”
찰밥과 미역국을 끓이던 어머니가 놀라며 이렇게 물었으나 그 얼굴에는 안심하는 빛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
“우편국에요…….”
“우편국에는 왜?”
“시간을 알아뒤야지요.”
“시간은 알아서 뭘 하게…… 계집앤데…….”
하는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그는 적이 놀랐다. ‘계집애는 시간도 알아둘 필요가 없는가?’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래도 정밤중인데 열아흐렛날인지 스무날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요.”
“열 아흐렛날이지 뭐……”
어머니는 첫닭 울지 않으면 새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묵은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책책 내리 세 아들을 둔 그는 딸을 낳았다는 섭섭한 생각을 조금도 가지지 않았다. 하나 어머니의 말에서 그는 암만해도 꺼리지 않는 야릇한 생각을 받았다.
그 이튿날 아첨을 먹으며 그는 웃는 낯으로 아내와 어머니에게 다시 물었다.
“계집애는 난 시간을 알 필요가 없는가요?”
그는 남녀가 약혼할 때에 여자의 사주를 남자의 집으로 가져가는 종래의 풍속을 생각하여보고 또 그렇다면 여자도 생시(生時)를 의당히 알아둬야 할 것이라고도 생각했으나 그보다도 여자이기 때문에 생시를 알아둘 필요가 없다는 것은 이 어인 잘못된 생각일까? 하는 의문이 더 컸다.
아내도 어머니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어느 때쯤 낳았다는 것만 알면 고만이지요.”
하는 아내의 얼굴에는 괴로움이 지나간 뒤의 유쾌한 빛이 떠 있다.
“온, 그럴 수가 있는가?”
그의 의문은 불평으로 변하였다.
아내는 한때 여성단체에 관계하여 여권을 부르짖던 사람이다.
아내가 아직 시집오기 전 어느 때에 연단에 서서 이런 말을 외치던 것을 그는 여태 기억하고 있다.
―어떤 서양 사람이 어떤 조선 사람의 가정을 방문하였을 때에 아버지 되던 사람에게 자식이 몇이냐고 물은 일이 있다. 했더니 아버지 되는 사람은 자식이 셋이라고 대답하였다. 하나 그 서양 사람이 보는 바로는 그 집에는 아이가 모두 넷이 있었다. 해서 “한 아이는 어찌된 거냐? 얻어다 기르는 아이냐?” 하고 물었다. 한즉 아버지는 아주 심상한 얼굴로 한 아이는 계집애라고 대답하였다.
아내는 이런 의미의 말을 해놓고는 다시 성색(聲色)을 가다듬어 가지고 높게 외쳤다.
“가장 사랑한다는 부모로서 이러한 관념을 가지고 있으니 어찌 옳은 생각이라고 하겠습니까? 이것은 물론 사회가 여자에게 보내는 태도가 가정에 반영된 것이라고 하겠지만 그러나 참말 새 시대의 양심을 가진 사람은 이러한 관념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사회의 한 무리의 인간 층을 인생의 테 밖에다 두려는 생각과 같이 이런 그릇된 생각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철두철미 뽑아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물론 오래도록 피할 수 없는 토대 위에서 뿌리박힌 생각이니만치 쉽사리 없어지지 않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것을 고치는 것은 우리들의 거룩한 의무인 동시에 또한 권리입니다. 이것은 물론 우리들 여자만이 부르짖을 것이 아닙니다. 남자나 여자를 함께 인간으로 보고 또 그러한 당연한 관념을 낳을 토대를 쌓으랴는 양심 있는 인간이 손과 소리를 한가지로 맞추어가며 끝까지 이루어야 할 문제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하나 오늘의 아내는 어떠한가? 자기의 딸을 스스로 아들과 차별해서 생각하지 않는가? 가정과 가정에 불어오는 사회의 거친 바람에 아내는 어느새 이만큼 변하였다. 그릇된 생각을 스스로 그릇된 생각이라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남편)는 이때에 차라리 인간을 휩쓸고 누르는 사회의 커다란 힘을 다시금 미워하였다.
4
그는 네 자식 중에서 딸을 제일 사랑한다.
“아버지는 딸을 사랑하고 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한다.”
라고 아내는 인간의 본능인 성 (性) 문제와 관련해가지고 이렇게 말한다. 사실 아내는 아들을 더 사랑한다. 늙은 어머니는 맏손자를 제일 사랑한다. 아내도 좀더 나이가 먹으면 맏아들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다.
“아들은 많고 딸은 적으니까 아버지는 딸을 더 사랑하는 게지.”
아내는 이렇게도 말한다.
하나 그는 그 어느 의견에도 반대를 해왔다. 아내나 어머니의 말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가 가지는 생각은 그것과는 같지 않았다. 아들이라든가 딸이라든가 하는 생각을 한 걸음 초월한 생각이 움직이고 있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딸에게 보내어지는 아내와 사회의 차별관에 대하여 그는 분개하고 있다.
딸은 비교적 순조로 잘 자란다. 그가 공장에 취직한 관계로 예전처럼 끼니를 떨구는 일이 없어서 그런지 아내도 건강이 좋고 따라서 젖먹이 딸도 매우 원기가 좋은 편이다. 울음소리도 한결 여무지다. 배곯은 때에 젖을 먹이지 않으면 영악을 부리고 발버둥을 친다. 그것이 매우 기운차 보인다.
아들놈들도 매우 씩씩해졌다. 따라서 그만치 장난이 더 세차졌다. 성냥통을 밟아 납작여놓기도 하고 갓 입은 옷을 가시철에 걸어서 찍찍 꿰여가지고 들어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눈을 붉히고 소래기를 지르나 아이들 장난은 여전하다.
어느 날 셋째 놈이 방바닥에 잉크 한 병을 죄다 엎질러놓았다.
“요놈의 새끼!”
하고 그는 어린아이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리고는 더 혼을 떼어주려고 아이의 뒤 허리춤을 감아쥐고 들악에 나가서 김칫독 파낸 구덩이에 처박을 듯이 눈을 부라리며 으른다.
“글쎄, 정신이 있소 없소? 그만큼 때리고도 뭣이 부족해서…….”
아내가 젖먹이를 활 내던지고 다 쫓아나와서 셋째 놈을 빼앗아간다.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점점 높게 들려온다. 그러더니 나중은 화침이나 하듯이 빽빽 악을 써 울어댄다.
“앨 저렇게 팽개쳐놓구 뭘 허구 있어?”
그는 방으로 들어오며 밖에서 아들을 달래고 있는 아내에게 쏘아붙이며 아기를 집어 들었다. 아기의 앙탈은 좀 짐짓해졌다.
아내는 아직도 입이 삐죽해가지고 들어와서 아이에게 대수 젖을 먹이더니 다시 철썩 방에다 내려누인다. 하더니 아기는 또 빽빽 울기 시작한다. 턱에 닿는 옷깃을 쫓아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고사리 같은 주먹과 꼬부장한 다리를 내저으며 악을 쓴다.
그래도 아내는 집어 들려는 동정이 없다. 아기는 발을 톡톡 차기 시작한다. 그러는 때마다 몸이 조금씩 솟는다. 하더니 나중은 아주 악이 나서 발을 탁 내차는 바람에 몸이 방문 쪽으로 내솟는다. 납작한 베개가 목 아래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연거푸 앙탈을 하는 통에 아기의 몸은 한 뼘이나 앞으로 움직이고 베개는 그 허리 밑에 깔렸다.
그는 부지중 아기를 집어 들었다. 아직 핏덩이 같은 어린것의 놀라운 힘을 그는 첨으로 보았다. 그것이 무언지 모르게 그에게도 한 가지 힘을 던져주었다. 그는 어린것의 가슴에서 잊을 수 없는 싹트는 가여운 반항을 읽었다.
그는 아기를 팔에 껴안고 둥실둥실 추슬러주었다.
5
은숙(딸)은 벌써 다섯 살이 되었다. 그(아버지)는 언제까지든지 어린것의 조그만 반항을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커가는 것을 무한히 바라고 또 기뻐한다. 딸도 장차 사회의 한 사람이 될 생명이니까 한 가정 안에서보다 훨씬 크고 거친 세상의 파도에 대하여 기가 꺾이지 않기를 아버지는 깊이 바라는 것이었다.
여자는 지금의 보는 바로는 남자보다 약한 것이 사실이다. 셰익스피어가 햄릿의 입을 빌려 말한 ‘약한 자여, 너의 자(字)는 여자다’ 라고 한 말은 널리 세속에 퍼져 있다. 하나 이것은 영구불변의 운명일까? 그는 이런 의문이 날 때마다 그 의문에 범추지 않고 더 나아가서 남자보다 여자에게 보내어지는 보다 무겁고 많은 인습과 역사와 법률과 정치와 경제의 중압을 생각한다. 여자뿐 아니라 근대의 절름발이 문명이 인류 전체의 한쪽 다리를 옛날 중국 여자의 발(전족)과 같이 줄여 붙여놓았거든 그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진 여자에의 가중한 짐 이야 말하여 무엇하랴!
그는 차라리 갑갑한 생각이 났다. 자기의 생각이나 딸에 대한 사랑만이 홀로 그 짐을 가볍게 해주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 이런 생각이 거의 부자연하게 딸에 대한 편벽한 사랑으로 변하여진다.
“그까짓 갓난애 (계집애)를…….”
딸을 더 사랑하는 데 대하여 불평이 있는 아내와 어머니는 무슨 기회가 오는 때마다 씩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갓난애를 그렇게 양해서 뭣에 쓰겠소. 말괄량이나 됐지……”
이렇게도 말한다.
하나 이 쾌활하고 말솜씨 좋은 딸을 그는 그지없이 사랑한다.
어느 날 어느 소년소녀의 잡지 편집을 보는 S라는 친구가 찾아왔다. 워낙 어린애를 좋아하는 S는 곧 그의 딸과 가까워졌다. 하나 이 씩씩한 딸은 따분한 놀음을 오래 계속하기에는 너무도 날파람이 세다. 곧 말솜씨를 걸어보려고 하고 무슨 내기를 걸어보려고 한다.
이 동정을 안 S는 하룻날
“얘, 팔씨름 한번 해볼까?”
하고 기를 낚아보았다.
“응!”
하며 그의 딸은 얼굴에 밝은 웃음을 띠며 곧 S의 팔에 매어달렸다.
“어쿠, 꽤 세다.”
하며 S는 힘을 주어 팔을 내밀었다.
은숙은 얼굴이 질리도록 힘을 써가며 S의 팔을 꺾으려 하였다. 그러다가 발이 미끄러지며 S의 팔힘에 잔등을 내치고 넘어졌다. 그러나 곧 다시 일어났다.
“이눔!”
하고 S는 일부러 이눔이라고 부르면서 팔에 힘을 꽉 주어 팩 돌렸다. 그렇게 몇 번 거듭하는 통에 은숙은 그만 넘어져버렸다.
“이눔 졌지? 항복해……”
하며 S는 은숙의 몸을 꽉 누르고 있다.
“아, 안 졌어·…‥”
은숙은 얼굴이 빨개서 낑낑거리며 빠져나려고 힘을 쓴다.
“항복 안 헐 테야?”
“안 해……”
“이눔 항복 안 허면 이렇게 헐 테다.”
하고 S는 노끈으로 팔을 동여매고 한참 실히 그대로 누르고 있었다.
“얘 누가 이겼니?”
하고 아버지가 이렇게 물을 때에 은숙은 ‘으앙’ 하고 끝끝내 울음이 터졌다. 하나 그러며 다시 기를 써 S를 차기 시작한다. 얽혀가지고서도 그리고 울면서도 은숙은 반항하고 있다.
하나 그 후에도 은숙은 S를 몹시 때렸다. S만 오면 펄쩍 매어달린다. S도 커가는 이 어린 혼이 그리운 듯이 이따금 찾아온다.
-끝-
2016년 7월 8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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