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산을 다녀 오면서 그 이웃한 화산을 알게 됐다.
이곳엔 ‘화산산성’이 있고, 기·종점인 회남리에 문화유적(보물 3점)이 있으며, ☞월간 산에서 가이드를 올려 놓았다.
‘화산산성(경북도기념물 제47호)’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된 산성이다.
조선 숙종 35년(1709)에 병마절도사 ‘윤숙(尹淑)’이 4문의 기초공사를 시작해 먼저 홍예문(虹霓門)을 세우고, 혜후와 두청 스님으로 하여금 군수물자를 비축해 두기 위해 군수사(軍需寺)를 짓게 했다.
성벽을 구축하던 중 심한 흉년으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윤숙마저 전라도 병마절도사로 전출되어 공사가 끝나버리고 말았다.
북문과 수구문 터는 축성을 시작했던 옛 모습 그대로 뚜렷하게 남아 있다.
화산(華山 828m)은 팔공지맥이 지나는 봉우리로서 영천시와 군위군의 경계.
‘교남지(嶠南誌)’ 신녕군 편에 ‘봉우리가 해바라기꽃(葵花 채화)과 같아 화산(花山)이라 하였다’고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현의 북쪽 3리에 있는 진산이다’라고 했으며, 옛 신녕현의 별칭이 화산(花山)으로 읍치는 신녕면 화성리였다.
<여지도서(의흥)>에는 ‘화산(華山)은 청송부 보현산에서 뻗어 나와 공산(팔공산)의 으뜸 줄기를 이룬다’고 기록해 산줄기의 근원까지 밝히고 있으니, 이가 곧 '팔공지맥'이다.
화산 일대 해발 700m 분지에 마을이 형성됐다.
이 마을은 ‘하늘 아래 첫 동네’로 ‘화산마을’로도 불린다.
화산을 중심으로 육군3사관학교 유격장이 들어서면서 마을 규모는 줄었고, 제한구역은 넓어졌다.
최근 이 마을에 풍차전망대 등 인프라가 구축되고, 한 귀촌인의 사연이 방영되면서 입소문을 타게 됐다.
원점인 갑현마을에는 임진왜란 때 영천성을 탈환한 의병장 권응수 장군(權應銖 1546~1608)을 기리는 경충사와 충훈각, 장군의 유적비가 있는 ‘권응수장군 유적(보물 제668호)’이 있고, ‘한광사(閑曠寺)’에는 ‘화남동 삼층석탑(보물 675호)’과 ‘화남동 석불좌상(보물 676호)’이 있다.
한광사는 대승불교법왕종의 총본산으로 신라 문무왕 때 의상스님이 창건하였다 하나 자세한 연혁은 전해지지 않는다.
'혈암산(559.2)'은 용(冗)자와 혈(穴)자를 혼동하여 생긴 이름으로 보인다.
지형도마다 '冗岩山'과 '穴岩山'으로 제각각이지만 네이버와 카카오맵에는 모두 '용암산'이다.
그도저도 아니면 '冗岩山'으로 쓰고 '혈암산'으로 읽었남?
산행코스: 권응수장군유적-한광사(석불좌상·삼층석탑)-팔공지맥-722.9m-하늘전망대-화북4리마을회관-풍차전망대)-화산산성북문-유격장위병소-팔공지맥합류-화산-임도-혈(용)암산-권응수장군유적(14km,6시간 20분)
궤적.
<산길샘>통계. 앱이 끊어지는 바람에 산길샘을 올렸는데, 산길샘은 오룩스맵보다 5%정도 거리가 더 나온다.
고도표.
<월간 산>
<참고>
미리 준비한 표지기. '용암산(冗岩山)'으로 적었다. * '冗(용)'자는 '宂(용)'자와 동자(同字)로서 '쓸데없을 용(冗·宂)자'다.
네비에 '권응수유적(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663)'을 입력하여 28번국도 굴다리 아래를 통과, 좁은 길을 300여m 올라와 유적지 앞에서 버스를 댔다.
버스에서 내라면 먼저 '영천복성비(永川復城碑)'와 마주하게 된다. '경상좌도의병대장화산군권응수영천복성비'
안으로 들어서면 좌측에 '충훈각(忠勳閣)'이 있고...
맞은편에 '권응수장군유적정화기념비'가 있다.
솟을삼문으로 들어가면...
3칸 팔작지붕의 경충사(景忠祠)가 있다.
살짝 문을 열고 묵념한 뒤 영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권응수장군유적을 벗어나 입구의 안내판을 카메라에 담는다.
붉은색 트랙은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로 네이버지도에도 트랙이 그어져 있지만 삼거리의 임도 입구에 철문이 닫혀있었다.
권응수장군유적 안내판과...
이정표.
갑현마을로 들어가며 커다란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산자락을 올려다 본다.
화남지 뚝방 아래 수로가 있는 곳에 정자도 있다.
능선으로 붙는 산길<월간산>은 수로 좌측 풀을 베어낸 길로 묘지로 통하는 길이다.
화남지 아래 정자 앞의 이정표.
화남지 위에 공사가 진행 중이다.
'T'자 갈림길에서 우측 한광사를 먼저 답사하기로 하였다.
삼거리의 이정표. 우측으로 고개를 드니 흰색법의를 걸친 부처님이 '명부전'위에 올라 계신다. 돌계단을 올라...
한광사 앞마당에 동·서로 삼층석탑이 있고, 그 뒤 '대적광전(大寂光殿)' 안엔 석불 좌상이 모셔져 있다.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이므로 이 일대가 신라시대의 절터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뒤의 연혁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는데, 조선시대에 폐사되었다가 1958년에 옛 절터에 새로이 중창하였다.
높이 2.7m로서 좌측이 서탑이고, 우측이 동탑이다.
아래층 기단 갑석(甲石)은 윗면에 경사가 있고 추녀에 반전(反轉)이 있으며 상면 중앙에 높직한 굄이 있고 그 위에 상층기단(上層基壇) 중석이 놓여 있다.
상층기단 중석은 각 면을 1매 판석(板石)으로 짰고, 각 면에는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가 있고 탱주(撑柱 : 받침기둥) 1주로써 양분하였는데, 그 중 1매석은 떨어져서 내부의 적심석(積心石)을 제거하여 공간을 만들고 영천 화남리 석조여래좌상(보물, 1980년 지정) 1구를 봉안하였으며, 떨어진 면석은 지면에 뉘어놓았다.<자료>
서탑 안내판.
동탑이다.
대적광전 안엔 '영천 화남리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석조여래좌상(보물 676호)은 원래 영천 화남리 폐사지의 삼층석탑 기단부 내에 있었다.
사찰이 폐사되고 법당이 없는 상태에서 석탑 기단의 면석이 떨어져나간 공간에 불상을 넣어 봉안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석탑 해체 과정에서 불상을 꺼내어 옛 사찰터에 중건된 한광사 뜰에 지은 보호각 안에 봉안하였다.
화남리 불상은 지권인을 취한 비로자나불로서 통견식 대의에 균일한 옷주름, 반듯하게 다듬어 직각으로 꺾인 무릎 등이 특징이다.
대좌는 불보살상과 사자상, 귀꽃 등이 조각된 팔각연화좌로 통일신라 9∼10세기 전형적인 양식이다.
마모가 심하지만 불상과 대좌의 특징들은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863년),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867년) 등 9세기에 유행했던 비로자나불과 유사하다.
그러나 화남리 석조여래좌상은 9세기 비로자나불상보다 더 도식적이고 반복적인 평행 옷주름 등에서 경북지역 비로자나불의 영향을 받은 10세기대에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한편 각이 진 무릎 표현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만큼 독특한데 무릎과 더불어 신체 측면, 뒷면 등의 직선적인 조형은 탑 내에 봉안하기 위한 용도의 여래상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자료인용>
산길은 질러가기 위하여 대적광전 뒤 석축으로 올라...
임도에 올라섰다. 이 임도는 나중에 화산과 혈암산 사이의 임도로 연결된다. 임도에서 내려다 보는 모습.
갑령으로 가기 위하여 임도를 따르다 아까 안내판의 빨간색 트랙인 듯한데, 철문이 닫혀져 있다.
닫힌 철문 아래 비포장 임도가 갑령으로 가는 길.
그 사이에 이정표(화산 2.7km)가 있다.
골짜기로 내려서는 길에서 눈을 드니 잘록한 안부가 보인다. 저기가 갑령이려니 하였으나 갑령으로 바로 올라붙지 못했다.
묵은 임도급 산길은...
'우영넘어못'을 지나면서...
계곡을 죄측 옆구리에 끼고 계속 오르게 된다.
고도를 차츰 높혀가면서 계곡은 점점 깊숙이 떨어졌고, 갑령으로 통하는 길을 유심히 살펴보지만 확신이 서지 않는다.
반면에 곧장 오르는 임도급 산길은 계속 따라오라고 손짓하듯 반듯하다.
그러나 그 길도 여기까지다. 이제 좌측 계곡으로 내려설 수밖에 없다.
계곡을 건너 가파른 길을 개척하여 오르다...
산짐승들이 다녔던 길을 비스듬히 따랐다. <뒤돌아 본 사진>
좌측으로 비스듬히 따르다 능선이 올려다 보이는 지점에서 또 한차례 산비탈과의 일진일퇴((一進一退)가 벌어진다.
그렇게 팔공지맥 능선에 올라섰다.
30여분 고개를 쳐박고 끈기를 시험하다 고개를 드니 하늘이 열려있다.
묵어가는 길은...
어느새 반듯하게 정비되어 있어 아까와 대비된다. "아하, 그렇구낭"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산길 인프라도 달라진 것.
그러니까 두지자체는 '경북 영천시'와 '대구광역시 군위군'이다.
군위군의 이정표도 새롭고...
해발 700여m의 '하늘 아래 첫동네'도 이색적이다.
차량 이동카페 앞에 데크전망대가 있어...
올라섰더니 이름하여 '하늘 전망대'다.
그 밑 바위에 서애 유성룡의 '옥정영원(玉井靈源)'이란 칠언절구가 새겨져 있다.
誰向華山欲問田(수향화산욕문전)/ 누가 이 화산에 밭을 일구려 하는가?
仙源從此有因緣(선원종차유인연)/ 신선의 근원은 여기에서 비롯된 인연이 있구나
諸君借我雲梯路(제군차아운제로)/ 여보시게 내게 구름사다리 빌려주시구려
玉井秋風採碧蓮(옥정추풍채벽연)/ 옥정에 가을바람 불면 푸른연을 캐리로다.
팔공지맥이 뻗어나가는 능선엔 풍력발전기가 여럿.
그 아래 풍차전망대를 당겨 보았더니...
희끄무레한 저곳(▽)을 돌아 우측으로 화남산성 북문을 향해야 한다.
마루금을 따라 내려서다 돌아본 곳에 하늘전망대(▽)가 보인다.
세멘트 포장길을 따라...
고랭지 채소밭을 지나고...
갈림길에서...
이정표를 따른다.
'화북4리마을회관'을 지나고...
맞은편에 마테호른처럼 솟은 옥녀봉과도 눈인사를 나눈다.
맞은편 언덕 위의 풍차전망대.
풍차를 향하여 "돌진~"하는 돈키호테.
세르반테스의 장편소설 '돈키호테'가 생각났다.
돈키호테가 망상에 빠져, 여윈 말 '로시난테'를 타고 '산초 판자'와 풍차를 향하여 돌진하는 이야기다.
<파노라마> 클릭~. 좌측 옥녀봉과 군위호, 그 좌측에 지난번 답사치 못한 절뒷산도 가늠된다.
가을의 전령 코스모스와 풍차전망대. 권형님은 돈키호테, 나는 산초판자.
되돌아 내려온 뒤 삼거리 갈림길에서 '화산산성 북문' 방향 좌측 안내판이 있는 길.
정자와 간이 화장실이 있는 계곡을 건너면...
얼마안가 아치형 홍예문(虹霓門)이 세워진 '화산산성 북문'. 미완성의 산성이지만 경상북도 기념물이다.
화산산성 안내판.
홍예문을 통과하면...
이정표에 '수구50m'가 표시되어 있다. '정희AB'는 다녀왔지만 지친 나는 패스.
성문을 들어서서 성곽의 디테일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중장비도 없는 옛날에 이 무거운 돌들을 어떻게 쌓았을까?
돌아본 모습.
화산산성의 안내판.
임도급 산길에...
국방부 표목.
군사지역 출입금지 휀스를 지나면...
포장임도.
군부대 위병소를 지나...
곧장 이어지는 포장임도.
능선 삼거리에서 더 진행하여...
비포장 좌곡각지점에서 우측으로 희미한 산길을 올라선다.
곧 강의장 좌측으로...
'육·훈' 말뚝이를 지나 뚜렷한 산길에서...
곧 화산이다. 표지기를 건 뒤 내려서는 길은 서쪽으로 조금 진행하다 남서쪽으로 방향을 살짝 꺾는다.
그렇게 30여분 만에 임도에 내려서니...
앞서간 일행들이 모두 퍼질고 앉아 임도탈출 의사를 숨기지 않는다.
나는 쉬지 않고 일행들의 뒤로 올라섰더니 '들강'과 '후라이' 님이 뒤따라 왔고, 더 뒤에 '청한수호' 님도 꽁무니를 물었다.
채 20분이 되기 전에 성돌들이 흩어져 있는 정상 하단부위에 올라섰다.
앞서가던 순수청년 '들강'이 "대장님, 여기 앉으세요."하며 크고 넓직한 바위에 앉을 것을 권하더니 자기는 조그만 바위에 쪼그려 앉는다.
혈(용)암산엔 '화남리산성'이 있다.
축조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성 내에서 삼국시대 토기편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신라성으로 판단되며 신라의 북방 진출에 따른 교통로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정상부의 맞은편에도 높은 봉우리가 있어 마안형(馬鞍形)을 이루고 있으며 토석혼축(土石混築)이다.
금방 올라선 혈암산 정상.
그리 크지 않는 바위 몇개가 자리를 점하고 있다. 이 바위 어딘가에 혈(穴 구멍)이 있어 '혈암산(穴岩山)'인가?
아니면 '쓸데 없이 나딩구는 모습'이라 '용암산(冗岩山)'인가? * 쓸데없을 용(冗·宂).
준비해간 표지기를 매단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곤 뒤돌아서 성돌들이 나딩구는 지점으로 되내려와 서쪽능선으로 길을 잡는다.
424.3m봉에서 월간산은 한광사 방향으로 내려섰지만 우리는 원점회귀의 편의성을 위하여 남서쪽으로 내려섰다.
10분 만에 펑퍼짐한 안부에 내려선다. 여기선 우측으로 비스듬한 사면길.
축사와 유적 사이로 내려서...
돌아본 모습.
산행을 마친 회원들이 쉬고 있는 곳에서..
길고 험란했던 산행을 접는다.
정자와 고압 수도꼭지가 있어 씻고,환복할 수가 있었으나 코를 찌르는 악취는 피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약 1km를 벗어나 비어있는 식당 마당으로 들어와 뒷풀이 마당을 펼쳤지만 여기까지 그 독한 냄새는 따라와 있었다.
허파는 맑은 공기를 들여 마셔야 하고, 뇌는 맑은 혈액을 공급받아야만 헤까닥하지 않는다.
첫댓글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노고에 감사합니다.
행복한 토요일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