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느부갓네살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4장에서 느부갓네살 왕이 세 번이나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그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내려졌던 7년의 짐승같은 생활 기간이 끝난 후, 왕권위 복귀되고 나서 찬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죽기까지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살았다면 7년은 저주와 벌의 시간이 아닌 축복이었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깨지기 힘든 교만이 질그릇 깨지듯 깨진 7년의 시간이었다면 왕의 자리에 앉아 있던 시간보다 귀중한 것 같습니다.
제 마음의 작은 교만까지도 다 깨지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늘 고백할 수 있는 하루하루이기를 기도합니다.
포로에서 높은 지위에 앉아도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졌던 다니엘.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인 것이 느껴지는 사람 다니엘.
제 신앙이 이렇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며 매순간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 제 가장 큰 소원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보여 주십니다. 교만했던 왕은 자신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었으나, 다니엘의 해석을 통해 하나님이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일을 통해 용서의 기회를 주셨지만, 심판이 일 년간 지연되자 왕은 다시 자신의 위엄과 영광을 자랑하다가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나 느부갓네살왕이 꾼 꿈이다. 그러니 벨드사살아, 이 꿈의 뜻을 풀어 보아라. 내 나라에 있는 모든 지혜자들도 이 꿈의 뜻을 풀지 못했으나, 거룩한 신들의 영이 네게 있으니, 너는 풀 수 있을 것이다”(18절)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을 "거룩한 신들의 영"이 함께하는 자로 인정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다니엘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역사를 이루심을 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왕이 권세를 가진 자처럼 보이지만, 영적인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에게 그분의 뜻을 드러내시고 진정한 권위를 주십니다.
최근 지인과의 대화에서 그가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며 결핍 없이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그의 가정은 다른 결핍들로 가득함을 느꼈습니다.
그 친구도 저도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이지만, 내 안에 "거룩한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다면, 세상사람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매일 기도와 묵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더 깊은 성령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갖길 원합니다. 영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예수님으로 충만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 (29절)
이 말씀을 읽는데 어딘지 익숙한 느낌이 들어 보니 다윗왕이 전쟁중에 궁에서 옥상에 올라가 둘러볼 때에 밧세바를 보게 되는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의 업적에 취해 뒤를 돌아볼 때가 있습니다.
우리 부부도 때때로 지난 날을 돌아보며 우스개 소리처럼 하지만 교만해진 마음을 볼 때가 있습니다.
열두 달이라는 시간을 왕에게 주었지만 회개하기는 커녕 더 교만해진 모습으로 결국에는 들짐승과 같은 모습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을 봅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얇은 냄비의 물처럼 끓어다 식었다를 반복하는 얇은 마음이 아닌, 묵직하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자칫 지난 시간을 교훈 삶는다는 명목아래 교만해지는 일이 없기를,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 바로 무릎 꿇는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7 그러므로 왕이시여, 저의 충고를 받아들이십시오. 죄악을 버리고 옳은 일을 하십시오. 가난한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고, 악한 길에서 벗어나십시오. 그렇게 하면 혹시 왕의 영화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37 이제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께 찬양하며 영광을 돌린다. 그의 일은 모두 참되며, 그의 행하심은 의로우시다. 그는 교만한 사람을 낮추신다.
다니엘의 꿈 해석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결코 유쾌하지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37절말씀에 네부카드네자르는 하늘의 왕께 찬양하며 영광을 돌린다. 그는 교만한 사람을 낮추신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 사람은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이 듣기에 좋은 말을 듣기 원하는데 다니엘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를 죽이거나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다니엘은 충고의 말을 했습니다. 죄악을 버리고 옳은 일을 하라고 가난한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 악한길에서 벗어나라고 말하였습니다.
제가 왕이라면 지까짓게 뭐라고 나한테 이런 말을 해?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37절의 고백이 느부갓네살왕의 입술에서 나온 것이 참 감동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고 사람이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가 변하여 37절의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니엘이 꿈풀이를 잘해서도 아니며 그가 말을 잘해서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일!
다니엘을 통하여 느부갓네살에게 하신일들 저의 삶에도 보여주시고 경험케 하시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병원에 다녀 왔습니다.
생각보다 자궁내막이 두꺼워지지 않아서 이식이 또 미뤄졌습니다.
다다음주면 추석명절인데 추석 직전에 이식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상황이 또 어떻게 될지 몰라서 불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명절이 끼어버리는 바람에 더 늦어지면 이식을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런 마음 내려놓으라고 오늘의 말씀을 주신것 같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일을 기대하며 높은 자를 낮추시고 낮은 자를 높이실 수 있는 이를 찬양하는 이가 되길 기도합니다.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여러 가지 기적과 꿈 해몽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고 들었는데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큰 바벨론은 자기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자기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자기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죽은 것이 아니라 7년동안 이상한 병에 걸려 고생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인정하며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누리는 것 중에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기에 은혜라는 찬양의 가사가 늘 저의 고백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사람들과 환경을 통해 주님께 더 감사하는 사람 되게 하옵소서.
어느 것 하나 나로부터 왔다고 여기지 않고 소중히 여기며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