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6일 부활 제7주간 금요일
한 남자가 우거진 숲속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높이 뛰었지만, 구덩이 입구까지 다다를 수 없었습니다. 자기 스스로 이 구덩이에서 나올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바닥 구석에 놓여 있는 삽이 보였습니다. 그는 삽으로 땅을 파서 흙을 구덩이 밖으로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동안 땅을 파다 보니 구덩이는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어떻습니까? 좋은 방법일까요?
지나가는 사람이 구덩이에서 흙이 던져지는 것을 보았고, 구덩이 안에 사람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무엇하냐고 묻자, 이 남자는 구덩이에 빠졌는데 다시 나오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행인은 이상해서, 그러면 왜 삽으로 구덩이를 더 깊이 파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합니다.
“제가 이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이오? 여기 구덩이 안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물론 흙을 밖으로 퍼내서 이를 본 행인에게 구출되기는 했지만, 소리쳐서 구조를 요청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이 이야기의 핵심은 우리의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생각해서 정작 필요한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그럴 때가 정말로 많지 않습니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골똘히 생각합니다. 생각만 하다 보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더 깊이 고민만 하다가 힘든 시간을 갖게 됩니다.
사랑 실천도 그러합니다. 사랑의 실천은 주님의 명령이기에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이지만, 여러 가지 생각들로 사랑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들고 있습니다. 결국 주님께 제대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했고, 예수님께서는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를 세 번이나 반복합니다. 그만큼 사랑의 실천이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이유를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나와 맞지 않아서, 나에게 상처를 줘서,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아서, 나하고는 상관없는 사람이어서 등의 이유를 우리는 많이 보게 됩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알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명언: “지금 하는 그 일이 결국 너의 모든 것이 된다.” 이 말처럼, 아무리 작고 하찮아 보여도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순간, 그것이 나만의 소중한 기회가 되어 삶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드라마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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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첫댓글 빠다킹(조명연 마태오)신부님 강론입니다.
평화의 상징 신부님의 강론을전하시느라
수고 많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