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 메시지와 기적
레위 13,1-46; 1코린 10,31-11,1; 마르 1,40-45
연중 제6주일(세계 병자의 날); 2024.2.11
1. 오늘은 세계 병자의 날입니다. 이 날의 유래는 프랑스 루르드에 발현하신 성모 마리아께서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여인”이라고 밝히시면서, 이 메시지를 믿게 하기 위해서 본래 병원 쓰레기를 버리는 황량한 곳이었던 마사비엘 언덕에 게르마늄 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된 샘물이 솟아나게 하시고, 그 물을 마신 사람이나 그 물에 몸을 적신 사람들의 불치병이 기적적으로 깨끗하게 낫게 된 데 있습니다. 그 마을에 살던 어린 아이의 불치병이 나았다는 기적 소문이 퍼지자 삽시간에 프랑스 전국은 물론 유럽 각지와 나중에는 세계 도처에서 불치병 환자들이 몰려와서 일부는 기적적으로 낫기도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은 효험을 보지 못하기도 했는데, 그 덕에 성모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이라는 메시지가 퍼지게 되었습니다.
2. 루르드에 성모님께서 처음 발현하신 때는 1858년 2월 11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황청에서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믿을 교리로 반포한 때는 그보다 4년 전인 1854년이었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던 때라서 교황청의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널리 알려지지 못했는데, 루르드에서의 성모 발현 덕분에 그 메시지가 유럽은 물론 세계 각지로 알려지게 된 사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적은 원죄 없는 잉태 즉 무염시태 교리를 알리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메시지는 뒷전이고 루르드에만 가면 그 기적의 샘물을 마시고 그 물에 몸을 적시는 데에만 관심을 쏟아 왔습니다. 마시고 적신다고 모든 병자가 낫는 것은 아닌데도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이 날을 세계 병자의 날로 지내도록 권고하면서, 아픈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목적 배려를 당부하게 된 것입니다.
3. 기적으로 인해 메시지가 널리 알려지기도 했지만, 기적 소문에 묻혀 메시지가 가려지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병든 이들이 기적적으로 낫기를 원하면 원죄 없는 잉태라는 메시지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성모 마리아께서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도우시고 보호하신다는 신심이 밑받침이 되어야 병자들을 진정으로 돌볼 수 있습니다. 이 신심이 뜻하는 것은 성모 마리아를 본받으려는 신자들도 세례성사를 통해 원죄에서 벗어났으니만큼 세상의 죄에 대해서도 물들지 말고 깨끗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4. 오늘 제1독서인 레위기에는 오늘날 나병으로 여겨지는 악성 피부병 환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누군가 이 몹쓸 병에 걸리면 마을 바깥으로 내쫓아 격리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나병환자를 만나신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몸을 깨끗하게 고쳐 주셨습니다. 나병은 피부가 손상되는 병으로서 천형(天刑)으로 일컬어질 만큼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고 가족과도 격리되어 지내야 하는 몹쓸 병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은 나병환자는 세상에서는 받을 수 없는 큰 축복을 받은 셈입니다.
5. 오늘 독서에서 들으신 대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병을 악성 피부병으로 불렀습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죽음의 맏자식이 사지를 갉아먹는”(욥 18,13) 육체의 고통뿐만 아니라 ‘부정한 자’로 여겨져 공동체에서 격리되어 살아야 하고 낫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마을로 복귀할 수 없는 저주를 받았습니다(레위 13,45-46). 당시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회적 약자였던 셈입니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대개는 가족들이 음식을 조달해 주었겠지만 어쩌다 그것도 어려워져서 먹을 것을 구하러 마을에 들어와야 할 때면, “나는 부정한 사람이오! 멀리 떨어지시오!” 하고외치며 다녀야 했습니다. 그 수치심이야 이루 말할 나위가 없었을 테지요. 예수님 당시에 어떤 나병 환자가 그분에 관한 소문을 듣고 나서 용기를 내어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낫고 싶은 마음이 어찌나 간절했던지 무릎을 꿇고 치유해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깨끗하게 고쳐 주셨습니다.
6. 질병으로 고통받던 사람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깨끗한 사람’이 되려면, 단지 병고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라서는 어렵습니다. 삶과 죽음을 포함한 생명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진정으로 깨닫고 하느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이런 이치를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도 코린토 공동체의 교우들에게 이렇게 권고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1코린 10,31). 그리고 이 권고에 덧붙여 진정한 치유를 위한 자세를 알려 주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나처럼 하십시오”(1코린 10,33). 하느님을 가장 닮으신 존재로서 세상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주신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이 프랑스 루르드에서 발현하셨던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인,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여인”이라는 말씀을 오늘 세계 병자의 날에 되새기는 뜻입니다.
7. 아픈 이들을 돌보는 의료인들과 원목 봉사자들의 자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병으로 인한 통증만 완화시켜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어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귀의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병자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로서 으뜸가는 것은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베푸는 일입니다. 고해성사를 통해서 병자들은 지은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게 되고, 병자성사를 통해서 질병의 치유를 하느님께 간청함과 동시에 혹시 병이 중하여 낫기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은총을 청할 수 있게 됩니다.
8. 고해성사에 참여하여 죄를 뉘우치고 고백한 신자들에게 사제가 선언하는 사죄경은 이렇습니다. “인자하신 천주 성부께서 당신 성자의 수난과 부활로 세상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시고,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주셨으니 교회의 직무수행으로 몸소 이 교우에게 용서와 평화를 주소서. 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교우의 죄를 사하나이다.” 이 기도에 나타나듯이, 고해 신부는 신자의 죄 고백을 하느님을 대신하여 들을 뿐이고 정작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사제의 사죄 선언은 하느님의 용서에 바탕해서만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해성사의 은총과 효과는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한 용서와 그로 인한 평화를 누리는 데 있습니다.
9. 병자들에게는 병자성사 중에 고해성사를 거행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병자가 의식이 명료한 상태에서 병자성사를 청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병자가 의식이 몽롱하거나 희미한 상태에서는 죄를 고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해성사로 죄 사함을 받은 병자는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들으며 병자성유를 이마에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우신 사랑과 기름 바르는 이 거룩한 예식으로 성령의 은총을 베푸시어 이 병자를 도와주소서. 또한 이 병자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구원해 주시며 자비로이 그 병고도 가볍게 해 주소서.”
10.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참으로 많은 병자들을 만나서 그들의 병을 치유해 주시는 기적을 베푸셨지만, 늘 염두에 두셨던 것은 그들이 하느님께 받은 자비에 감사할 줄 아는 믿음을 갖게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믿음이야말로 치유의 근본 원인이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비를 간절하게 바라는 믿음이 없는 이들에게는 그 어떠한 치유 기적도 베푸실 수 없었고, 믿음이 있는 이들에게는 참으로 기뻐하시며 기꺼이 치유 기적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실상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이 일어나는 일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일으키실 수 있었던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병자와 장애자를 치유하시고 나면 반드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선언하시곤 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생명을 창조하실 때 부어 주신 면역력, 즉 자연 치유력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염두에 두셨던 치유의 비결이었으므로 이에 대한 믿음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입니다.
11. 교우 여러분! 오늘 세계 병자의 날에 우리가 명심해야 할 메시지도 이것입니다. 즉,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본받아 세상의 죄에 물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하느님의 자비를 믿고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부여 받은 생명의 기운인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대로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의 마음과 자비 실천이야말로 치유의 완성이며, 하느님께서 일으키시는 진정한 기적입니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 “무슨 일을 하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나처럼 하십시오”(1코린 10,31.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