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는 대로 군대는 명령이 생명입니다. 복종이 우선순위에 있습니다. 하기는 생명을 다루는 가장 위험한 조직체입니다. 그리고 지시사항 위반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 아무도 모릅니다. 때문에 지휘계통이 일률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명령불복종은 곧 사형입니다. 전투 현장에서는 지휘관이 바로 사살할 수도 있습니다. 전 부대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을 희생시키더라도 많은 희생을 막는 길이기도 합니다. 조금 여유가 있다면 나중에 군법회의에 넘깁니다. 군사재판을 받도록 조처하는 것입니다. 일반사회에서의 재판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가중 중요하게 보는 것이 바로 명령수행입니다. 행여 불복종 사항이 있다면 가차없이 중벌이 내려집니다.
내 생각과 판단이 아무리 옳다고 여겨져도 일단은 지휘관의 명령이 우선합니다. 지휘관도 상부의 지시를 따라 명령을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명령 하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습니다. 전체적인 전략을 마련하여 지시가 내려집니다. 그것이 실제 이루어지는 것은 하급부대 실전에 임하고 있는 병사들에게서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전략을 잘 세웠다 한들 무위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그 정도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많은 병사들의 희생이 따르게 됩니다. 나아가 국가의 존폐가 달린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군대의 명령하달과 복종은 말 그대로 생명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제 고국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습니다.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데 소대장이 나타납니다. 때가 되었구나 싶어서 짐을 들고 떠날 차비를 합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명령이 나옵니다. 다시 전선으로 복귀한답니다. 다들 마음 놓고 있었는데 날벼락과도 같지요. 그러나 군대입니다. 이의를 달 수 없습니다. 그대로 다시 전선으로 향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임무가 하달됩니다. 아직 병력이 보충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전선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대공세를 취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단은 적의 침투를 저지하고 현재의 전선을 지키는 명령이 내려집니다. 겨우 6명 정도의 병력으로 중대병력의 적군과 대치하라는 명령입니다.
때로는 말도 안 된다 싶은 명령도 내려집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여겨집니다. 희생을 감내하고서라도 다음을 위해 수행해야 합니다. 명령은 목숨을 걸고라도 수행해야 합니다. 제대로 된 군인정신이지요. 그렇다면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나름의 작전을 짜면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습니다. 쉽게 말한다면 6 : 200입니다. 게임이 안 되는 싸움입니다. 마침 길을 찾는 행정병이 짚차를 몰고 옵니다. 정차하더니 길을 묻습니다. 이게 웬 떡이냐 하고는 짚차를 빌립니다. 안 된다고 맞서봐야 하급병일 뿐입니다. 게다가 바로 최전선 적군 바로 앞입니다. 작전이 우선이다 싶으니 일단 짚차를 빼앗아 적군을 교란하는데 사용합니다.
적군이 아군의 형편을 알게 된다면 금방 돌격해올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일단 수적으로 훨씬 우위에 있는데 망설일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쪽 도 결코 적지 않다고 상대방을 믿게 하여야 합니다. 아군의 총공격이 이틀 앞입니다. 그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버텨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이 이쪽의 형편이 노출되어서는 안 됩니다. 적을 속이는 방법을 쓰는 것입니다. 우리는 탱크도 있다고 과시합니다. 기발한 생각을 하며 눈속임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적군이 아군 진지 근처에 몰래 통신시설까지 설치해두고 도청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발각되었으니 역으로 이용도 합니다. 전쟁에는 오로지 승리만이 답입니다. 적을 속이는 것도 작전입니다. 도덕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바로 눈앞의 적 벙커입니다. 조그만 구멍에서 쏘아대는 기관총의 사격에 전우가 전사하고 꼼짝할 수가 없습니다. 총공격이 시행된다 해도 바로 저 벙커 때문에 당할 희생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든 처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보충병으로 전투에 참여한 ‘리스’는 분대장의 자리 비운 사이 명을 어기고 동료들을 설득하여 야간침투를 감행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앞은 지뢰밭이기도 했습니다. 바라지도 않은 손상을 입고 후퇴합니다. 분대장이 돌아와 따집니다. 그리고 전투 후에 군법회의에 넘기리라 다짐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명령불복종입니다. 일단 눈앞의 전투를 감행해야 합니다. 드디어 총공세가 벌어집니다. 리스가 다시 뛰어듭니다.
도대체 왜 전쟁을 해야 합니까? 단순한 병역의무 수행일 수 있습니다. 전투 현장에서는 대단한 뜻보다는 오로지 살기 위해서, 아니면 옆의 전우의 죽음에 분노하여 싸우기도 합니다. 때로는 돈을 벌려고 용병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어떤 사명감이라든지 나라를 구하려는 큰 뜻을 이루려고 참여하기도 합니다. 그런 싸움이라면 대가와 상관없이 죽음도 불사합니다. 옛날 우리의 독립전쟁에서 보았습니다. 아무튼 전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한 마디로 참혹함입니다. 그리고 일반 사회생활 속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드라마가 생깁니다. 그래서 전쟁은 많은 이야기들을 생성합니다. 또 하나의 영화 ‘지옥의 영웅들’(Hell Is for Heroes)을 보았습니다. 1962년 작 흑백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