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이라는 위험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언, 현실역동상담학회
blog.naver.com/changss0312
나를 찾아온 여성은 결혼생활에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하였다. 남편이 아내인 자기와의 잠자리를 멀리하기에 자기가 가까이 다가갔더니, “너와는 그걸 할 수 없어!”하고 남편이 박절 맞게 대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이혼하자는 말이냐?” 하고 물었더니, 남편이 아니라고 말하는 대신 자기를 쏘아봤다고 한다. 이러한 남편인데 자기가 이혼을 해줘야 하는 거냐고 그 여성은 다짜고짜 내게 물었다.
앞뒤 맥락을 모르는 나는 남편이 어찌하여 아내와 잠자리를 할 수 없다고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여성은 자기가 남편에게 어설픈 고백을 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런 이야기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전개되어 이실직고하였단다. 즉 시치미를 떼다가 들통이 나면 앙큼한 여자가 되는 것 같아 그것이 너무 싫었단다. 하지만 자기를 위해서만 이실직고한 게 아니라 남편의 위신을 지켜주기 위한 나름의 선택이었다고 은근히 항변했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기에 나는 다시 물었고,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토막토막 들려주었다.
그녀는 직장에 다니다 유부남과 사귀었고, 그것이 노출되는 바람에 회사생활을 접었어야 했다. 몇 년 후 그녀는 현 남편을 만나 결혼해 아이도 낳고 그런대로 지냈다.
그런데 부부 동반으로 남편 직장의 사람들과 만났는데, 그들 중 한 남자가 전 직장에서 그녀에게 호감을 표하기도 했던 사람으로 이 여성이 자기에게는 냉담하다가 상사인 유부남과 사귀었던 사실에 분개하기도 했었다. 아무튼 그 남자도 전 직장을 떠나 남편이 다니는 회사에 와 근무하는 중이었다.
그 남자가 남편의 동료로 있다는 사실을 께름직하게 여겼던 이 여성은 고심하다 남편에게 그 남자를 멀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왜 그러냐고 의아해하는 남편에게 이 여성은 유부남과의 불륜을 말하였고, 그런 말에 충격을 받았던 남편은 정신과 치료를 받기까지 하였다. 그런 상황이었지만 남편은 자녀들 때문인지 아내에게 이혼하자는 말을 건네진 않고 지내는 중이었다.
전후 사정을 알게 된 나는 그 여성에게 상황이 곤란하게 꼬였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만히 있음으로써 모든 것이 지나가도록 해야 했었다며, 불안한 나머지 쑤석거려 상황만 더 악화할 따름이라고 하였다.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 여자를 그 남자가 굳이 죽이려 들었겠느냐며, 이실직고는 그녀의 불안이 낳은 실수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이 여성은 남편이 뒤늦게 알면 자기가 매우 쪽팔릴 것 같아 선수를 치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다는 말을 내게 했다. 다른 한편, 그 남자를 만나 자기에 대해 함구해달라고 부탁해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는데, 순둥이 과에 속하는 남편을 믿기로 했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미리 귀띔해두는 중도를 취하는 게 더 낫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나는 그 여성이 중도라고 표현한 것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중도란 부처님께서 양극에 속하는 쾌락이나 고행에 치우치지 않는 바른 수행을 해야 한다며 일러주신 말씀인데, 어중간한 태도를 중도라고 표현하다니. 차라리 중용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이쪽과 저쪽의 중간을 택한 것이려니 하겠지만, 그녀가 한 행동은 중도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무튼 나는 중도라는 표현에 대한 시정과 아울러 그녀가 남편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은 실수였다고 일러주며, 그것의 여파가 상당히 오래 갈 것 같다고 하였다. 자기 아내가 전에 다른 남자와 깊은 관계였다는 사실도 썩 유쾌하진 않을 텐데, 상대가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은 아내의 도덕성을 의심케 하여 남편의 자존심에 손상을 입히는 거라고 일러주었다.
다행히 내가 하는 말에 그녀는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불안이 엄습하는지 남편이 언젠가는 자기를 받아줄 것 같으냐고 물었다. 남편의 눈에서 경멸이 뚝뚝 떨어지는데 함께 사는 게 무슨 의미냐는 것이다. 이런 질문에 나는 다소 퉁명스럽게 반문했다.
“그럼 아이들은 어떻게 할 참이세요?”
“...”
“모든 것이 오늘과 똑같지 않고 자꾸 변할 테니까, 자신이 범한 잘못에 대해 책임지는 태도로 견디어 보세요. 여하튼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임무도 있으니까요.”
“... 알겠습니다.”
그 여성이 돌아간 뒤 나는 그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미혹함으로 허우적거리며 좌충우돌하는 그녀의 모습이 어찌 그녀만의 모습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나름 잘해보겠다고 하는 것이 화를 더 키우기도 하고, 자기 잘못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고 견딜 수 없다며 다른 희생자를 만들기도 하고, 훗날에 가서는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며 눈물 흘리기도 하고….
이참에 다시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 도상에 있다는 것이다. 현시점에서는 앞뒤가 꽉꽉 막혀 앞이 안 보여도, 진득하게 버티다 보면 뭔가 빛줄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전혀 생각지 못한 변수가 생겨 상황이 풀리곤 하는 게 우리 삶이지 싶다.
첫댓글 장성숙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 여자분은 너무 뻔뻔 스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교만의 극치입니다.
얼마나 잘 났는지 궁금힙니다.
뻔뻔스럽다고 보셨군요.
그런 점보다 불안해서 나름 선수를 친다는 게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답니다.
아무튼 함게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혜로운 여인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가정이 잘 유지되어야 아이들이 희생되지 않아 저도 마음을 많이 썼답니다.
한국은 폭염입니다. 올 여름이 얼마나 더울지 걱정됩니다.
미국도 그렇지요?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장성숙 날씨전쟁, 에어컨 온도 전쟁
세상이 살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