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황소처럼 울게 한 아내의 한마디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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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상담에 참석한 중년 부부는 서로에게 썰렁한 모습을 보였다. 얼마 전 시아버지가 땅을 팔아 자리를 잡지 못한 작은아들에게만 그 돈을 주려 하자, 그동안 궂은일을 도맡아 해왔던 큰며느리인 이 부인은 배신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러나 남편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인데 어쩌겠느냐며 예나 다름없이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이 부인이 펄펄 뛰는 바람에 어느 정도 돈을 받긴 했어도 한번 올라온 그녀의 벌떡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무섭기로 소문난 시아버지에게 사사건건 간섭을 받으며 지낸 세월, 시동생을 15년이나 데리고 살았던 어려움 등이 억울하다고 했다.
이러한 부인의 넋두리에 집단원들은 억울할 만하겠다며 위로를 건넸지만, 부인은 좀처럼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집단상담을 하는 내내 이런 노기를 보이자, 위로를 건네든 집단원들은 지쳐갔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도 남편은 입을 다물었고, 억지로라도 말을 할 때는 미세하게 더듬었다.
말을 더듬는다는 것은 눌려 살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당사자에게 엄청난 위축감을 주는 것이다. 인재들이 모이는 직장에 근무한다는 것과 그의 모습이 깡말라 있다는 사실 간에는 뭔가 시사하는 게 있는 듯해 짠한 느낌을 자아내게 했다.
어느 시점에 다다라 공동 지도자로서 작업하는 철쭉 님이 시종일관 뿌루퉁해 있는 그 부인에게 “부부관계는 잘 됩니까?” 하고 물었으나, 그녀는 묵묵부답으로 앞만 바라다보았다. 철쭉 님은 다시 “그 긴 세월 동안 최선을 다한 당신이 돈 몇 푼 때문에 그토록 울화가 치민다면 그동안 위선으로 살아왔다는 증거가 아니오.” 하고 자극하는 말을 했다.
사실 그녀의 울화는 시아버지를 빌미로 터트려진 남편에 대한 욕구불만인 듯했다. 솟아오른 분노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아 남편을 집단상담에 끌고 왔지만, 남편이 수동적으로 일관하기 때문인지 좀처럼 진전되는 게 없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다음날에는 5박6일의 집단상담을 마칠 때가 되었다. 급하게 월차를 내느라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던 남편은 다음날 출근을 위해 전날 밤에 돌아가야 한다고 했는데, 교사인 부인은 방학 중이라 자기는 급히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었다. 그런데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난 그 부인은 내일까지 있어봤자 변할 것 같지 않아 자기도 돌아가겠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동안 그 부인에게 들였던 공이 적지 않은데 그렇게 말하는 것에 언짢았던 나는 '아' 다르고 '어'가 다른 게 말이라면서 평소에도 그런 식이냐고 쏘듯 물었다. 그러자 이런 즉각적인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었는지 그녀는 당황하며 얼굴을 벌겋게 물들였다.
내가 이렇게 부인의 거침 언행을 잡아채 쪼이자, 철쭉 님은 아내를 저토록 갈증 나게 방치한 책임이 배우자에게 있는 것 아니냐며 남편을 압박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부인에게 달아날 구명을 터주자, 그녀는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저 밑바닥에 쌓이고 쌓였던 서러움이 북받쳤기 때문인지 그녀는 울다가 자신의 양손을 움켜잡고 마구 주물러 대는 게 아닌가. 그러자 마비가 왔다는 것을 알아차린 집단원들이 달려들어 양쪽에서 그녀의 손을 주무르는 데도 남편은 망부석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철쭉 님은 다시 남편을 향해 “가장으로서 중심에 있지 못하고 모든 것을 아내에게 맡기고 물러나 있던 지난날의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하시오.”라고 일렀다. 그러자 남편은 아내 곁으로 다가가 손을 쓰다듬으며 미안하다고 울먹였다. 이렇게 하여 부부가 손을 맞잡고 울자, 그 광경을 바라보던 몇몇 집단원들이 울먹였다.
어느 정도 울음이 자자들자, 철쭉 님은 아내도 남편에게 한마디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잠시 머뭇거리던 아내가 이윽고 남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범같이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당신도 고생이 많았을…….”
이와 같은 아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둑이 터지듯 황소 같은 소리를 내며 대성통곡을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어깨를 들먹이며 울부짖던 남편이 벌떡 일어나 문밖으로 뛰쳐나가자, 아내도 후닥닥 남편을 쫓아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런 광경에 집단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흐느껴 울었다. 순식간에 집단원 모두가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에 빠져든 것이다.
잠시 후 다소 진정이 되었는지 부부가 돌아와 다시 자리에 앉았는데,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고 침묵을 이어갔다. 이때 철쭉 님이 그 부인을 향해 “저 얼굴 좀 보소, 남편의 손길이 좋긴 좋은가 봅디다. 두 사람 때문에 다들 우거지상을 하고 있는데, 유독 000(부인) 얼굴만 뽀샤샤 피어나니…….”
사람들은 와~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 부인 역시 울던 끝에 코를 팽팽 풀다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거의 마지막에 그 남편과 부인은 그렇게 하여 교감의 삭을 틔웠고, 바닥을 측량할 수 없을 만큼 깊었던 골에서 깨어나는 모습이었다. 비로소 그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힘들지만 노력하며 잘살아보자는 무언의 눈빛을 나누었다.
그 집단상담에 참석한 집단원들도 극적으로 마주 잡게 된 부부의 손을 바라보며 뭉클한 감동에 젖어 드는 것 같았다. 집단상담이 제공할 수 있는 관찰학습이 그 어느 때보다 야무지게 이루어지는 장이었다.
첫댓글 시아버지가 큰 문제???
“범같이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당신도 고생이 많았을…….
공포의 아버지때문에 고생많았네요..
화평스러운 부부가 되어 다행입니다.
좋은 상담,
감사해요..^^**
정말 드라마 같은 장면이었답니다. 가끔 집단상담을 하면서 그러한 장면을 목격하곤 합니다.
한국에는 계속 비가 오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장마철 입니다.
부디 이상기후를 잘 견디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