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신원을 확실히 밝힐 수 있는 가장 믿음직스러운 문서가 인감증명이다.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인장은 여러 개지만 따로 인감도장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것은 자칫 분실했을 경우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가정이 있기 때문이다.
인감증명은 동사무소에서 발행해주는데 이미 제출되어있는 인감과 동일한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 동사무소 공무원이 애를 쓴다. 이 증명은 다양하게 소용된다. 남의 신원을 보증하거나 재산보증용으로도 쓰이고 집을 사거나 팔 때에도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이 인감증명이다. 이 증명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정부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 제도를 폐지하고 공증제도나 전자증명제도로 대체할 것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 동안 정부가 공무의 번잡함을 벗어나려는 많은 노력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인가서류 하나 제출하려면 떼어오라는 서류가 왜 그렇게 많은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았다. 외국회사가 한국에 공장 하나 짓겠다는데도 70여 가지의 서류를 만드느라고 시일을 질질 끌었다는 보도를 본 바도 있다.
이처럼 관공서의 서류는 복잡하고 다양한데 그 중의 하나가 인감증명으로 판단된 듯 하다. 주민등록 등 초본을 제출하는 일은 많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인감증명도 이 범주에 들어간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본인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인감증명이 필요했던 것인데 이를 없애버린다면 몰라도 ‘공증제도’나 ‘전자공시제도’로 대체한다면 그것 또한 인감증명처럼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정부발표에 따르면 인감제도가 폐지되면 연간 5000억에 달하는 행정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참으로 그렇다면 대단히 긍정적인 행정 간소화 정책으로 국민의 환영을 받을 만 하다. 그러나 공증이나 전자증명제는 무엇인가. 공증이란 법무법인을 구성하고 있는 변호사들이 발급해주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인감 한 통 떼는데 600원 주면 되는데 변호사에게 공증을 받으려면 최소한 1만원은 줘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더 낮춰 받도록 특별조치가 취해질 것이지만 인감증명보다는 많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인감증명을 없앤다고 해놓고 새로운 대체방법으로도 돈이 든다면 이는 변호사 수입 올려주기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전자증명제도는 어떤 방법인지 제시된 것이 없어서 논평하기 어렵지만 컴퓨터를 활용하는 것이리라고 생각된다.
지금 세상은 컴퓨터가 지배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그에 의존하는 수가 많다. 그러다보니 부작용도 없을 수 없다. 정부문서도 시스템을 바꿔 위변조하는 해커들이 수두룩하다. 물론 인감증명과 같은 까다로운 문서도 인장을 정교하게 위조하여 가짜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공증문서도 그 계통에 밝은 사람들이 변조하는 수가 있다.
심지어 ‘돈’도 위조하지 않는가. 컬러복사기를 이용하는 수법은 고전에 속하고 100달러짜리 미국 돈을 너무나 정교하게 위조하여 전 세계에 퍼뜨렸다고 해서 미국의 조야가 노발대발하고 있지 않은가. 위조의 혐의를 받고 있는 나라가 하필이면 북한이어서 6자회담까지 영향을 받고 있는데 인감증명이나 공증문서 정도는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어차피 완전무결한 위 변조 방지책은 없다.
더구나 컴퓨터를 이용하여 홈뱅킹 거래자의 돈을 빼먹는 사례도 적발되고 있어 전자 증명제도 역시 믿을 수만은 없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전자인증제를 시도하다가 금융사고가 우려되어 보류 중이라고 하며 인감 증명제를 폐지했던 대만에서는 오히려 불편과 폐해 사례가 너무나 많이 발생하는 통에 3년 만에 다시 인감제로 돌아섰다.
그리고 인감제가 폐지되면 1만 여명으로 추산되는 인장업자들의 생계수단을 빼앗는 결과가 된다. 도수 높은 돋보기를 끼고 길거리에서 도장을 파는 막도장 각인 업자나 의젓한 가게를 차리고 길인(吉印 ) 흉인(凶印)으로 많은 돈을 받는 업자나 모두 수입원천이 없어지니 실업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선진 외국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이를 대체하고 있는지 과문의 탓으로 알지 못하지만 인감제도뿐만 아니라 기존에 시행하던 것을 없애려면 국민들에게 비용부담이 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제1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단순히 행정 편의만을 위한 졸속 결정이 초래할 엄청난 사회적 파동이 큰 회오리를 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경고하며 인감증명제도가 아직까지는 우리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고 정서에 맞는 제도라고 말하고 싶다
첫댓글 동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