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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6-09 치아의 날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 백범 김구, [나의 소원]
치아의 날
9일 ‘치아의 날’…치아는 전신건강의 지표
9일은 치과 의료인들이 정한 `치아의 날'이다. 6월9일이 치아의 날로 정해진 것은 여섯 살 때 `영구치'가 처음 나온다는
의미와 함께 앞니에서 여섯 번째에 있는 영구치가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선조들은 예로부터 오복 중 하나로 치아 건강을 꼽아왔다. 그만큼 치아 건강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요즘 국민의 치아 건강관리실태는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는 게 치과 의료진들의 지적이다.
치아의 날을 맞아 치아와 전신건강의 상관관계 및 올바른 저작습관 등에 대해 알아본다
◇ 치아·잇몸에 생긴 병이 온 몸으로 퍼진다 최근 각종 연구결과에 따르면 입 안에 생긴 `감염'이 전신 질환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킨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미 미국 치주학회에서는 10년 전부터 입안감염이 전신질환의
원인이 되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입안의 세균이 혈류를 타고 우리 몸속의 여러 주요 장기에 새로운 감염을 일으키게 된다는 논리다.
현재까지 구강질환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언급된 질환은 △심장질환 △뇌졸중(중풍) △조산아·저체중아 출생
△ 호흡기 질환 등이다.
뇌졸중(중풍)의 경우 급성 뇌혈관 허혈(빈혈상태)로 진단받은 사람들은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입안의 감염이 많다는
연구결과가 나와있다.
또 치주질환은 심장질환과도 연관성이 큰 것으로 보고돼 있다. 입 속의 세균이 혈류 속으로 들어가 심장동맥의 지방질
플라그에 붙어 핏덩어리를 만들고, 이 핏덩어리가 정상적인 피의 흐름을 막아 심장을 정상적으로 움직이는데 필요한
영양과 산소의 공급을 제한하면서 심장발작까지 일으킨다는 것이다.
치과학회 등에서는 치주질환이 있는 환자가 심혈관 질환에 걸릴 확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약 2배 가량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따라서 감염성 심내막염 등의 심혈관 질환의 위험이 있는 환자는 치과 전문의와 상담을 거쳐
치료 전에 예방적 항생제를 복용하는 게 좋다.
이와 함께 치주 질환을 앓고 있는 임산부는 조산아와 저체중아를 출산할 확률이 치주질환이 없는 임산부에 비해
7배 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주질환이 있는 경우 조산을 일으키는 생물학적 분비물이 더 많이 나오게 되면서
조산으로 이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특히 임신 기간 중에는 치과 치료가 부분적으로 제한될 수 있는 만큼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여성은 임신 전 잇몸 검사와
치료를 받아 놓는 게 좋다. 아울러 유산 가능성이 가장 큰 임신 1기(1~3개월)와 태아의 성장으로 임신부의 거동
자체가 불편한 임신 말기(7~9개월)에는 치과치료를 피해야 한다.
이밖에 과학자들은 입에 존재하는 세균이 폐로 흡입되면 폐렴 같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으며,
특히 치주질환을 가진 환자의 경우 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 젊은층 잘못된 저작습관도 치과질환 유발 지오치과네트워크와 센트럴치과가 지난 5월 한달간 20~30대 젊은층
1천124명을 대상으로 저작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다수 젊은이들이 씹는 횟수와 씹는 방법, 분쇄 정도가
모두 불량한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씹는 횟수는 90% 이상이 한 수저 당 10회 미만이었다. 권장되는 저작 횟수는 보통 한 수저 당 30회 정도인데, 1
0회 미만으로 씹는 경우 소화력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음식물을 씹을 때 분비되는 침량이 적어지면서 침 속에 포함되어 있는
소화효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소화되기 쉬운 정도로 음식물이 분쇄되지 못해 위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제대로 씹지 않고 넘길 경우 자연히 식사 시간이 빨라져 위를 비롯한 소화기관에서 흡수되는 포도당 양이 증가하고
혈당치가 높아지며, 과식하기 쉬워 비만의 위험도 높아진다.
씹는 횟수가 적은 것은 음식물의 분쇄 정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 분쇄 정도를 묻는 항목에서도 제대로 안 씹고 덩어리째
대강 넘긴다는 응답이 전체의 13.4%(150명)에 달했다. 제대로 음식물이 분쇄되지 못한 채 큰 덩어리를 그대로 삼키는 경우가
대부분인 셈이다.
씹는 방법에도 문제가 있었다. 식사 시 충치나 치아 통증으로 인해 한쪽 어금니로 주로 씹는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의 33.5%(376명)에 달했다.
식사 때 나타나는 문제(복수응답)에 대해서는 34.3%(386명)가 이가 시려 차거나 뜨거운 음식을 제대로 못 먹는다고 답했으며
질기고 단단한 음식을 못 씹는다는 응답도 24%(270명)나 됐다.
앞니 기능에 문제가 있어 면발을 잘 못 끊어 먹는다(10.9%)거나 씹을 때마다 이 통증을 느껴 오래 못 씹는다(11%),
밥 씹는 것조차 어려워 죽 등 부드러운 음식만 섭취한다(7.1%)는 응답자도 많았다.
하지만 응답자의 59.2%(666명)는 치과 질환이 있어도 치과에 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오치과네트워크 가산점 송상헌 원장은 "아직은 젊기 때문에 치주질환의 심각성을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나이가 들수록
잇몸과 치아상태가 더 나빠지면서 치아상실률도 커지기 때문에 저작불편이 더 심해지고 그로 인해 당뇨병 등
전신건강을 악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 치아상실의 주범, 잇몸병 성인이 됐을 때 치아를 잃게 되는 가장 주된 이유는 치주질환 즉 풍치 때문이다.
성인 4명 중 3명이 잇몸 질환을 가지고 있고, 치아를 잃게 되는 대부분의 원인이 바로 이 잇몸 질환에 있다.
치주질환은 치아를 둘러싸고 있는 잇몸과 뼈에 염증이 생기는 병으로 주요 원인은 `플라그'라고 불리는 세균막인 치태 때문이다. 사람의 구강 안에는 300종 이상 세균들이 상주하며 치주질환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인 세균성 치태를 만들게 된다.
치태는 치아면에 형성되는 끈끈한 무색의 얇은 막으로, 음식섭취 후 세균들이 타액 및 음식과 섞여서 치아에 붙어 만들어진다.
이런 치태가 제거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면 굳어져서 거칠고 노란 침착물이 되는데 이것을 `치석'이라고 한다.
치석은 세균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므로 치주질환의 진행을 촉진한다. 따라서 치주질환의 예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철저한 칫솔질을 통해 치면 세균막(프라그)을 제거하는 것이다.
치과 전문의들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반드시 치과를 찾아 잇몸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한다.
① 다음 치주질환 증상이 있는 경우
- 칫솔질 할 때 잇몸에서 피가 난다
- 잇몸 색이 벌겋게 변하고 부은 느낌이 들거나 건드리면 아프다.
- 잇몸이 치아와 뜬 느낌이 든다.
- 입냄새가 계속된다
- 치아와 잇몸 사이로 고름이 나온다.
- 치아가 흔들리는 느낌이 든다
- 씹을 때마다 치아 위치가 변하는 느낌이다.
- 이 사이가 점점 벌어진다.
② 심장질환, 당뇨, 호흡기질환, 골다공증이 있는 경우
③ 가까운 시기에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여성
④ 가족 중 치주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 치주질환을 일으키는 세균은 침을 통해서도 옮기게 된다.
자녀에게 또는 배우자 간에 침을 통해 세균이 전달됨으로써 치주질환이 생길 수 있다.
⑤ 입 안이 헐어서 불편함이 2주 이상 지속되는 경우
http://blog.yonhapnews.co.kr/scoopkim
김길원 기자 bio@yna.co.kr (서울=연합뉴스) /한겨레 2008-06-08
2009 - ‘도널드 덕’ 75번째 생일 맞아
다혈질이지만 순수하고, 꼴사납지만 고상한 면도 있으며, 냄새 나지만 사랑스러운 오리.
세대를 초월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월트 디즈니의 만화 캐릭터 '도널드 덕'이 9일 75번째 생일을 맞는다.
그는 과거 제2차 세계대전의 그늘에서 자란 구세대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처럼 75살이 된 지금도 젊은 디지털
세대에게 인기를 누리면서 건재하고 있다.
디즈니 왕국의 전설 속에서 '도널드 폰텔로이 덕'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그는 천사처럼 순수한 미키마우스의 반대편에서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
월트디즈니는 자신의 캐릭터 목록에 악당이 필요하다는 것을 재빠르게 눈치채고 도널드를 인생의 피할 수 없는 도전들에 쉽게
분노를 터뜨리는 캐릭터로 구축했다.
만화 '현명한 작은 암탉' 속에서 쓸모없는 친구 역할을 했던 도널드는 3년 후 스크린에 데뷔했는데 이때
그의 모습은 푸른 세일러복과 모자를 쓴 현재의 이미지와 매우 비슷했다.
영화에 이어 나온 만화 '고아원 자선공연'에서는 파이를 계속 먹는 장난꾸러기 고아로 등장해 다혈질의 성격을 처음 선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선전용 단편영화 수십 편에 등장하면서 국가를 위해 봉사했고,
1942년 영화 '총통의 낯짝'(Der Fuehrer's Face)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이 영화 속에서
그는 나치 독일 하의 억압받는 공장 노동자가 되는 꿈을 꾼다.
전쟁이 끝나면서 도널드는 장난꾸러기 조카 휴이 듀이 루이를 비롯한 다른 캐릭터들의 장난에 맞서는 역할을 하게 됐다.
도널드는 75년간 18편의 장편영화와 150편 이상의 단편영화 및 8개의 TV시리즈에 출연했으며,
21편의 비디오 게임에도 등장했다.
도널드 덕이 이렇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인정많은 성격 때문이라고 도널드 덕 만화의 독일 번역판을 만든
작가 바르크스는 말했다.
그는 "도널드는 때때로 악당이었지만 정말 좋은 녀석이었고, 보통 인간들처럼 실수투성이였다"면서
"이 때문에 사람들이 이 오리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 dpa=연합뉴스) hisunny@yna.co.kr /한겨레 2009-06-06 오후 04:21:02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8979.html
2007 - 설계수명 다한 고리원전 1호기 가동중단
이번 달로 설계수명이 완료돼 수명 연장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고리원전 1호기가 오는 9일에 발전이 정지됩니다.
고리원자력본부는 오는 18일 고리원전 1호기의 수명이 완료됨에 따라, 오는 9일부터
1호기의 운전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원전 측이 1호기의 수명을 10년 더 연장하기 위해 과학기술부에 안전평가서를 제출한 데 대한 오는
12월 과기부의 심사 결과에 따라 원전 1호기의 재가동 여부가 결정될 전망입니다.
한편 과학기술부는 고리원전 1호기에 대해 16개 분야, 112개 항목의 안전성을 평가하게 되며 계속운전 승인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영구폐쇄 조치가 내려집니다. [지역] 노준철 기자 2007-06-01 KBS /Google
고리 1호기 연혁
1971.03.19 한국전력-웨스팅하우스(WH) 고리 1호기 건설계약 체결
1971.11.00 착공
1977.06.19 초임계(원자로 점화, 핵분열 시작)
1978.04.29 상업가동 시작
원전본부 "안전성 평가 거쳐 10년 연장 추진"
환경단체들 `사망선고'회견 갖고 영구폐쇄 주장
1978년 국내 최초로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원전 1호기가 30년의 권장 설계수명이 만료돼 9일 가동을 중단했다.
고리원자력본부는 이날 오전 10시 52분에 고리원전 1호기의 발전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고리원전 1호기는 오는 18일로 권장 설계수명이 만료됨에 따라 발전을 중단하고 과학기술부의 계속운전
승인을 기다리며 점검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고리원자력본부는 덧붙였다.
고리원자력본부는 지난해 6월 고리 1호기의 수명을 10년 연장하기 위한 안전평가서를 과기부에 제출한 상태인데
과기부는 오는 12월 15일까지 계속운전 승인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과기부는 다음달 국제원자력기구(IAEA) 관계자를 초청, 고리원전에 대한 안전성 검사를 벌여 계속가동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자료로 활용할 방침이다.
2005년 개정된 원자력법 시행령은 권장수명이 다한 원전은 계속운전 승인 심사에서 16개 분야 112개 항목의 안전성 평가기준을 통과할 경우 10년간 운전을 연장하고, 기준에 미달하면 영구 폐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발전용량 58만7천㎾인 고리 1호기는 지난 30년동안 부산시민이 7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인 총 1천147억kWh를 생산했다.
한편 부산지역 환경단체들은 이날 오전 부산역광장에서 권장 설계수명이 만료된 고리원전 1호기의 `사망선고' 기자회견을 열고 "수명이 다한 발전소를 폐기해 시민 안전을 지키고 나아가 핵 없는 세상의 초석을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정호 기자 (부산=연합뉴스) /한겨레 2007-06-09 /Google
2006 - 한국 해군의 최신형 잠수함 '손원일함' 진수
한국해군 1,800톤급 잠수함 시대 맞아
해군 창설의 주역 손원일 제독 뜻기려 '손원일함' 명명
대한민국 최신형 잠수함인 '손원일함'의 진수식이 6월 9일(금) 군 수뇌부 및 조선소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거행됐다.
이날 진수식은 해군의 전통 의식에 따라 개식사, 남해일 해군참모총장의 함정명 선포 등의 순서로 진행되며
'손원일함'은 진수테이프 절단과 함께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며 바다를 향한 첫 걸음을 내딛게 됐다.
최신형 잠수함인 '손원일함'은 대 수상함 및 대 잠수함 작전, 해상교통로 보호, 적의 주요항만 봉쇄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기존 장보고급 잠수함에 비해 무장을 포함한 작전수행 능력이 한 단계 향상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날 진수식을 갖는 '손원일함'은 214급 잠수함으로서 기존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209급에 비해 공기불요장치(AIP)를 탑재하여 수중작전 능력이 향상되었으며 특히, 우리 기술로 건조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 AIP : Air Independent Propulsion
'손원일함'은 1,800톤급 규모로, 길이 65.3미터, 폭 6.3미터에 수중 최대속력은 20노트(37km)이며, 탑승 인원 40명에 어뢰 및 잠대함 유도탄, 기뢰를 탑재하고 있다.
해군은 함정 유형별로 지명, 섬, 산봉우리, 역사상 추앙받는 인물 등의 이름을 함명으로 지정해 왔으며, 이날 진수된 '손원일함'은 대한민국 해군 창설의 주역이자 해군 초대참모총장 및 제5대 국방부 장관을 지낸 고(故) 손원일(孫元一) 제독의 애국애족 및 바다사랑 정신을 기려 '손원일함'으로 명명되었다.
진수식에는 손원일 제독의 미망인인 홍은혜 여사도 함께 참석하여 고인의 생전의 뜻을 기린다.
'손원일함'은 '07년 말에 해군에 인도된 후 전력화 과정을 거쳐 작전 배치될 예정이다.
제9잠수함전단 /해군본부 2006.06.09
http://www.navy.go.kr/bbs/board/board_read.jsp?szCtgrID=22&szSeq=11&szSrchType=0&szKwd=&pg=1&pgrp=1
2006 - 대한민국 최신형 잠수함 "손원일함" 진수식
KSS-Ⅱ 214급 잠수함(손원일함/ 정지함) 진수식
대한민국 최신형 잠수함인 "손원일함"의 진수식이 2006년 6월 9일 군 수뇌부 및 조선소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거행되었다.
이날 진수식은 해군의 전통 의식에 따라 개식사, 남해일 해군참모 총장의 함정명 선포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고, "손원일함"은 진수 테이프 절단과 함께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며 바다를 향한 첫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최신형 잠수함인 "손원일함"은 대 수상함 및 대 잠수함 작전, 해상교통로 보호, 적의 주요항만 봉쇄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기존 장보고급 잠수함에 비해 무장을 포함한 작전수행 능력이 한 단계 향상된 것으로 평가된다.
"손원일함"은 214급 잠수함으로서 기존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209급에 비해 공기불요장치(AIP : Air Independant Propulsion)를 탑재하여 수중작전 능력이 향상되었으며 특히, 우리 기술로 건조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손원일함"은 1,800톤급 규모로, 길이 65.3미터, 폭 6.3미터에 수중 최대속력은 20노트(37km)이며, 탑승 인원 40명에 어뢰 및 잠대함 유도탄, 기뢰를 탑재하고 있다.
해군은 함정 유형별로 지명, 섬, 산봉우리, 역사상 추앙받는 인물 등의 이름을 함명으로 지정해 왔으며, 이날 진수된 "손원일함"은 대한민국 해군 창설의 주역이자 해군 초대참모총장 및 제5대 국방부 장관을 지낸 고(故) 손원일(孫元一) 제독의 애국애족 및 바다사랑 정신을 기려 "손원일함"으로 명명되었다.
진수식에는 손원일 제독의 미망인인 홍은혜 여사도 함께 참석하여 고인의 생전의 뜻을 기렸다. "손원일함"은 "07년 말에 해군에 인도된 후 전력화 과정을 거쳐 작전 배치될 예정이다.
1천800t급 국내 최대 214급 잠수함(KSS-Ⅱ) 2번함이 2007년 6월 13일 현대중공업에서 진수됐다.
현대중공업은 이날 오후 3시 울산본사 특수선사업부에서 김장수 국방부 장관, 김관진 합참 의장, 송영무 해군참모총장 등 군 주요 인사와 현대중공업 임직원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잠수함 "정지함"의 진수식을 가졌다.
이 잠수함은 고려시대 남해안에서 왜구를 토벌한 명장인 정지 장군의 이름을 따 "정지함"으로 명명됐고, 정지 장군의 종친회 일행도 참석해 고인의 뜻을 기렸다.
이날 진수된 정지함은 연근해에서 1년간의 해상작전 운용시험을 거친 뒤 2008년 11월 해군에 인도돼 실전에 배치될 예정이다.
정지함은 길이 65m, 폭 6m의 1천800t급의 국내 최대 잠수함으로 최대 시속은 37km(20노트), 승조원은 40명이며 어뢰와 기뢰, 잠대함 유도탄 등을 탑재하고 있다.
특히 공기가 필요없는 "공기불요추진장치(AIP)"를 탑재, 수중 작전 지속기간을 향상시켰다. 정지함은 현재 운용중인 209급에 비해 규모는 물론 추진체계, 전투 및 무장체계 등 성능 면에서 한 단계 발전한 첨단 잠수함이다.
한편 현대중공업은 2006년 1번함 "손원일함"의 인도를 시작으로 2009년까지 매년 1척씩 모두 3척의 동급 잠수함을 해군에 인도할 계획이다.
윤준식 2009-04-04 21:53:20 /KDN자주국방네트워크
http://koreadefence.net/bbs_detail.php?bbs_num=705&tb=photo&b_category=&id=&pg=1
2006 - 2006년 제18회 독일 월드컵 개막식과 개막전을 치르다. /위키백과
2006 - 제18회 월드컵축구대회 개막 (독일)
2006 - 푸미폰 타이 국왕 즉위 60돌
정치적 혼란으로 몸살을 앓던 타이가 오랜만에 잔치 분위기로 들떴다. 전세계 25개국 왕과 왕족들도 방콕에 모였다. 9일로 즉위 60돌을 맞은 푸미폰 아둔야뎃(78) 타이 국왕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이날 오전 국왕은 왕궁 발코니에서 ‘국민과의 만남’ 행사를 열었다, 타이인들이 상서롭게 생각하는 시간인 19시19분에는 모든 타이인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일제히 촛불을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앞으로 며칠 동안 코끼리 행진 등 축하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타이 곳곳은 왕실을 상징하는 노란 옷을 입은 사람들과 국왕의 초상화로 물결을 이뤘다.
현존하는 ‘세계 최장수 재위 국왕’인 그는 타이 현대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입헌군주제인 타이에서 절대왕권은 1932년 폐지됐지만, 푸미폰 국왕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어낸 국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바탕으로 타이 정치의 고비고비마다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평소 “현실을 알지만 입은 닫는다”는 정치 불개입 원칙을 고수하지만, 1973년 군부가 민주화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에게 발포하자 왕궁 문을 열어 도망치는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등 군사정권 반대를 분명히 했다. 92년 군사쿠데타와 뒤이은 민주화 시위로 희생자가 늘자 양쪽의 지도자를 불러들였고, 국왕 앞에 머리를 조아렸던 쿠데타 주모자 수친다 끄라쁘라윤 장군은 곧 사임했다.
올해에도 탁신 친나와트랏 총리 일가의 부정부패에 항의하는 시위가 거세지자 탁신 총리를 궁전으로 불렀고, 국왕을 만난 후 탁신 총리는 “올해는 국왕 즉위 60돌인 상서로운 해이기 때문에 사임한다”며 물러났다.
당시 타이 일간지 <네이션>은 “국왕이 속삭인다”는 제목을 달았다. 조용한 말 한마디로 쿠데타나 정치적 소요가 멈추고, 총리를 하야시키는 국왕의 힘을 표현한 것이다. 차크리 왕조의 9대 국왕이자 ‘국가의 영혼’으로 불리는 그는 17번의 쿠데타, 21명의 총리를 지켜보면서 섬세하게 정치적 풍랑을 해쳐왔다.
1950년대부터 자급자족형 농업개발계획을 추진해 왔고, 고산지대 소수민족들의 고냉지 채소 재배를 돕기도 했다. 세계적인 인공강우 전문가로, 직접 개발한 인공강우 기술로 가뭄 해소에 나서고 있다. 이 기술은 지난해 국제특허도 받았다. 그동안 한번도 부정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적이 없으며, 재즈 연주자로도 활약할 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도 가지고 있다. /한겨레
2005 - 경상북도가 독도의 달을 제정하다. /위키백과
2005년 6월 9일, 경상북도 의회는 매년 10월을 독도의 달(獨島-)로 지정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원래는 시마네 현이 2005년 3월에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것에 의해서, 대한민국 정부가 다케시마의 날에 항의하면서 한일 교류 이벤트가 중지되거나 연기되었다. 경상북도는 더욱 강력하게 일본에 압력을 가하는 목적으로 독도의 달을 제정했다.
구체적인 내용
- 경상북도와 의회는 시마네 현이 다케시마의 날의 조례를 파기할 때까지, 시마네 현과의 교류를 전면적으로 정지한다. 단 상법의 적용을 받는 법인·단체와 정부수준 등의 국제 행사에서의 한일 방문은 예외가 된다.
- 경상북도의 공무원, 경상북도가 1/2이상 출장하는 기업·단체의 직원 등에 의한 방일 출장을 규제한다.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B%8F%85%EB%8F%84%EC%9D%98_%EB%8B%AC
2005 - 노인과 여성 21명을 연쇄살인한 유영철 사형 확정
2005 -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 대 쿠웨이트 경기
2004 - 서울시교육청, 서울 초중고 ‘차렷, 경례!’ 구령 퇴출키로 발표(7.01부터 실시)
1999 - 코소보 전쟁: 유고슬라비아와 NATO가 평화 협정을 맺다. /위키백과
1998 - 삼성전자, 세계최초로 4기가D램 개발
1998년 6월 9일 삼성전자는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반도체 학술대회 '초고속집적회로 국제학회'(VLSI심포지엄)에서 4기가 D램
개발에 요구되는 회로선폭 0.13㎛의 초미세 가공기술인 '반도체 가공 전공정에 적용한 신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 0.13㎛ 공정기술을 0.25~0.3㎛급 공정기술이 쓰이는 64메가 D램이나 0.18㎛급 기술이 쓰이는 2백56메가
D램에 적용할 경우 이들 제품의 원가 경쟁력을 크게 높일 수 있게 되었으며, 손톱만한 칩속에
신문 약 3만2천 페이지, 단행본 6백40권 분량의 데이터를 기록하고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KBS
제35차 국제광고협회(IAA) 세계광고대회가 1996년 6월 9일 한국종합전시장서 개막됐다.
1996 - 제35차 세계광고대회 서울서 개막
전세계의 광고 및 미디어업계 인사들이 모여 21세기 광고 및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미래를 전망해보는 제35차 국제광고협회(IAA) 세계광고대회가 1996년 6월 9일 한국종합전시장에서 개막했다. 12일까지 계속된 이 광고대회에는 일본 아사히신문 나카에 도시타다 회장과 홍콩 스타TV 라클란 머독 부회장,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 어번 러너 편집국장 등 세계 미디어업계 및 광고계의 거물들이 연사 및 패널로 참가해 21세기 뉴미디어 기술과 그에 따른 광고방향 등을 논의했다.
세계광고대회는 IAA(국제광고협회)가 주최하는 세계적 규모의 광고대회로 `광고산업의 올림픽`으로 불리운다. 2년마다 세계각국으로 옮겨 개최되며 전세계 우수 언론사, 광고주, 광고회사 간부 등 약 2천-2천5백여명이 참여한다. 아시아에선 1984년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서울에서 열렸다. IAA는 1938년 세계각국 광고주, 광고대행사, 언론매체 및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업체 간부들이 구성한 세계유일의 광고단체로 본부는 뉴욕에 있고 세계 65개 도시에 지부가 설치되어 있다. 1996년 현재 87개국 3천5백여명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1968년 지부가 설치됐다. /조선
1996 - 충북 진천에 보탑사 3층목탑 준공
1994 - 네덜란드 경제학자 틴베르헨 사망
1991 - 필리핀 파나투보 화산 폭발로 754명 사망
1991 - 시인 고정희 사망
연세대 시위 도중 경찰의 최루탄에 맞은 연세대생 이한열씨를 이종창씨가 부축하고 있다.
(로이터통신 사진기자 정태원씨 촬영)
1987 - 이한열 사건(1987)
1987년 오늘!
연세대 학생 천여 명이 이튿날로 예정된 6.10국민평화대행진에 출정하기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를 마친 뒤 학교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대통령직선제를 위한 개헌과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교문 밖 진출을 시도하다 전경들과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한열 군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
이군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사상태에 빠졌고 7월 5일 심폐기능이 정지돼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 묻혔다.
이한열 사건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지 얼마 안 있어 발생한 일이어서 파장이 매우 컸다.
국민들의 항쟁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전국 33개 도시에서 하루 100만여 명이 시위를 벌이는 등 이른바 6월 항쟁의 불길이 거세게 일었다.
정부는 시국을 수습하기 위해 결국 6.29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발표한다. /YTN
1987 - 연세대 이한열군 최루탄 맞고 혼수상태
1987년 6월 9일 연세대 경영학과 2년 이한열군이 교문 앞에서 시위도중 전경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전두환대통령의 5공정권 마지막 해인 1987년은 연초부터 심상치 않았다. 국민들은 당시 민정당이 노태우 대표를 후보로 선출해 간접선거 방식인 이른바 체육관 선거로 정권을 연장하려는 데 거세게 저항했다. 게다가 2월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이른바 4ㆍ13호헌조치는 학생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학생시위가 절정에 다다를 무렵 시민단체들은 학생들과 연합해 `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6월10일 전국적으로 개최하기로 했다. 당시 연세대 2학년생이던 이군은 이 대회의 일환으로 전날인 6월 9일 연세대 교문 앞에서 벌이진 시위에 참가했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이군은 27일 만인 7월 5일 새벽 2시5분 끝내 사망했다.
이한열군의 죽음은 한 대학생의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다. 한국 현대사에 하나의 분수령을 이룬 `6월 항쟁`의 처절하고 비장한 마무리였다. /조선
1984 - 서방정상회담, 런던 경제선언 채택하고 폐막
1983 - 영국 총선서 보수당 압승
1981 - 안전기획부 일본거점 간첩 손유형 등 6명 검거발표
1981 - 미국 하바드 대학에 한국학연구소 설립 /tgedu
1980 - 계엄사, 현직 언론인 8명을 유언비어 유포혐의로 연행
1976 - 한국적십자, 북적한적십자에 추석성묘단 교류 제의
1976 - 서사하라 영유권 분쟁(1976)
1976년 오늘!
서부 사하라 지방에서 총성과 포성이 요란이 울려퍼진다.
알제리의 지원을 받은 '서사하라 독립운동', 즉 '폴리사리오' 게릴라들이 유격전을 전개한다.
폴리사리오는 넉 달 전 모로코과 모리타니에 분할귀속된 땅을 되찾기 위해 게릴라전을 벌였다.
서사하라는 스페인이 식민통치 포기를 선언하고 군대를 철수시키자 풍부한 지하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주변국들 사이의 분쟁이 심하게 벌어진 곳이다.
모리타니는 1978년 7월 사실상의 휴전에 이어 1979년 8월 서사하라 영유권을 포기하지만 모로코는 폴리사리오 게릴라들에 맞서 전쟁을 계속한다. /YTN
1975 - 필리핀, 중국과 수교
1974 - 과테말라 작가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사망
1973 - 포항제철, 용광로 화입식 거행하고 제철 개시
1973 - 포항제철 용광로(고로) 쇳물 출선 시작 (용광로 화입식은 8일로~)
1973년 6월 9일 아침 7시 30분. 포스코인은 물론 건설 관계자 모두가 출선 광경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한 순간, 출선구가 '뻥' 뚫리며 황금빛 쇳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장내는 온통 만세 소리로 뒤덮였으며 요원들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습니다. 쇳물만큼이나 뜨겁고 값진 눈물이었습니다. /museum.posco.co.kr /Google
처음 쇳물이 쏟아지던 순간 모두들 감격에 겨워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던 당시 장면입니다. 가운데에 손을 번쩍 들어올린 박태준 사장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museum.posco.co.kr /Google
포항제철(POSCO) 연혁
1968-11-12 박정희 대통령 포철현장 방문(13차례 방문 중 첫번째)
1969-01-15 제철연수원 현판식
1970-04-01 포항종합제철소 1기 착공식
1970-06-23 중후판공장 설비공급 계약체결
1970-09-19 열연공장 설비공급 계약체결
1972-10-03 첫 열연제춤 출하, 박태준 사장 첫 제품에 "피와 땀의 결정" 휘호
1972-11-19 제품 해외수출 시작, 후판제품 7,400톤을 미국과 대만에 수출
1973-06-08 제선공장 준공식 및 용광로(고로) 화입식
1973-06-09 용광로(1고로) 쇳물 출선 시작
1973-07-03 1기 설비 종합준공식
1973-12-01 2기 설비 종합 착공식
1974-10-21 직업훈련원 개소 및 1기생 입소식
1975-11-29 1억불 수출의 탑 수상
1978-12-08 3기 설비공사 완공
1979-02-01 4기 설비 종합착공식
1979-09-27 4본주 입주식
1981-02-18 4기 설비 종합준공, 조강 연산 850만톤 규모
1981-09-01 4기 2차 설비 착공식
1983-05-25 4기 2차 설비 종합준공식
http://museum.posco.co.kr/museum
1970 - 서울지하철 건설본부 발족 /tgedu
1969 - 티토 유고 대통령, 학생 데모에 대해 잘못 시인하고 대학제도개혁 약속 /tgedu
1967 -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 중동전 참패로 사의 표명
1962 - 제2차 통화개혁(10대1로 평가절하. 환을 원으로 변경)
1962 - 최초의 한글 화폐단위 원 채용
1962년 6월 9일 한글로 된 최초의 화폐 단위가 채택되었다. 5·16군사정변 이후 통화량의 투기자금화를 방지하고 음성적인 부정축재자금을 장기산업투자재원으로 활용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제2차 긴급통화금융조치가 취해졌다. 이 조치는 긴급통화조치법의 개정법률과 긴급금융조치법에 의거해 단행되었는데, 당시의 혁명정부가 제2차 통화개혁을 단행하면서 종래의 환 대신 원을 새로운 통화단위로 채용했다. 환과 원의 교환비율은 10 대 1이었다. /브리태니커
1961 - 프랑스의 세균학자 게랭 사망
1959 - 미국서 탄도미사일 탑재한 세계최초의 원자력잠수함 `조지 워싱턴호` 진수
1958 - 키프로스섬, 터키-그리스인 갈등 심화(1958)
1958년 오늘!
지중해의 섬 키프로스의 수도 니코시아에서 그리스 청년 두 명에 대한 장례식이 거행된다.
두 청년은 이틀 전 일어난 터키인들의 폭동 때 살해됐다.
그리스계 주민들은 장례식을 치른 지 며칠 뒤 터키계 주민 두명을 보복살해한다.
키프러스를 통치하던 영국 총독은 그리스인과 터키인 사이의 대규모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즉각 통행금지를 선포한다.
키프로스는 2년 뒤인 1960년 8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하지만 이 섬에 사는 터키인과 그리스인 사이의 분쟁은 계속된다.
실제로 1963년 11월에 마카리오스 3세 대통령이 소수파인 터키계 주민에 대한 지나친 우대를 시정하는 헌법개정안을 제안하자 그리스계 주민과 터키계 주민 간에 무력충돌이 벌어져 국민들의 항쟁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YTN
1956 - 중립국 감시위 비무장지대로 철수
1955 - 독일 포로 귀환(1955)
1955년 오늘!
독일 베를린역이 눈물바다로 변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에 침공했다가 포로로 잡혔던 독일군들이 기차를 타고 꿈에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왔다.
귀환병들은 가족들과의 재회를 기뻐했지만 실종된 병사들의 가족은 기다리다 지쳐 애처롭게 흐느꼈다. /YTN
1954 - 한국일보 창간 /YTN
1954 - 한국일보 창간 /조선
1954 - 미국의 교육자 겸 작가 알레인 로크 사망
1954 - 3대 민의원 개원
1954 - 제3대 국회 개원(1954)
1954년 오늘, 임기 4년의 제3대 국회가 새로 단장된 서울 태평로 국회의사당에서 개원했다.
최고 연장자인 강원도 출신 김상엽 의원의 사회로 개막이 선언되고 즉시 임기 2년의 의장 한 명과 부의장 두 명을 선출하기 위한 무기명투표가 실시됐다.
26살의 최연소자로 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영삼 의원 등 국회의원 203명이 질서있게 투표에 참여했다.
이 투표에서 이기붕 의원이 의장에 당선되고 부의장에는 최순주, 곽상훈 의원이 선출됐다.
이기붕 의장은 개회사에서 조국의 비상시국에 임하여 조국번영을 위해 협력하자고 강조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최대한 민의를 존중해줄 것을 당부했다. /YTN
1954 - 이기붕 제3대 국회의장 피선
1954 - 일본, 방위청설치법 자위대법 공포
1953 - 각의, 휴전 거부 결의
1952 - 일본. 인도 평화조약 조인
1951 - 미국 중국에 10억불 원조 발표
1946 - 구강보건의 날(치아의 날) 제정
해방직후 齒協의 전신인 조선치과의사회는 해방되던 해인 1945년에 재발족하고 이듬해인 1946년 6월 들어 「구강위생강조주간」을 설정했다. 제1회 구강보건주간행사가 시작된 것이다.
매년 6월 9일∼15일까지 「구강위생강조주간」으로 설정한 조선치과의사회는 이 기간동안에 전국 치과의사들이 총동원되어 각 국민학교 아동에 대한 구강검사와 중고교생들에게 구강위생강연 등을 펼치고 라디오, 신문 등을 통해 대국민계몽사업을 펼쳐나갔다.
특별히 6월 9일을 구강위생의 날로 정한 것은 `6세 구치를 보호하자'는 의미에서 6과 9를 따서 6월 9일을 구강보건의 날로 정한 것이다. 과연 누가 이 아이디어를 주장했으며 어느 임원회에서 결의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시기로 봐서 1946년 4월∼1947년 5월까지 재임했던 조선치과의사회 제2대 회장이신 박명진(朴明鎭) 회장 재임시라고 추정할 수 있으며, 이한수(李漢水) 등에 의하면 1947년 서울대학교에서 예방위생학을 강의하신 김문조(金文祚) 선생님이 당시 치과대학 3학년 강의중 6월 9일을 구강위생의 날로 제정하게된 배경을 설명하신 적이 있고, 김문조(金文祚) 선생님이 당시 조선치과의사회 보건위원(1945∼1947)이셨던 점을 감안하면 김문조(金文祚) 선생님이 주장하셨으리라는 개연성이 있다. 변영남(성신치과의원 원장) 2002.05.20 www.dentist2.co.kr /Google
1946 - 타이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Phumiphon Adunyadet) 국왕 즉위
1942 - 체코슬로바키아의 리데체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파괴되다. /위키백과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독일어: Reinhard Heydrich, 1904년 3월 7일 ~ 1942년 6월 4일)는 게슈타포 및 SS보안방첩부의 수장으로서 나치 독일 치하에서 국가보안본부의 수장 및 보헤미아 및 모라비아 보호령의 총독대리를 지낸 인물로서 1942년 6월 4일, 영국에서 훈련받은 체코슬로바키아 레지스탕스의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하이드리히 사후 국가보안본부는 에른스트 카르텐브루너가 후임으로 취임했다. 생전에 하이드리히는 ‘프라하의 도살자’, ‘피에 젖은 사형집행인’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또한 하이드리히는 유대인 대학살의 주요 계획자였으며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 방안"을 모색한 1942년 반제 회의를 주관했다. /위키백과
하이드리히 암살사건
1942년 5월 27일, 보헤미아-모라비아 보호령 총독대리 하이드리히가 체코슬로바키아 레지스탕스의 공격을 받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 사건은 영국의 지원을 받은 얀 쿠비츠와 요제프 가베크가 시도한 암살 사건이었다.
아침 출근길에 권총과 폭탄 공격을 당한 하이드리히는 즉시 시립병원으로 옮겨졌고, 당시 프라하에서 가장 솜씨 좋은 외과의사인 호올 바흐므가 수술했다. 폐와 복부에 파편이 꽂혀 있었고, 중상이었다. 수술 후 하이드리히는 회복 조짐을 보였으나 6월 3일 위독상태에 빠졌다. 히믈러가 2명의 전속 의사를 급히 파견했지만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6월 4일 아침에 하이드리히는 사망했다. 검시 해부 결과 비장 절제 때문에 일어난 화학 현상으로 발병한 가슴 중앙부의 염증이 사인이라고 공식 기록되었다.
다만, 히믈러가 파견한 의사들의 노력이 나중에 오히려 하이드리히의 죽음을 재촉했다는 설도 있다. 하이드리히를 발탁한 것은 히믈러였지만, 이무렵 히믈러와 하이드리히의 관계는 극악의 라이벌 관계로 치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 하이드리히를 최초로 수술한 바흐므는 전후에 나치 협력자로 체포되어 강제 노동형에 처해졌다. 이 자는 지뢰 제거 작업에 투입되었으나, 지뢰가 폭파하여 중상을 입었고, 아무도 치료하려 하지 않으려 하여 라이프치히로 옮겨졌으나, 그곳에서 죽었다.
- 레지스탕스들은 성 카를 보르메우스 교회에 숨어있었는데, SS와 게슈타포가 습격하여 모두 죽여버렸다.
- 하이드리히가 죽은 날, 152명의 유대인이 처형되었다.
- 6월 9일, 복수를 이유로 7 SS의용산악사단 프린츠오이겐의 일부 병력이 차출되어 한낱 농촌에 불과했던 리데체를 완전히 파괴했다. 마을 주민 중 남자들 172명이 처형되었고, 여자들은 수용소로 보내졌으며, 아이들은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로 입양보내졌다. 이 아이들 중 일부는 나중에 다시 발견되었다.
- 하이드리히 사후 국가보안본부는 히믈러에 충직한 에른스트 카르텐브루너가 장으로 임명되었지만, 1943년 1월말에 취임했다.
- 영화 《새벽의 7인 (원제 : Operation Daybreak)》는 이 사건을 다룬 영화다. /위키백과
1938 - 국민정부 중경으로 이전
1934 - 소련.루마니아.폴란드 외교관계 수립
1899 - (조선 고종 36) 독일의 하인리히 국왕 군함으로 인천 도착 /tgedu
1898 - 영국, 청나라 구룡반도 조차
1898 - 영국 청나라의 구룡반도를 99년간 조차(租借)
1898 - 이탈리아의 저널리스트, 극작가, 소설가 말라파르테 출생
국어학자이자 수필가인 일석 이희승 선생(1896 - 1989).
1896 - 국어학자 이희승 출생
국어학자 일석 이희승 선생이 1896년 6월 9일 경기 개풍에서 태어났다. 일석은 경성제대 조선어문학과를 2회로 졸업, `국어학 개설` `국어대사전` 등을 펴내 국어학 연구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고비 때마다 불의를 참지 못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돼 3년간 옥고를 치르다 광복 후에야 풀려났고, 4·19 때는 교수단을 이끌고 나와 이승만 정권에 마지막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평생을 청빈하게 살아왔으면서도 1989년 93회 생일을 맞아 후학들을 격려하기 위해 사재 2억원을 내놓고 그해 11월 숨을 거뒀다. 14년이 흘러 후손들은 `일석 국어학상`을 제정, 2003년 6월 10일 첫 수상자(이익섭 교수)를 냈다. /조선
1896 - 국어학자 이희승(李熙昇) 출생
이희승 [李熙昇, 1896.6.9~1989.11.27]
이희승은 현대 국어학 발전의 초석을 놓은 국어학자이다. 중앙고등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국어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조선어학회에서 국어연구에 주력하다가,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에는 경성대 교수, 1946년 학제개편 이후에는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진양성에 힘썼다. 1961년 정년 퇴임 후에는 서울대 명예교수, 동아일보사 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활발한 학문 및 사회 활동을 했다. 그는 규범문법을 정립하고 근대적인 학문으로서 국어학의 체계를 세우고자 노력했다. 주요 저서로 <초급국어문법>(1949)·<국어학개설>(1955)·<국어대사전>(1961) 등이 있다. 그밖에 <박꽃>(1947) 등의 시집, <딸깍발이>(1952)·<벙어리 냉가슴>(1956) 등의 수필집을 남겼다. /브리태니커
"한 민족의 언어는 그 민족의 정신생활의 총화와 물질생활의 전부가 반영된 상징물이고,
사전은 그러한 언어가 담겨 있는 그릇이다."
- 이희승, <국어대사전> 머리말
1895 - 중국의 문학자, 사학자 첸무 출생
1892 - 정치가 신익희 출생
1891 - 미국의 작곡가 포터 출생
1885 - 청나라 프랑스 강화조약 성립(텐진조약)
1873 - 스페인, 연방공화제 선언
`올리버 트위스트`의 작가 찰스 디킨스.
1870 - '올리버 트위스트' 작가 찰스 디킨스 사망
1870 -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 사망
영국의 위대한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1870년 6월 9일 58세로 사망했다. 디킨스는 많은 사람들의 애도 속에 문인 최고의 영예인 웨스트민스터 교회에 안장됐다.
궁핍한 가정에서 태어난 탓에 어려서부터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던 디킨스는 변호사 사무실 사환과 법원 속기사, 신문사 통신원 등을 거쳤다. 신문사 통신원 생활은 그가 글쓰기에 접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 각지의 풍속을 스케치해 본사에 송고하는 일이 통신원으로서의 그의 할 일이었다. 이 당시에 썼던 글들을 모은 단편소품집 `보즈의 스케치`(1836) 출간은 작가로서의 시작이었다. `피크위크 페이퍼스`(1837)에 이어 1838년 출간한 `올리버 트위스트`는 작가로서의 명성과 위치를 확고하게 해주었다. 그가 몸소 체험했던 사회의 부조리와 서민들의 애환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비판적으로 묘사한 그의 글은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받았다.
이같은 그의 작품경향은 자전적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1850)와 `황폐한 집`(1853) 출간을 계기로 변해갔다. 주인공 한 사람의 성장과 체험을 중심으로 한 초기의 작품경향과는 달리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사회의 여러 계층을 폭넓게 바라보는 이른바 파노라마적인 사회소설로 접근해 간 것이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수 없는 사회의 두터운 벽에 직면해 유머를 잃고 무력과 좌절감이 전편에 흐르는 작품이 주조를 이뤘다. 그럼에도 그의 창작의욕은 꺾일 줄 몰라 `두 도시 이야기`(1859) `위대한 유산`(1861) 등의 작품을 출간했다. /조선
1865 - 덴마크의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 닐센 출생
1860 - <피터 팬>을 지은 영국의 작가 바리(Sir James Barrie) 출생
1843 -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주트너 출생
1815 - 빈 회의의 최종 결의안 조인
1815년 6월 9일 프랑스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 재편을 논의한 빈 회의의 '최종 결의안'이 조인되었다. 나폴레옹 1세를 물리친 오스트리아·프로이센·러시아·영국과 부르봉 왕가의 프랑스 등 5대 열강 위원회가 빈 회의를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주요 쟁점은 폴란드와 작센에 대한 처리, 스웨덴·덴마크·러시아 사이의 요구 대립, 그리고 독일 연방의 국경조정문제 등이었다. 조인에 의해 오스트리아는 롬바르디아와 베네치아를 얻었고 티롤의 대부분을 되찾았다. 바이에른·뷔르템베르크·바덴도 대체로 유리한 결과를 얻었으며 영토도 확장했다. 덴마크는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양보하고 라우엔부르크를 얻은 반면 스웨덴령이었던 포메른은 프로이센에 넘어갔다. 빈 회의에서 결정된 국경선은 거의 40년 이상 지속되었다. /브리태니커
1812 - 독일의 천문학자 갈레 출생
1781 - 증기기관차 발명가 스티븐슨 출생
1781 - 영국의 증기기관차 발명가 스티븐슨 출생
스티븐슨 [Stephenson, George, 1781.6.9~1848.8.12]
1776 - 이탈리아의 화학자 아보가드로 출생 - 8월 9일로~
1768 - 미국의 면직공업 창시자 슬레이터 출생
1762 - 프랑스, 룻소의 <에밀>에 대해 유죄판결 내리고 체포령 내림 /tgedu
1672 - 러시아의 차르, 황제 표트르 1세 출생
1640 -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1658-1705) 레오폴트 1세 출생
1597 - 네덜란드의 화가 산레담 출생
이탈리아 황금 궁전에 있는 네로의 석고상.
68 - 로마 황제 네로 자살
68 - 로마 황제 네로(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 37~68) 자살
68 - 로마 폭군황제 네로 자살
로마 황제 네로는 전적으로 그의 어머니 소아그리피나가 꿈꿔온 야망의 산물이었다. 황제의 아내와 황제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
그녀의 꿈이었다. 주위의 눈총에도 시동생인 황제 클라우디우스와 재혼한 아그리피나는 곧 황제의 친아들을 제치고 네로를 후계자로 내세웠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증손녀인 자신의 피를 생각하면 크게 꿀릴 것도 없었다. 54년 황제가 죽고 네로가 17세로 5대 황제에 오름으로써 그의 꿈도 사실상 실현되는 듯했다.
집권 초기 네로는 철학자 세네카의 도움으로 악정은 펼치지 않았다. 그러나 네로의 몸에는 아그리피나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원래 후계자였던 의붓동생을 독살하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어머니, 심지어 새 여자를 맞기 위해 아내마저 살해했다. '폭군'으로 불릴 때 로마의 절반을 태운 대화재(64년)가 발생하고 사람들이 네로의 소행이라며 의심의 눈길을 보내자 네로의 야만성이 또 유감없이 발휘됐다. 기독교인들이 범인으로 몰려 박해를 당한 것이다.
68년 6월 9일, 반란이 일어나고 원로원마저 등을 돌리자 네로는 31세로 자살을 선택한다. “이로써 한 예술가가 죽는구나.” 자신을 뛰어난 예술가로 착각했던 네로의 마지막 변이었다.
첫댓글 5복중의 하나인 치아,,잘 관리해야합니다,,
잘봅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