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um Bark님께.
리플로 달려다가 글이 길어져서 따로 답글을 답니다.
그런 주장이 '그래도 이승만을 마냥 비난할 수 만은 없지 않느냐'의 논거로 가장 빈번하게 거론되기에 저도 그에 대해 생각을 안해본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결과는 별 차이가 없었을거라 생각합니다.
막 해방된 조국의 지도자라고 해도 이승만은 프랑스의 드골이나, 유고의 티토, 베트남의 호치민 등 동시기 해방되거나 독립한 국가들의 지도자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위의 예로 든 세 인물은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무시할 수 없는 독립운동 경력, 국내의 탄탄한 지지기반 등의 요소 중에서 최소한 하나 이상을 가지고 있어 가히 '내가 곧 국가다'라고 할만한 인물들이었습니다만, 이승만은..... 글쎄요. 카리스마로 보자면 이승만 개인이 그런 타입의 인물도 아니었고, 또한 그의 한마디에 무게를 실어줄 독립운동 경력에 있어서도 꾸준하게 항일무장투쟁을 벌여온 좌익계열 독립운동가들에게는 물론 같은 우익계열 인사들 내부에서도 심히 쳐지죠. 당장 그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워 했던 임시정부의 대통령이라는 직함마저도 당시 우익계의 정신적 지주라 할만했던 김구 선생님으로부터 "대통령 뽑아줬더니 상하이에 와서 일할 생각은 안하고, 하와이에 눌러 앉아서 임정 앞으로 보내진 성금만 가로채고 있으니 뭐 저따위 놈이 다있냐? 상하이에 있는 임정요인들 유리걸식하는 꼴이 안 보이냐?"라는 평가를 들으며, 탄핵의결로 대통령자리에서마저도 쫓겨났고, 그 뒤로는 더 별볼일 없는게 하와이에 눌러앉아서 독립운동한다는 구실로 파벌싸움을 벌여, 자금줄 말리기와 테러, 항일무장투쟁노선에 대한 원색적 비난, 미국 사법기관에 제소를 통한 압박 등을 통해 기존에 있던 독립운동조직을 와해시켜 자기 밑으로 끌어들이는 일에만 열정을 쏟고 있었습니다. 똑같이 돈없고, 빽없는 처지에서도 김구 선생님 주도하의 임정이 광복군을 조직하고, 의열단 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항일운동을 계속해 온 것과는 너무나도 비교되지요. 그리고 국내에서의 활동에는 관심도 없었으니, 국내에 이렇다할 세력기반이 없었던 것도 당연하죠. 그 때문에 귀국 후 국내에서의 기반 확보를 위해 명색이 독립운동가이면서도 친일 지주, 자본가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한민당 따위와 손을 잡죠. 그나마 하나 건질만한게 있다면 미국과의 관계이겠으나, 미국본토에서 수천킬로 떨어진 하와이에서만 줄곧 활동해온 이승만이 미국 본토의 정계인사들로부터 얼마만한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죠. 실제로 미국이 해방된 조선땅에서 미군이 진주하기 전에는 일제시대의 치안기구에게, 진주한 후에는 미군정 스스로가 치안과 행정권을 장악한 것만 봐도 그렇고, 이승만의 이후 활동에서도 반탁운동 참가, 정읍발언 등으로 미군정과 마찰을 빚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전적과 배경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이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출신의 박사라는 타이틀이 주는 후광과 상황의 급변에 따른 미군정의 태도변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몽양 여운형, 백범 김구같은 쟁쟁한 경쟁자들이 모두 암살로 무대에서 퇴장한 탓이 큽니다. 이승만이 신생국가의 정부수반이 되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도, 혹은 상황을 그렇게 이끌어갈 수 밖에 없었던 어떠한 의도적인 의지의 존재도 없었던 겁니다. 게다가 집권 이후에도 이런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못해서 충분한 국내세력 기반을 확보하지도 못했고(한민당과는 연정-동반자의 관계였지, 자유당과 같은 주종관계는 아니였죠), 김일성처럼 큰형님이라할 소련(이승만의 경우에는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도 이끌어내지 못하죠(오히려 이승만의 호전적인 발언들에 넌덜머리가 난 미국이 군사고문단만 남겨두고 미군을 철수시키고, 군사원조도 엄격하게 제한해버리죠). 그나마 국내정치에 있어서 상당한 역량을 보여줬다면 이 모든 것이 가려질 수 있겠으나, 이승만의 정치력이란 것, 그의 지도자로서의 마인드라는 것이 얼마나 초라하고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는가 하는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이승만은 신생국의 국가원수이면서도 국가 그 자체와 동일시할만한 존재는 아니었고, 조금 심하게 말해서 아무때나 다른 놈으로 갈아치워도 별 상관없는 국가원수였다고 봅니다. 김구 선생님이나 여운형 선생님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사라진 것은 아쉽지만(이승만에게는 다행이겠지만), 어쨌든 아무나 앉혀놔도 이승만만큼은 할 수 있을테니 말이죠.
따라서 저는 극단적으로 말해 이승만이 전쟁 중에 인민군에 포로로 잡혔거나, 눈 먼 포탄에 맞아죽었더라도 전황과 대한민국의 운명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국가원수의 부재상태로 인한 일시적인 혼란이야 피할 수 없었겠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이미 전황과 대한민국의 운명은 이승만 정권과 대한민국 정부, 더 나아가 한국민들의 손마저 떠나 미국의 군사,경제적 원조에 달려있던 상황이니까요.
비근한 예를 들어, 우리와 비슷한 역사적 경로를 밟아온 베트남의 케이스를 보면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베트콩과 남베트남 정부군 사이의 전쟁이 한창이던 와중에 남베트남의 고 딘 디엠 정권은 쿠데타로 인해 붕괴되고 맙니다. 고 딘 디엠 정권은 기본적으로 식민지시절의 부역자들이 주축이 되어 성립한 정권으로 내부의 부패와 무능은 극에 달했고, 그에 비례해 국민들의 증오는 높아만 갔죠. 결국 이 정권 하에서는 남베트남의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의 묵인 하에 쿠데타가 성공하고 디엠 일가는 총살당하죠. 그러나 이 때문에 남베트남이 멸망하거나 베트콩과 북베트남의 공세에 갑자기 수세로 몰리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북베트남과 지리한 전쟁을 계속해 나가면서 75년까지 12년을 더 버티죠. 이런 남베트남의 패망은 당시의 정부수반(이 사람도 쿠데타 출신) 티우 대통령이 전쟁 중에 전사하거나 실각해서가 아닌, 미국의 철수 때문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시의 남베트남의 상황이나 한국전쟁 당시의 남한의 상황이나 큰 차이는 없었다고 봅니다. 다만 남베트남은 패망한 반면에,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았기 때문에 이승만의 존재와 업적이 과대평가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승만에 대한 '맹목적인 존경' 운운이 '왜곡'이라고 하시지만, 전에 전쟁중에 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양민들에 대해서는 '전쟁중에 그럴수도 있지 뭐...'하고 쉽게 말씀하시던 분이, 그 죄과가 너무도 크고 명백한 이승만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옹호하고 그 존재가치를 과대평가하는 것을 두고 그 이상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설마 사람의 목숨은 사실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적 지위에 따라 경중이 나눠지는 것입니까?
지금 원초의 주제랑 상관없는 내용을 꺼내면서 다투어 보고자 하는 겁니까. 내가 지난 번에 처음에 이야기 했었는데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인재풀이 부족했다고. 그리고 전쟁중에 민간인의 희생은 어쩔수 없는 부분인데 누가 미화했다고 그러는지요. 오히려 지금 원망을 하려면 김일성을 원망하여야죠... 그리고 정치력이라는 것이 쓱 꺼내서 보여줄 만한 물건입니까. 여러가지 문제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함량미달의 인물이라고 간단히 치부하여 버릴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다시 묻지만 직장이나 무슨 단체에세 대표같은거 해본적 있습니까. 동창회 총무같은거 말고. 야당대표는 아무나 하는거 같습니까. 여당대표도 아무나 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는 요지입니다. 그리고 주제와 상관이 없는 말을 꺼내면서 불쾌하다는 식인데, 토론을 하자는 겁니까, 싸우자는 겁니까. 내 글 어디에서 이승만이 대단하게 위대한 대통령이었다고 했나요. 그리고 민간인을 국군이 죽여도 되었었다고 언제 그랬나요. 남이 하지 않은 말을 확대재생산하여 말하는 것이 왜곡입니다. 그리고 반박을 하였다고 하는데, 솔직하게 말하면 자신의 생각만을 서로말한 것입니다. 전쟁중에 선거를 하여 지도부를 꾸릴수도 있었다는 가정이 하루가 다르게 전선이 남진하는 상황에서 되었겠냐고도 했죠. 맥아더도 그렇습니다. 만주폭격을 언급하자 바로 해임한 것이 맥아더의 선시행 후보고 때문이었죠.
이미 트루만은 맥아더가 이승만과의 연줄로 전쟁에 개입하면서 선시행 후보고를 했다는 것을 아니까 확전을 막고 시끄러운 대선후보경쟁에서 떨어트리고자 그렇게 하였다는 것은 여기저기 나온 사실인데요. 오로지 이승만=나쁜놈이라는 시각에서 시작해서 종결지을려고 하니 조금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그게 바로 찬양입니까? 나도 아닌거는 아닙니다만 전쟁중에 지도자가 바뀌는 것이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라는 요지에요. 거듭 말하지만 대통령 아무나 하는거 아닙니다. 신생공화국에서 집권 몇년내에 그런 지도자들 숱하게 밀려납니다. 허나 이승만은 4.19로 하야할때 까지는자리를 잘 지켜냈었는데요. 이게 정치력입니다.
정치력이 모략과 술수나 그런 걸로 유지되는 것이냐 그거는 나쁜놈이다라고 할지 모르나, 안 그런 지도자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죠. 그러한 불만세력을 적절하게 눌러서 어르고 달래면서 끌고 나가는 것이 정치력입니다. 여기에 국가수반이라면 외교도 역시 생각하여야 하는 문제입니다. 나중에 반공포로 석방도 정치적인 고려로 이뤄진 거죠.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서 판단하기로 실현될수 없는 것은 외교적으로 일을 한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은 대통령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외국의 힘을 빌리지않고 행정일을 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후의 행보에는 문제가 많았지만 긍적적인 면을 찾아보면 있기도 하단 겁니다.
제가 지금 이승만 행정부 전체를 갈아엎자고 했습니까? 은근슬쩍 왜곡하는게 누군데요? 설마하니 대한민국 내에서 이승만 한명을 대체할 사람이 없을까봐서 인재풀이란 말까지 나옵니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이승만 단 한명을 대체할 사람조차 없다고? 그리고 전에 함평민간인 학살사건 때 민간인 희생을 쉽게 말한건 사실아닙니까? 전에 님이 지금 말한 그대로 '전쟁 중에 그럴 수도 있지'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썼지요. 저는 그 사실을 지적했지 님이 '미화'했다거나 '민간인은 죽여도 된다'라고 했다고 한적은 없는뎁쇼? 흥분해서 리플 맘대로 읽지 마시지요. 그래도 깨나 시간들여서 쓴거니까.
그리고 정치깡패와 부정선거, 관제시위 등을 동원해서 연장한게 '대한민국'의 수명입니까, 이승만 '개인'의 '정권'입니까? 말은 똑바로 하시지요. 제가 동창회 총무를 했든, 야당대표를 했든 상관없는 얘기 꺼내지 마시고, 그 '정치력'이란게 어디에 사용됐는지는 누가봐도 명백한데요? 그런데도 그걸 '대한민국'의 운명에 연관시키고자 합니까? 다음바크님이야말로 논제를 흐리지 마시지요. 애초에 주제는 '이승만'과 '대한민국'이었지, 이승만이 지 자리를 지킬 정치력이 있느냐, 없느냐 따위는 처음부터 묻지도 않았거든요?
그리고 중간에 사소한거 하나 지적하자면 제가 전 리플에서 반박했다고 표현한건 맥아더가 단독으로 전쟁에 참전을 했느냐, 안했느냐 관한 부분인데, 저는 그 부분에서 다른거 없이 실제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날을 제시하며 님 주장의 허구성을 지적했습니다만? 그 역사적 사건들이 벌어진 날짜가 제 생각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서 "솔직하게 말하면 자신의 생각만을 서로말한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까? 엄밀히 말해서 추측만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한 건 님이지, 전 아니에요. 더불어 엮으려고 하지마세요.
여기에 하나 더 지적하자면, 만주폭격은 실제로 건의만 했지 실시되지는 않았거든요? 근데 그게 왜 선시행 후보고의 사례가 됩니까? 님이야말로 FACT를 싸그리 무시하고 내키는대로 말하지 마세요. "이미 트루만은 맥아더가 이승만과의 연줄로 전쟁에 개입하면서 선시행 후보고를 했다는 것을 아니까" -> 게다가 이것도 제가 날짜까지 언급하면서 반박했는데 왜 자꾸 들고나옵니까? 여기저기 나온 사실? 정확한 근거있어요? 나름 한국전에 관해서 이 얘기 저 얘기 황당한 얘기도 많이도 들어봤지만, 미국의 참전이 행정부 결의도 없이 일개 야전사령관이 독단으로 결정했다는 얘기는 그 중에서도 압권이네요.
지금이 무슨 고대시대라도 되는 줄 압니까? 맥아더가 수-당시대의 절도사예요? 그럼 맥아더 휘하부대가 파병되기도 전에 내려진 트루먼 대통령의 참전결정은 뭐랍니까? 맥아더에게 내려진 한반도에서의 작전지휘권과 명령은요? 제발 출처 좀 대주세요. 소설 쓰지 마시고. 이건 가치관이나 생각의 문제도 아니고 역사적 사실의 문제니까 확실히 해 둡시다.
그리고 "정치력이 모략과 술수나 그런 걸로 유지되는 것이냐 그거는 나쁜놈이다라고 할지 모르나, 안 그런 지도자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죠. 그러한 불만세력을 적절하게 눌러서 어르고 달래면서 끌고 나가는 것이 정치력입니다" -> 이승만은 정도의 차이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그것뿐이 없다는게 문제라고 이미 언급했는데요? 그냥 지도자로서는 정치력 그것만 중요하단 겁니까? 그런식이라면 20세기에 죽을 때까지 해먹은 것도 모자라 지 아들에게까지 물려준 김일성은 금세기 최고의 지도자라 할 만 하군요.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서 판단하기로 실현될수 없는 것은 외교적으로 일을 한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은 대통령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외국의 힘을 빌리지않고 행정일을 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 그래서 미국은 부산정치파동 때 이승만을 그렇게 비난하고 이승만을 극히 위험한 인물로 분류하여 그를 쿠데타로 제거할 계획을 언제라도 발동시킬 수 있는 상태로 준비시켜 놓았고, 미국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일을 해나갔기에 이승만 시기 대한민국은 원조물자와 3백산업으로 굴러갔군요. 참 대단합니다.
"긍적적인 면을 찾아보면 있기도 하단 겁니다" -> 그래서 결론은 이게 이승만의 과오와 실책, 무능과 부패, 국민의 희생을 10분의 1일이라도 가릴 수 있다는 겁니까? 그래서 당시 대한민국은 이승만이 없으면 당장 쓰러지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애초에 논지를 상기시켜 보세요. 긍정적인 면이요? 히틀러도, 김일성도, 모택동도, 후세인도 나름 좋은 점은 있었어요. 이승만도 잘 찾아보면 얻어걸리는게 있겠죠. 근데 문제는 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좋은 점을 상쇄하고 남을만한 나쁜 점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게 국가를 파멸로 이끌고 갔다는 것이지요.
이미 위에 올려놨으니 더 말할 필요는 없겠죠. 다만 주장하신 "형편없는 능력미달자"는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네요.
일제 36년을 거치면서 사실 지도급 인사중에 친일파가 아닌 사람이 없게 됩니다. 왕족, 양반들 대부분이 친일로 돌아서죠. 시대가 그랬으니까요. 해방후에 그래서 이른바 인재풀이 좁습니다. 얼마전 독립한 동티모르를 보면 대통령인 구스마오를 제외하고 능력과 지도력을 가진 인물이 전무합니다. 그에 비교하면 될 듯 싶네요. 그럼 그 나라에서 구스마오가 서거한다면 과연 누가 동티모르를 이끌까요? 인재풀이 좁은데. 그래서 인도네시아가 집요하게 린치를 가하려고 하였으나 그의 신변이 UN의 보호하에 놓이자 결국 포기하고 맙니다. 그와 비교하고 싶네요. 이승만이 없어졌다면? 정말로 일본에 협조한 진성친일파가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죠
역사에 가정은 없다면서 많은 가정을 보이시네요... 국가운영이나 군통치는 팽개친채 지 혼자 살겠다고 수많은 시민이야 어찌되건 다리까지 폭파시킨 행동이 옳은건가요?? 국가의 안위를 위해 일개 민초들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뭐 이런 논리라면 할 말 없구요 ㅎㅎ
군사적으로 볼때에 다리폭파는 적절했다는 거죠. 다른이의 주장을 곡해하지 마시죠. 난 그런말 한적 없는데.
이봐요 다음 바크씨,,, 군사적으로 볼때에 적절했다고요. 군사 매니아 에게 이 말 꺼냈다고 그야말로 초죽음되어서 옵니다. 한강교 폭파 덕분에 무슨 일이 벌어진 줄 아세요? 후퇴하던 국군들이 다리가 폭파되니 철수를 못하여 안그래도 가뜩이나 부족한 중장비를 버리고 그야말로 맨몸으로 후퇴해야 했죠. 덩케르트 철수시처럼요. 그리고 북한군은 서울 점령한 후 곧바로 내려오지 한고 3일간 시간을 끌다고 -이 부분이 한국전 미스테리 중 하나로 꼽힙니다. 왜 시간을 끌었는지 각가지 추측이 난무하구요 - 만약에 한강교가 폭파안 되어서 국군 병력은 물론 장비까지 무사히 철수했다면 한강 남쪽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제대로 칠 수 있었고
미군들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 수가 있었습니다. 미군이 어떻게 빨리 오냐고 하실 수 있겠지만 미국은 북한이 남침한 지 3일만에 폭격을 시작했고 주일미군을 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이렇게 되면 역사가 바뀌었을 지도 모르죠.
그리고 다음 바크씨,,,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게 서울시민에겐 '서울 사수 반드시 한다'고 구라치고 - 사실 이 라디오 방송은 미리 녹음된 것으로 방송될 쯤엔 벌써 떠나 있었음- 수복 후 자기 때문에 고초 겪은 시민들에게 사과는 커녕 빨갱이 색출한답시고 들들 볶은 영감탱이가 뭐가 좋다고 편을 드세요???
당시에 북괴군이 도하를 할 장비가 없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왜냐하면 다리폭파는 고려하지 않았었다고도 하죠. 미스터리니 답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독일군은 왜 미군의 진격을 라인강에서 막고자 라인강 철교를 죄다 폭파시켰을까요? 레마겐의 철교가 확보되면서 미군은 라인강을 건너서 독일영내로 진격합니다. 우세한 공자에 약한 방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지형지물을 이용한 지연전입니다. 물론 다리파괴가 시기상조여서 여러가지 피해를 야기한 것은 통탄할 일이죠. 그러나 시기의 차이이지 다리폭파자체가 군사적으로 무용한 결론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편을 들다뇨. 그런면도 있다라고 말하면 편든겁니까.
나와는 다른 생각을 말하면 편들고 나쁜 사람 옹호한 동조자인가요. 내가 이승만 대통령이 매우 우수한 결출한 인물이었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더이까?? 난 그런 말 한적 없는데요. 시작의 발단은 이승만이 전초에 죽었다면 이라는 가정을 들고 그에 대하여 의견이 나온 것인데 여기서 편이 왜 나와요?
그럼 이때까지 이승만 편들었는게 훤희 보이는데요......... 제대로 변론도 못하시면서, 다시 말하지만 한강교 폭파는 정말 최악의 수였고 우세한 공자였다는 북한군도 실상은 신생국 군대답게 기율 면이라든지 여러면에서 뒤떨어졌습니다. 단지 남한군보다 조금 장비를 충실히 한 정도???? 그리고 전 미군의 지원을 고려했습니다. 국군이 북한군보다 뒤떨어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심하게 차이 난 건 아니었고 한강 방어선에서 한 일주일만 시간을 벌면 전세는 뒤집어졌죠. 하지만 그렇게 못한 덕분에 낙동강 방어선에서 겨우 막을 수 있었죠.
한강에서 1주일을 버틸 수 있었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한가지 전제가 있어야 해요. 우선 군장비를 대부분 수습하여 와야 한다는 것과 국군이 대부분 와야 한다는 가정입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했으리라고 보세요. 안타까운 것은 안타까운 것이고, 아닌거는 아닌거죠. 피난민으로 꽉꽉 메워진 도로를 따라서 질서정연하게 장비를 다 가지고 퇴각을 한다?? 말이 된다고 보세요? 그리고 좀 긍정적으로 말하면 편든것이다? 아주 사람을 몰아세워서 비난하고 싶은가 봅니다만, 남의 주장을 곡해하지 마시죠...
그 당시 국군들이 무질서하게 후퇴한 줄 아시나 본데, 절대 무질서하게 퇴각하진 않았죠. 한강교가 폭파된 후에 완전 해체가 된 거지 피난민들이야 통제하면 해결할 문제고, 국군은 중장비라곤 장갑차, 105밀리 야포 , 기관총 등 빈약한 것이었으니 충분히 해결됩니다. 일단 다 철수한 다음 폭파시켰어도 충분히 승산은 있었습니다.
Daum Bark님 착각하시고 있는게 있는거 같은데..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자국민 보호입니다.. 대통령이나 군수장비가 국가에서 제일 중요한게 아니구요...아무리 상황이 급박하다고 하지만 어떻게 자기 국민들을 폭사시키고 혼자 튑니까?.. . 그것도 거짓말까지 동원해서 도망가다니요... 이승만이 거짓말만 안했어도 이렇게 욕먹지는 않을껍니다.. 어떠한 변명의 여지가 있더라도... 국민들에게 거짓말하고 국민들을 폭사시키고, 국민들을 버리고간 국민들의 대표라고 불리우는 대통령이라는 작자은 그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망각한 기회주의자로 밖에 안보이네요..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는 편제 자체가 무너졌단 겁니다. 군대는 무기도 중요하지만 체계 및 기강도 중요한데 제대로 후퇴를 못하고 우왕자왕 맨몸으로 헤엄쳐서 건너기 등으로 마구잡이 후퇴를 한 결과, 나중에 다시 모아서 사단을 만들긴 했지만 장비는 장비대로 잃어버리고 급조되다 보니 호흡이 안 맞는 등 휴유증이 너무나 컸습니다.
편제를 갖추고 질서정연하게 퇴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숙련된 군대의 고도의 작전인가요. 당시 신생독립국가인 대한민국의 국군이 그런 정도의 정예화된 능수능란한 군대였을까요? 거기다가 이미 지적한 피란민문제, 도로의 열악함등을 고려한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죠. 그리고 부언하지만 사실을 그렇게 보고 말한 것이지 두둔하고 편든거 아닙니다.. 그리고 네덜란드도 독일에게 항복하자 국왕이 망명하여 항독활동을 합니다. 그거는 그럼 노블레스 오블레주가 아니니 욕먹어야 되나요. 개념이 좀 이상하네요. 살아서 후일을 도모하자가 문제입니까.
그 신생군대였던 국군도 춘천전투에서 북한군의 진격의 맥을 끊어놓는 등 나름대로 활약했습니다. 미숙한 점은 많았지만 기강 없는 군대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을 보고 그렇게 말한다 하면서 이승만의 후예담은 왜 무시하십니까? 위에서 적었다시피 이승만은 서울 수복 후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전혀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쳐도 분명 서울을 사수 하겠다고 큰 소리 치고 책임을 안 진 것은 분명한 실책입니다. 그리고 이후 행보를 봐도 그렇고요.
그리고 공격하는 북한군도 그렇게 썩 좋은 모습을 안 보였고요. 물론 님의 말씀대로 숙달된 군대였으면 진작에 게임 끝이었겠지만 공자도 좋지 않았던 상황에서 조금만 더 좋게 행동했다면 좋았을 거 같군요.
노블레스 오블레주를 한다는 작자가 국민들한테 거짓말하고 자기만 도망갑니까? 제가 보기에 분명히 이승만은 노블레스 오블레주를 지키기 위해 도망간게 아니라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고 밖에 안보이네요... 어떻게 노블레스 오블레주를 지키는 사람이 국민들을 방패막이로 거짓말 치고 지는 튑니까? 거짓말만 안했어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지만, 이승만의 서울 사수 발언 때문에 이승만의 토낌은 노블레스 오블레주가 아니라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이였다는게 확실합니다.
북괴군은 훨씬 더 정예였습니다. 실전경험이 많은 팔로군출신 병사와 장교들이 많았죠. 무엇보다도 장비. 이게 무시못하는게 전차 패닉이 미치는 영향이 사기면에서는 심각했으니까 말입니다. 질서정연한 퇴각은 애시당초 불가능합니다. 또 한강폭파는 대통령의 지시가 아니었고 채총감이 지시했었는데요. 더구나 그때 죽었어야 한다는 내용은 개인적으로 좋게 보지 못하는 감정적인 발언이죠. 죽으면 뭐 달라집니까? 이후에 전황을 볼때에 국가수반이 죽는 거 보다는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네요. 같은 논지라면 네덜란드 국왕도 끝까지 싸우면서 남겠다고 하다가 조용히 망명했는데요. 그랬다고 욕 안먹었습니다. 결과적으론.
바크씨// 국군에 비해서 숙련병들이 많았던 거지 지휘계통으로 가면 남한이나 북한이나 똑같았습니다. 팔로군 출신 중에서도 대대 이상을 지휘해본 놈들이 없었거든요.고작해야 중위 정도?? 고작 중대급을 지휘해 본 실력가지곤 사단 급 이상 전투에선 별 소용도 없습니다.군대는 장비가 좋다고 해도 지휘가 형편없으면 못 씁니다. 프랑스 전투에서도 독일군은 7.62밀리 및 20밀리 기관포를 장착한 '전차' -실제론 장갑차 인-를 가지고도 집중적 운용 및 88밀리 대공포 및 슈투카의 긴밀한 협조로 성과를 거두었죠. 연합군은 상대적으로 방어력 및 공격력이 우수했던 마틸타 전차가 있음에도 분산 배치 및 허술하기 짝이 없었던 지휘 체계
-독일군 전차엔 무전기가 달려 있어 유기적인 작전이 가능했던 것에 비해 연합군은 그렇지 못했죠- 로 인해 굴욕적인 패배를 당해야만 했죠. 그리고 자꾸 후일을 도모해야 하는 등으로 이승만을 변호하시는데 이승만은 후일 행적을 봐도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위인이었지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어림없는 인물이었죠. 그러니 4. 19때 쫓겨났지
한국전쟁의 발발 직전의 상황을 말하자면, 북한의 경우 사단급 기동 훈련을 끝낸 상태였고, 남한의 경우는 대대급 훈련을 간신히 할까말까하는 수준이었다는것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르카나 님의 말씀대로입니다. 지휘관이 뛰어나면 무조건 이기는 것이 아니죠. 지휘관-병사-장비의 3박자가 맞아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연합군은 전차라도 있었지.. 우리국군은 전차는 1대도 없었고 변변한 대전차 화기도 없었는데요. 공군력도 연습기 대여섯대가 고작이었고. 뭐가 대등한 싸움이 될 거 같은데요? 자꾸 지금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답이 안나옵니다. 왜 육탄용사가 나왔는지 이해가 안가세요? 박격포탄이라도 들고 가서 탱크밑에서 터뜨려야 될 정도로 무기가 차원이 달랐습니다. 퇴각을 질서정연하게 해도 될까말까인데 혼란중에 어떻게 저지해요? 혹시 군대는 다녀오셨다면 탱크니 사단급 훈련에 대해서 아실텐데요.
그리고 사단급 전술훈련같은거는 해보는 것이랑 안해보는 것이랑 천지차이인데요. TS 훈련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아세요? 북한이 이를 겁낸 이유는 사단급 기동훈련이면서 침투훈련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대급 훈련을 끝낸 부대가 사단급의 기동전을 수행하는 부대랑 싸워도 된다? 정말 이거는 아닌데요. 예를 들어서 대대급 훈련은 고지를 목표로 작전하지만 사단급은 일정지역 전체, 고지, 하천, 평야등등을 다 아우르는 훈련이므로 차원이 다릅니다.
//다움 자꾸 팩터없이 정황증거만 가지고 그러시는데 백선엽장군이 이끌던 1사단만 하더라도 분살철수명령이후 지휘체계가 완전히 붕괴되어 후에 집결지에서 점호결과 철군명령이전인원의 20-30프로만 남아있었다고 자서전에서 회고하고 있고 미아리, 창동지구 한강다리 바로 북쪽으로 파견된 5사단같은 경우에는 아예 전멸, 나중에 같은 이름으로 광주에서 신편됩니다. 그리고 북한군의 초기삽질은 소련몰락 후에 라주바예프에 의해서 낱낱히 밝혀지구요. 자꾸 자기 주장만 하시니 다른 사람들의견과 평형선을 그을 수 밖에요.
그러니까 지가 제시한 가정. 즉 대부분의 편제를 유지한 사단의 질서정연한 퇴각이 가능하였겠느냐고요. 이미 전차패닉에 심리적 공황까지 퍼져있는데... 자꾸 원론적인 이야기만 되뇌이니 평행선이 가는거죠. 일전에는 시가전 이야기를 하시면서 민간이 많으니 할만하다는 주장도 하셨는데... 죄송하지만 병역은 필하셨는지요.. 험담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술전략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다리폭파자체의 문제라고 볼 것만은 아니라서 그런 겁니다..
제가 댓글 달다가 벽보고 얘기하는 거 같아서 때려쳤지만 다시 달아야 겠군요. 님은 자꾸 전차 전차 얘기로 일관하시는데, 물론 전차가 현대 지상전에서 공격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역활이지만 무적이 아닙니다. 전차 혼자만 보병 엄호 없이 나가면 오히려 적 보병에게 당하고 말죠. 공격시엔 기관총 등 화기 공격 때문에 해치를 닫고 오로지 조준경 하나만 보고 조준해야 하기 때문에 시야가 극히 제한되어 옆 밑 뒤에서 다가오는 보병들에겐 속수무책이기 때문에 반드시 엄호가 필요한대요. 하지만 북한군도 신생국가 군대답게 보 전 협동이 개판이었고 전차병들도 전차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미 전투기가 뜨는데도 대낮 길 한폭판을
그건 전차를 본적이 있는 군대의 이야기죠. 당시 한국군에게 전차를 상대할 무기도 그런 훈련도 받지 않았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달리지 않나, 전차를 곱게 다루지 않고 함부로 몰아서 중간에 퍼진 전차만도 수두룩한 현실이었죠. 그리고 국군이 대전차 화기가 부족한 건 사실이나 아주 상대 못하는 건 아니었죠. 일단 캐터펄트를 슈류탄 및 기관총 등 온갖 수단 동원하여 이탈시킨 뒤 전차가 서면 바로 올라서서 해치 열고 수류탄 넣기, 화염병을 전차 뒤 엔진부위에 던져 퍼지게 만들기, 대전차 지뢰를 들고 숨어 있다가 전차가 가까이 오면 바로 밑에 던져넣기 57밀리 대전차포를 가지고 정면이 아닌 옆면을 노려 쏘아 격파하기 등등 -물론 이런 방법은 절대 권장할 만한 건 아니었지만요- 으로 뼈를 깎는 각오를 가지면 충분히 상대는 할 수 있었죠. 그리고 북한군이 전
사단급 훈련은 끝낸 상태는 맞으나, 당시 훈련을 주관했던 소련군 장교는 '이 상태로 전쟁하기는 무리다'할 정도로 불안불안 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군은 속전속결로 끝낼 생각이었고 -경제여건상 이렇게 될 수밖엔 없었지만- 장기전에 대한 대비는 전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주일만 시간을 벌면 승산이 있었죠.
라이언 일병 구하기 보면 전차 상대하는 병사들 나오져... 처음 본 전차라 공포에 사로잡혔을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승만이 다리를 끊는건 정말 자기 혼자 살려고 도망간거라고 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