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락 내리락하고
(창세기 28 : 10-22)
어린아이가 가족 여행 중 길을 잃었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아이는 어느 순간 자신이 길을 잃기 전 부모님과 함께 있던 벤치를 발견하고, 그곳에 앉아 부모님을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 부모님이 아이를 찾아와 품에 안아주었습니다.
야곱이 광야에서 방황했지만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것처럼, 우리가 삶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 하나님께 돌아가면 다시금 우리의 길을 인도받을 수 있습니다. 벧엘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자 우리의 영적 고향입니다.
야곱이 벧엘을 통해 하나님을 다시 만난 것처럼, 우리도 인생의 폭풍 속에서 돌아갈 곳을 기억해야 합니다. 벧엘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첫 사랑을 회복하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영적 등대입니다.
1.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은 장자의 권리를 사모했고 또 아버지의 축복을 사모했습니다. 자기가 몇 년 뒤에 태어난 동생이었다면 그렇게까지는 아니었을 텐데,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 동생이었으니까 몇 분 차이로 늦게 태어났으니 얼마나 아쉬웠겠습니까? 그래서 장자의 권리를 사모하고 또 아버지의 축복을 굉장히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마침 에서가 배가 고파 왔을 때 붉은 죽으로 장자의 권리를 샀으며, 또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채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는 됐다. 이제부터는 좋은 일만 생길 거다.’라고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상황이 어떻게 됐습니까? 이제 축복의 길로 들어섰습니까? 축복은커녕 오히려 에서가 지금 자기를 죽이겠다고 날뛰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그가 길을 떠나게 됩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0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1절)
야곱이 길을 떠나서 하란으로 향해 가다가 해가 저물자 한 곳에서 잠을 자게 되는데, 무방비 상태로 들판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지금 맹수가 달려들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에서가 알고 쫓아와서 자기를 죽이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상황 아닙니까? 이때 야곱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하고 또 얼마나 처량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이게 무슨 꼴인가? 부모님 집에서 편하게 잘 지내던 내가 왜 이렇게 된 건가? 앞으로 내 삶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식으로 외삼촌의 집에 무사히 갈 수 있겠는가? 혹시 가더라도 이런 상태로 제대로 살 수나 있고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 내 삶에 정말 미래가 있을까?’
이런 수많은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맴돌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과연 하나님은 계시는가?’ 하는 의심이 들었을 것입니다. ‘분명히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보면 하나님이 계신 것 같긴 한데, 그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 계신가? 왜 그 하나님이 나에게는 안 나타나시는가?’
야곱은 그토록 복을 받고 싶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흥정도 하고 사기도 치고 그랬는데,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 믿음의 길로 가려 하다가 망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 자리에서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께서 야곱을 만나주신 것입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자기의 미래와 운명을 자기 스스로 개척해보려고 애를 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은 야곱이 그렇게 흥정하고 딜을 하고 속이고 노력을 했을 때 임한 것이 아니라, 그가 집을 떠나, 특히 어머니 품을 떠나, 들판에서 초라하게 또 불안하게 잠이 들어 있을 때 임했다는 사실입니다.
왜 하나님은 야곱이 이토록 외롭고 힘들게 되어서야 야곱을 만나주시는 겁니까? 왜 진작 그에게 나타나셔서 ‘에서, 너는 잘못됐다.’ 하고 꾸짖으시고 ‘야곱이 옳다.’ 하고 보호해주지 않으셨습니까? 왜 이렇게 실패하고 도망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어서야 만나주시는 겁니까? 그것은 지금이야말로 야곱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마음자세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이 약속하십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2절)
야곱은 그날 밤 꿈을 꾸는데, 계단이 땅에서부터 하늘에까지 닿아 있는 꿈이었습니다. 천사들이 층계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고, 주님께서 그 위에 서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보통 꿈이 아닙니다. 항상 꾸는 꿈이 아닙니다. 아주 특별한 꿈,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긴 꿈입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3-14절)
주님은 자신을 ‘여호와’라고 하시며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놀라운 약속들을 주십니다.
‘네가 누워있는 땅을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13).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져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퍼져나갈 것이다’(14).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너의 자손 때문에 복을 받을 것이다’(14).
여기까지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도 하신 약속입니다. 그런데 15절에 나온 네 가지 내용은 야곱에게만 주어진 새로운 약속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5절)
‘나는 너와 함께 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를 지켜줄 것이다.’
‘내가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내가 너에게 한 이 모든 약속들을 이룰 때까지 나는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이 약속들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나는 네가 죽을 때까지 너와 함께 살겠다.’ 하는 뜻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항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을 하시면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지금도 살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죽은 후에도 계속 천국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도 죽을 때까지 계속 함께 해주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으로부터 정말 원하시던 것이 무엇입니까? 야곱이 그저 복을 받고 세상에서 떵떵거리고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사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야곱과 항상 동행하시면서 야곱도 그것을 깨닫고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며 교제하며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3. 하나님의 집, 벧엘에서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6-17절)
하나님께서 꿈에 생생하게 나타나셔서 약속을 주시니까, 야곱은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이 두려움은 공포(fear)가 아니라 경외심(respect)입니다. 존경과 존중의 마음이 드는 겁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진심으로 느끼게 된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합니다. 서원이란 은혜받은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을 해 주시면 이렇게 하겠습니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누가 서원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사람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1)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21절)
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20절)
야곱은 혼자 미지의 땅으로 떠나기에 불안합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이 꼭 함께 해주시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②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그 당시 시대상황으로 혼자 몸으로 여행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걸 잘 아는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되어달라고 또 요청합니다. 하나님이 보디가드 역할을 해달라는 어처구니없는 주문입니다.
③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야곱은 이제 한 술 더 떠서 민생고문제, 의식주 문제도 해결해주셔야 하나님으로 섬기겠다고 들이댑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신앙고백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④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21절)
마지막으로 형의 분노를 피해서 지금은 외삼촌 집으로 피신해 가지만 나중에 형이 분이 풀리면 다시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해주시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미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재확인하며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시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는 조건부적인 신앙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22절)
야곱은 여호와가 나의 하나님이 되는 네 가지 조건을 충족 시켜주시면 베게 하였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을 약속합니다. ※ 야곱의 고백처럼 이제 여러분의 육신이 하나님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육신이 하나님의 집이 되어질 때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들어가시게 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게 됩니다.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던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십분의 일을 하겠다고 서원합니다.(22절)
물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표현이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이것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십일조는 내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있으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에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린다는 뜻으로 십일조를 드린다는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때부터 야곱의 생애를 하나님이 간섭하십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늘문이 열려야 합니다.
천국 열쇠가 있어야 합니다.
이 반석위에 예수님의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천국열쇠를 가지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벧엘에서 오늘부터 가정이 풀어진다.
벧엘에서 오늘부터 직장이 풀어진다.
벧엘에서 오늘부터 사업이 풀어진다.
벧엘에서 오늘부터 교회가 풀어진다.
벧엘에서 오늘부터 은혜가 풀어진다.
벧엘에서 오늘부터 쓰고 베풀고도 남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