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위상학』(2013년 독일어판 출간)은 『피로사회』에 전개된 사유 아래에 깔린 폭력의 논리를 담은 책이다. 『피로사회』의 마지막 장에서 제시된 ‘피로는 폭력이다’라는 테제를 이어받아 세밀하게 파헤쳤다.
주권사회에서 근대의 규율사회로, 다시 오늘날의 성과사회로, 사회의 변천과 더불어 그 양상을 달리하고 있는 폭력의 위상학적 변화 과정을 살피고, 오늘의 폭력이 점점 내부화, 심리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 시스템 속에서 자유가 어떻게 폭력으로 전도되는지, 긍정의 폭력이 어떻게 우울증과 탈진을 낳는지, 나르시시즘이 어떻게 공동체의 파괴로 이어지는지 등을 보여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사회의 폭력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성과주체는 스스로를 해방시켜 하나의 프로젝트Projekt로 만든다. 그러나 주체에서 프로젝트로의 변신이 폭력을 소멸시키지는 못한다. 타자에 의한 외적 강제의 자리에 자유를 가장한 자기 강제가 들어선다. 이러한 발전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생산의 수준이 일정 단계에 이르면 그때부터는 자기 착취가 타자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더 많은 성과를 가져오기 시작한다. 자기 착취는 자유의 감정과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성과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성과주체는 스스로 불타버릴 때까지(번아웃) 스스로를 착취한다. 이때 발생하는 자기공격성은 드물지 않게 자살의 폭력으로까지 치닫는다. 이로써 프로젝트는 성과주체가 자신에게 겨냥하는 탄환Projektil임이 드러난다. _20-21쪽
폭력의 구조, 역사, 정치, 심리,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시스템의 폭력까지
오늘의 세계를 지배하는 폭력에 관한 성찰
그는 먼저 폭력의 위상학적 변천을 소개한다. 사회적 구도가 변화함에 따라 폭력의 양상도 달라졌다. 태고의 희생 제의에서 발견되는 피의 폭력, 질투하고 복수하는 신화 속 신들의 폭력에서 참수를 명하는 주권자의 폭력, 무자비한 고문의 폭력으로, 다시 가스실의 무혈 폭력, 테러리즘의 바이러스 폭력, 감정을 상하게 하는 언어폭력으로. 노골적이고 유혈이 낭자하던 폭력은 점차 정당성을 상실하고 되도록 감추어야 할 것이 된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여전히 이 모든 폭력이 자아와 타자, 내부와 외부, 친구와 적 사이의 긴장에서 커져가는 ‘부정성의 폭력’이다. 1부 ‘폭력의 거시물리학’에서 주로 다루는 것이 바로 이 부정성의 폭력이다. 프로이트, 벤야민, 카를 슈미트, 리처드 세넷, 르네 지라르, 아감벤, 들뢰즈와 가타리, 푸코, 부르디외, 하이데거 등의 논의를 검토하면서 자신의 폭력 개념에 접근해간다.
그리하여 2부 ‘폭력의 미시물리학’에서는 오늘의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자유로운 개인의 내부에서 작동하는 폭력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주체는 시스템의 요구를 내면화하여 그에 전적으로 순응한다. 이상자아에 도달하려는 노력과 함께 과잉 생산, 과잉 커뮤니케이션, 과잉 주의, 과잉 활동의 대열에 합류한다. 생존의 필요와 효율성의 추구에 몰려 우리는 가해자인 동시에 희생자가 되어, 자기 착취, 경계의 해체, 우울증, 소진의 덫에 걸리고 만다. 이 같은 긍정성의 폭력이 부정성의 폭력보다 치명적인 것은, 거기에는 경고도 없고 뚜렷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시스템의 파열, 전소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소진 상태에 이른 성과주체는 임박한 시스템의 파열을 알리는 병적 전조”다.
폭력은 외부에서 가해오는 작용으로서 나를 덮치고 제압하고 내게서 자유를 빼앗아간다. 폭력은 나의 허락도 받지 않고 나의 내부로 파고들어온다. 그러나 외부에서 오는 모든 타자의 작용이 폭력은 아니다. 내가 그 작용을 승인하고 나의 행동과 연관시키는 순간, 즉 그 작용과 나 사이에 일정한 관계를 수립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폭력의 성격을 지니지 않게 된다. 나는 그 작용과의 관계에서 자유롭게 행동한다. 나는 그것을 나 자신의 내용으로 긍정한다. _103쪽
우리는 폭력의 가해자인 동시에 희생자가 되어 자기착취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어떻게 이 치명적인 마비 상태에서 깨어날 수 있을 것인가.
은폐되었던 폭력이 드러나고 폭력에 대한 고발이 줄 잇는 시대, 폭력 논의의 마중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으로 전 세계가 비상한 위기를 맞고 있는 이 시절, 특정인을 향한 조리돌림이 언론과 SNS를 달구고, 약자에 대한 물리적 폭력과 혐오 범죄가 빈번하며, ‘플로이드 사건’으로 미국 전역이 들끓는 이 시절은 (저자의 도식을 따르자면) ‘부정성의 폭력’이 여전히 지배하는 세계인 듯 보인다. 상대적으로 ‘긍정성의 폭력’은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감염병의 시대에, 우리가 스스로에게 가하는 미시물리적 폭력은 과연 줄어들었는가? 긍정성의 폭력은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더 심한 자기착취에 뛰어들고 있지 아니한가? 또한, 어쩌면 부정성의 폭력으로 보이는 사태들도 뜯어보면 긍정성의 폭력의 층위가 얼마간 중첩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온갖 과잉 커뮤니케이션, 과잉 활동, 과잉 생산들이 결국은 타자를 향한 부정성의 폭력으로 이어진다면? 그리고 이 감염병 확산이 어느 정도 진정된 뒤, 포스트코로나 사회는 과연 이전과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 이쪽 끝과 저쪽 끝을 오가는 시계추처럼, 지금의 마이너스 성장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성과사회의 주체들은 다시 저 자본주의의 극단으로 서둘러 복귀하고 자기착취를 이어가지 않을까? 어쩌면 이 비상한 시국에 많은 이들이 꿈꾸는 ‘정상성’이란 바로 그것 아닐까?
낙관론자들의 주장과 달리 계몽된 이 세계에도 폭력이 줄지 않고 있다면, 폭력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그리고 이러한 폭력에서 출구를 찾으려는 노력이 마땅하다면, 폭력의 거시적 미시적 구조를 파헤친 이 책은 지금 시급하게 읽어야 할 텍스트다. 은폐되었던 폭력이 드러나고 폭력에 대한 고발이 줄 잇는 시대, 폭력에 대한 비범한 성찰을 담은 이 책이 생산적인 토론의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