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는 A해의 마지막을 향해 달립니다
10월 2~3째주일의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 주일)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11월 2일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마지막주일인 연중34주일을 그리스도 왕축일(성서주간)이고
바로 직전은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그리고 새로운 해 B해를 시작하면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성탄을 준비하고 있다.
대림1주일 안에는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
12월 8일에 들어있다.
성모 마리아께서 잉태되신 순간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다는 믿음은 초대 교회 때 생겨났다.
여러 차례의 성모님 발현으로 이러한 믿음은 더욱 깊어졌다. 1854년 비오 9세 교황은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우리나라는 이미 1838년 교황청에 서한을 보내 조선교구의 수호자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로
정해 줄 것을 청하였고,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이 이러한 요청을 허락하였다.
성서형제회의 교본에 따르면
성서형제회 헌장원문을 게시하고
바로 뒤에 1장 예수님의 어머니 성 마리아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서형제회 헌장의 한축인 아나윔정신은 예수 마리아 정신
그리고 다른한축인 성경 말씀으로 성화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마리아를
충실히 본받아 완덕에 이르는데 그 사명이 있다고 되어있다.
우리에게는 이를 실천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조상이 피어놓은 순교의 꽃은 그 어려움속에서 생겨난 것이다.
우리는 50여년전에 한권의 성서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젊은이들이 성서를 가까이 하려는 열정으로 시작된 성서형제회는
1980년대 1984년 선교200주년과 1989년 세계성체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고
교황이 방문하였다. 1990년대인 아시아주교회의의 의결에 따라서 한국에
소공동체운동이 시작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오랜 군부독재시절을 벗어나는 문민정부가
1998년도에 시작되었으나 그이전 1997년에 참혹한 금융대란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이일로 시달리는 시기였지만 우리의 민주화는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많은젊은이는 직장에서 쫓겨나서 길거리를 헤매일때입니다
성서형제회는 한때에 아주 촘촘히 기록을 남기고 있을떄가 있었지요
이때에는 여러행사나 각팀의 월례보고가 전국말씀선포자들의 모임에 의해서
보고되고 잘 알려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이것 하나도 제대로 보여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안산을 떠난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문경에서의 3년간살이며 대구에서의 5년간의 생활을 하면서
점차 코이노니아를 하지 못한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그래도 그 기간에도 제가 전국서기를 하는 시절에는 어느정도
소식을 들을수가 있었지만
요즈음은 전혀 알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올해는 저물어갑니다
세상의 달력보다 교회의 달력이 한달정도 먼저 다가옵니다
그동안 지나간 것은 잊어버린다고 해도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여지껏 해온일들을 정리하며 성찰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것입니다.
우리는 50주년을 힘겹게 돌면서 지난 묵상회 큰모임 그리고 연수회를
새로운 마음으로 가졌습니다.
여전히 천안의 정신부님의 성서형제회를 사랑하시는 애정만이 남아있어서
보여서 다소 안타깝기만 합니다
새로운 조정봉사자와 차기봉사자의 명단을 받아보니
과연 우리는 지난날로 되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10여년전에 제가 처음 전국원례회의를 하는 당산동성당을 찾아갔을 때
입니다. 조금 어수선했지만 그때는 다들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열정이 어디에다 보관되어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난 여름 연수회때에 천호성지를 벗어나면서 아폴로니아의 차를 얻어타고
오면서 그안에서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주교구의 어려움속에서 새로운 시도들인 것 같았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무엇인가의 결과도 좋지만 이를 하려는 열정이나
끊임없는 그 시도가 주위 여러사람들에게 분명히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과거 200여년전에 조선땅에 사제라고는 한분도 안계시고
조정에서는 박해가 계속되고 있었지만 피해온 산골짜기의 교우촌은
아주 평온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주님이 원하시는 공동체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것이 가능한 것은 그만큼 그들의 삶이 절실했기 떄문이라는
것입니다. 순교의 꽃은 그 절실함에서 피어난다고 합니다.
저는 언제부터인가 주일이고 평일이고간에 미사가 끝나면
성당안이나 성당입구에서 다른 교우들이 다들 떠나갈때까지
그곳을 머문다는 것입니다.
다들 무슨생각을 하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지팡이를 짓고서라도 어렵게 평일미사에 참여하시는 할머니모습에서
잘 들어나 보입니다.
저의 본당은 주일학교미사가 토요일특전미사와 같이하기에 주일에 아이들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성당근처에 대규모의 재개발지역이 있어서 곧 많은 세대가
본당관할구역으로 들어오게됩니다.
이곳은 그동안 동대구역에서만 정차하는 고속열차가 이지역인 서대구역이
생기고 그 길로 가는 곳에 아파트들이 지어지고 있기 떄문입니다.
그 세대중에 얼마나 많은 교우들이 계시는지는 잘 알수가 없지만
지난주 교중미사때에 사목위원등이 앞에 나오서 선창하고
우리들은 전교주일에 대한 다짐을 선서했습니다.
미사전후에 성당입구에서 안내를 한다고 합니다.
새로운 봉사자들이 얼마나 우리들의 환경을 변화시킬것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히 우리들의 절실함이 주님께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를 이끌어내실것입니다
성서형제회에서도 그 어려움이 있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은 여전히 성서형제회를 유심히 쳐다보고있을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어려운시기에 그들에게 잘못된 신호는 보내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지금 집근처만 돌아다녀보면 개신교에서 일부 전교한다고
안내를 하는 교회가 더러있지만 대규모로 하는 곳은 다들 이단교회일뿐입니다.
아마도 이런 어수선하고 어려운시기에는 일상적인 개신교회도
위축이 되나봅니다. 사람을 현혹시키는 이단교회는 기회라 여기고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우리는 사실 어려운시기입니다.
우리가 지금 주저하고 있다면 힘을 내서라도 나서야 합니다.
이는 우리주의의 교우들을 이단이 판치는 세상으로 내모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이단들이 잘못된 성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잘못된 성모신심으로 나주로 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들이 어렵지만 힘을 내어서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우리주변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잘못된 신호를
줄지 모릅니다. 이런일은 우리교회를 서서히 침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꾸준히 시도하고
이를 세상에 알려야 할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