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서점들이 많이 사라져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지만 80년대엔 서점을 드나들면서 책을 샀다.
보통 작은 서점들은 참고서의 판매가 많았고 대형서점은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에 개가식으로 열려 수백평의 넓이를 자랑하는데 이곳은 손님이 자유롭게 들어가서 책을 고를 수 있었고 대표적인 곳이 종로서적 그리고 근처의 교보문고 90년대 이후에 등장한 영풍문고가 있었고 특히 교보와 영풍은 지방 대도시에도 진출하여 많은 서점들의 반발을 샀다.
이러한 대형서점들은 직원들을 교육하고 사보도 만들어 서비스를 다양화 하지만 서점이 걸어왔던 다양한 자료의 보급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유는 일부 사회과학서적(이념서적)의 출판과 판매를 금지하고 수시로 단속과 통제를 하여 서점 주인은 돈을 벌기전에 경찰서에 잡혀갈 각오를 하고 영업을 해야 했다.
일제 강점기 때도 이러한 면이 있어서 서점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았는데 패망 이후 감춰졌던 책들과 일본인들이 두고간 책들 그리고 귀국한 사람들이 들고온 다양한 책들로 인해 책을 파는 좌판이 유행하고 헌책을 거래하는 서점도 늘었으며 출판사 또한 많아진다.
그러나 전쟁은 지하에 있던 조직을 노출시켰고 이들중 상당수는 죽거나 북으로 가거나 숨고 철창에 갖힌다.
일부 북한의 점령을 받지 않은 영남 지역엔 발각되지 않은 조직이 있었으나 북에 대한 증오와 공산주의자에 대한 적대감은 가라앉지 않는다.
그리고 대학에서의 연구환경 또한 제한될 수 밖에 없었고 북한 뿐 아니라 중국 구소련들관련 자료를 구하거나 동구권 뿐 아니라 서구에서 만들어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관련자료 국내에서 연구한 사회과학관련 자료의 출판 번역등은 쉽지 않았고 그나마 일본을 통해 들어온 자료를 번역 출판하여 판매를 하지만 대형서점이나 일반서점에선 구할 수 없었다.
또한 대학도서관의 대출체계 또한 지금처럼 개가식이 아니고 사서의 도움을 받아 책을 찾아오는 형태다 보니 다수의 학생들은 학교 앞 서점과 복사집 그리고 헌책방을 통해 다양한 자료와 책을 구한다.
그러나 사회과학전문서점의 경우 운영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가끔 출판사 대표와 함께 당국의 조사를 받기도 했고 서점을 하던 사람이 아니고 학생운동이나 시민운동을 하던 사람들이라 서점운영에는 한계가 있었고 (이윤창출이 어려움) 각종 후원과 행사에 자금을 대다 보니 당국의 감시를 받았고 90년대 이후엔 일반서점에서도 다양한 사회과학 서적을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이들 서점은 일반서점화 된 곳도 있지만 대부분 문을 닫는다.
다양성이 없던 시대 서구나 동구 그리고 일본에서 유통하던 각종 자료와 우리 내부의 문제를 연구한 자료를 유통시키고 많은 학생들과 시민운동가 그리고 재야학자들의 사랑방이었던 대학가의 서점들은 역사의 흔적으로 사라졌다.
지금은 일반서점과 같이 다양한 책을 팔지만 80년대 팔던 책들이 그 당시 가격으로 그대로 팔리고 있는 곳이 몇 곳 있긴 하다.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서점의 주인이 더 이상 감시를 받거나 조사를 받는 일은 없어야 하고 돈 많이 벌고 경제규모만 크다고 좋은 나라가 아님을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