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무대의 연기 철학'
"사는 것은 순간이다 우리의 운명은 예측할 수 없괴 세상의 평가는 불확실하다. 육신은 흘러가는 강이고, 영혼은 연기와
같다. 삶은 전쟁이자 나그네의 잠깐의 체류이며, 죽은 뒤의 명성도 걸국 잊힌다." 구약 『코헬렛』 의 다음 구절을 떠올리
게 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1,2)
인생을 이렇게 발본다면 삶에 대한 허무주의나 비관주의에 빠지지 않을까? 그러나 아우렐리우스는 제국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허무주의나 비관주의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황제에게 주어진 의무, 나아가 한 사
람의 인간인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늘 생각했다. 그에게는 허무가 아닌 의무, 비관도 낙관도 아닌 성찰이 중요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으면, '나는 인간으로서 일하기 위하여 일어난다. '고 생각하라. 작은 식물들이, 참새들이, 개미와 거미
와 꿀벌들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하여 우주를 구성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하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하물며 너는 인간으로서
맡은 바 일을 행하기를 거부하겠다는 것인가?"
격무에 지쳐 잠든 아우렐리우스가 아침에 일어나기 무척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런 아침에 침상에서 자기 자신에게 위와
같이 말했을 법하다. 인간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 세상에서 나름의 역활을 해야 하며 또 할 수 있다는 것, 은퇴가 '직임
에서 물어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내는 것'을 뜻한다지만, 삶의 무대가 어찌 직장과 현업뿐이겠는가.
세상이라는 큰 무대의 막은 내리지 않았고 역활도 역활도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역활이 있다 하더라도 세월이 허락해 줄까? 노년의 삶은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에 휩싸잉기 쉽다.
인생의 1막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무대를 앞둔 시기이니만큼, 1막의 연기에 대한 후회와 새로 펼쳐질 무대에 대한 불안이 커
진다. 아무리 명연기자라 하더라도 무대에 대한 두려움은 늘 있다. 아우렐리우스는 어떻게 극복했을깜?
"인생 전체를 그러 보고 낙담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대가 겪었고 겪게 될 온갖 어려움을 한꺼번에 떠올리지 말라. 우리들
각자는 현재라는 짧은 순간을 살고 있다. 나머지 시간은 이미 살았거나 불확실하다 오래 사는 이나 일찍 죽는 이나 똑같은
것을 잃는다. 우리가 가진 것은 현재뿐이니 잃는 것도 현재뿐이다. 아무도 과거나 미래를 잃을 수는 없다. 갖고 있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잃을 수 있단 말인가."
아우렐리우스는 60살을 살았다. 로마 황제들 평균 수명이 37세 정도였으니 장수한 셈. 지금 이순간에 충실하면서 역활을
다하고, 자기를 존중하며 좋을 것을 배웠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자기 삶의 무대의 충실한 주연이었다.
글 . 표정훈 사도요한 / 평론가
2025년 2월호 빛 책자 중에서 옮겨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