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장: 사라의 죽음
[1-4절] 사라가 127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생애의 연수]이라.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 아르바에서[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에서](KJV, NASB, NIV)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그 시체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
본장은 사라의 향년 곧 생애의 연수를 127세라고 기록한다. 성경의 내용은 매우 선택적이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기록할 때 단지 몇 가지의 내용만 기록했다. 지난 장에서 외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려 했던 사건을 기록한 후 이제 사라의 죽음을 기록했다.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려 했던 때가 이삭이 15살쯤이라고 본다면, 그때에 아브라함의 나이는 115세이며 사라의 나이는 105세이었으니, 그로부터 22년의 세월이 흐른 때이었다. 이처럼 성경의 내용은 매우 선택적이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성경의 모든 내용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아름답고 사랑스런 사라, 아브라함과 결혼하여 아마 90년 이상을 같이 살았을 그는 이제 늙어 기럇 아르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기럇 아르바는 헤브론의 옛 이름이었다(수 14:15; 삿 1:10).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사랑하는 사람도 죽는다.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안에 있고 아무도 그 시간을 알지 못한다.
아브라함은 장막에 들어가 아내의 시체 앞에서 슬퍼하며 애통하였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사람으로서 당연한 감정이다. 아브라함은 슬픔 중에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the Hittites)에게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葬事)하게 하시오”라고 말하였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나그네와 우거한 자로 살고 있었다. 사실, 세상은 사람의 영원한 거주지가 아니다. 세상에서의 삶은 영원하지 않다. 인생은 나그넷길이다. 다윗은 말하기를,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라고 했다(대상 29:15). 우리의 참 고향은 더 이상 죽음과 이별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 곧 천국이다.
옛날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죽은 자의 시체를 매장(埋葬)하였다. 불교의 풍습인 화장(火葬)도 허용된다. 사무엘상 31:12-13에 보면, 사울 왕과 그 아들들의 시체는 화장하여 그 뼈를 야베스 에셀나무 아래 장사하였다. 오늘날 말로 수목장을 한 셈이다. 화장이 허용되기는 하지만, 매장은 성도의 부활 소망에 적합하다. 사람의 죽음은 몸과 영혼의 분리 현상이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몸을 떠나 천국 혹은 지옥에 들어가고 몸은 무덤에 묻힌다.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죽은 성도들은 영광스럽게 부활하여 영생할 것이다.
우리는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는다.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 말했고(고전 15:51-52), 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라”고 말하였다(살전 4:16-17).
우리는 또한 영생을 믿는다. 사도 요한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다(요일 5:13). 또 사도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고 말했다(딤전 6:12).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또 죽은 자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 자답게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5-6절]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존귀한 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葬事)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내 주여’라는 표현(6, 11, 15절)은 일반적인 존칭어이었다고 본다. ‘하나님의 방백’이라는 원어(네시 엘로힘)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라는 뜻으로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서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와 위엄을 느끼고 있었음을 보인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웃 사람들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이었다(딤전 3:7). 헷 족속은 아브라함에게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葬事)하소서”라고 말하며 호의를 베풀었다.
[7-11절]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거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어 장사(葬事)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그로 그 밭머리[밭의 끝]에 있는 막벨라 굴을 내게 주게 하되 준가(準價)[값]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서 당신들 중에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때에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았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의 듣는데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께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께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께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아브라함은 헷 족속의 호의적인 말에 대해 일어나 그들을 향해 몸을 굽혀 답례하며 에브론의 밭의 끝에 있는 막벨라 굴을 값을 받고 주기를 요청했다. 그때에 에브론이 거기 앉았다가 모든 자들의 듣는데 아브라함에게 자기의 밭과 그 속의 굴을 주겠다고 말하였다. 아브라함은 에브론의 호의적인 말에 대해 감사하는 표시로 다시 헷 족속을 향해 몸을 굽혔다. 그가 몸을 굽힌 것은 그의 겸손함을 보인다. 우리는 전에 그가 집에 온 손님들을 접대하는 모습에서도 그의 겸손함을 보았었다. 그는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그들 앞에서 몸을 땅에 굽히며 영접하였었다(창 18:2). 경건한 아브라함은 겸손한 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겸손을 교훈하신다. 잠언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주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다(마 11:29). 겸손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다(빌 2:5). 또 주께서는 교훈하시기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다(마 23:11-12).
[12-15절]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 백성을 대하여 몸을 굽히고 그 땅 백성의 듣는데 에브론에게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컨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내게 들으소서. 땅값은 은 400세겔이나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교계(較計)[거래]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16-20절]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좇아 에브론이 헷 족속의 듣는데서 말한 대로 상고(商賈)의 통용하는 은 400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을 바꾸어 그 속의 굴과 그 사방에 둘린 수목을 다 성문에 들어온 헷 족속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정한지라.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이와 같이 그 밭과 그 속의 굴을 헷 족속이 아브라함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더라.
아브라함은 다시 그 땅 백성을 향해 몸을 굽히고 그 밭값을 정당히 지불하고 매입하기를 원했다. 땅 주인 에브론이 그 땅을 그냥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아브라함은 정당하게 당시 장사들이 사용하는 세겔로 은 400세겔(약 4.6킬로그램)을 달아 주고 그 땅을 샀다. 그 땅은 모든 증인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지가 되었다. 그런 후 아브라함은 죽은 아내의 시신을 그 밭의 굴에 안장(安葬)하였다.
아브라함은 그 밭을 정당한 값을 주고 샀다. 그는 물질 생활에서 남에게 손해를 주지 않고 정당하게 살려 하였다. 그것이 의와 사랑이다. 사람의 인격성은 그의 정확한 돈 계산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정당하게 돈을 벌고 정당하게 물건을 사고 소유해야 한다. 도적질은 악한 일이며, 남의 것을 강탈하는 것은 더 악한 일이다. 그것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죄악들 중에 포함된다(고전 6:9-10).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사라는 127세에 죽었다. 사람의 죽음은 그의 영혼이 그의 몸을 떠나가는 것이다(전 3:20-21). 그것은 죄 때문에 왔다(창 2:17). 죽음은 생의 마감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죽음으로 마감된 생에 대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전 12:14; 히 9:27). 우리는 죽음을 잘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영생을 얻었고(요 3:16; 5:24) 죽어도 마지막 날 부활할 것을 믿고 소망한다(요 5:28-29; 11:25-26; 살전 4:13-18). 인생은 나그넷길이며 누구나 어느 날 죽는다. 우리는 참된 믿음과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계명대로 의와 선과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죽음을 잘 준비해야 한다.
둘째로,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 몸을 굽혀 절하였다. 그는 겸손한 자이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자신이 보잘것없는 자임을 알고 자신을 낮춘다. 주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0:26-27). 우리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
셋째로, 아브라함은 막벨라 밭과 굴을 에브론에게 은 4백 세겔을 주고 정당하게 샀다. 천국 소망을 가진 자는 이 세상에서 정당하게 산다. 우리는 남에게 물질적 손해를 끼치지 않고 정당하게 살아야 한다.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낫다(잠 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