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살고싶은 곳 - 강물이 휘돌아 가는 하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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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1.04. 02:33조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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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이 휘돌아 가는 하회마을
이중환은 하회마을1)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하회는 하나의 평평한 언덕이 황강 남쪽에서 서북쪽으로 향하여 있는 마을인데, 서애의 옛 집이 자리 잡고 있다. 황강 물이 휘돌아 출렁이며 마을 앞에 머무르면서 깊어진다. 수북산은 학가산에서 갈라져 와서 강가에 자리 잡았는데 모두 석벽이며, 돌 빛이 온화하면서 수려하여 험한 모양이 전혀 없다. 그 위에 옥연정과 작은 암자가 바위 사이에 점점이 잇달았고, 소나무와 전나무로 덮여서 참으로 절경이다.
하회마을 전경 © 이종원
하회는 하나의 평평한 언덕이 황강 남쪽에서 서북쪽으로 향하여 있는 마을이다. 낙동강 물이 휘돌아 출렁이며 마을 앞에 머물러서 깊어진다.
하회의 황강은 하회 부근을 흐르는 낙동강의 옛 이름이고 그 일대는 부용대라 칭하는 곳이다.
부용대가 위치한 광덕리(廣德里)는 본래 풍산현 지역으로, 넓은 둔덕이 있다 하여 광덕, 광덕이, 광덕리라 하였다. 부용대는 낙동강가에 80미터가 넘는 높이로 깎아지른 듯 서 있는 암벽이다. 그 밑에 달관대(達觀臺), 운송대(雲松臺), 형제암이라는 기이한 바위가 있으며, 그 사이 사이에 여러 종류의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또한 서쪽 기슭에 겸암정, 동쪽 기슭에 옥연정의 고적이 있다. 바로 밑에는 서남쪽으로만 흐르는 낙동강이 이곳에 이른 뒤 동쪽으로 흘러서 추월담(秋月潭), 옥연(玉淵)을 만들어낸다. 부용대에서 내려다보는 하회마을은 차마 혼자서 바라볼 수가 없을 만큼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옥연정은 부용대 동쪽 기슭에 있는 정자로, 선조 19년(1586)에 유성룡이 창건하였다. 낙동강이 이곳에 이르러 옥같이 맑은 못을 이루었다는 뜻에서 옥연서당(玉淵書堂)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옥연정 남서쪽 뜰에는 삼인석(三印石)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서 유성룡, 노수신, 정전 3정승이 놀았다고 한다. 삼인석 밑에는 청파대가 있는데 낙동강 물이 범람하여 높이 파도를 쳐도 이 바위까지는 미치지 못하므로 ‘청파대(淸波臺)’라는 세 글자를 새겼다고 한다.
하회마을은 안동군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지정 민속마을로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이 마을은 조선 전기 이후의 전통적 한옥들이 조성되어 있고 영남의 명기(名基)라 부르는 등 풍수적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더불어 역사적으로는 하회별신굿과 같은 고려시대의 맥을 이은 민간전승 등이 매우 중요한 문화재적 가치를 가져서 그 경관과 함께 정신문화의 보존ㆍ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양진당
내앞마을
하회마을
조선시대 명문거족들은 관직에 있을 때는 한양에 머물렀지만 관직을 그만둔 뒤에는 낙향해 살기 위해 안동과 봉화 일대에 집과 토지를 마련해 두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라 안에 최고로 살 만한 곳으로 꼽혔던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의 동족마을이며, 그 터전은 낙동강의 넓은 강류가 마을 전체를 동ㆍ남ㆍ서 방향으로 감싸고 도는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 풍수지리상 지형은 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 혹은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고 부르는데 풍수가인 류종근 씨는 하회마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회마을 © 이종원
하회마을은 조선 전기 이후의 전통적 한옥들이 조성되어 있고 영남에서 이름난 터로 꼽히는 등 풍수적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이곳의 주산인 화산(花山)은 멀리 태백산에서 달려온 맥이다. 서쪽으로 뻗어온 산맥이 풍산에 이르러 숨은 듯 일어나 화산을 만들고 그 맥이 다시 서쪽으로 돌아와 평야를 이루었다. 그 형국은 물위에 떠 있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다. 부용대에서 바라보면 하회마을 뒤쪽에 자리 잡은 남산의 좌우에 벌려선 산봉우리들은 삼천귀인(三千貴人: 유학자들이 쓰던 정자관 모양의 세 봉우리)을 이루어 극귀현덕(極貴賢德)을 표상하고 있고 동쪽에서 흘러온 낙동강물은 하회마을을 감싸고 돌아 서쪽으로 빠져나가니 이름하여 하회라. 동ㆍ남ㆍ북이 높고 서방은 낮은 대신 광활하다. 그러나 이곳에도 원지산(遠志山)이 문필봉으로 허함을 막고 있으니 그 아니 좋은 곳인가.
그러나 그는 마을의 집들이 북향이고 서쪽이 허하므로 큰 부자는 나기 어렵겠지만 낙동강이 지현만곡(之玄彎曲)하여 먹고 입는 것은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이고 있다.
풍산 류씨가 집단마을을 형성하기 전에는 대체로 허씨(許氏)ㆍ안씨(安氏) 등이 유력한 씨족으로 살아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1635년(인조 13)의 『동원록(洞員錄)』에도 세 개의 성씨가 들어 있기는 하나 이미 류씨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그 이전에 류씨들의 기반이 성립되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오늘날과 같은 류씨의 동족기반은 중흥조 유운룡ㆍ유성룡 형제 시대에 이룩된 것이다.
겸암 유운룡은 풍산 류씨 14대의 종손이며 서애 유성룡은 지손인데 모두 문중의 거봉이어서 이 두 계손들을 겸암파와 서애파로 나누어 부르기도 한다. 이 마을에서 유서 깊고 규모가 갖추어진 가옥으로서 보물 또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가옥들은 모두 풍산 류씨의 소유인데, 특히 그중에서도 유운룡과 유성룡의 유적이 중추를 이루고 있어 류씨 동족마을의 형성시기와 역사적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마을을 감싸고 도는 화천은 낙동강 상류이며 그 주변에는 퇴적된 넓은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그 서북쪽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들어서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회룡포
회룡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돌이동으로 손꼽힌다. 낙동강이 예천 회룡마을을 둘러싼 풍경은 살기 좋은 곳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강물이 휘돌아 가는 하회마을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1 : 살고 싶은 곳, 2012. 10. 5., 신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