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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큰여수신문 문학상 공모전 발표(4월 29일)
시ㅡ부문 대상/배종숙(울산) 시인
수필ㅡ부문 대상/김부배(서울) 시인ㆍ시조ㆍ수필가
이번 문학상 공모전은 2018년 9월 20일부터 2019년 4월 15일까지 마감됐다.
대상 수상자는 지난 4월 29일 발표됐다.
'시ㅡ부문 대상' 에는 배종숙(울산시) 시인이 차지했으며,
'수필ㅡ부문 대상' 에는 김부배(서울시) 시인ㆍ시조ㆍ수필가가 차지했다.
시ㅡ부문 대상에 배종숙(울산시) 시인,
"나의 꿈"-외 2편(봄의 길목, 어머니의 길)이 차지.
배종숙 시인은 카스문학회 초대ㆍ2대 회장을 역임한 배 시인은 울산시지회장으로서
2019년 큰여수신문 문학상 공모전 시ㅡ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해 상금 500만원과 함께
특별 상패가 주어졌다.
한편 2018년 카스문학회 제2회 문학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번 시 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한 배종숙 시인은 중견작가로 전국 각 시 공모전과 시화전
행사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맹활약을 펼치고 있어 앞날이 기대되고 있다.
수필-부문 대상에 김부배(서울시) 시인ㆍ시조ㆍ수필가
"중국 운남성 장족"-(요르단 1, 2편) 김부배(첫사랑)씨가 차지했다.
김부배 시인·시조·수필가는 카스문학회 성동구지회장으로 젊은이들, 중년작가들의 열정에 못지 않는 신실한 기독교 권사로서 소리없는 사랑으로 헌신해 오고 있다.
카스문학회 성동구지회장에게는 수필 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해 상금 500만원과 함께 특별 상패가 주어졌다.
이번 수필 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한 김 수필가는 2018년 9월 본사의 문학상 공모전 시ㅡ부문에서 최우수상과 상패를 수상하며, 중견작가로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카스문학회 초대·2대 회장
배종숙(울산시) 시인, 나의 꿈-외 2편(봄의 길목, 어머니의 길)
나의 꿈
휘감긴 바람들이
철썩이는 파도인 양
한 몸 되어 하늘까지 닿는다
그 모습
신기루처럼
눈빛 사로잡아
깊은 저 바다에 별꽃 되어 뜬다
더 높게 더 낮게
마지막 한 걸음까지 애태우며
하늘 위해
지치도록 춤춘다고
하루가 의자를 내민다
땅 끝에서 바다 끝까지
길게 날아 오르더니
간절한 마음 모아 크르릉 크르릉
자리 하나
비워 두고
햇살 동산 넘는다
풍경 너머로
먼 길 돌아온
여백을 밀쳐놓고
한나절 허기가 돌면
긴 활주로 베개 삼아
하루의 여정을 푼다.
봄의 길목
밭 언저리에
온통 배꽃온기
퍼 올려 눈길 보낸다
산중턱에 발길 머무니
떨어졌던 추억 배시시
등받이에 냅다
기댄다
뭉게구름 머물다
떠난 그 자리
동백 향기가 얼싸 안는다
작은 날개짓
나뭇가지에서
하늘빛 곱게 물고 있고
울렁이는 마음의 파란 파도
설레설레
이끼 낀 바위틈 맴돌고 있다.
어머니의 길
산달이 다가온다
숨소리 귓가에 세워 놓고
꿀렁꿀렁 배꼽이 미소 짓는다
살과 피를 이어받아
무거운 몸 힘들지만
마음은 가볍다
조용히 그날 기다리며
아파도 즐겁고
슬퍼도 즐거운
감동의 대서사시
거룩한 자리영원히
메마르지 않는
산모의 길
여린 꽃망울
아릿한 탄생을
설램으로 기다리고 있다.
수필-부문 대상 수상작
중국 운남성 장족, 요르단 1, 2편-김부배(첫사랑)
김 부 배 시인·시조·수필가
카스문학회 성동구지회장
중국 운남성 장족
소수 민족이 사는 곳을 3번이나 가 보았지만, 내 맘속에서는 꼭 다시 가고픈 여행지가 있다.낭만이 남실남실 하늘과 맞닿은 곳, 바로 샹글릴라와 리짱이다.
험준하고 오래된 교역로인 차마고도의 중간지점에 리짱이 있다. 이곳에서 소금 등 생필품과
문화와 종교의 교류가 이루어졌다.
아름다운 만남을 완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현기증 날 정도의 낭떠러지를 조심조심 건너가야했다.
가파른 길일지라도 모든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야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단단해 질 수 있다.
처음에는 해발 고도 3,500m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였다.
동티벳 지역은 처음에는 3,200m 이상의 고원자락이었다.
초목의 모습부터 완전히 달라 보였다.
호기심마저 자극했다.중국은 56개 다민족국가라고 한다.
제일 큰 민족이 한족이고,
두 번째부터 가장 작은 55번째 민족은 인구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
두 번째로 큰 민족이 1,548만 명이나 되는 장족이다.
한족은 중국 인구 13억 중 1%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면적으로는 소수민족이 티벳트 자치구, 네이멍구 자치구 등 1/4은 될 성싶다.
장족의 생활 방식을 소개하고파 지금 내 마음이 요동친다.
신선하고 아름다운 하모니가 흘러나오듯 때 묻지 않은 곳이기도 해서이다.
가파른 길을 오르내리며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그들은 오히려 티 없이 맑은 순수함으로 흔들림 없는 광활한 평온처럼 담담하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산들은 울창한 초목들로 꿈꾸는 듯 묵묵히 서 있다.
사람들 또한 신비롭게 보였다.머리 모양새는 긴 머리를 둘둘 말아 올린 뒤 정수리에 머리핀을 꽂고 있었다.
검소한 모습들이지만, 머릿결은 윤기가 차르르 흘렀다.
키도 크고 남자나 여자나 모두 다 잘생긴 편이었다.
장족은 고지대에서 야크 떼를 벗 삼아 살고 있었다.
또한 신선한 약초, 그들만이 아는 자연산만을 고집하며, 그것으로 모든 질병을 다스리고 살아가고 있었다.
깊은 산속에 들어갈수록 아름다운 자연의 광활한 모습들이 현실로 다가왔다.
잠깐 소개를 하자면, 언어가 다 틀리던 옛날엔 상용문자로 소통했다 한다.
마방들이 물물교환 했던 유명한 곳들을 보니, 모두 그림으로 소통하고 있었다.
그림은 물고기, 새 등등 못 보던 것들도 많았다.
그런 오지를 찾아와 여행을 즐기게 되다니, 행복했다.
한평생을 내 마음과 더불어 살아온 나도 내 마음이 무어라 말을 걸어오면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았다.
때론 알아들을듯하면서도 애써 귀 기울이지 않고는 모른 체 했다.
무시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이곳 마방들은 그림과 손짓, 발짓을 통해서 소통하며 서로에 대한 믿음을 쌓았을 것이다.
알아듣지 못한다고 힘겨워 했을 내 마음에게 몸을 숙여 눈을 맞춰야겠다.
더 이상 외로움으로 몸살 앓지 않도록 말도 탔다.
코스 별로 30분, 1간, 2시간, 그렇게 말을 탔다.
우리 일행은 1시간 30분짜리 코스를 탔다.
그전에 한 번 타 본 경험이 있었지만, 여전히 긴장이 되었다.
말 타는 곳에 서서 기다리는데 어쩜, 운 좋게도 내게 최고의 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타라 해서 탔는데, 그 무리 중 리더였다.길을 가는데 어찌나 영리한지, 조금만 타 보아도 느껴졌다.
언덕길을 올라갈 땐 내가 엎드리고 숙인 자세로 타야했다.
반대로 내리막길에선 허리를 세우고 있어야했다. 그래야 말이 힘이 덜 든다고 했다.라는 대로 하니 서로가 호흡이 잘 맞았다.
말이지만 정말 영리했다.
조금만 길이 안 좋아도 말은 1m라도 돌아서 안전하게 걸어갔다.
그걸 보며 참으로 많은 걸 깨달았다.그럭저럭 옛 마방들이 다니던 곳을 두루 체험해 봤다.
정말 기분 좋았다.
장족들이 사는 곳 따라 다소 다르겠지만, 결혼 문화가 독특하다.
장족들은 주로 친족과 결혼한다.4촌과 결혼해서 사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여자가 3형제나 5형제가 있는 남자 집으로 시집 가면, 그 형제들은 다같이 한 여자를 부인으로 삼고 사이좋게 지낸다.순서는 형제 중 누가 부인 방에 들어가면, 문고리에 허리띠를 걸어 놓는다.그 다음엔 그들끼
리 정해서 번갈아 가며 잔다.
이런 관습은 서로 의지하고 서로 배신하지 않기 위해서란다.
또한 근친결혼인데도 다들 건강한 자녀들이 태어난다는 것이다.
남과 여 일대일의 만남이 완전하다고 생각했던 가치관도 여기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부인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방식이 몇 백 년을 이어오면서 굳어졌을 것이다.
사랑을 소유하고 싶은 욕심을 잠시나마 내려놓아야겠다.
그 다음은 야크 떼를 몰고 나가서 3개월 내지 6개월씩 깊은 산속에 살면서 돌아오곤 한다는 것이다.
자녀를 낳으면 반드시 장자에게 호적을 등록하고 사는데, 그 형제들 중 누구의 씨인지는 그들도 모른단다.
사랑은 하나인데 말이다.
장족 여자들에 대해 궁금한 게 참 많았다.
또한 주어진 목숨 다하기까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자연사하기 때문이란다.
산속이든 길이든 집에서든 간에 병원엔 아예 안 간다고 한다.
그냥 죽을 때가 되면 순순히 받아들인다고 한다.
지구상에 이런 곳도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내 생각은 그저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과욕을 부리지 않고 지금의 삶에 순응하며 사는 그들에게서 여백이 보였다.
소유욕을 채우지 못해 느껴야 하는 무기력감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저래 유심히 장족 여자들 살펴보고 난 나의 느낌은 좀 짠했다.
글쎄,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저 대자연 속에서 평안하게 땅에서 나무에서 그들만의 일터에서 유일한 야크 떼랑 어우러져서 부디 평화롭게 잘 살았으면 한다.
[요르단 1편]-김부배(첫사랑)
봄날의 기운이 느껴지는 때였다. 마음속 길목에서 서성이는 그리움으로 몸살앓던 어느 날, 서아시아의 아라비아 반도 북부에 있는 아랍왕국을 여행하게 되었다.
휑한 빈자리 같은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나는 가끔씩 여행을 떠나곤 했다. 일상이라는 틀에서 탈피해 조금씩 자유로워지면 딱딱해진 가슴에 낭만이 깃들었다.
그 낭만이라는 에너지로 다시 일상을 꾸려갈 수 있었다.
아시아 서남부에 위치해 있는 입헌군주국, 정식 명칭은 요르단하삼왕국이다.
종족 구성은 아랍인이 98%, 아르메니아인이 1%, 체르케스인이 1%였다. 여러 종족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는 나라, 사막의 땅이라는 색다른 느낌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히 설레였다.
'사상누각'이라는 말이 있다.
모래 위에 세운 누각은 기초가 튼튼하지 못해 오래 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사막의 땅 위에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을까.
어린 시절로 돌아가 이곳 요르단에서 모래놀이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즐거운 상상도 해보았다. 요르단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종교는 92%가 이슬람교였고, 기독교는 6%, 기타 종교는 2% 정도다.
주요 산업은 농업과 광공업이다.
중동 내륙의 교통 중심지로, 국제항공노선과 통신망이 잘 발달되어 있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사상누각은 이곳 요르단에서는 분명 잘못된 것 같다.
사막이라는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요르단 사람들의 저력이 눈부셨다.
요르단은 국왕 중심제의 입헌군주제이고, 의회는 양원제이다.
국왕이 임명하는 상원 55석과 임기 4년의 하원 110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르단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사는 사람들, 그들이 참으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요르단으로 들어서는 길이 몹시도 위험해 보였다.
편안하고 안락한 여행을 꿈꿨는데 순간 긴장을 했다.
왜냐하면 사막의 도시 자체가 모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계곡에서 만나는 푸른 나무들은 작은 키로 듬성듬성 서 있었다.
너무나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몇 시간쯤 지나고 보니,
어느새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오가는 요르단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훈훈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름다운 모습이 눈앞에 전개되어 매우 좋았다.
깨끗한 상태로 계속 이어진 정경이 생각보다는 더 마음에 들었다.
멋진 풍경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저녁 시간에는 호텔 로비에서 이방인들과 어울렸다.
그 사이에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레스토랑에서 다양한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는 한 방에 모여 잠시 휴식을 취했다.
우리 일행은 모두 일정에 맞춰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고 싶어 했다.
나는 잠시 현지 가이드와 상담했다.
그 결과 유명한 페트라에 가기로 결정 지었다.
나는 27명을 인솔하는 인솔자의 자격으로 용감하게 여기까지 왔다.
생각할수록, 내 자신이 대견해 보였다.
어렸을 때는 선생님의 뒤만 따라다니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내가 인솔자가 된 것이다.
무엇이든지 여행지에서는 내 허락 없이는 할 수 없었으니까.
현지 가이드가 날 여왕처럼 대하는 태도가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가이드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여행 계획을 세웠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이 꽤 흘렀다.
우리는 내일을 위해 각자 자기 방으로 가서 쉬었다.
호텔의 분위기가 정말 멋졌다.
깨끗한 욕실에 인테리어까지 세련됐다.
디자인 변기가 인상적이었다. 딱 맞는 사이즈가 맘에 들었다.
꼭 필요한 곳마다 제대로 물품이 갖추어져 있어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내가 인솔자였기에 혼자서 방을 썼다.
화려하게 장식된 방안의 인테리어를 보면서, 혼자 쓰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멋진 여행을 하다니 매우 감사했다.
내일을 위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1편에 이어)
[요르단 2편]-김부배(첫사랑)
오늘 일정은 그 유명한 페트라를 만나는 것이었다. 페트라로 향하는 마음이 몹시 설렜다.
사막에 새겨진 장밋빛 도시 페트라처럼 나의 기분도 장밋빛이었다.
사막에 있는 페트라는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고대 대상 도시이다.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곳으로, 홍해와 흑해 사이에 있다.
이곳은 이집트와 아라비아, 시리아, 페니키아 사이의 중요한 교차지점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번영을 누려왔다.
페트라의 건물들은 바위산을 반쯤 깎아서 만들었다.
좁은 통로와 수많은 협곡이 있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고대 동방의 전통과 헬레니즘 건축 양식이 혼합된 곳이 페트라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유적지 중의 하나이다.
페트라는 과거 문명을 아주 특별하게 증언하고 있다.
비바람에 깎여도 살아남은 사막의 증언들이 페트라를 떠받치고 있었다.
사막의 고요를 입고 장밋빛 도시로 피어난 페트라는 여전히 웅장했다.
움알아마드의 구리 광산과 지하 갱도는 기원전 4세기의 광산 건축물의 탁월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우회 댐과 두트림 터널, 수로, 수도, 집수지, 물탱크 등은 기원전 1세기에서 서기 1세기 사이의 치수 기술을 보여 주는 탁월한 유적이다.
이곳은 1985년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이다.
그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관광객들의 방문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페트라는 그리스어로는 돌이라는 뜻으로 '바위'를 의미하고 있다.
셀라도 히브리어로 '바위'를 페트라라는 바위의 도시인 셈이다.
또한 영국의 시인 존 윌리엄 버건이 페트라를 '영원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밋빛 같은 붉은 도시'라고 노래한 바 있다.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 마지막 성배'(1989년)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런저런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나니, 더 의미 깊은 유적지로 여겨졌다. 많은 사람들이 고대의 페트라 사람이 되어 보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고대의 그 시절에도 우리처럼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을 것이다.
왁자한 열기로 1월이 오고 12월이 갔을 것이다.
그 속에서 고대인들도 사랑에 아파하며 이별을 지워 나갔을 것이다.
페트라 안에서는 조랑말을 타고 오고가는 길이 재미가 있어 보였다.
깨끗한 상태로 만들어진 페트라의 엄청난 돌 조각들! 그 자체로도 웅장했다.
직접 가서 보지 않고는 무어라 표현을 할 수조차 없는 모습들이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이곳, 정말 환상적이었다.
어디선가 페트라인의 사랑이 반짝 돌아보는 것 같아 눈이 부셨다.
점심은 미리 예약된 양갈비였다. 양파, 피망, 토마토 등 다양한 종류의 구이뿐만 아니라,
특색 있는 음식들이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어서 좋았다.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기분 좋게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까지 맛깔스럽게 해 아름다운 페트라의 추억을 만들었다.
요르단을 사랑하는 마음을 뒤에 남겨 놓고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사막의 길에 있는 모세의 샘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정말 신기한 모습이었다. 겉은 모래와 돌뿐인데, 밑에서는 큰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 모세의 샘물은 식수로는 사용하지 않고 식물 등을 키우고 있었다.
석회수이기 때문이었다.
물이 귀한 사막에서 이렇게 하염없이 흐르고 있는 물이 마냥 아까웠다.
사막을 걷고 있는데 모래바람에 시야가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고대의 페트라인들도 이런 막막함 앞에서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 막막함을 딛고 사랑이라는 꽃을, 페트라라는 도시를 피웠을 것이다.
모래바람과 모세의 샘 그리고 페트라,
이렇게 곳곳이 전혀 다른 색깔의 요르단은 참 매력적인 곳이었다.
역시 요르단 여행을 잘 왔다.
볼거리가 많고 요르단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고 예의 바르다.
배울 점도 참 많았다.
멋진 나라. 요르단 요르단이여~
/김승하 기자
문의/010-5107-1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