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의아했다.
역사적으로 ‘서북청년단’이라는 조직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월남한 서북 출신 청년들을 중심으로 1946년에 결성되고 1948년에 대한청년단으로 통합된 청년단 이름은 서북청년회다.
그런데 왜 ‘서북청년단’일까?
그러다 1970년대 중반에 ‘서북청년단’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발견했다.
1976년 2월에 개봉한 영화 <서북청년>은 서북청년회 위원장이었던 선우기성을 주인공으로 해방 직후의 좌우대립을 그린 것인데, 기획 단계 제목이 ‘서북청년단’이었으며 실제 영화에서도 그 단체는 서북청년단이라고 불린다..
이 영화는 그런대로 흥행에 성공해 같은 해에 후속편인 <대의>도 제작되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것 역시 서북청년단이다.
유신시대 한가운데서 제작된 이 영화가 서북청년단이라는 잘못된 이름이 대중화되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영화의 존재는 서북청년단의 등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우선 이 영화는 역사물이라기보다는 액션물이다.
‘공산당’이 보낸 자객에 의해 살해된 동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외부의 도움도 없이 홀로 싸우는 그들의 모습은 조폭영화를 방불케 한다.
실제로 이 영화를 찍었던 감독은 액션물로 유명했던 이들이며 <대의>의 클라이맥스 역시 서북청년단의 훈련부장이 ‘공산당’의 간부와 맨주먹으로 혈투를 벌이는 장면이다.
이제 와서 서북청년단을 자처하는 이들이 하고 싶은 것이 이런 ‘영웅놀이’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서북청년단 관계자와 ‘공산당’ 외에 또 다른 위치에 있는 이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서로 싸우는 그들에게는 함께해야 할 대중도 없고 따라서 만들어야 할 사회도 존재하지 않는다.
서북청년단이 스크린에 등장했던 1970년대는 그와 유사한, 해방 직후를 무대로 한 대중적 반공물이 부쩍 늘었던 시기였다.
국사 교과서가 국정화된 사실이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국가가 역사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는 데 발맞추어 당시 대량생산된 반공 현대사물의 특징 역시 능동적인 대중의 부재에 있다.
‘악랄한 공산당’과 싸우는 수사기관의 활약은 수동적인 대중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해방되자마자 전국 각지에서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해 자치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내던 대중들의 모습은 지워지고 그 자리를 청년단이나 수사기관이 차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은 유신시대에 재현된 해방 직후의 모습이 오히려 당대 사회를 어느 정도 반영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작가 조세희는 70년대를 회고하면서 실제 정치적 압제에 시달린 사람은 “말할 수 없이 적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며 “강압 통치자들이 무슨 짓을 하든 가만히만 있으면 자신과 가족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순응과 무저항을 안전한 생활방식으로 터득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70년대에 만들어진 해방 직후 재현물에서 볼 수 있는 대중의 부재는 바로 그 시기 대중의 침묵에 상응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대중이 관객석을 선택하고 있는 이상, 무대 위에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말할 수 없이 적은 소수’를 고립시키며 순응하는 대중을 스크린으로 서북청년단은 활개를 칠 수 있었다.
그렇다면 2014년에 다시 등장한 서북청년단은 우리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