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6/07 11:25
지난 3일 대구 삼성전 때 롯데 박진환이 굵은 눈물을 흘렸는데요. 9회 2사 후 결정적인 실책을 저질러 다 이긴 경기를 연장 끝에 5-4로 패하도록 만든 데 대한 자책감 때문이었어요.
2루수로 선발출장한 박진환은 양준혁의 타구가 우익수와 1루수 사이로 높이 뜨자 자신이 잡겠다고 콜을 했는데 그만 포구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실수를 저지른 뒤 덕아웃 뒤쪽 복도 한쪽에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는군요. 양상문 감독 등 코칭스태프가 뭐라고 야단을 치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생각해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죠.
양 감독도 괴로움에 밤잠을 설칠 정도였는데요. 다음날 현대전을 치르기 위해 사직구장에 나타난 양 감독은 뜻밖의 얘기를 하더군요. 혹시 그를 2군에 내려보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러면 선수 하나를 죽이게 된다”며 박진환을 계속해서 기용할 뜻을 내비쳤습니다. 양 감독은 “경기에 계속 출전시키면 저도 뭔가 느끼겠지”라고 덧붙였어요. 박진환은 양 감독의 배려 덕분에 현대와의 3연전에 계속 출전했습니다. 감독인들 어찌 속이 쓰리지 않았겠습니까. 감독은 화를 내고 싶어도 내놓고 화를 낼 수 없는 자리인가 봅니다. 롯데의 연패가 늘어나면서 양 감독이 부처가 다 돼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 키 작은 코치들의 ‘도토리 키재기’
지난 4일 한화-두산전이 열린 대전구장에서의 일이었어요. 한화 이정훈 코치가 두산선수들이 타격훈련을 하는 배팅케이지 뒤에서 두산 김태형·김광수 코치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죠. 이 광경을 먼발치에서 보고 있던 한화 유승안 감독은 장난기가 발동했던지 “야! 이 코치. 니가 제일 크네”라고 큰소리로 말하더라고요. 세 코치는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고, 곧 이 코치는 “아~ 예, 고맙습니다”라며 웃었죠. 김광수 코치는 멀뚱멀뚱 눈알을 굴렸지만 김태형 코치는 그 말을 수긍할 수 없다는 듯 모자를 벗고 이 코치의 팔을 잡아당겼습니다. 직접 키를 재서 비교해 보겠다는 거였죠. 그러나 이 코치는 슬그머니 손목을 빼 모습을 감췄어요. 김태형 코치는 키가 173㎝로 김광수(168㎝)·이정훈 코치(170㎝)보다 큰 것으로 자료에 나와 있으니 억울할 만도 했을 거예요.
◇‘서승화 불똥’ 맞고 트레이드된 임재철
한화 외야수 임재철이 5일 두산 왼손투수 차명주와 트레이드돼 둥지를 옮겼습니다. 그런데 임재철이 이적한 데는 LG 서승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요. 한화와 두산은 이미 지난달부터 차명주의 트레이드를 놓고 적절한 카드를 조율하고 있었죠. 2대2로 하자, 현금으로 하자며 줄다리기가 한창이었습니다. 두산은 애초 김경문 감독의 눈 밖에 난 차명주를 보내고 내야수를 보강하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지난 2일 잠실경기에서 좌익수 윤재국이 LG 투수 서승화의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오른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을 입고 말았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익수 김창희도 부상을 당했어요. 결국 차명주의 트레이드 상대는 외야수로 변하고 말았죠. 김 감독은 4일 한화전을 위해 대전으로 와 유승안 감독과 만나 이 같은 의견을 나누고 결국 ‘임재철 카드’로 합의를 봤습니다. 임재철은 뜻하지 않은 ‘유탄’을 맞았지만 2군에 있다가 6일 바로 친정팀을 상대로 톱타자로 나서면서 기회를 잡았으니 결코 나쁜 일만은 아니었겠죠.
◇ 윤재국 불운의 끝은 어디?
지난주 가장 가슴이 아팠을 선수는 윤재국이 아닌가 싶네요. 윤재국은 그동안 그야말로 잡초 같은 인생을 산 주인공입니다. 지난 98년 경남대를 졸업한 뒤 쌍방울에 입단해 SK를 거쳐 2002년 롯데로 둥지를 옮겼다가 올 시즌 도중 두산으로 옮긴 ‘저니맨’ 신세였습니다. 롯데로 트레이드된 뒤에는 거의 2군을 전전했죠. 그러다 올해 두산으로 오면서 인생에 서광이 비치는 듯했습니다. 오자마자 좌익수 최경환의 자리를 낚아채는 짭짤한 활약으로 주위의 격려가 쏟아졌거든요. 성격도 조용하고 태도도 성실해 동료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좋아 이제야 제 길을 찾는 듯했어요. 그런데 불의의 인대 파열 사고를 당하고 보니 참으로 운명이 야속하다고 느껴지지 않겠습니까? 이제 좀 될 만하니까 ‘시즌 휴업’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았으니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분함과 원통함에 부상 당일 저녁에는 때 이른 무더위로 후텁지근한 밤을 하얗게 지새웠답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하늘이 원망스러웠는데 그래도 지금은 정신을 차리고 재기 여부를 타진하느라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쪼록 반드시 재기에 성공해 보란 듯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그날이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 LG 장문석의 네티즌 달래기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선수들과 팬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이메일을 통해 격려 메시지를 보내는 팬들도 많죠. 그러나 응원해주는 팬이 있는가 하면 일부 ‘몰지각한’ 네티즌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응원하는 팀의 성적이 부진하다고 해서 인신공격에 가까운 욕설을 퍼붓는 것이죠. 그런데 LG 선발투수 장문석이 이런 네티즌을 퇴치하는 방법을 밝혔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네티즌은 정면대응하기보다 살살 구슬러야 한다는 주장이죠. 부상을 당해 재활을 거치던 시절 장문석은 한 네티즌으로부터 온갖 욕설로 도배가 된 이메일을 받았답니다.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었지만 ‘범인’을 만나보려고 ‘정확한 지적에 감사한다. 언제 숙소 근처로 오면 사인볼이라도 하나 선물하겠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죠. 그랬더니 이메일을 보낸 사람은 입이 귀까지 걸린 채 아침 숙소 근처에 나타났다나요? 장문석은 문제의 네티즌에게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잘 타일렀답니다. 그런데 사인볼을 줬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는군요.
[정리] 김도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