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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브리서 1: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1 헬라에서 출애굽시킨 모세와 예슈아
과거에 믿음의 조상들은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하지만 사도들부터 시작된 마지막 시대는 예슈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예슈아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고 헬라 문화의 영향을 받아 로마인이 되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또한 지식인들은 헬라어에 능통한 자들이었다. 헬라 문화를 가진 애굽은 태양신과 다신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애굽의 헬라에서 출애굽시켰는데 다시 로마를 통해 헬레니즘의 문화에 흡수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여호와께서 다시 예슈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출애굽시키기 원하셨다. 즉 우리 마음에 있는 애굽인 헬라 철학, 헬라 문화, 태양신, 다신론을 버리고 다시 온전한 여호와의 법도로 돌이키기 원하셨다. 또한 이방인들도 그들의 세상 문화에서 예슈아를 통해 출애굽 시키기 원하셨다. 진정한 영적 출애굽인 것이다. 오늘 날에도 태양신을 섬기는 바벨론 문화가 기독교 문화를 가장하고 교회안에 들어와 있다. 태양신의 날인 일요일에 예배하고 태양신의 탄생일인 크리스마스를 지키며 태양신의 아들 담무스의 탄생일인 이스터를 부활절로 지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날 예배해도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그건 인간의 생각일 뿐이다. 바울의 말을 오해한 변명에 불과하다. 우린 하나님의 법도를 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법도를 바꾸실 만큼 인간처럼 변덕스럽지 않으시다. 오히려 그날 우리가 불법한 자로 드러날까 두렵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키고 있는 문화의 뿌리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분별하여 버려야 한다. 바벨론 문화인 헬라의 가르침을 떠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출애굽이고 구원의 시작점이다. 우리가 회개하는 기준은 내 생각이 아니라 율법이어야 한다. 모세와 선지자들이 증언했던 율법이 하나님의 언약이기 때문이다(눅16:30,31).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눅16:30–31)
2 이방인을 이스라엘이 되게 하신 예슈아
아브라함에게 ‘너의 씨로 말미암아 온 민족이 복을 얻으리라’고 약속하신 말씀에서 '씨'가 단수로 쓰였으므로 그 씨는 메시아이신 예슈아를 의미한다(창22:18). 아브라함을 통해 할례자들과 무할례자들까지 복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 최초 창조주 여호와의 계획이셨다. 이 계획은 아브라함으로 시작하여 할례자들이 복을 받고 예슈아를 통해 무할례자들이 복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슈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모든 민족이 그분을 통해 이스라엘로 접붙여져 같은 시민(이스라엘인)이 되고 함께 하나님의 유업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시민'이라는 뜻은 '한 국가의 일원으로서 같은 헌법에 의해 모든 권리와 의무를 가진 자'를 말한다(지식백과). 전에는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고 유업도 없는 이방인이었는데 예슈아를 통해 믿음을 만나게 되고 순종함으로 유업을 얻게 되는 것이 아버지의 계획이셨고 예슈아께서 오신 이유인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믿음으로(살아있는 믿음) 유업을 얻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슈아께서는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받은 언약을 그의 자손으로 오셔서 함께 성취하고 계신 것이다. 이 아브라함의 언약은 온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그들이 모두 추수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날은 이 땅에 예슈아께서 다시 오셔서 왕으로서 통치하시고 모든 통치권을 아버지께 드리는 때 까지이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창26:4,5)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엡2:19,20)
3 여호와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
여호와께서 창조하셨다는 구절들을 찾아보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께 경배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한 이유는 모든 것(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계4:11) 바울도 동일하게 말했다. 만물(모든 것)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고 말미암았고 다시 여호와께 돌아갈 것입니다(롬11:33,36). 아모스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산들을 지으시고 바람을 창조하시고 별들을 창조하시고 낮을 밤으로 바꾸시고 밤을 아침으로 바꾸시며 바다를 창조하신 분이라고 고백했다(암4:13, 5:8, 9:6) 또한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셨고 하늘을 창조하셨다고 말했다(시102:25).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4:11)
4 욥에게 나타나신 창조주 여호와
여호와께서 고난받는 욥에게 창조주로서 친히 찾아와 주셨다. 사람이 아무리 의롭다 한들 창조주 앞에 아무것도 아니며 사람이 아무리 지혜롭다 한들 창조주의 지혜에 비하면 어리석을 뿐이다! 창조주 여호와께서 욥에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셨고 바다를 한 곳에 가두셨으며 아침에게 명령하고 새벽의 자리를 정하셨으며 바다의 깊은 물밑을 걸으셨고 사망의 문을 달았으며 땅의 너비를 정하시고 광명으로 가는 길과 흑암으로 가는 길을 만드셨다(욥38:4-19). 또한 눈 곳간과 우박 창고를 지으셨으며 동풍의 길이 있고 홍수의 물길과 우레와 번개의 길을 내어 주셨으며 이슬방울과 서리를 창조하셨고 하늘의 궤도와 그 법칙을 땅에 베풀었으며 번개를 보내어 순종하게 하시고 수탉에게 지혜를 주시고 구름을 세시며 새들에게 먹이를 주신다(욥38:22-41). 각 동물들의 해산 날을 정하셨으며 타조에게 총명을 주시지 않으셨지만 말보다 더 잘 달리게 하셨으며 말을 메뚜기 처럼 뛰게 하시고 전쟁의 소리를 두려워하지 않게 창조하셨으며 매가 남쪽으로 향하게 하시고 독수리가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들도록 명령하셨다(욥39:2-27). 리워야단은 사람이 그 모습을 보기만 해도 기가 꺽기는데 이 리워야단을 두려움이 없도록 창조하신 분이 바로 여호와 자신이시다(욥41:1-33). 이처럼 욥에게 여호와께서 만물 즉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로서 만나주셨다.
5 예슈아를 위해 만물을 창조하셨다
바울은 만물이 아버지로 부터 나왔으며 우리도 아버지를 위해 있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만물이 예슈아로 말미암고 우리도 예슈아로 말미암았다고 말하고 있다(고전8:6).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말인지 예슈아께서 창조하셨다는 말인지 헷갈리게 한다. 우린 여호와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예슈아께서 상속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상속자'의 뜻은 '아버지의 재산이나 신분, 지위등을 이어받는 사람'을 말한다(라이프 성경 사전). 즉 만물은 아버지의 것이지만 예슈아께서 아버지(여호와)로부터 상속을 받아 주인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만약 예슈아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면 그것을 상속받을 필요가 없다. 자신이 창조한 것을 상속받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만물이 예슈아로 말미암았다는 말은 예슈아께서 창조하셨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앞에서 만물이 여호와에게서 났다는 뜻은 '~로부터' '말미암아' '기원, 원인'등의 분명한 뜻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있다에서 '위하여'는 그를 향하여 가는 목적지, 결과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고전8:6)
그러면 예슈아에 대해 말한 '말미암고'는 무슨 뜻일까? '말미암아'의 헬라어 뜻은 상당히 광범위하다. '~을 통하여, 그것에 의해'라는 뜻도 있지만, '~를 위해, 때문에'와 같은 원인을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마15:3)에서 '으로'가 '말미암아'와 같은 단어이다. 이 단어를 '너희의 전통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님의 계명을 범한다'라고 이해하지 않는다. 또는 '너희 전통에서 나온 하나님의 계명을 범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을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혹은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라고 이해한다. 그러므로 '말미암아'라는 단어를 한가지 의미로 이해하거나 번역해서는 안된다. '말미암아'라는 단어가 '창조하다'인지 '위해서나 때문에'인지 잘 판단하고 번역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여 있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다.' 혹은 '만물이 그(예슈아) 때문에 있고 우리도 그(예슈아) 때문에 있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같은 구절에서 만물이 여호와로 부터 나왔고 즉 창조되었다고 이미 말하고 있고 만물을 여호와께서 그 아들 예슈아께 상속하시기 위해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예슈아를 위하여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고 우리도 예슈아를 위해 신부로서 창조된 것이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마15:3)
히브리서 기자는 예슈아께서 자신을 세우신 이에게 신실했고 모세는 하나님의 온집에 신실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 영광의 크기가 얼마나 다른지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집을 지은자가 집보다 존귀함같다고 말한다. '마치'라는 단어를 통해 예슈아께서 집을 지으셨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정도로 영광의 크기가 차이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세는 온집에 충성하였다면 예슈아께서는 아들로서 창조주 아버지께 충성하였기 때문이다. 예슈아께서는 교회의 머리로서 대제사장으로서 여호와를 섬기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몸으로서 교회의 지체들로서 여호와를 섬긴다. 그러므로 영광의 크기가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히3:2-4).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히3:2-4)
6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그 말씀이 곧 예슈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 여호와의 말씀이 예슈아가 될 수 있는지 설명하기를 어려워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설명할 때 '그의 말이 곧 그 사람이다'라는 말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의 말이 곧 다른 사람이다'라는 말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결론은 '여호와는 예슈아시다, 동일 인물이시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어쨋든 예슈아께서 말씀이시고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하면 만물을 여호와께서 창조하셨다는 말이 틀렸든지 아니면 여호와께서 예슈아를 통해 만물을 창조하셨든지 아니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여호와께서 예슈아라는 뜻일 것이다. 우린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요한 복음 1장을 살펴보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요1:1-7)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 우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요한이 창조주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다. 바로 우리가 볼 수있는 말씀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말씀에 집중하게 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도 바라시고 바람직한 것이다. 그런데 2절에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라고 번역함으로 바로 우리의 시선을 여호와가 아닌 '그'에게 전환시키고 있다. 그가 하나님과 함께 계셔서 그가 창조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2절은 성경마다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 킹제임스와 다른 많은 영어 성경들 즉 10개중에 5개의 성경은 '이 말씀은 태초부터 하나님의 대한 말씀이었더라' 혹은 '태초에 하나님도 동일하셨고' 다시말해 태초에 말씀이 계셨던 것 같이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다. 즉 하나님을 말씀과 동일시하는 설명이라 할 수 있다. 한글 번역처럼 여호와가 아닌 '그'에게 시선을 전환시키는 것이 아니라 1절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라고 번역한 것을 모두 '말씀'으로 읽어보자.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만물이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말씀이 아니고는 어떤 것도 창조된 것이 없고 말씀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 생명의 빛이 어둠에 비추었지만 어둠이 깨닫지 못했다. 이때 하나님께서 요한을 보내셨다. 요한은 빛에 대해 증언하러 왔다. 그리고 그 빛은 예슈아시다.' 즉 말씀이 예슈아가 아니라 생명의 빛이 예슈아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번엔 '그'를 모두 '예슈아'로 읽어보자.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예슈아께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예슈아로 인해 창조되었고 예슈아가 창조하지 않은 것이 없고 예슈아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다. 예슈아의 빛이 어둠에 비추었지만 어둠이 깨닫지 못했고 하나님께서 빛을 증언하기 위해 요한을 보내셨고 빛이 예슈아시다.' 이렇게 이해하면 말씀도 예슈아시고 빛도 예슈아시다. 우린 지금까지 이렇게 이해해왔다. 뜬금없이 요한이 나온 듯하고 문맥이 좀 이상한 느낌이 있다. 그러다보니 여호와는 어디로 사라지고 예슈아만 있고 창조주도 예슈아시고 상속받을 자도 예슈아가 된 것이다. 이것도 이상하다보니 결론은 여호와가 예슈아시다라고 내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여호와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로 번역하기 보다는 '동일하게'라고 번역하여 '예슈아'가 아닌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성경적이고 문맥에 맞다. 왜냐하면 요한이 증언하러 온 것은 '생명의 빛'이고 그것이 예슈아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명의 빛'은 어떤 의미에서 예슈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말씀에는 '생사화복'이 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그 중에서 생명을 택하고 복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본다면 '생명의 빛'이라는 뜻은 순종으로 생명을 얻게 하시는 빛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순종을 통해 생명을 얻게 되고 복을 받게 되는 가르침이 예슈아이신 것이다(신30:15,16). 그리고 그것을 삶으로 몸소 보이셔서 세상에 빛이 되셨다. 그러므로 말씀이 예슈아라는 말이 아니라 말씀은 여호와시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생명을 얻게하시는 빛이 예슈아이신 것이다(요1:1-7).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신30:15,16)
7 말씀이 낳으신 예슈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말씀이 육신이 되었고 말씀이 예슈아라는 말인가? 여기서 '되어'의 어원은 라틴어 'gigno'로 '낳다, 일으키다'의 뜻이다. 헬라어 뜻은 '발생하게 되는 원인이 되다'가 주된 뜻이다. 즉 '말씀이 원인이 되어 육신이 일어난 것', '말씀이 낳은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말씀이 육신이라는 말이 아니라 '말씀으로 인해 발생된(세워진) 육신'이라는 것이다. 즉 말씀이 낳은 아들로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 있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슈아께서는 요한 후에 육으로 태어났지만 말씀이 낳은 영의 아들로서 먼저 계신 분이기도 하다(요1:14,15)
샤밧 예배: 토요일 11시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깃발 재작 문의
https://cafe.naver.com/freeflaging
#히브리서1장 #레올람토라 #창조주 #요한복음1장
첫댓글
아멘!
지금도 출애굽의 시간을 반복하는 시간인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애굽의 풍요로움에 빠져 그 수가 너무 적다는것이지요....
암4장
10 “내가 이집트에서 한 것처럼 너희 가운데 전염병을 보냈다. 너희 말을 빼앗고 너희 젊은이들을 칼로 죽였다. 너희 진영에는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르게 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다.
11 “나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린 것처럼 내가 너희를 무너뜨렸다. 너희는 불 속에서 꺼낸 타다 만 막대기 같았다. 그런데도 너희는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다.
아멘~~
그렇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저도 딱 이 말씀을 묵상하며 마음 아팠었네요
평안한 밤 되세요
샬롬 ~^^:;;
@자유하라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