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우는 사람
장석주
어딘지 모를 곳에서
겨울엔 눈 많은 파주로 넘어와서
꿈속의 꿈에서 홀로 울다가
눈사람 몇 개를 만들다 떠나겠지.
지난여름 장마에 맹꽁이가 울 때
시장통에서 사 온 편육을 먹고
고요한 음악에 귀를 쫑긋 세우면
고양이들은 구석에 몸을 숨기고
비탄과 유머도 모르는 채 졸고 있겠지.
피로가 몰려오는 저녁
사랑은 우리의 쓸쓸한 관습,
우리는 등을 켠 거실에서 고양이 두 마리와
눈 키스를 하다가 잠이 들겠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나, 우리는
파주에 산 적이 없는 이들에게
추억을 리본처럼 매달아주는 저녁들,
식탁에는 귀신들도 와서 밥을 먹겠지.
한밤중 늑골 아래서 누군가 말을 거는데
그건 귀신의 말,
알 수 없는 외계인의 말,
겨울마다 눈이 참 많이도 내렸지.
파주에서 인사도 잘하고 잘 웃는 당신,
사랑이 늘 크고 단단할 필요는 없었지.
우리는 작은 사랑을 하며
눈사람을 몇 개나 세우고 고양이를 보살폈지.
제발,
제발,
이게 꿈이 아니라고 말해줘.
파주엔 눈이 많이 내렸지.
눈 쌓인 그곳에서 우리가 죽고 나면
눈썹을 가늘게 그린 딸들이 와
꿈속에서 꿈을 꾸듯이 살겠지.
우리의 기일엔 눈썹 검은 세월이란 하객들이
모였다 흩어지겠지.
- 장석주시집 『꿈속에서 우는 사람』 2024.3
장석주
논산 출생.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시집 『햇빛사냥』 『완전주의자의 꿈』 『그리운 나라』 『어둠에 바친다』
『새들은 황혼 속에 집을 짓는다』『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