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적 검증(consensual validation)의 기능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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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가며 알게 되는 것 중의 하나는 사람마다 성향, 깊이, 이상 등 다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관점이 옳고 합당하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믿지 않는다면 자기 입장을 그토록 강하게 고수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잘 따져보면 사고의 폭이나 깊이가 자기보다 넓고 높은 사람이 무수히 많을 것이고, 그 반대로 자기보다 좁고 낮은 사람도 부지기수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도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강하게 자기를 피력하거나 고수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연수원에서 개최되는 집단상담에서는 한 방에 두 사람씩 배치한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룸메이트로 만난 사람들끼리 갈등을 표출하는 이들이 꽤 있다. 어떤 사람은 일찍 잠자리에 들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은 올빼미형으로 밤늦도록 바스락댄다. 또 어떤 이는 함께 산책 다니자고 하는데, 다른 사람은 각자 독립적으로 지내기를 원한다. 또 다른 어떤 사람은 방에 돌아와 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은 방에서만큼은 잠자코 쉬었으면 한다.
그런데 집단상담의 목적 중 하나가 각자의 뒷면을 비춰주어 자신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도록 해 주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식적인 장에서의 언행만이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모습이 거론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고발 아닌 고발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로 인해 룸메이트 간의 갈등이 고조되기도 한다.
나는 집단상담을 진행하는 리더로서 사람들이 예의 바른 모습으로 매끄럽게 지내기보다 그런 자잘한 차이를 이기지 못해 갈등하는 모습이 전개되면 오히려 반가워한다. 그런 데에서 각자가 지닌 비좁음이 노출되고, 그렇게 노출이 되어야 다부지게 그러한 모습을 다룰 수 있다. 즉, 각자의 서로 다른 모습을 그러려니 하고 넘기지 못하고 문제로 키우는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룸메이트가 침구를 정리하지 않아 불편하다고 어떤 사람이 말하자, 다른 사람은 뭘 그런 것까지 잔소리하느냐고 발끈했다. 다른 팀에서는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실수한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고 서운해하자, 다른 사람이 자기는 사과를 했는데 얼마나 더 깊게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거냐고 반박하였다. 또 다른 팀에서는 적어도 방 식구라면 함께 식당에 가거나 산책하러 갈 때 같이 가자는 말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상대에게 서운함을 표현하기도 하고….
자기와는 다르게 마련인 상대의 태도를 마땅치 않다고 불평하니, 두 사람 이상 모이면 갈등하게 마련인 듯하다. 그런데도 사람은 혼자 살면 외로워하고 함께 살면 마땅치 않아 하니 이런 딜레마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이 뭉쳐 살면서 부대끼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너그러워지게 마련이다. 마모가 되어서 그렇든 세련미가 더해져서 그렇게 되었든 너그러워지지 않으면 더불어 살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모난 정도가 심해 도무지 어우러지지 못하는 사람은 무리를 떠나 자연인처럼 혼자 사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마련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소득이 증대되면서 개인을 중시하는 사회로 변모되었고, 그로 인해 각자의 개성, 선택, 자유 등이 그 어느 것보다 우선하게 되었다. 개개인의 인권이 중시되는 것은 언제 어디서고 바람직한 가치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더불어 사는데 필요한 절제 및 다듬어짐이 부족한 채 중뿔난 모습들이 거칠게 부딪친다는 사실이다. 내 인권이 중요한 만큼 상대의 인권도 중요하다면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정선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보편성을 띤 상식과 규범이다.
하지만 다들 소중하게 취급받으며 살아서인지 각자마다 자기가 합당하다는 믿음을 갖고, 자기와 다른 상대가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니 갈등이 생겨나지 않을 리 없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갈등이 표출되어 마찰을 빚어도 그것을 정리해줄 어른이 없기 때문인지, 인식의 변화를 맞이하지 못한 채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상대가 나와 다른 것에 대해 그럴 수 있다고 여기지 못하고 자기 견해나 태도가 합당하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일깨움이나 가르침을 주는 어른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어느덧 우리 사회는 어른을 상실한 지 오래다. 오늘날 대개의 부모는 경제 활동을 하기에 급급하거나 자녀를 좋은 학교에 진학시키는 것에 목숨을 거는 식이다. 사람답게 사는데 필요한 소양을 길러주는 것은 뒷전이다.
필요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생겨나게 마련인지, 부모가 해주며 키웠어야 할 일깨움을 대신해주는 장치가 다름 아니라 집단상담에서 시행되는 합의적 검증(consensual validation) 과정이라고 본다. 이것은 양자 간에 갈등이 생겼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봄으로써 어떤 게 상식적인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다수가 어디에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합당성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군집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인지 다수가 아니라고 하면 내키지 않아도 고개를 숙이는 경향을 보인다. 바로 이런 점을 활용해 집단상담에서는 어떤 것이 보편적이고 어떤 것이 함께 살아가는 규범인지를 익히는 것이다.
첫댓글 "사람답게 사는데 필요한 소양을 길러주는 것"
"자기 견해나 태도가 합당하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
오늘도 좋은 상담 사례..
감사해요,,,
늘 이렇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국에는 본격적인 장미로 많은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