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고양이
신이인
1. 괴물
지난가을 어떤 고양이를 지독하게 쫓아다녔다 이제껏 한번도 좋아해본 적이 없는 품종의 고양이 조용한 고양이 예의가 바르고 몸단장에 신경을 쓰는 고양이 사람 말을 할 줄 아는데 자기가 강아지라고 말하는 고양이
나는 그 고양이네 집에 가서 사기그릇을 깨고 배수관을 터뜨리고 행거를 넘어뜨렸다 입에서는 '좆됐다' 소리가 나와버렸고 '욕도 해요?' 고양이는 무서워하며 내게 조금씩 거리를 뒀다 캄캄한 꿈속에 대고 고양아 고양아 부르면 오지 않았지만 고양이라 부르기를 멈췄을 때 다가와서 멍멍 소리를 냈다
멍멍
(번역 :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훌륭한 동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이 절 훌륭하지 않은 동물이라 여기는 것은 견딜 수 없습니다. 나는 훌륭해지기 위해 매일 털을 빗고 세수를 하고 깨끗한 양말을 골라 신습니다. 나쁜 말을 쓰지 않고 소리 나지 않게 주의해 걸으며 향수를 잊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정말로 현명하다면 내가 바라던 주인이지 몸종이라면…… 나의 진실을 벌써 눈치챘겠지요…… 그 사실을 떠올리면 발톱을 꺼내서 털을 마구 헝클어뜨리며 이 방 창문까지 날아오르고 싶어집니다. 침대 위에서 눈 감은 채 은근하게 웃는 당신 얼굴을 참을 수 없어요. 자, 이래도 내가 고양이입니까? 나는 부리를 꺼내 당신 정수리를 찍습니다.)
고양이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넌 날 몰라 네가 뭘 안다고 너는 아무것도 몰라 가끔 고양이는 두 발로 걸었고 세 발로도 걸었고 걷지 않고 움직이기도 했다 정말로 고양이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나 피투성이 이마로 눈을 뜨면 난 되뇌어야만 했네 고양이다 고양이야 내가 쫓아간 고양이 그러니까 어젯밤 그건 일종의 애정 표현…… 입맞춤…… 내가 모르는 세상에는 부리와 날개와 단지 독특한 사랑법을 가졌을 뿐인 고양이가 있는 것이다
침대 아래에는 모서리 많은 파편이 자갈처럼 깔려 있으며
고양이는 이것을 본인이라 말한다 자 걸어봐 내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걸어봐
네가 선택한 아픔을
염치없이, 고양이에게 이해를 바랄 수 없는 아픔을
불안 굉음 적목현상 의기소침 연민 안으면 흘러내리는 부드럽고 연약한 몸 그 안에 무수한 칼날
모두 고양이였다고 생각해?
쏟아지는 옷 더미와 젖은 바닥과 사방에 널린 날카로운 조각 꿈의 조각
어지러이
나는 얼마간 분실되었다
내가 모르는 세상에서
알 수 없는 동물이 되어
2. 연인
봄에 나는 우연한 계기로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강아지를 만나게 되었다 '안녕, 반가워요' 그의 첫 마디를 들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한번에 반하는 것처럼 깨달았다 당신이다 당신이 고양이에게 말을 가르쳤다 조용한 당신 예의가 바르고 빈틈없는 당신 오늘 처음 만났지만 내가 열렬하게 좋아해본 적 있는 당신 외에도 중요한 여러 당신을 도둑맞은 당신이다 나는 당신이 보여주지 않은 빈틈을 본다 그 빈틈에 들어맞는 조각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서리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안다 고양이는 사라졌고 당신은 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니다 그러나 당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나 이 여름이 지나기 전에 당신을 이해한다
신이인
1994년 서울 출생. 2021년 〈한국일보〉신춘문예 시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