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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설의시대]'하와이항명사건을 아시나요?
지금은 진실이 묻혀졌지만 엄청난 폭발성과 아슬아슬하고 드라마틱한 결말, 잔인한 보복. 그리고 4년이나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하와이항명사건을 아시나요?'..
그러니까 시간을 거슬러 96년 2월 하와이 호놀룰루. 해태가 2년째 전지훈련장으로 이용한 하와이는 여러가지 점에서 일본이나 대만보다는 훨 나았다. 따갑지만 뜨겁지 않는 햇빛, 적당한 습기와 청명한 공기, 불편없는 훈련시설. 그리고 개고기 빼놓고는 다 있는 한국음식. 그야말로 최적이었다.
그러나 해태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95년 김성한의 은퇴와 선동렬의 주니치 이적으로 팀은 꼴찌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선동렬 이적파문으로 노주관사장과 이상국 단장의 목이 한칼에 날아가고 마의웅사장 체제가 들어섰던 시점. 모든게 불안했다. 어찌보면 해태천하가 끝나야 야구판이 살아난다고 씨부렸던 딴넘들이 드뎌 살판난 세상이 온 거다.
천하의 코끼리감독도 졸라 엄살이었다. "워뜨게 이런팀으로 우승하겠나. 내가 뭐 용빼는 재주도 있는것두 아니니 올핸 기대 접어두드라고 잉." 코끼리의 속내는 그게 아니었다. 조계현, 이강철 홍현우, 이호성, 이순철이 있으니 해볼만 했다. 것두 투타의 짱 이종범과 이대진이 마지막방위 소집해제를 하는 5월부터는 공세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다. 그러나 전혀 생각치도 못한 엄청난 회오리가 코끼리를 향해 다가올 줄이야...
전지훈련은 별다른 일없이 평온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비춰졌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안으로는 곪고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코치들의 강압적인 태도와 비인간적인 처사에 선수들이 불받기 시작했다. 워낙 위계질서가 뚜렷하기로 소문난 해태내에 후배선수들의 머리에 가스가 찰 정도면 쉽게 짐작할거다. 툭하면 손찌검과 방망이질, 양말 속옷까지 빨아서 바쳐야되는 선수들..
훈련도 힘든데 더욱 지치게 만든 것은 코치들이었다. 약 20일동안 그런식으로 선수들의 속을 부글부글 끓어올랐는데 결정적으로 폭발일보직전에 휘발류를 끼얹은 사건이 있었다. 지금부터 시간대별로 정리하겠다.
▩ 2월25일 새벽 1:30분 최고참 이순철의 룸.
갑자기 전화통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지만 뒤척이다 겨우 눈을 부칠 무렵이었던 이순철. "워떤 시끼가 밤늦게 전화질이야."라고 욕지거리를 하면서 전화를 받았는데 장채근코치였다. 선수들이 밤마실 나갈 것을 감시하라는 코끼리의 지시를 받고 일일히 선수방을 체킹하는 전화였다. 열받은 이순철은 "아니 지금 몇신데 전화해서 감시하고 그러냐."면서 전화를 끊었지만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그렇찮아도 후배들의 불만을 다독거리면서 선배코치들의 비위를 맞춰주느라 졸라 열받았는데 미칠노릇이었다.
▩ 2월25일 아침 7시 호텔 알라모아나 엘리베이터안.
잠못이뤄 씩씩대면서 아침산책(코끼리가 선수들이 밤늦도록 술쳐먹고 들어오자 짱구를 굴린 끝에 짜낸 것. 이시간이면 대충 얼굴만 봐도 어젯밤에 뭘 했는지 알 수 있다.)에 나서는 이순철. 아무리 생각해도 코치들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안에 들어가니 유남호코치가 떡 서있었다. 별말없이 그냥 내려서 선수들이 모여있는 길가로 나왔다. 그런데 여기서 말다툼이 벌어졌다. 유코치가 "이자식이 뭐 그거가지고 성질부리냐"면서 이순철의 옆구리를 쳤다. 근데 이순철은 그게 아니었다. '닝기미 조또' 보이는게 없는 이순철이 엉겁결에 날린 주먹에 정통으로 유코치의 얼굴이 맞게 됐다. 코치들과 선수들이 뜯어말리면서 싸움은 끝났지만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선수들은 곧바로 산책길 반대방향으로 몰려갔다.
▩ 2월25일 오전 8시 한국식당 서라벌
오전산책을 거부한 선수들이 모두 몰려가 있었다. 하늘같이 모시는 이순철과 유남호코치의 싸움으로 선수들의 감정이 폭발했다. 그렇찮아도 코치들 때문에 열받았었는데 이 기회에 단단히 버릇을 고쳐주자는 분위기였다. 아예 "이런 분위기에서는 도저히 야구를 할 수 없다. 당장 귀국하자!!"는 분위기였다. 결국 매니저를 통해 귀국할때까지 코치들하고 같이 생활할 수 없으니 호텔을 옮겨주고 여권을 모두 내놓으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전지훈련이고 뭐고 팀이 완전히 절단나는 분위기였다. 이소식을 듣고 화들짝 놀란 코끼리는 서라벌식당에 찾아와 선수들에게 읍소를 했다. "이렇게 썩어있을줄은 몰랐다. 지금은 나가려고 해도 비행기표가 없으니 좀 참아라. 나 1년만 더 하자. 이렇게 야구인생을 끝낼 수는 없다"면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면서 선수들을 설득했다. 최윤범 당시 부장 등 직원들이 모두 찾아와 말렸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나 윤기두 매니저의 간곡한 설득에 선수들이 쪼금씩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훈련은 하자. 기자들이 와 있다. 기사화되면 너희들도 다친다." 결국 토의를 거친 선수들은 알라와이 구장으로 자리를 옮겨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 2월25일 오후 1시30분 알라와이 구장
이날 예정된 청백전은 강태원이 선발투수로 내정돼 있었다. 기자들 때문에 겨우 훈련을 시작했지만 이미 분위기는 개판이었다. 이때는 코치들도 열받아서 이런넘들하고 야구못하겠다며 훈련참가를 하지 않고 강짜를 부리기 시작했다. 결국 코끼리가 나서서 노크볼을 쳐주면서 직접 훈련을 지휘했다. 이러니 훈련이 제대로 이뤄질리 없었다. 짱구를 굴린 쪽은 선수들. 강태원이 팔꿈치가 아파서 경기를 못하겠다면서 철수를 했다. 이때 기자들은 선수넘들과 코치들의 행동에서 이상한 낌새를 차리기 시작했다. 암튼 선수들은 도구를 싼 뒤 다시 서라벌 식당으로 내뺐다.
▩ 2월23일 오후 3시 다시 서라벌식당.
고참들보다 후배들이 살기등등해졌다. 고참들이야 코치들에게 당하지 않았지만 후배들은 몽둥이세례와 갖은 고생을 했다. 절대 숙소로 들어갈 수 없다고 버티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참들은 달랐다. 선배들의 얼굴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순철이 뭐라 대꾸가 없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확대되니 할 말도 없었겠지만 사태를 절단내지 않겠다는 무언의 암시 같은 것이엇다. 그러나 이럴수록 온건파보다는 강경파의 입김이 센 것은 당연한 일. 김정수, 이건열, 조계현, 송유석, 이강철, 홍현우는 강경했고 선수들은 이때만 해도 무조건 귀국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선수단의 궃은 잡일을 도맡은 매니저 윤기두과장이 나서면서 사태가 조금씩 수습되기 시작했다. "팀이 이번 사태로 쫑이 나버리면 가장 크게 다치는 쪽은 선수들이다", "너희들 가운데 특히 이순철은 영원히 매장될 수도 있다."는 설득에 선수들이 조금씩 무너졌다. 그리고 일부 고참들도 이런 분위기에 동조하면서 선수들은 다시 숙소인 저녁때쯤 알라모아나호텔로 귀대했다. 저녁 훈련도 대충하면서.. 이렇게 해서 기나긴 하루는 지났다.
이후 선수들과 코치들은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은 선에서 전지훈련을 마무리 했다. 귀국직전 코끼리는 알라모아나 호텔 커피숍에서 고참들을 따로불렀다. 이 자리서 고참들에게 일일히 할말 있으면 하라고 했고 한 고참은 "앞으로 잘해주십시오. 다들 처자식이 있는 몸입니다."는 분위기로 끝이 났다. 이후 그럭저럭 전지훈련을 끝났다.
귀국후 코끼리는 김모코치를(혹독함으로 선수들의 원성을 샀던 인물) 2군으로 내려보내며 유화 제스처를 보였다. 그러나 파장과 후유증은 시즌내내 아니 3년동안 아주 은밀하게 이어져왔다.
바로 코끼리 때문이었다. 하와이 항명사태로 코끼리는 천추의 한이 남았다. 어쩌면 감독인생마저 끝날 위기였다. 얼마나 잠못이루고 살떨리는 밤을 보냈을까. 코끼리의 잔인한 보복은 당연했다. 시즌초반 해태가 꼴찌로 헤맬 때 코끼리는 버스안에서 이런말을 했다. "내가 그 일을 잊을 줄 아느냐. 어떻게든 너희들에게 보복을 하겠다." 그리고 코끼리는 그 말을 철저하게 실천에 옮겼다.
이순철은 대수비나 대주자, 이호성 역시 대수비. 그리고 이건열은 아예 2군으로 쫓아버렸다. 김정수만이 마무리로 활약한게 유일했다.(코감독은 김정수가 사태수습당시 가장 온건한 입장이었다고 오판했다) 그러나 성적이 4위를 달리면서 신통치 못하자 주위의 따거운 시선을 의식한 코감독이 한발 물러섰고 7월초 이순철, 이건열, 이호성을 동시에 기용하면서 팀은 18승2패의 경이적인 승률로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코끼리는 조심스럽게 항명사태의 주범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96년이 끝난 뒤 조계현과 정회열은 삼성트레이드, 이듬해 이순철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서 제외한 뒤 자유계약선수로 방출했고(이것으로 이순철과 코끼리는 웬수지간이 됐다) 이건열은 쓸쓸하게 옷을 벗었다. 송유석은 96년을 마치고 동봉철과 함께 LG로 트레이드. 그러나 김정수는 코끼리의 추천으로 SK로 이적,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현재는 이호성과 홍현우만이 해태에서 유일하게 남았다. 이 과정에서 코끼리는 기다리고 참으면서 기회를 보았다. 누가봐도 이의를 달지 못하는 시점에서 보복을 가했다. 그러니 별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코끼리는 용의주도했다.
하와이 항명사건의 알려진 전말은 이렇다.
" 숱한 사람들이 이 사건으로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끝까지 그 폭풍속에서 다치지 않고 살아남은 이가 있었다. 바로 코끼리 김응룡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