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Brunch) 블로그에 올라온 글이다.
26살 아가씨(유수진)가 회사에 출근하려면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 6시 25분에 어김없이 마을버스를 타야 했다. 겨울에는 주변이 암흑 같아 더 춥기도 하고 우울했다. 버스를 타면 어김없이 동네 분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가씨는 이 먼 직장을 금방 때려치운다고 하면서도 몇 개월을 버티며 다니고 있었다.
유독 춥고 어두컴컴했던 어느 겨울 아침, 버스에서 내려 안양역 지하철을 타러 올라가는데 캐주얼한 정장을 입은 한 중년의 남자가 자신을 불러 세웠다. 아주 급한 목소리였다. 스산한 새벽공기 때문인지 너무나 긴장된 순간이었다.
“아가씨,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그리고는 허둥지둥 역내의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남자는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 당황해 하면서도 무엇인가 잡히는 대로 집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가씨는 그냥 갈까, 어쩔까, 수백 번 고민하던 순간에 그 남자가 편의점에서 나왔다. 그의 손에는 다이제라는 과자와 따뜻한 꿀 차가 들려 있었다.
경계하는 아가씨에게 그는 말했다.
“110동 살죠? 그 앞 주차장에 있는 하얀 차가 내 차예요(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라고 말하는 듯). 그냥 내 딸 같아서, 뭘 사주고 싶은데 어떤 걸 좋아할지 몰라서. 회사 가서 먹어요!”
그리고 남자는 전철을 타기 위해 플랫폼으로 향했다. 그 남자는 툴툴거리면서도 한 번도 6시 25분 마을버스를 놓치지 않았던 아가씨가 무척 대견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아가씨는 손에 들린 그것을 바라보면서 ‘잃은 적도 없지만 모든 걸 보상받은 듯했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세상 많은 사람이 지쳐가고 있다.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다. 아니 쓰러져 있는 사람도 많다. 밟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모두에게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시기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외치신다.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이사야 40장 1절)
여기서 위로라는 단어는 ‘나함’인데, ‘강하게 숨을 쉰다’는 뜻이다. 위로는 바로 ‘강하게 숨을 쉬도록 하는 것’이다.
숨이 막히는 답답한 세상에서 강하게 숨을 쉬게 하는 것이 위로다.
위로의 영어 ‘Comfort’는 ‘침대의 이불’이라는 뜻도 있다.
‘이불을 덮고 크게 숨을 쉬며 편안하게 하는 것이 위로’다. 위로는 사람을 통해서 온다.
바로 당신을 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