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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의 득도를 원한다면 ‘버드피쉬’를 만나라!
2013년 1월 이의춘 데일리안 편집국장이 올린 ‘버드피쉬’(방민준 저/어젠다 간)에 대한 서평을 재록합니다. 이 국장은 저의 졸저 ‘버드피쉬’를 대한 뒤 〈동양 선 사상과 골프의 하모니 ‘버드피쉬’〉란 제목의 서평을 통해 ‘버드피쉬’의 내용을 저자가 놀랄 정도로 명쾌하게 정리해주셨습니다. 절판되었던 ‘버드피쉬’가 최근 골프애호가들을 위해 다시 인쇄되어 배포된 것을 계기로 그의 서평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의춘씨는 아시아투데이 편집국장, 데일일란 편집국장, 미디어펜 대표이사 발행인으로 활동하게 있습니다.
◇ '버드피쉬' 방민준 저/어젠다 간
“나는 오늘 한국의 지리산에서 만난 선(禪) 수행자 걸리도사님의 도움으로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죽음의 문턱을 넘고 있던 나를 살려주셨고 그리고 나를 새로운 정신세계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배운 골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골프를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멀리까지 오셔서 저의 캐디역할까지 멋지게 해주셨습니다. 저의 영원한 영적 스승인 걸리도사님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게 돼 너무 기쁩니다.”
세계최고의 골프대회인 영국의 디 오픈. 무명의 아마추어 선수인 존 무어가 우승 소감에서 그의 스승이자 캐디인 ‘걸리도사’를 언급한 대목이다.
존 무어는 디 오픈 4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기적의 샷을 연출했다. 18번홀은 톰 모리스홀. 존은 11언더파로 북 아일랜드의 젊은 영웅 션 쿠퍼와 공동선두라는 것을 모른 체 타석에 들어섰다. 존의 티샷은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가는 듯 했으나 엉뚱한 방향으로 튀면서 벙커로 굴러들어갔다.
존의 볼을 벙커 턱 밑 가까이 붙어 바로 그린을 노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린에지에 갖다 놓는 것은 가능해 보였다. 존은 피칭웨지를 꺼내 그린 오른쪽 안전지대를 겨냥했다. 쓰리 온 파 세이브를 목표로 했다.
하지만 걸리도사가 다가와 “이젠 알 필요가 있네. 자네는 지금 공동선두야.”
그는 “이게 꿈인가요” 하며 물었다. 걸리도사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으니 승부수를 던져야 하지 않겠어?”라며 기상천외하고, 창조적인 샷을 할 것을 조언했다.
선(禪) 수행자 걸리도사와 존 무어의 만남
그것은 그린 우측 뒤쪽에 세워져 있는 중계탑 중간에 있는 광고판을 정확히 맞히는 샷이었다. 광고판을 목표로 벙커샷을 날리면 그대로 튀어 그린 위로 떨어질 확률이 높았다. 실패해도 그린 에지 주변은 지킬 수 있다고 조언했다.
존은 걸리도사의 황당한 제안에 어리둥절했다. 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불가능한 모험은 아닌 듯 싶었다. 그는 모험을 즐기기로 했다.
중계방송 해설자는 존이 직접 그린을 노릴 수 없어 쓰리온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나 존은 볼에 다가가 두 발을 묻고 어드레스를 했다. 몇 번이나 중계탑 광고판을 응시했다. 조금 후 폭발적인 샷을 감행했다. 갤러리들은 순간 비명을 터뜨렸다. 볼이 그린이나 그린에지가 아닌 중계탑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볼은 중계탑 광고판을 맞히고 되 튀어 그린 쪽으로 떨어지자 탄식과 실망의 소리는 환호와 박수갈채로 돌변했다.
존의 볼은 홀 방향으로 굴러 1미터 남짓 거리에 멈췄다. 기적의 벙커 샷을 성공한 후 존은 걸리도사와 주먹을 부딪쳐 자축 세리머니를 했다. 버디로 홀 아웃하면서 12언더파. 우승이었다.
요란한 환성과 박수 소리 속에서도 존의 귀에는 지리산 산채 지붕 끝에서 울리던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맑고 순수한 종소리였다. 그는 걸리도사를 등에 업고 그린을 한 바퀴 돌았다.
디 오픈 사상 가장 창조적 샷으로 우승한 무어
해설자는 디 오픈 사상 가장 창조적인 샷이 탄생했다고 극찬했다.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어프로치 샷을 무명의 아마추어 선수가 만들어냈다고 했다.
그의 우승 소감.
“생애 최고의 날에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클라레 저그에 쌀로 빚은 한국의 전통주 막걸리를 담아 걸리도사와 축배를 드는 것입니다. 아마 오늘 밤에 가능하겠지요.”
존은 우승 이후 이어진 행사에 정신을 빼앗긴 동안에 걸리도사는 현장을 벗어났다. “존, 내 할 일은 다 끝났네. 이제부턴 자네가 알아서 하게.” 간단한 메모를 남기고 세인트앤드루스역으로 향했다.
'버드피쉬'는 골프판타지 소설이다. 한국 최초로 선보이는 새로운 장르의 골프소설이다. 저자 방민준은 한국일보 경제부장과 논설실장을 역임한 중견언론인으로 골프의 정신세계에 심취해 골프관련 책을 잇따라 출간했다.
'버드피쉬'는 네 번째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장편소설이다. 그가 출간한 골프책들은 골프계에서 새로운 지평과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골프에 동양의 심오한 정신세계, 즉 선(禪)사상으로 대표되는 구도와 득도의 정신세계를 접목했기 때문이다. 골프 서적이라면 기술적인 내용, 어떻게 하면 잘 치고, 타수를 줄이고, 싱글골퍼로 갈 수 있는지를 안내하고 해설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저자는 이 같은 골프서적계에 새로운 충격을 주고, 골프의 진정한 의미와 골퍼가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고차원적인 담론으로 승화시켰다.
국내 첫 골프판타지 소설 주목받아
첫 선을 보인 '달마가 골프채를 잡은 까닭은?'은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중국의 선승 달마대사와 골프를 접목시켜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줬다. 골프가 단순한 훈련과 기술등을 통해 잘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정신적 수행과 연관돼야 참된 묘미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 이어 '초원의 길, 골프', '명상 골프' 등의 에세이집도 골프의 정신세계를 깊이 탐구한 책들이다.
이번에 나온 '버드피쉬'는 그동안의 골프에세이집과는 달리 판타지소설인 점이 특징이다. 저자의 머릿속엔 늘 골프소설에 대한 꿈과 열정이 똬리를 틀고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2년간의 작업 끝에 선보인 <버드피쉬>는 저자가 체험한 골프세계의 감동과 경이를 소설적 형식으로 담았다. 저자는 “골프가 서양에서 발원한 스포츠지만 골프 자체에 깃든 정신과 골프에게 요구되는 동양적 사유를 새롭게 발견하면서 동서양의 교감을 통한 골프의 완성을 꿈꾸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골프는 구도(求道)의 길이요, 골퍼는 구도자(求道者)와 같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버드피쉬'는 저자가 창조한 상상의 동물이다. 새의 머리와 날개에 물고기의 지느러미와 꼬리를 한 동물로 창공(蒼空)을 날고 싶은 새와 깊은 바다를 유영(遊泳)하고 싶은 물고기의 꿈을 함께 담고 있다.
골프를 즐기고, 사랑하는 골퍼가 지향해야 할 정신세계와 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18홀로 이루어진 골프장에서 플레이 하나하나가 무념무상, 몰아와 무아의 경지에서 구도자가 도를 닦는 것처럼 하라는 것을 비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창공을 날다가 심해서 유영하는 '버드피쉬'
주인공 존 무어는 영국의 명문 켐브리지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학창 시절 아마추어 골프선수로 활약했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동양사상에 심취해 인도, 티베트, 네팔, 중국, 일본 등지를 3년여간 떠돌며 진정한 자아를 탐구하고자 했다.
티베트 여행 중에 한국승려를 만난 것은 그의 인생에 극적인 전환점이 됐다. 한국승려는 그에게 진정한 명상의 세계, 선의 세계를 엿보려면 한국의 선수행 사찰을 찾아가볼 것을 추천한 것. 송광사 해인사 등 사찰순례를 나섰던 존은 우연히 지리산에서 길을 잃고 사경을 헤매던 중 막걸리도사에게 구조돼 1년간 선사상과 골프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막걸리도사는 막걸리를 즐겨 마시는 도사라는 뜻이다. 막걸리도사는 10여년 전까지 서울의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였다. 대장암 말기판정을 받고는 지리산으로 들어와 대체의학과 막걸리로 병이 완치되었다. 존은 꽁지머리에 개랑 한복을 입고 매일 막거리를 마시는 걸리도사에 대해 걸리도사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존은 걸리도사와 함께 지리산 산채생활을 하면서 전에 없던 행복감을 맛보았다. 인도와 티베트를 순례하던 때보다 더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비워지는 것을 실감했다. 낮에는 숲을 소요하거나 땔감을 구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에 서너번 지리산 능선에 올라 운해를 내려다보고, 일출이나 일몰을 감상했다. 더 없이 황홀한 순간이었다.
지리산 정신수양으로 동양정신 진수 깨달아
숲속을 거닐고 능선에서 자연의 변화를 대하는 것 자체가 위대한 명상이었다. 지리산 오두막에서 지내기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존은 걸리도사와 시내 읍내 5일장에 나갔다가 그곳 초등학교에서 골프를 배우는 어린이들을 봤다. 학생들에게 다가가 4년만에 골프채를 잡아 몇 번 볼을 때려보면서 문득 가슴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골프에 대한 그리움과 열정이 솟구침을 느꼈다. 걸리도사도 서울생활 당시 골프에 대한 열정을 가졌었다고 했다.
걸리도사는 존의 스윙이 발레의 한 동작처럼 부드럽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물 흐르는듯한 부드러운 스윙의 대명사인 ‘빅 이지’ 어니 엘스나 비제이 싱을 보는 듯했다. 존은 골프를 배우는 학생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영어와 골프를 가르쳤다. 이 학교에서 영어교사 겸 골프 특별활동반을 맡고 있던 김보리 선생과의 사랑도 깊어갔다.
존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미국 조지아주에서 열리는 마스터스대회 중계방송을 보았다. 다시금 골프에 대한 열정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마추어 시절, 그는 영광과 좌절을 맛본 후에 골프와 결별했다. 대신 안정적인 직업이 보장되는 건축학에 몰두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인도의 한 구루가 “나는 누구인가? 도대체 나는 무엇을 나라고 생각하는가. 이 육체덩어리인가, 생각인가. 아님 이 두가지가 결합된 것인가. 죽음과 함께 나는 사라지는 것인가?”라는 강연을 보고 동양여행길에 떠났던 것이다.
학교가 여름방학에 들어가면서 존은 걸리도사의 제안으로 골프채를 움막에 갖다놓고 본격적인 골프를 위한 몸만들기에 돌입했다. 두시간의 빈스윙에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지리산 능선까지 오르내렸다. 통나무를 어깨에 메고 몸통회전운동을 하는 등 골프근육을 키우기위한 원시적 방법을 총동원했다.
골프 기술은 종이 한장 차이, 중요한 것은 마음의 움직임
어느 날 걸리도사는 존에게 “골프에서 테크닉, 즉 기술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존이 머뭇거리는 사이 걸리도사는 기술차이는 종이 한장 차이라고 했다.
기술은 기본이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벗어난 부분, 예컨대 상황 변화에 따른 마음의 대응과 움직임이라고 했다. 미스샷의 원인은 실수가 아닌, 마음 탓이라고 강조했다. “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다스릴 수 없으면 자신의 게임을 유지할 수 없네. 마음에 휘둘린다는 말씀이야 내 마음대로 안되는 그 무엇을 어떻게 다룰 줄 아느냐가 핵심이지.”
걸리도사는 존에게 그 무엇, 다시 말해 구도자의 자세를 가지라고 주문했다.
존이 걸리도사의 도움을 받아 골프의 정신세계에 대해 개안(開眼)을 지속해나가는 즈음. 둘은 송광사에 나들이했다. 걸리도사는 존에게 전각에 그려져있는 심우도(尋牛圖)를 보여줬다. 소와 목동의 그림이 이어져있는 벽화였다. 걸리도사는 존에게 “심우도는 골프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고 했다.
목동이 잃어버린 소를 찾는 심우도(尋牛圖)와 골프
선을 공부하는 사람에겐 귀중한 그림으로, 잃어버린 소를 찾아 나서서 소를 찾아 돌아와 끝내는 소와 나 자신마저 잊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란 진리를 의미한다고 했다.
목동이 잃어버린 소를 찾아 나서고(尋牛), 소의 자취를 발견하고(見跡), 드디어 소를 보고(見牛), 소의 고삐를 잡고(得牛), 고집 센 소를 길들이고(牧牛),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騎牛歸家), 소를 잊고 자신만 느끼며(忘牛存人), 사람도 소도 모두 잊고(人牛俱忘), 원래의 근본으로 돌아가(返本還源), 저자 속에서 불성을 퍼뜨리는(入廛垂手) 경지를 절묘하게 표현하는 그림이었다.
존은 심우도를 보고 뇌성벽력을 맞은 듯 멍했다. 걸리도사는 존에게 심우도의 내용을 가슴깊이 새겨둘 것을 얘기했다.
지리산에 다시 겨울이 찾아와 폭설이 내린 날. 존은 지리산과 걸리도사, 김보리선생과 이별을 고하고 영국으로 돌아갔다. 걸리도사는 이별선물로 자신이 직접 깎아만든 버드피쉬 목걸이를 주었다. 버드피쉬는 이후 존의 골프인생에서 정신적 부적역할을 했다. 존은 이듬해 열리는 디 오픈 지역예선을 염두에 훈련에 돌입했다.
존은 걸리도사와 헤어지기 전에 동양적 사상에 입각한 골프의 진수를 전수받았다.
마음으로 치는 샷, 몸으로 날리는 샷, 클럽으로 치는 샷
“모든 골퍼들의 샷은 세범주로 분류할 수 있네. 마음으로 날리는 샷, 몸으로 날리는 샷, 클럽으로 날리는 샷이네.”
“골프를 배우면서 가장 먼저 터득하는 게 몸으로 날리는 샷이겠지. 골프 선배나 레슨 코치로부터 이것부터 터득하게 되지. 문제는 인내심을 갖고 몸으로 날리는 샷을 제대로 터득하면 좋으련만 대부분은 몸으로 날리는 샷을 완전히 익히기전에 마음으로 날리는 샷을 익힌다는 거야.”
“마음으로 날리는 샷에 이끌이면서 골프는 고난의 게임으로 변질되고 말아. 샷의 질로 따지면 마음으로 날리는 샷이 가장 아래 수준이야. 몸으로 날리는 샷은 제대로만 익히면 신체조건을 신분활용하면서 일정한 수준에는 도달할 수 있거든.”
“그러나 마음의 샷은 종잡을 수가 없다네. 남들보다 좋은 샷을 날리겠다고 욕심내는 순간, 지난 홀의 미스샷을 만회하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정상적인 샷은 사라지고 마네. 마음이란 짧은 순간에도 온갖 잡념을 불러일으키는 요물이야. 마음이란 아무도 못 말리는 망나니지. 마음이란 잡히지도 않고, 통제할 수도 없는 녀석이야.”
“ 자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마음의 제어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의 자유일세.”
“최상의 샷은 클럽으로 날리는 샷이네. 클럽은 각기 다른 로프트 길이, 무게로 일정한 비거리와 탄도, 방향성을 실현하도록 설계되고 제작되었지 않은가?. 이런 것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네. 각 클럽이 갖고 있는 속성이 자연스럽게 발휘되도록 하는 샷이 클럽으로 날리는 샷이네.”
“결국 자네에게 가장 필요한 화두는 어떤 과정을 거치든 결국 마음의 비움을 실천하는 일이네. 아무리 위험하고 극적인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북극 얼음처럼 무겁게 냉철해야 하네.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 좋은 것이었든 나쁜 것이었든 지난 홀의 모든 기억은 깨끗이 잊도록 노력하게. 모든 샷을 처음 시작한다는 자세로 날리게.”
마음의 제어가 아닌 마음으로부터의 자유
“헤드업을 방지하려면 볼을 벗이나 연인을 맞이하고 배웅하듯 진정으로 가득찬 가슴으로 대하게. 진정으로 사랑하는 연인이나 벗을 보내면서 뒷모습을 지켜보지 않고 바로 등을 돌리는 게 바로 헤드업 자세일세. 내 사랑하는 볼이 잘 가는지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본다는 마음으로 볼을 대하면 볼이 가기도 전에 머리를 들어버리는 일은 없을 걸세.”
“자네의 모든 샷은 자네의 업 카르마(karma)일세.”
걸리도사의 이같은 가르침은 사실상 골프의 경전에 해당한다. ‘골경(經)’. 이 책에 있는 수많은 경구와 교훈들은 골프의 테크닉과 기술, 레슨 등과는 다르다. 골퍼라면 누구나 영원히 간직해야 할 정신적 자양분들이다. 저자가 골퍼에 입문한 이래 골프와 정신세계를 탐구하고, 정진한 결과에서 추려낸 주옥같은 말들이다. 골프와 정신세계를 접목시켜 그 엑기스를 뽑아내 우리들의 마음을 채워주고 있다. 비단 골프에만 적용되는 말들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마음의 언어들이다. 그래서 그가 제시한 말들은 빛이 난다. 이것들을 읽을 때마다 무릎을 치게 되고, 감탄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골프의 경전같은 골신의 조언들
걸리도사의 가르침은 골프를 다시 시작하는 존에게 소중한 지침이 됐다.
존은 동양정신 세계 탐구를 마치고 드디어 4년 2개월만에 케임브리지 고향에 돌아왔다. 골프에 다시 정진했다. 세인트앤드루스 디 오픈에 참가하는 게 목표였다. 디 오픈에 참가하기위해서는 지역예선과 결선을 3위안에 통과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존은 쟁쟁한 프로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예선과 결선을 모두 통과했다.
아마추어가 디 오픈 티켓을 쥐는 것은 기적이었다. 그는 이 모든 영광을 걸리도사에게 돌렸다. “학창시절에 골프 기능을 배우는 데 열심이었다면 한국의 지리산에서 나의 스승은 골프를 대하는 자세를 가르쳐 주셨다. 특히 골프할 때의 정신자세, 마음의 움직임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이것이 이렇게 큰 효과를 발휘할지 몰랐다.”
드디어 디 오픈대회가 시작됐다.
존은 걸리도사에게 편지를 보내 캐디를 맡아 줄 것을 간청했다. 일생 한번 찾아올까말까 한 기회라고 강조했다. 사랑하는 연인 김보미 선생에게도 초청장을 보냈다. 존과 걸리도사는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와 비슷한 환경을 갖춘 링크코스를 찾아 실제 시합을 벌이듯 진지한 라운드를 했다. 처음에는 기호의 약속을 위해 자주 대화를 나누었지만, 약속이 이뤄지고 나선 그들은 거의 침묵의 라운드를 했다. 골프에 선사상을 접목시킨 존의 골프실력은 놀랍게 성장했다. 물 흐르듯 부드러운 스윙에 상황 판단력도 뛰어났다. 스윙은 군더더기 하나 없어 아름다운 서예 작품을 보는 듯했다.
디오픈 본선에 진출한 존 무어
위험에 직면했을 때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최선의 길을 찾아내고 좋은 기회가 왔다고 해서 흥분하며 덤벼들지도 않았다. 이같은 힘의 원천은 버드피쉬와 걸리도사였다. 버드피쉬를 보면 걸리도사가 떠오르고, 걸리도사를 생각하면 힘이 솟고, 희망이 솟아났다. 골프백은 물론 모자에도 버드피쉬의 문양을 일부러 새겨 넣었다.
둘은 연습라운드를 마친 후에는 시장바닥이나 광장을 거닐었다. 새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는 대회가 열리는 동안에는 호젓한 골프가 아니라 온갖 소음과 욕설, 탄성이 뒤범벅이 된 시장바닥과 같기 때문이다. 골프기량도 기량이지만, 온갖 스트레스를 툴툴 털고 플레이하는 습관을 익혀야 했다. 걸리도사는 존이 연습라운드를 마친 후에 시끌벅적한 선술집으로 데려가 목을 축였다.
“기량은 그만하면 됐다”고 했다.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선술집같은 코스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치는 연습일세. 기억나나? 송광사에 가서 봤던 벽화 말이야.”
심우도였다. 잃어버린 소를 찾아 집에 돌아와 소도 사람도 다 잊는 과정을 거쳐 나중에는 저자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과 깨달음을 나눈다는 벽화였다.
걸리도사는 “자네는 이제 잃어버린 소를 이끌고 집에 돌아왔어. 이제부턴 소도 자네도 잊고 저자 속으로 들어가 부대끼는 일이 자네를 기다리고 있네. 유서 깊은 골프의 고향 세인트앤드루스라고 떨지 말게. 그곳이 바로 자네가 뒹굴 시장바닥이야. 거기서 한바탕 신나게 놀면 그만이야!”라며 존을 격려했다.
라운딩에 앞서 명상으로 마음 평정 잡고
대회 첫째날. 출발에 앞서 명상을 했다. 텅 빈 우주를 흐르는 기운이 머리와 가슴속을 깨끗이 쓸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오묘한 빛깔의 하늘을 커다란 날개를 부드럽게 휘저으며 날아다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심해 속을 유영하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존 자신이 날개 달린 물고기 같았다. 나중에는 자신조차 아무 흔적없이 심해 속으로 녹아들었다.
1라운드를 6언더파의 좋은 성적을 냈다. 리더보드엔 존이 선두에 두타 뒤진 단독 3위에 랭크됐다. 2라운드는 악천후 속에서 다소 흔들렸다. 걸리도사는 이 때 “어떤 상황에서도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라며 다독거렸다. 지금 닥친 악조건들을 고려하되 거기에 지나치게 집착은 하지 말도록 했다. 2라운드는 3타를 잃어 합계 3언더파. 선두와는 3타 차이로 공동 5위에 올랐다.
셋째날. 하늘은 다시금 투명했다. 햇살은 눈부셨다. 존의 동반자는 스페인의 백전노장 미겔 산티아고. 산티아고의 트레이드 마크는 꽁지머리. 그는 역시 꽁지머리를 한 동양의 캐디 걸리도사를 보자 친근감을 느끼며 허그했다. 라운드 내내 둘은 친구가 됐다. 산티아고는 걸리도사에게 존에게 어떻게 적절한 조언을 해줬는지 물었다.
“존은 오랜 구도 여행으로 맑은 정신을 갖게 됐다. 그것이 골프를 하는데 큰 도움을 준 것 같다. 소금이 물에 녹아 하나가 되듯이 집중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소. 나는 존에게 확신과 용기와 격려를 해줄 뿐이요.”(걸리도사)
“그게 바로 최고의 캐디가 갖춰야 할 덕목인데...존이 부럽습니다.”(산티아고)
오랜 구도(求道)여행이 라운딩의 평정 유지 시켜줘
존과 산티아고는 게임의 스트레스 없이 기분좋은 라운드를 했다. 존은 보기없이 5언더파를 쳐 합계 8언더파, 산티아고는 4타를 줄여 7언더파로 홀 아웃했다.
마침내 디 오픈 마지막날. 존과 걸리도사는 첫째날 17번홀을 지나 18번홀 그린앞에 있는 그 유명한 스윌컨 번 브리지를 네 번 걸어가자고 다짐했다. 그 돌다리를 이제 네 번 건너게 됐다. 이제 4라운드까지 출전하게 됨으로써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게 된 것이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존과 걸리도사는 장바닥에서 한바탕 마음껏 놀아보자고 했다.
걸리도사는 “마지막 잔치를 멋있게 치르느냐, 망치느냐는 자네와 나, 특히 자네의 몫일세. 자네의 적은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아니라 자네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그것만 잘 다스리면 후회없는 하루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세찬바람과 안개비로 인해 라운드 조건은 최악이었다. 리더보드는 시시각각 바뀌었다. 순위도 요동쳤다. 다른 선수들이 대부분 서너타를 잃는 악조건 속에도 존은 전반에 두타를 줄여 10언더로 마무리했다. 존과 라운딩을 하는 미국의 거인 더스틴 스프링필드도 챔피언조와 함께 선두권경쟁을 벌였다. 여러대의 카메라와 십여명의 중계팀이 존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짝 접근했다.
존과 걸리도사는 지리산 골짝을 오르내리듯 평정심을 잃지 않고 플레이에 몰두했다.
하지만 후반 10번홀에 올라선 존은 가슴 속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중압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티샷이 만족스럽지 않은 곳에 떨어졌지만, 어프로치 샷으로 파세이브에 성공했다. 이후 가슴은 진정되지 않고, 호흡도 거칠어졌다. 11번홀 파3에서 더블보기를 했다.
존은 걸리도사에게 무엇을 잘못됐냐고 질문했다.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나야 하냐고 눈으로 물었다.
걸리도사는 “아무도 원망말게. 자네의 모든 샷은 자네 카르마의 결과인 걸”라고 다독거렸다.
걸리도사는 존이 승리를 떠올리며 플레이를 하는 것을 감지했다. 걸리도사는 존에게 “자네는 이미 디 오픈 출전이라는 목표를 훌륭하게 달성했다. 그런데도 자네는 지금 엉뚱한 욕심에 차 있는 모습이다. 왜 그렇게 우승에 매달리는가”라고 꾸짖었다.
샷은 업보, 즉 카르마의 결과
걸리도사는 다시금 잔치를 즐기라는 말을 잊지 말 것을 당부했다. 욕심을 내려놓고, 한 순간 한 순간 최선을 다하고, 그 후의 결과에 대해선 겸허하게 받아들이면 된다고 했다. 모든 샷은 존의 카르마의 족적이라는 점을 주지시켰다.
존은 다시금 버드피쉬가 떠올랐다. 지리산 바위틈에서 자신을 평온하게 잠들게 하던 눈송이가 잠시 눈에 아른거렸다.
12번홀부터 자신의 리듬을 되찾은 존은 다시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16번홀까지 선두 션 쿠퍼와는 한타차이로 좁혔다. 션 쿠퍼는 북 아일랜드, 존 무어는 잉글랜드 출신이어서 둘 다 영국선수였다. 갤러리들은 열광하며 두 선수에게 환호와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 홀인 18번홀 톰 모리스홀. 걸리도사는 멀리 보이는 올드코스 호텔 건물 벽에 세워진 리더보드로 눈을 돌렸다. 존이 11언더파로 션 쿠퍼와 공동선두에 올라있었다.
존은 아직 공동선두라는 사실을 몰랐다. 갤러리들의 환호에 상기된 존은 목에 건 버드피쉬를 어루만지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존의 티샷은 벙커로 굴러들어갔다. 존과 걸리도사는 네 번째로 스윌컨 번 브리지에 올라섰다. 갤러리들은 아마추어로서 경이적인 플레이로 공동선두에 오른 존과 걸리도사에게 환호성을 치며 박수를 쳤다. 존의 볼은 벙커 턱밑에 있어 그린을 바로 노릴 수 없었다. 존은 피칭웨지로 볼을 쳐내 오른쪽 그린에지를 노렸다. 파 이브가 목표였다.
그 순간 걸리도사가 어드레스를 풀게 했다. “자네는 공동선두를 달리고 있네. 일생일대의 호기를 활용하려면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고 했다.
목표는 그린주변이 아닌, 중계탑 중간에 있는 광고판을 맞추는 것이었다. 해설자나 갤러리들은 다들 벙커샷이 쓰리온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걸리도사는 벙커 샷을 높이 띄워 광고판을 맞춘 후 그 반동으로 되 튀어 그린으로 보내는 창조적인 샷을 주문했다.
존은 주저없이 벙커샷을 높이 날렸다. 볼은 광고판을 맞춘 후 그린으로 떨어졌다. 홀컵에 붙여 버디를 노릴 수 있는 곳에 안착했다.
갤러리들과 해설자는 열광했다.
해설자는 디 오픈 사상 가장 창조적인 샷이 탄생했다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디 오픈 전설에 극적인 전설을 더하는 순간이라며 흥분했다.
드디어 우승. 존은 골프 대회 상 중에서 가장 영예롭다는 클라레 저그를 품에 안았다.
진수 보여주는 판타지 소설
'버드피쉬'는 골프의 진수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다른 책들이나 골프에세이처럼 단순한 테크닉이나 기술연마, 어떻게 하면 스코어를 줄일 수 있나 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다. 그런 책들이나 비디오테이트, CD들은 서점에 가면 널려있다.
'버드피쉬'는 골프의 정신과 마음을 탐구한 책이다. 저자가 오랫동안 골프에 심취한 후 동양적 사상과 선의 사상을 교직해서 우려낸 골프세계의 정수와 혼이 다 녹아들어가 있다. 그래서 걸리도사가 존에게 가르쳐주는 내용들은 <골經>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정제돼 있다. 골프의 진정한 멋과 맛이 무엇인지, 골퍼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안내해주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버드피쉬는 우리의 삶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 날개를 부드럽게 휘저으며 드높이 창공을 날아갔다가 자연스럽게 고요한 심해로 유영해 들어가는 버드피쉬는 우리 삶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골프와 인생은 닮았다. 우리 삶은 매일 매일 치열하면서도 고단하고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골퍼가 매홀 매다 겪는 다양한 경험은 인생의 다양한 굴곡, 부침과 같기 때문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버드피쉬는 골퍼를 비롯 우리 모두가 닮고 싶은 삶의 모습이다. 심우도도 마찬가지다. 잃어버린 진리를 찾은 후에 돌아와 모두 잊고 유유자적하는 삶이야 말로 최고의 득도 단계가 아닌 가 싶다.
골퍼는 물론 골프와 상관없는 사람들도 일독을 권한다. 한번 손에 잡으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긴박감과 함께 정신과 영혼을 일깨우는 경구들이 많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의 삶이란 무엇이고, 참된 삶의 자세와 행복, 평안, 평강의 길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 길을 제시해주는 대목들이 많기 때문이다.